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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바다 속 이야기

2010-06-04


1979년 처음 바다 속에 들어갔던 젊은이가 백발이 성성한 모습으로 다시 바다로 들어간다. 바다가 성장시킨 관록의 사진들. 한국 수중 사진계의 1세대 장남원이 오랜 친구를 소개하는 마음으로 바다를 소개한다.

에디터 | 이영진(yjlee@jungle.co.kr)
자료제공 | 에비뉴엘 롯데갤러리

롯데갤러리 본점에서 7월 2일부터 18일까지, 한국 수중 사진계의 대부라 할 수 있는 장남원 작가의 개인전이 개최된다. 전시에는 전 세계 곳곳의 바다 속 전경이 대형 사이즈로 인화되어 50여 점을 선보일 예정이다. 전시회를 코앞에 둔 6월에도 여전히 작가 장남원은 세계 곳곳의 바다로 사진여행을 떠난다. 남아프리카의 바다부터 가까운 제주의 바다까지, 바다가 좋아 물 속으로 들어간 지 벌써 30년이 넘었다. 그는 성년이 되어 직업을 갖은 이후 단 한 번도 그의 손에서 카메라를 멀리해본 적이 없다. 카메라는 그의 삶이자 인생의 전부가 되었다.


장남원은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중앙 일간지에서 사진기자로 근무하면서 르완다, 걸프, 소말리아 등지에서 종군기자로 활동하기도 하였으며 평양을 비롯하여 러시아, 중국, 동유럽의 공산국가들과 아프리카와 양자강 탐사, 조선 통신사 발자취 등을 취재하기도 하였다. 또한 청와대와 국회 출입 기자를 비롯하여 스포츠 섹션의 팀장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그는 최고의 사진 기자로 명성을 날렸다. 현재는 일간지 논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있다.
장남원이 수중 사진을 접한 것은 70년대 말 신문사에서였다. 신문사에서도 수중사진을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던 터라 장남원씨는 스쿠버 다이빙에 입문하고 수중사진을 접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틈만 나면 국, 내외에서 다이빙을 즐기며 수중촬영에 열중하였다. 장남원씨가 일반 다이버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90년대 중반 이후로 다양한 저널 활동을 시작하고부터다. 당시 그의 사진은 수중 사진의 교과서가 되어 많은 사진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접사 사진으로 대변되던 국내 수중 사진계는 이후 스케일이 크고 주재가 확실한 작품성 있는 광각 사진이 많이 배출되었다. 그의 사진을 통해 국내 수중 사진계의 작품성이 놀라울 정도로 향상되었다는 것이 수중 사진계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1999년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수중사진 교육기관인 ‘한국수중사진학교’를 개교했다. 이를 통해 약 50명 정도의 수중 사진가가 탄생했으며 이들은 현재까지도 각종 국내 수중촬영대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1978년이다 난파선 다이빙의 천국이라는 축(CHUUK)으로 향 했다. 태평양 여행의 참상을 상징하는 난파선들이 전부 30m 이하에 고요히 잠자고 있는 것이다. 날씨는 쾌청하고 다이빙하기에 아주 좋은 날씨였다. 바다 속으로 들어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스트로브(STROB)가 터지질 않았다. 나는 사진 찍는 것을 포기하고 배의 여기저기를 살펴보고 물 밖으로 나왔다. 아름다운 난파선의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지 못하는 것에 아쉬움을 느끼고, 다음날 다시 그곳에 들어갔으나 어제의 그 날씨가 아니었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sanfrancisco) 침몰선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더욱이 갑판 위에 조용히 가라앉아 있는 작은 탱크가 나에게 내려오라고 손짓하는 것만 같아 위험을 무릎쓰고 들어갔고, 갑자기 통증이 찾아왔다. 급히 물에서 올라오면서 왼쪽 안면을 만져보며 거울을 보니 입이 우측으로 돌아가 있었다. 무슨 대단한 것을 한다고 이렇게까지 돼 가며 사진을 찍어야 하나 싶었다. 죽고 싶은 생각이 들어 납 벨트(WEIT BELT)20킬로를 준비하고 바다로 나가는데 다이빙을 나갔던 배가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결국 자살은 미수에 그치고, 모든 사람들의 위로 속에 안정을 취하고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 치료 받으러 가지도 않고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데 정말 25일 되니 신기하게도 입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다행히도 자연치유가 된 것이다. 스포츠 다이버는 절대 과욕을 부리면 안 된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지금까지 수중 사진을 찍으며 안 좋은 소식들을 많이 접했다. 전부 과욕과 자만에서 비롯된 일들이다.

