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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그래, 나 소재주의자다!

2011-10-13


구술 | 박종우
정리, 사진 | 포토라이터 이상엽


위기에 대해 : 요즘 다큐멘터리사진이 어렵다고들 한다.

다큐멘터리-포토저널리즘의 위기? 다들 어렵다고 하는데 전시장에서 본 사진들은 혼란스럽다. 스스로의 슬럼프 때문인지,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계속 형태를 바꾼다. 하지만 다큐멘터리사진의 본질이 바뀌지는 않는다. 기록과 정체성을 믿는다. 그렇다고 뉴스사진처럼 스트레이트한 사진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미학적인 관점 역시 버릴 수 없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사진들은 잡지사진에 맞는 포토스토리 형태였다. 풀샷(방송용어, 전체 배경이 사람과 함께 화면 전체에 들어오는 장면)이 필요하고 디테일도 필요하다. 대충 10~20장 정도의 사진이면 한 꼭지의 스토리로 괜찮았다. 하지만 요즘은 한 장으로 표현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그런데 그것이 마땅찮다. 변화를 맞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것이 진화인지 또 다른 역사의 회귀인지 모르겠지만, 기존 매체들 역시 스토리 형태가 아닌 한 장으로 완전하게 표현되는 것을 원하는 것 같다. 물론 이런 사진들은 갤러리도 원하겠지만, 전시장은 내 것이 아니다.


변화에 대해 : 다큐멘터리사진은 다시 전성기를 맞을까?

사진의 전성기? 라이프 잡지의 시대가 아니었을까? 그렇다고 당시로 돌아갈 수도 없고, 새로운 매체환경이 도래한다고 사진의 전성기가 다시 올 것 같지도 않다. 결국 인쇄매체가 퇴조한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동영상의 전성시대라고도 할 수 없다. 다큐멘터리 동영상 역시 비싼 제작비로 인해 배급할 곳이 마땅치 않고, 독립영화 역시 대안은 아니다. 그저 두 매체가 공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동영상과 사진이 결합하는 획기적인 변화를 예상할 수 있다. 카메라에서 동영상이 찍히고, 캠코더에서 사진이 찍힌다. 근본적인 변화는 아마도 캠코더에서 찍히는 사진이 아닐까? 이미 Full HD급에서는 신문이나 잡지에 사용해도 손색없는 이미지를 추출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는 기술적인 문제로 통합형은 선호되지 않는다. 다만 수중촬영에서는 통합형이 유리하다. 이런 추세가 점점 확대되지 않을까 한다. 작품에서도 두 매체는 혼합된다. 나 역시 작품에 사진을 활용한다. 흐르는 동영상에서 정지된 사진 이미지는 보는 이의 눈길을 끈다. 사진이 중심이 되고 동영상이 삽입되거나 아니면 그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나는 사진이 좋다. 하지만 큰 프로젝트를 하려면 돈이 든다. 그래서 영상작업을 시작했다. 사진을 위해 별개의 작업을 한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그것을 적절하게 섞으면 어떨까 한다. 여전히 방송을 끼면 방송 문법에 충실해야 한다는 한계는 있지만 나만의 방식을 찾고 있다. 예를 들면 비디오 안에 사진을 이용하거나 전달 미디어를 독립영화 방식으로 스크린을 이용하는 것 등이다. 아무래도 이전보다는 개인적인 생각이 더욱 가미된 작품일 것이다. 그래서 다음 달에는 프랑스에서 열리는 영상축제인 ‘써니사이드 오브 다큐멘터리’에 간다. 지금까지 제작한 영상물 5편을 영문판으로 갖고 간다. 사실 영상물도 한국 방송시장과 국제시장은 형식과 문법이 다르다. 과연 국제적인 문법은 어떤 것인지도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프랑스 아를르에서 열리는 사진축제에도 들러 사진과 동영상을 융합시킬 아이디어를 얻을까 한다.

오래전 충무로에 있던 후지포토살롱에서 개인전을 했었다. 하루 100명쯤, 일주일 동안 600명쯤 본 것 같다. 그리고는 이렇게 할 필요가 있나? 이거 아니다 싶었다. 요즘의 전시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뭔가 전시의 패턴이 바뀌어야 한다. 저렴한 멀티미디어를 동원하는 것도 방법이 아닐까 한다. 내가 사진과 동영상을 함께한 것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욕심 때문이었다. 단점이자 장점이기도 하다.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뭔가를 이루는데 훌륭한 방법이지만 방송과 사진을 모두 잘하기에는 미진한 것이 있다. 그 융합은 아직까지 미개척된 영역이고 나보다 젊은 사람들이 해나가지 않을까 한다.


차마고도에 대해 : 말도 많았던 작업이다.

2003년, 중국 윈난성의 리장에서 짐을 진 말들이 줄줄이 무리지어 가는 사진엽서를 봤다. 보이차와 말이 교환되는 인류 최고의 교역로인 ‘차마고도’의 이미지였다. 윈난의 남부에서 쓰촨성과 티베트를 거쳐 네팔 인도로 이어지는 5천 킬로미터의 여정이었다. 그래서 3년 정도 취재할 계획을 잡았다. 하지만 취재 도중 장비가 부서지고 절벽으로 추락할 뻔한 사고까지 났다. 우여곡절 끝에 1차로 마무리한 것이 ‘티베트 소금 계곡의 마지막 마방’이라는 작품이다. KBS 일요스페셜로 방영됐다. 그런데 얼마 후 KBS는 ‘인사이트 아시아’ 기획물의 일환으로 차마고도를 6부작으로 기획하고는 직접 제작하겠다고 나섰다. 물론 나를 돕던 자문과 코디까지 섭외해 갔다. 독립제작자의 한계다. 문제는 내가 취재했던 것을 정리해 SBS에 넘겼고 두 방송사가 동시에 한 아이템을 편성하는 방송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소재주의에 대해 : 외국에 나가 소재만 찾는다는 평가도 있다.

