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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여자가 사랑할 때

2009-06-23

다가가 만지고 싶은 충동을 느낄 정도로 부드럽고 유연하게 여성을 표현한 프랑스 여성 조각가 마리 마들렌느 고티에와 모성애와 여성의 우아함을 동남아시아 여성을 대상으로 그려낸 켈린의 작품은 여성이란 모티브를 통하여 사랑이란 공통 주제를 보여주고 있다.

에디터 | 정윤희(yhjung@jungle.co.kr)
자료제공 | 오페라갤러리

고티에는 1956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에콜데 보자르(Ecole des Beaux-arts)를 졸업했다. 그녀는 1982년 프랑스에서 열린 ‘Galerie Mandragore’을 시작으로 현재 프랑스뿐 아니라 이태리, 독일, 벨기에, 미국, 홍콩, 일본 등 세계 각지에서 100회가 넘는 개인전을 가진바 있다. 고티에(Gautier)의 작품은 가느다란 팔과 작은 머리에 둥글고 풍만한 하반신을 가진 여인상이 주로 등장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날씬한 상반신에서부터 풍만한 하반신으로 흘러내리는 듯한 선은 자유롭고 리드미컬하게 표현되어 있다. 특히 상반신의 선은 길고 가는 팔이 바깥쪽으로 뻗어있는 동작을 통해 보는 이가 조각을 둘러싼 공간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고티에의 작품은 양감과 주변 공간을 자유롭게 사용하여 각도마다 다르게 보여지는 다양한 이미지를 연출하여 지루하지 않은 즐거움을 준다. 그녀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여인들의 둥글게 흘러내리는 엉덩이와 다리는 다산을 상징하는 원시주의의 조각과도 닮아있으며, 친밀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고띠에는 일상생활에서 가족, 친구들을 관찰하며 포착해 낸 한 순간을 작품으로 풀어낸다. 곡선을 그리는 풍만한 몸매로 인해 엄마의 품처럼 푸근함이 느껴지지만 또한 전통적인 포즈에서 벗어나 즐겁다는 듯이 몸을 움직이며 해방감을 표출하는 제스처들로 인해 젊음과 열정이 느껴지기도 하며, 수줍음 타는 사랑스러운 여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고띠에가 창조해낸 ‘여자들’은 편안하게 소파에 기대앉아 담소를 나누는 듯한 모습, 명상에 잠긴 모습 등 일상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고정된 여성상을 보여주기 보다 세상을 향해 팔을 뻗고, 춤을 추며 주변과 교감하고 시선을 적극적으로 개척해 나가는 여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작가는 조각의 무표정한 얼굴 표현에 대해 그녀들이 바로 작가 자신이며 우리들 주변에 있는 존재들이기에 감상자들이 마음속으로 얼굴을 그려 넣을 수 있는 공간을 남겨놓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바로 이러한 작가의 의도로 인해 그녀의 작품들은 관객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오며, 머리가 아닌 마음에 말을 걸고 있는 듯하다.

켈린의 작품에는 굵은 검은색 선들로 강조된 길쭉한 눈을 가진 여인의 모습이 등장한다. 여자의 품 안에 평온하게 안겨있는 아이, 서로의 편안한 휴식처를 제공하듯 부드럽게 서로를 포옹하고 있는 연인들, 인물들의 생김새는 영락없는 동양인의 모습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동양의 어느 나라 출신 작가일지 모르겠다고 추측하게 되지만 작가는 프랑스 출신의 화가로 현재 파리에서 활동하고 있다.
켈린은 군인이었던 아버지가 베트남 파견근무를 나간 1955년 베트남 하이퐁(Haiphong)에서 태어났다. 전쟁과 야생의 혼란 속에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그녀를 곁에서 지켜주는 가족의 힘으로 별다른 문제 없이 성장한다. 어린 켈린에게 아직 미개척 된 동남아시아의 위험은 모험이란 단어의 동의어였을 뿐, 세계는 호기심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곳이었다. 식민지와 전쟁이라는 어려운 시대상황 속에서 동양 속의 서양인으로 자라났지만, 이 시기는 혼란과 모순이라기보다 오히려 다층적인 세계를 직접 경험하고 수용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어린 시절의 독특한 경험과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예술적 기질은 그녀를 예술가로 이끌었다. 대부분의 여느 작가가 그러하듯 그녀의 초기 작품에서는 대가들의 화풍을 엿볼 수 있다. 피카소의 초기 입체파 작품들처럼 고대 마스크 풍으로 그려진 인물, 모딜리아니의 여인들을 연상시키는 목을 길게 늘이고 고개를 돌린 모습 등을 확인할 수 있는 것. 한편 한쪽 어깨를 드러내는 동남아시아 스타일의 원피스나 원시적인 이미지들, 그리고 화려한 색채는 고갱(Gauguin)이나 앙드레 드랭(Andre Derain)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았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베트남, 라오스, 알제리 등지에서 보낸 어린 시절이 자연에 대한 감수성과 관찰력을 키워주는 역할을 했다면, 프랑스로 돌아와 미술관에서 대가들의 그림을 보며 배운 현대적인 교육은 마음속의 이야기를 어떻게 화면으로 옮길 것인지를 가르쳐 준 셈이다.
켈린의 작품은 습작시기를 거치며 붉은색과 푸른색의 두 가지 색채로 집약시키면서 그녀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확립하게 된다. 동양의 여인을 그렸지만 재료는 분명 캔버스에 아크릴과 유화이고 부분적으로 천을 덧붙이거나 떼어낸 자국은 콜라주 기법을 연상시킨다. 여인, 어린아이, 과일바구니 등 각각의 소재는 구체적인 형상을 하고 있되, 배경은 문맥없이 단순하게 처리되어 있어 시대와 장소를 짐작할 수 없게 한다.

인물상이나 전체적인 분위기는 매우 동양적인 특성을 드러내는데, 시간을 두고 작품을 천천히 감상하다 보면 동양적인 분위기가 풍겨나는 이유가 단순히 눈이 길고 머리가 검은 여인을 그린 데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굵은 윤곽선은 그림을 다 그린 후에 첨가한 마무리 선이라기보다 동양화의 구륵법처럼, 제일 먼저 그려놓은 스케치 선처럼 보인다. 윤곽을 선으로 묶고, 윤곽선이 다 마른 후에 그 안을 색으로 메워 윤곽선과 그 속의 색채가 섞이지 않게 하는 것이다. 한편 여인의 드레스는 기름을 많이 섞어 마치 수채화처럼 보일 정도로 묽게 칠한 후, 마르기 전에 그 위에 무늬를 그려 넣어 두 색이 살짝 번지게 만드는 몰골법을 활용했다. 면마다 세심하게 고려된 장식들은 동양화의 이미지뿐만 아니라 나아가 클림트의 작품마저도 연상시킨다.
켈린의 작품이 우리에게 매력적인 이유는 여인이라거나 모성이라거나 하는 인류보편적인 가치를 담고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고대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반복되어온 ‘여인’이라는 주제는 어쩌면 진부한 소재일 수 있지만 켈린의 작품을 통해서 작가 자신의 이력에서 비롯된 다문화적인 특성이 풍부한 표현력을 통해 다시금 돌아볼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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