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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진보의 이름으로 사진을 찍다!

2011-09-29


구술 | 화덕헌
정리/사진 | 포토라이터 이상엽


달동네 기록에 대해 : 요즘은 어찌 사나?

작년 11월 사진관을 닫고, 2년 동안 작업만 하기 위해 보증금을 빼서 살고 있다. 작년 7월에 그동안 찍었던 아파트와 교회 작업(2006년 8×10인치 디어도프 대형카메라로 작업)을 모아 전시를 했는데 작업량의 부족을 느꼈다. 시간도 모자랐고. 짬짬이 작업하는 것으로는 한계를 느낀 것이다.

지금은 남부민동에서 주례까지 이어지는 산복도로를 따라 작업을 한다. 부산의 달동네인 것이다. 남부민동, 아미, 감천, 부민, 서대신, 동대신, 보수, 대청, 영주, 초량, 수정, 좌천, 범일, 신암, 개금, 주례로 이어지는 달동네 관통도로가 산복도로다. 이 도로는 부산이라는 도시를 형성한 축이나 다름없다. 서민들의 삶, 그 근거지였다.

이 지역을 기록하는 것은 재개발로 인해 사라질 원도심의 주거환경을 남겨보자는 취지에서 였다. 해운대의 고층 아파트를 찍을 때는 스펙터클이 필요했다면 지금은 그저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다. 도시경관을 기록한다는 것은 10년 후를 보자면 꽤 의미있는 일이다. 많은 것들이 변할테니.

작업은 작년 11월부터 4달간 헌팅을 하고 2월 말부터 본격 촬영에 들어갔다. 5월까지는 마무리를 할 생각이다. 헌팅작업은 달동네 모습이 가장 잘 잡히는 곳을 캐논 1Ds 로 작업했다. 디어도프에서 사용할 렌즈의 화각과 같이 촬영했다. 빛의 방향(아무래도 대형카메라는 역광에 약해 순광을 중심으로 시간대와 화각)과 섭외(아파트 옥상 등) 등 미리 해볼 수 있는 것은 거의 진행을 했다. 간혹 답답한 것은 높은 건물에 올라가지 못할 때이다. 충직한 관리소장이라도 걸리면 난공불락의 요새를 만난 느낌이다. 사전작업에서 어려웠던 것은 역시 섭외였다. 그리고 굳이 대형카메라를 사용하는 것은 압도적인 정보의 양 때문이다. 지붕의 문양, 대문의 모양과 하다못해 문패도 볼 수 있다.


추억에 대해 : 어떻게 사진을 하게 됐나?

고등학교 때 미술을 했다. 제대하고 여자친구(지금의 아내)를 사귀었는데 그녀에게서 X-700이라는 카메라를 빌려 부산역에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1992년부터 2001년까지 10년 가까이 작업을 했다. 하지만 96~97년 사이에 가장 많이 찍은 것 같다. 느지막한 28살에 대학에 진학해 교육학을 전공했다. 이때 방학이면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졸업식장에 가서 필름을 팔았다. 하지만 남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좀더 부가가치가 높은 일로 시작한 것이 ‘사진 노점상’이었다. 졸업식은 학교별로 12월 중순에서 2월 말까지 2달간 전국에서 열린다. 이때 사진 꽤 찍어서 팔았다. 학비를 벌고도 남았다. 32살에 대학을 졸업하고 사진관을 차렸다. ‘꿈을 찍는 사진관’이라는 이름으로 동네에서 문을 열었다. 주로 증명사진이나 가족사진을 찍었다. 그때 과감하게 디지털에 투자한 것이 처음 나온 캐논 1D였다. 그리고 디지털 사진에 특성의 맞게 인터넷에 관심을 갖고 사진사이트인 ‘레이소다’와 인연을 맺었다. 재미가 솔솔해 부산역 사진을 올리게 됐고 2005년에는 충무로 오재미동에서 전시를 했다. 사진과 인터넷은 찰떡궁합이다. 이처럼 왕성하게 자신의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공간은 없다. 그리고 작가 뿐 아니라 누구나 접근 가능하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에 비판적 지지를 보내던 ‘진보누리’ 사이트에서 홍세화선생의 ‘늠늠한 민중’이라는 컬럼을 읽고는 ‘아파트’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즉 한국의 부동산문제를 전면적으로 제기할만한 소재였다. 그래서 전에 작업하던 6×17인치 파노라마에서 8×10인치로 진화하게 됐다. 아파트 작업 다음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회들이 대형화하는 현상을 기록한 교회 시리즈가 있다.


오마이뉴스 올해의 인물에 대해 : 당신에게 정치는 무엇인가?

사실 나는 젊은 시절 운동권이 아니었다. 그저 강준만의 책을 읽으며 정치의식을 만들어 나갔다. 그때 홍세화도 알게 되고, 진중권도 알게 됐다. 2000년 안티조선운동으로 실천에 나섰고, 그중에 이문열과의 불화도 있었다. 덕분에(?) 2001년 오마이뉴스 올해의 인물이 되기도 했다.

