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전체보기

분야별
유형별
매체별
매체전체
무신사
월간사진
월간 POPSIGN
bob

아트 | 리뷰

즐거워서 만드는 옷

2010-01-05


공자는 ‘어떤 일이든 많이 아는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을 따를 수 없고, 아무리 좋아한대도 즐기는 사람을 못 당한다’고 했다. 2009년 삼성디자인학교(SADI) 최고의 졸업생인 ‘올해의 학생(Student of the Year)’에 선정된 윤학모는 마지막 부류에 해당된다. 그는 메시지와 철학을 옷으로 표현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재미있고 즐거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재미’를 오래도록 유지하는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열정적인 신인, 윤학모를 만났다.

에디터 │ 이지영(jylee@jungle.co.kr)

SADI의 패션학과 졸업전시인 ‘SADI 패션 크리틱 어워드 쇼’에서 ‘2009 올해의 학생’과 함께 ‘크리틱 어워드’, 그리고 ‘10 꼬르소 꼬모 어워드’를 수상해 3관왕을 기록한 윤학모. 그는 지난 연말, 제일모직에서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 10 꼬르소 꼬모(10 corso como)에서 열흘 동안 ‘삐에로와 눈사람(Pierrot & Snowman)’이라는 작품 전시를 선보였다. 첫사랑과 유년 시절의 감정이 한 편의 동화처럼 펼쳐지는 독특한 디자인을 여러 관계자 및 대중에게 공개한 것. 10 꼬르소 꼬모 측에서 부상으로 제공한 이 전시는 예비 디자이너에게는 처음으로 주어진 기회다. 지난 12월 2일에 열린 ‘제 27회 대한민국 패션대전’에서도 금상(국무총리상)을 거머쥐며 순식간에 패션 디자인계의 유망주로 손꼽히게 된 그는 한섬의 브랜드 ‘시스템옴므’에 입사를 앞두고 있다. 매번 1등만 하는 얄미운 모범생일 것이란 예측과는 달리 편안하고 차분한 인상이었던 윤학모. 그러나 약간은 수줍고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나가는 그에게서 숨길 수 없는 재능과 폭발적인 열정이 감지되었다.

수상과 전시 축하한다. ‘올해의 학생’으로 졸업하려면 굉장한 모범생이었을 것 같은데.
(고개를 저으며) 사실 학점이 좋지 않은 과목도 있다. 본래 재미있는 것, 흥미가 있는 일에는 푹 빠져드는 성격인 것이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모인 이들 틈에서의 경쟁이라 더욱 치열했지만, 그 만큼 자극과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처음부터 패션 디자인이 하고 싶었나?
원래 전공은 서양화였다. 평소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무언가 더욱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 늘 생각했다. 그렇게 찾은 것이 패션 디자인이다. 하지만 나이도 어렸고 지방(광주)에 거주하다 보니 정보를 얻거나 진로를 설정하는데 한계가 있었는데, 그런 고민을 나누던 친구와 함께 SADI를 알게 되었고 진학하게 되었다.

학교 생활은 어땠나?
수업 간 연계되는 커리큘럼이 마음에 들었다. 예를 들면 패션디자인 전공이라 하더라도 파운데이션 코스(1학년 과정)에서 디지털 관련 수업을 들을 수 있었는데, 이를 통해 콘셉트를 비주얼화하여 이미지로 보여주는 작업을 잘 이해하게 된 것 같다. 다양한 과정을 묶어서 하다 보니 훨씬 흥미로워 더욱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콘셉트 디벨롭먼트(Concept Development)라는 수업에서 ‘우리가, 지금, 여기에’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에는 스스로 ‘속도’라는 주제를 더해 작업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림이나 구조물 등으로 이를 표현했는데, 내 경우 지하철에서 퍼포먼스를 하는 식이었다. 무척 즐기면서 해온 것 같다.