다음 세대에는 그런 이야기 없을 것이다. 지금 사진계에서는 ‘한국사진을 찍는가, 외국에서 사진을 찍는가’로 사진가를 나누려 한다. 정말 우리만 유독 그런 잣대를 갖고 있다. 아일랜드와 체코계 부모를 두고 뉴욕에서 태어나서, 공부는 파리에서 하고, 지금은 레바논에서 사진활동을 하고 있다면 그는 어떤 관점과 어떤 공간에서 사진을 찍어야 하는가?

나의 사진은 여행으로부터 시작됐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다녔고, 사진을 찍었고, 발표했다. 하지만 평론가들 입장에서는 프로젝트를 세우고 단계적으로 사진의 경향을 변화시키고 전시를 주기적으로 하면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전 세계 보지 못한 것이 많다. 나중에 체력이 떨어지면 가보기 힘드니 오지부터 가자고 생각했다. 덕분에 ‘소재주의’라는 소리도 듣는데 사실 소재를 쫓아다녔다. 부지런히 다니고 호기심을 갖고 있으면 남들보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게다가 요즘 세상이 변하는 것을 보면서 사리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더욱 오지를 찾게 한 것 같다. 이런 곳에서 한국적인 시각으로 사진을 찍는다는 것? 웃기는 것 아닐까? 한국은 나 아니어도 잘 찍는 사람들이 많고 나는 아직도 가볼 곳이 많다.


좋은 사진에 대해 : 당신이 보는 요즘 사진은 어떤가?

좋은 사진이라? 사진가의 철학은 모두 있겠지만 사진가의 변을 듣지 않아도 좋다고 느낄 수 있는 사진, 이런 사진이 좋은 사진이 아닐까 한다. 언어를 사용해 사진을 설득하는 것, 이건 사진이 아니라 말장난이다. 다큐멘터리사진이건 파인아트사진이건 미학적으로 완성도 있는 사진이 좋다. 요란한 수사로 ‘좋은 사진이다’라고 강요하는 사진들이 요즘 너무 많다. 흔히 요즘 유행하는 Staged Photo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히말라야에 대해 : 당신에게 행복은 무엇인가?

한국일보 사진기자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사진을 시작했던 것은 87년 히말라야 원정대에 참여하면서부터인 듯하다. 등반가 유한규 등과 함께 히말라야를 탐사해보자고 의기투합해 쌍용의 최원석 회장을 꼬드겨 코란도 2대와 원정경비를 받았고, KBS에서는 방송장비를 지원받아 87년 9월 파키스탄으로 떠났다. 당시로서는 국내에 이런 규모의 다큐멘터리 취재와 제작경험이 없어 사고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비포장도로에서 자동차가 구르기를 여러번 했다. 우여곡절 끝에 여행을 무사히 마쳤고 ‘히말라야 오지를 가다’라는 제목으로 방송됐다. 나는 원정대가 귀국한 후에도 두 달간 더 히말라야를 돌아다녔다. 그 풍경과 사람들 속에서 히말라야에 더욱 매료됐고 더 이상 뉴스 사진이 아닌 나만의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올해 이 사진들로 전시회를 하고 책을 만들었으니 22년이 걸린 셈이다.

사진 말고 또 다른 인생의 의미가 있다면, 행복한 삶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물론 그러다보면 일에 치일 수도 있고, 먹고 살기 힘든 것도 있지만 행복을 얻는다. 사진 역시 일로서 한 것은 아니다. 비디오는 그랬지만 사진은 즐기면서 했다. 그래서 작업이 많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사진가 박종우는 오랜 시간 인연을 맺은 선배 사진가다. 내가 평가하는 국내 최고의 스타일리스트이기도 하다. 게다가 주로 해외에서 취재하는 나를 포함한 몇 안 되는 국내 사진가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그래서 동병상련이랄까? 그런 것이 있다. 우리 땅 아닌, 세상의 기록을 수행하는 자에 대한 폄하에 대한 반감도 있다. 그런 내게도 박종우의 ‘한국적인 시각, 아시아적인 시각’ 따위도 부질없다는 지구인다운 태도는 나를 부끄럽게 한다. 그에게 세상은 그저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웃일 뿐이다. 특정한 시각에 얽매이지 않고 그저 그들의 입장에서 묵묵히 기록작업을 수행한다. 그는 분명 철학 있는 소재주의자가 분명하다.



박종우는 1958년 서울에서 태어나 한국외국어대 신문방송학과와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을 졸업했다. 11년간 한국일보 사진기자로 근무했으며, 1995년에는 다큐멘터리 프로덕션 ‘Indivision’을 설립해 여러 편의 히말라야 등반 다큐멘터리와 ‘최후의 샹그릴라’, ‘마지막 불의 전설’, ‘차마고도 1000일의 기록’, ‘사향지로’, ‘바다집시’ 등 굵직한 다큐멘터리 영상물을 제작, 방송했다. <히말라야 모노그래프> (고은사진미술관, 부산, 2009), (코닥포토살롱, 서울, 1997), (후지포토살롱, 서울, 1994) 개인전을 가졌으며 사진집 ‘히말라야, 20년의 오딧세이’(에디션제로 펴냄, 2009)가 있고 한국사진기자상과 방송위원회 다큐멘터리 부문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 본 기사는 <월간사진> 2009년 7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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