‘푸욱’ 하고 힘차게 내 뿜어 내는 호흡 소리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커다란 혹등고래한 마리가 새끼를 데리고 수면 위에 나타났다. 나는 빠른 행동으로 카메라를 잡아들었다. 그리곤 조용히, 아주 조용히 물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생각했던 대로 어미 고래는 작은 새끼를 데리고 서서히 유영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가슴이 마구 두근거리기 시작 했다. 너무 가까이, 그것도 정면으로 오고 있었다. 게다가 등에는 새끼까지 엎고 있었다. 혹등고래가 새끼와 함께 있을 때는 어미는 굉장히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일단은 나와 너무 가까워 옆으로 길을 터주며 고래의 좌측으로 바짝 붙었다. 그리고 정신없이 셔터를 누르기 시작 했다. 조금 있다가 어미와 새끼 고래는 서서히 내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한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역시 고래는 대단했다. 그 커다란 놈이 눈을 꿈뻑거리는데 순진해 보이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통가 (TONGA)에서 돌아오는 길은 무척 멀지만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다. 마치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기분이다. 사진이 퀄리티는 나중 문제였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보고 싶었던 놈을 물 속에서 만났다는 것이다. 아마 그들의 모습은 영원히 내 마음속에 남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 적이 없다. 지금 나의 꼴은 말이 아니다. 이 우스운 꼴이 되려고 이 먼 바하마(BAHAMA)까지 왔단 말인가. 패잔병의 마음이 이럴까? 지금 나의 마음은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다. 고개를 떨구고. 얼굴을 가리고 싶은 패잔병이다. 내가 맘 먹은 대로, 머리 속에 그려 놓은 그림대로 사진이 하나도 되는 것이 없다. 돌고래에게 져, 다른 카메라맨에게도 져. 내 자신이 불쌍하다. 오늘따라 파도는 내가 탄 배를 계속 흔들어 대고 있다.

“물속에 몇 미터까지 들어가 봤어?”
많은 사람들이 내게 물어온 질 문중에 하나다. 아마 물속이 궁금들 해서 일 것이다. 나는 1979년신문사 말단 기자때 물속으로의 여행을 시작했다. 마포강가에서 발가벗고 놀 때 머리만 물에 잠겨도 죽는다고 난리 치던 내가 이제는 물속 수십 미터도 들어간다. 물이 좋아 군대도 해군에 갔다. 매일 수영하는 줄 알고 갔는데 엉뚱하게도 육상에 근무를 하다가 제대를 하였다. 가끔 나는 나에게 물어보곤 한다. 바다가 정말 그렇게 좋은가 하고. 그런데 결론은 정말 좋다는 거다. 바다 속은 항상 고요하다. 소리가 너무 잘 들리기에 너도 나도 말을 하면 시끄러울까봐 말을 못하게 한다. 그래서 말을 할 수가 없다. 간간히 고기들이 조용히 말하는 소리들은 들린다. 그 외에는 가끔 금속성 같은 굉음들만 들릴 뿐이고 이내 조용해진다. 나는 그 고요 속에서 사진작업을 한다. 어떤 때는 물고기들이 나가라며 밀어낼 때도 있다. 커다란 눈망울을 굴리며 여럿이 노려보기도 한다. 나가지 않으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다가 오는 놈도 있다.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집채만 한 놈들이 다가와 시위를 한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착하고 순하다. 우리는 이내 친해져 같이 다니고 사진도 같이 찍는다. 바다를 드나든 지도 벌써 30년이 훌쩍 지났다. 바다 배우러 집 나섰던 젊은이가 이제 머리가 백발이다. 젊음을 신문사와 바다에서 보냈다. 그동안 바다가 나를 이렇게 성장시켰다. 바다는 나에게 아낌없이 베풀었다. 헌데 나는 바다에게 아무것도 해준 게 없다. 그 크나큰 신세를 갚을 길이 없다. 받으려 하지도 않는다.

이순(耳順)을 넘겼지만 아직도 그는 젊은이처럼 행동에 두려움이 없고 거칠게 없다. 혼자서 장비를 꾸리고 국내는 물로 세계를 무대로 분주하게 활동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수중 사진을 논하고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 역시 그 많은 수중 사진가 중의 한 사람으로 조용히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열정과 영향력은 모든 수중 사진가들이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어쩌면 홀로 실행하고 있다. 바로 수중 사진이 순수 예술로 평가 받고 순수 예술의 한 장르로서 자리 잡게 하는 것이다, 그는 꾸준히 그렇게 해왔으며 그의 노력에 대한 결실을 이번 전시회를 통해 입증하였다. 그의 행보로 인하여 수중 사진은 순수 예술로 자리매김을 하기에 이렇다. 이는 국내 수중 사진 역사에 커다란 획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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