이번 수상 작품 ‘삐에로와 눈사람’ 역시 생각이나 감정을 이미지로 잘 표현한 것 같은데.
크리틱 테마가 ‘기억과 흔적’이었다. 이것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현재의 흔적 속에 과거의 기억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삐에로를 나, 눈사람을 첫사랑으로 설정하고 사랑을 담은 편지를 쓰는 것으로 콘셉트를 잡았다. 이러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눈사람을 만드는 기쁨, 녹을 때의 슬픔 등을 표현했다. 총 6가지 스타일로 18점 정도의 착장을 구상했으며 눈사람의 실루엣을 디자인에 적용하였고 레드 컬러를 포인트로 활용해 사랑의 감정을 표현했다. ‘눈사람’으로 설정한 친구에게 작품을 보여주었더니 흔쾌히 어울리는 액세서리를 만들어 주었다.

독특하고 재미있는 시도라 생각된다. 어려운 점은 없었나?
아무래도 마감 시간을 지키는 것이 가장 어렵다. 지도 교수님들께서는 완성된 옷을 시간 안에 안전하게 마무리해내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하셨다. 하지만 내 경우, 마감일 하루 전까지도 계속 디자인을 고민하다 보니 몇 시간 전에 나온 디자인을 선택할 때도 있었다. 쇼에 작품이 나가기 바로 직전까지도 옷을 매만지고 있는 편이다.

작품의 소재도 독특한 것 같은데.
과장된 실루엣과 디테일을 표현하기 위해 부직포처럼 보이는 ‘울펠트’를 이용했다. 요즘은 약간 터프한 느낌을 주는 소재에 관심이 간다. 예를 들면 ‘데끼패턴’이라고 해서 시접처리가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아 자연스러운, 그러나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잃지 않는 것이 있다.

좋아하는 디자이너가 있나?
매번 변하는 편인데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 준야 와타나베(Junya Watanabe)를 좋아한다. 또 재미있는 성격과 디자인 철학을 가진 디자이너 요지 야마모토(Yohji Yamamoto)나 상업적으로도 노련하고 웨어러블한 옷을 만드는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도 멋지다고 생각한다.

크리틱을 맡은 한상혁 교수는 어떤가?
디자이너들마다 각자의 색깔과 분위기를 잘 표현할 수 있도록 북돋워주셨다.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고 스스로 타협점을 찾을 수 있도록 조언을 해주셔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어떤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가?
이상하고 재미있는 생각이나 상상, 관념, 시스템 등을 그림(예술)으로 무겁고 어렵게 표현하기 보다는 옷의 전체적인 분위기나 디테일을 통해 재미있게 담아내고 싶다. 호기심 가는 것들을 발전시켜 옷으로 표현하는 일이 너무 즐겁기 때문이다. 추구하는 무드나 콘셉트에 푹 빠져있을 때 좋은 디자인이 나오는 것 같고, 때문에 그런 과정이 재미있는 것이 내게는 너무도 중요하다. 지금의 이런 ‘재미’를 오래도록 유지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또 쇼에서 보여준 나만의 이미지나 무드를 이어가서 상품으로 전개할 줄 아는, 즉 웨어러블한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앞으로의 계획은.
여러 분야와 연결하여 소통하고, 사람들의 의견과 호응을 얻는 것이 즐거워 콜라보레이션에도 관심이 많다. 최근에 작가 김성우의 조각 작품에 나의 옷을 입히는 작업을 구상 중에 있다. 대한민국 패션대전에서 부상으로 ‘에스모드 파리’나 ‘마랑고니’같은 유명 패션 코스로의 유학 기회도 얻었지만, 일단 한섬에 입사해 실무를 많이 경험해보려고 한다. 좋아하는 그림 그리기도 시간을 두고 계속하면서 이것을 패턴으로 발전시키거나 다양하게 응용해볼 생각이다. 아직은 다방면으로 자기계발과 성장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해외진출의 밑거름으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윤학모에게 패션이란?
단순히 입는 것에서 벗어난, 새로운 자유로움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과시하거나 과장된 유행을 만들어가는 기호에서 벗어나서 패션을 하나의 시각 언어로 만들어나가고 싶은 꿈이 있다. 슬픔, 기쁨, 멜랑콜리한 감정을 제대로 표현해내는 것이 목표다. 재미있으되 새롭고, 새롭되 멋스러운 패션이 되면 좋겠다.

facebook twitter

당신을 위한 정글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