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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 리뷰

David Lynch의 The Air is no Fire 전시회

2007-04-03


“엘리펀트 맨”, “이레이져 헤드”, “사구”, “블루120 벨벳”, “멀홀랜드 드라이브”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유아기적 불안과 개인적 욕망, 비현실적 아름다움을 초현실적으로 그려낸 세계적인 컬트 영화 감독이자 계속 정진하는 창조적인 시각예술가 데이비드 린치.

씨네아스트인 동시에 사진, 그림, 음향적 설치 등 다재 다능한 예술가였던 그를 조명하는 전시가 지난 3월 3일부터 오는 5월 27일까지 까르티에 현대미술재단 (Fondation Cartier) 에서 열린다.

계속해서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표현 방식을 찾았던 린치는 풍부한 상상력 속에서 인간의 감춰진 비밀과 감성을 찾아낸다. 때로 이것은 매우 불안하며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 영화감독이 된 이후에도 끊임없이 그림과 사진, 스케치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표현했던 작가의 작품은 이제껏 대중에게 소개된 적이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The Air is on Fire" 전은 그를 보다 가깝게 조명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의 창조적인 공간에 어지럽고 황홀한 내면의 우주로의 초대와도 같다.

1960년대부터 오늘날까지의 다양한 린치의 수백 장의 스케치, 낙서, 사진, 실험영화, 회화, 설치작업등 다양한 그의 작품과 그 자신의 세계를 모두 드러내는 전시였다.


왜곡된 누드 작품은 마치 프란시스 베이컨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의 영화들처럼 불안정한 욕망 강박관념과도 같은 무의식적인 상태에서의 데생이 관객을 당황하게 할지도 모른다. 의도가 없는 다수의 스케치들이 오히려 호기심을 갖게 한다.
이해하는 차원이 아니라 똑같이 느끼고 싶다는 바램까지 느껴진다. 그러나 전혀 낯설지가 않은 것은 그의 불안감이 공포스럽지 않다는데 있을 것이다.

“나는 어두움과 혼동 모호함을 좋아한다. 그러나 거기서 사람들이 행복으로 나가는 작은 문이 있다는 것은 알아내는 것을 나는 즐긴다”라는 린치의 말처럼 불안정함과 비틀려 보이는 불안한 이미지들은 이내 평온해 지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커다란 유리 건물로 된 벽이 있어 전시회장을 안과 밖에서 동시에 감상할 수 있어서 여러 공간으로 변형된 이미지를 갖게 한다.

커다란 철근 구조물에 커튼처럼 천을 드리우거나 묶어서 그 위에 무의식적으로 드러난 그림들이 공간처럼 벽을 세우듯 전시되고 음악도 하나의 요소로 또는 하나의 작품과도 같이 느껴졌다.

까르티에 재단에서는 린치의 작품 전시이외에도, 미술관이 늦게까지 개장되는 'Nuit nomade' 시간에 린치와 관련된 음악 콘서트나 비디오 상영 등 다양한 부대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또한 린치가 한 저널리스트와 인터뷰한 내용이 담긴 CD가 함께 들어있는 카탈로그를 발간했다. 한편 그가 90년대에 찍은 사진과 독특한 필체가 인상적인 “Snowman"이라는 책도 만나볼 수 있다.

린치의 팬을 위해서 에스프레소 잔이나 T-shirts도 특별 제작 판매되고 있다. David Lynch coffee를 브랜드화한 아이디어 상품도 있어서 이색적이었다.

이 밖에도 인터넷으로 까르띠에 재단 홈피에 들어가면 전시회장 풍경 및 작품소개 동영상까지 다양하게 서비스 되고 있다.


몬타나에서 1946년에 태어난 린치는 스케치와 그림을 그리며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보냈다.
그는 1965년, 펜실베니아주의 필라델피아 미술 아카데미에 들어가 순수 미술을 공부했다. 그 때 그는 처음으로 움직이는 이미지에 대한 열정을 발견하게 된다.
하루는 그의 아뜰리에에 혼자 있는데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와 작은 물건들이 자신의 바로 앞에 있는 캔버스에 붙는 것을 보았다. 6개월 후 그는 자신의 실험적인 첫 단편영화 “알파벳”을 만들게 된다. 이것은 훗날 세계적으로 탁월한 씨네아스트가 된 데이비드 린치의 첫 발걸음이었다.

대학 졸업 후에는 미국영화연구소(AFI)의 연구생으로 들어가, 16mm 단편영화‘할머니’ (1970)를 찍었다. 그 뒤 대도시에서 기형아를 낳은 젊은 부부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기로 하고 1971년부터 촬영에 들어가 1977년에 개봉한 작품이 ‘이레이저 헤드’다.
이 영화의 첫날 관객수는 25명이었지만, 1981년까지 꾸준히 상영돼 유명한 컬트 영화가 됐다. 그 후 ‘엘리펀트 맨’(1982)이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면서 주목을 받았다.

1986년작 ‘블루 벨벳’은 미국 중산층 내부의 음침하고 병적인 일상을 담아 호평을 받았고, 그의 ‘트윈 픽스’ 텔레비전 시리즈가 인기를 누리면서 컬트 문화를 대중의 유행으로 확장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후 ‘광란의 사랑’(1990)으로 칸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으며 2006년 9월 베니스 영화제에서 영화역사에 기여한 공로로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는데 역대 수상자 중 최연소의 나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영화는 그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였다.
그림과 사진은 물론이고 애니메이션과 음악 작곡, 음향 창조에도 능했던 그의 예술적 재능은 다방면의 매체를 통해 끝없이 표출되고 있다.



David Lynch , ‘The Air is on Fire’전
 * 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
 * 261, bd Raspail 75014 PARIS
 * www.fondation.cartier.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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