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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 리뷰

현대의 수퍼 스타, 패션 그리고 판타지

2010-02-12

유명 브랜드나 패션이 예술 작품의 소재로 등장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패션은 앤디 워홀을 비롯하여 바스키아, 무라카미 다카시, 클라스 올덴버그 등 일군의 팝 아티스트들에 의해 다양하게 해석되어 왔다. 이 시대의 진정한 수퍼 스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브랜드와 패션을 주목 받는 5인의 작가가 작품에 접목시켰다.

에디터 │ 이지영 (jylee@jungle.co.kr)
자료제공 │ 롯데아트갤러리

현대인들에게 패션과 브랜드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또 미술과 브랜드의 이종 결합은 어떤 새로움을 잉태할까? 현대 미술은 어떻게 패션과 브랜드에 색다른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까? 명품브랜드 전문관인 에비뉴엘에서 열리게 될 전시, <수퍼 히어로즈: 패션&판타지> 는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이번 전시는 오늘날의 문화를 가장 적나라하게 반영하는 두 축이라 할 수 있는 패션과 미술의 접목을 통해 현대 미술의 방향을 모색해본다. 박영숙, 백종기, 양문기, 전상옥, 최혜경 등 주목 받는 5인의 현대 미술 작가들이 상업적인 패션 브랜드와 순수 미술 간의 경계를 허문 작품들을 선보인다. 패션, 하이힐, 향수, 명푹백과 브랜드 로고 등이 회화, 조각, 설치 등 약 30여 점의 다양한 미술 작품으로 재탄생 한다.

참여한 작가들의 작품을 미리 살펴보면, ‘수퍼 히어로즈’라는 전시명과도 잘 어울리도록 하늘로 오르는 힘찬 캐릭터 ‘아톰’을 표현한 것은 백종기의 작품이다. 단, 백종기의 아톰은 패션 브랜드 루이비통의 로고로 장식되어 있다. 패션과 패션이 주는 판타지를 만화 속 ‘영웅’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거대하고 힘 센 느낌으로 표현한 것. 또한 만화 ‘로보트 태권브이’에 등장하는 깡통로봇 역시 루이비통의 로고로 장식되어 보는 이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작가 박영숙은 여성에게 선망의 대상이자 아름다움의 상징인 하이힐을 선택했다. 소녀는 숙녀가 되기 위해, 여인들은 아름다워지기 위해 선택하는 하이힐. 남성들은 그녀들의 하이힐을 보며 여성의 판타지를 그리곤 한다. 그러나 작가는 예쁘게 진열되어 선망의 누군가의 대상이 되는 하이힐을 그린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욕망을 자극하고 시선을 붙잡는 종류의 것이다. 하이힐의 아찔함과 유혹적인 컬러가 만들어내는 이미지가 도발적으로 욕망을 상징한다.

작가 양문기는 길이나 강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오석, 호박돌 등의 자연석을 이용해 거친 가방을 만들었다. 뒷부분이나 측면을 다듬지 않아 원석의 육중한 느낌을 그대로 간직한 돌들에는 구찌, 에르메스, 루이비통, 펜디 등 패션 브랜드의 로고가 찍혀있다. 소위 ‘명품’으로 대접받는 브랜드들이 지금처럼 명성을 떨치기 이전, 나폴레옹 전쟁 때의 의약품이나 편지 뭉치를 담아 나르던 자루, 보따리 등에 글자가 새겨지고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변한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 거친 원석의 절반이 다듬어져 작품으로 승화되는 시점에서 자연석의 본성을 함께 살리고자 했다고. 명품 브랜드의 로고 하나를 새겨둠으로써 눈길이 닿지 않던 흔한 돌들이 관심과 동경을 얻어내는 상황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보여준다.

광고매체에 등장하는 모델을 회화적인 작업으로 재창조하여 표현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전상옥 작가는 과장된 상업광고를 차용해 인간의 구매욕을 묘사하고 욕망을 매혹적으로 느끼게 한다. 쉽게 지나치곤 하는 패션광고의 순간성을 포착하여 영원한 작품으로 변모시키는 작업이다.

작가 최혜경은 실제로는 한 손에 쥘 수 있을 정도로 작은 향수병들을 사람 키만큼 크게 그려놓는다. 향수병들은 마치 그것만을 위한 공간에 자리잡은 것처럼 한 캔버스에 하나씩 정면으로 놓인다. 모두 다른 크기와 모양뿐 아니라 각기 다른 브랜드와 이름 및 향의 향수에서 그것을 선택한 주체가 여성이라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나 수 만 번의 붓질로 그림 속 자신의 흔적을 지워가며 태도를 드러내지 않는 작품은 오히려 개인의 정체성과 여성적 담론을 제시한다.

현대 순수 미술의 재기 발랄한 독창성과 현대 대중문화의 총아인 패션 및 브랜드의 만남은 감상자와 작품 간에 존재하는 일정한 거리를 불식시킬 것이다. 특히 전시 장소가 패션과 브랜드를 접하는 백화점 내의 공간이라는 점에서 친근함을 선사한다. 일부 계층을 위한 이해하기 어려운 예술 작품이 아니라, 구입하려고 했던 브랜드와 의상, 구두나 핸드백에 가까운 위치에서 이들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만나보게 되는 것이다. 미술과 브랜드, 예술과 패션의 만남을 미술의 순수성 훼손으로 볼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볼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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