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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노동자의 이주부터 나무의 이동까지 흔적, 기억 쫓는 미술그룹

2013-03-20


인간의 역사는 이주와 함께했다. 문명의 발생 이후 세계 전 대륙으로 복잡한 이동에 이동을 반복하며 유구한 문명과 역사가 탄생했다. 따라서 이주란 역사의 발현과 이동이라는 장대한 흐름과 함께 이해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근대 이후의 사회에서 이주란 무엇인가. 이주는 차별과 배척, 타인과 폭력 혹은 비인권적 같은 부정적 의미를 강렬하게 내포하고 있다. 인간의 역사와 함께해온 이주가 역설적으로 인간과 역사에 반하는 기피대상이나 천덕꾸러기가 돼버렸다.

‘믹스라이스(Mixrice)’는 ‘이주’라는 범국가, 범세계적 이슈 아래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를 이주노동자에 초점을 맞춰 고민해온 작가 듀오이다. 이들은 1999년 포스트 민중미술의 전진기지로 불리기도 했던 대안공간 풀(현재 아트스페이스 풀)의 설립과 함께한 당대의 사회적 미술이슈와 화이트큐브에서 탈피한 다양한 예술 시도에 공감하며 결성되었다. 초창기 4명이었던 멤버는 현재 부부작가인 양철모, 조지은 2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글│조미라 기자
기사 제공│월간사진

믹스라이스의 활동을 보면 그 동안 많이 받은 질문이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럼에도 믹스라이스는 어떤 팀인가?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너희들 정체가 뭐냐고 묻고 미술인들은 그게 예술이냐고 묻는다. 이런 질문을 계속해서 받는 것 같다. 명확히 무엇이냐고 묻는 것은 너무나 전통적인 시각에서의 질문 같지만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믹스라이스는 미술을 베이스로 한 작가그룹이다. 나(양철모)는 사진을 전공했고, 조지은은 회화를 전공했기 때문에 각각 그것에 베이스를 두고 있을 뿐이다. 2002년 결성 이후 지금까지 ‘이주’라는 사회현상에 따른 여러 흔적과 과정, 경로, 결과, 기억들에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작업해오고 있다. 집중하고 있는 것이 이주이기 때문에 이주노동자와 관계하며 작업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이주’라는 사회현상과 ‘이주노동자’들을 통해 우리를, 한국사회를 다시 바라보려 한다.

그룹 이름이 특이하다. 믹스라이스는 어떤 의미인가?
말 그대로 섞인 밥, 즉 비빔밥이다. 아시아인의 주식인 쌀의 섞임이란 의미와 함께, 외국으로 이주노동을 갔던 시절을 지나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이는 입장이 된 한국의 짧은 압축 성장률을 상징하기도 한다.

다양하고 특색 있는 여러 작업을 해왔다. 작업 방식과 흐름이 궁금하다.
처음에는 미디어에서 이주노동자를 대상화시키며 재현하는 방식이 꼴보기 싫어서 다른 방식으로 그들과 만나는 작업을 시도했고, 그중 하나가 ‘비디오 다이어리’였다. 당시만해도 보편적이지 않던 영상교육을 통해 이주노동자들이 직접 영상을 만들도록 유도했다.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말하는 이주노동자를 스크린 앞으로 끌어내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행동을 자극하려는 의도였다. 이러한 영상들을 상영하기 위해 만든 ‘천막극장’은 상영장소일 뿐 아니라 우리의 개념을 표현하는 하나의 장이기도 했다.

우리는 이주노동자들과 교류하고 함께 지내면서 여러 작업을 이어간다. 이주노동자가 주체가 되는 일종의 토크쇼인 ‘믹스라이스 채널’이나 집회현장에서 만들어먹던 핫케이크를 사진으로 찍어 보여준 ‘핫케익’, 국가인권위 앞에서 했던 줄넘기 퍼포먼스를 영상, 사진으로 기록한 ‘인권 줄넘기’ 등 다양하다. 그들과 함께 하는 모든 과정이 하나의 작업이다. 이런 특성상 믹스라이스는 협업 작업이 주를 이룬다.