삶에서 정치란 다른 사람이 내게 고마움을 느끼게 하는 것부터 시작해 다양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정치에 참여하게 된 것은 운동의 한계 때문일 것이다. 운동이 아닌 정책을 통해 사회가 바뀌는 것이다. 2002년 지방선거 당시 서울시장 선거에 뛰어든 이문옥 전 감사관을 통해 정당 정치로의 변화를 꾀했다.(그는 이후 민노당을 거쳐 현재 진보신당에 몸담고 있다)


진보정치에 대해 : 정치와 사진은 무슨 관계일까?

삶과 일은 분리되기 힘들다. 정치와 사진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인 관심사는 사회적인 문제를 사진에 담는 것이다. 대형교회와 아파트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하찮은 것, 그늘진 것에 늘 애정을 갖는 것이 휴머니즘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조건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작가는 담론 유발자가 돼야 하고 이론가는 작품 유발자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현실정치에 관심이 많지만 사진에서 정치색을 확 드러내는 것보다는 해석의 여지를 두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이는 모호성과는 다르다. 사진이 기계를 사용하는 예술인데 모호성을 채용한다면 그것은 안일한 것이다. 사진이 갖은 방대한 정보성을 버리고 모호성을 채우는 것이 온당한지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부산의 개항 무렵에 범내골 지게꾼의 사진에서 복식, 지게 모양, 범내골의 전경 모습에서 시간성과 인문지리적인 방대한 정보성에 놀랐다. 그곳에는 풍부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사진의 본령은 무엇인가? 여러 가지 내보이는 방식이 있겠지만 사진이 갖는 힘의 원천은 수잔 손탁이 이야기한 것처럼 ‘세월’이다. 사진은 세월과 함께 힘을 발휘한다. 사회성 없이 내용이 모호하거나 흐리면 재미가 없다. 80년대까지 산복도로를 굴러 다니던 86번 마이크로버스의 사진이 지금 있다면 제원, 모양, 디자인 등 여러 가지를 알아낼 수 있는 가치가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실체도 사라지고 사진도 없다. 우리는 동시대를 밝은 눈으로 잘 담아내야 한다.


밥에 대해 : 어찌 버틸 것인가?

사진을 판다는 것? 너무 어렵다. 에디션을 매기고 갤러리에서 유통시키는 것이 온당한 것일까? 그리고 미술관의 간택을 받아 주가를 올리는 것이 사진의 속성에 맞는 것일까? 뭔가 비현실적이고 황당하기도 하다. 그렇다면 나는? 내 사진이 어디에 쓰는 물건일까? 관공서나 도서관? 복안이 없다. 불확실하다.

대형사진을 만드는 작가로 참 대책 없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우리 시장에 대해 의문시하고 저어하는 것이 많다. 다른 모색을 해야겠다. 일단은 열심히 작업하고 그것을 발표하고 그 다음을 모색하겠다. 보증금 뺀 것이 있으니 당분간은 버틴다.


꿈에 대해 : 당신의 미래 정체성은 무엇인가?

1등 사진가? 그런 꿈은 없다. 비싸게 팔리는 사진보다 쓸모(?) 있는 사진을 만들고 싶다. 지금까지 나의 정체는 ‘사진 노점상’이었고 ‘사진관 주인’ 그리고 인터넷 사진 갤러리 사이트의 ‘사진사’이다. 앞으로도 별로 변하지 않을 것 같다.



화덕헌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내가 운영하던 웹진 ‘이미지프레스’에 그의 부산역 사진을 기고 받으면서부터다. 하지만 그와는 사진가로서의 인연보다는 진보신당의 같은 당원이라는 연대감이 더 크다. 사진가 역시 시대를 기록하고 사회에 대해 발언하는 지식인이자 예술인이라면, 정치적인 소신과 실천 역시 당연할 텐데 우리 시회에선 그렇게 행동하면 튀는 것이라니. 참 난감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사진가 화덕헌의 실천적인 삶은 단지 수단으로서의 사진이 아닌 목적으로서의 사진으로 우리 곁에 제출될 것이 분명하다. 그것이 보고서 형태라도 상관없는 일이다.



화덕헌은 1965년 대구에서 태어나 4살 때 이후로 부산에서 살고 있으며 동아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2005년 <부산역에서 만난 사람들> , 2008년 <홀리시티> 등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올해 4월8일에서 21일까지 부산시립미술관 시민갤러리의 단체전에 참여했으며 현재 작업 중인 부산의 산복도로로 올해 하반기에 전시가 예정되어 있다. 화덕헌의 사진은 www.raysoda.com/badak에서 볼 수 있다.


* 본 기사는 <월간사진> 2009년 5월 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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