‘접시안테나’ 시리즈 같은 사진작업도 있다. 어떤 작업인가?
사진은 앞서 말한 과정들의 기록, 보고서 같은 용도인데, ‘접시안테나’의 경우 돌출되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기보다 주변부화 되고 외부화 되는 것에 관해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에서 했던 작업이다. 접시안테나는 외국인노동자들이 타국(한국)에서 자국의 방송을 보기 위해 설치한 대형 안테나를 말한다. ‘안테나형 도시’라는 말도 있는데 가난한 사람들이 도시 외곽으로 밀려나 만든 도시를 일컫는다. 그들을 대상화 시키지 않으면서도 그들과 공유할 수 있는 사진을 찍은 것은 ‘접시안테나’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촬영은 믹스라이스가 하기도 하고 이주노동자 친구들이 찍은 것도 섞여있다. 사진을 디렉팅하고 선택하는 것은 믹스라이스이지만 과정에 참여하는 주체는 여럿이었다. 사진 중에 ‘전화결혼식’은 누가 찍었는지도 모르는 한장의 사진을 믹스라이스가 손 위에 올려놓고 다시 찍은 것이다. 그럼 이 사진은 누구의 사진이라고 말해야 할까? 찍는 자와 찍히는 자라는 이분법적 시각으로 바라보아서는 이해하기 힘들 것 같다.

최근에는 경기도 마석으로 장소를 옮겼다. 마석은 어떤 곳인가?
2004년 명동성당에서 이주노동자들의 농성투쟁이 시작됐다. 이 농성은 385일 동안이나 이어졌다. 당시 나(양철모)는 믹스라이스에 합류하기 전으로 인권위원회의 의뢰로 포스터 촬영을 위해 명동성당을 찾았고, 그곳에서 ‘비디오 다이어리’ 작업을 하던 믹스라이스를 처음 만났다. 명동성당 농성은 이주노동자의 강제추방에 항의한 것으로, 마석 가구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았다. 농성기간 내내 이주노동자와 함께 했기 때문에 농성 이후 자연스럽게 방문하게 됐다. 당시 특유의 어두운 도시 분위기에 충격 받았던 기억이 난다. 마석이라는 동네는 원래 한센인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 지금은 가구공장들이 들어서면서 외국인노동자들이 모이게 된 지역이라 그런 관계에 대해서도 고민해보게 되는 장소였다. 외면당한 사람들이 살다 버려진 지역에 다시 외면당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으니 말이다.

마석에서 기억에 남는 작업이 있다면?
2008년인가 마석의 이주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연극을 만들고 있었는데, 그 연극에 출연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제안 자체를 상당히 의미 있게 받아들였는데, 연극의 내용 중에 먼저 온 이주노동자가 나중에 온 이주노동자를 착취하는 장면이 포함되어있었다는 것도 그렇고, 그들이 우리에게 참여를 먼저 제안했다는 점이 분명 중요한 변화였다. 그전까지는 우리가 제안하는 방식으로 작업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들의 자발적인 연극에 참여하면서 두 가지 작업을 했다. 하나는 연극하는 장면을 영상으로 만든 ‘불법인생’이었고, 다른 하나는 연극 포스터를 위해 극의 한 장면을 출연 배우들이 연출해서 찍은 사진을 다시 믹스라이스 작업으로 사용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여러 프로젝트들을 통해 많은 결과물들을 남겼다. 영상은 물론 벽그림, 만화 그리고 사진까지. 이런 결과물로 몇번의 전시를 가진 것으로 알고 있다.
활동 자체가 작업이고 그 활동에서 나오는 부산물들이 하나의 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전시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2008년에 아트스페이스 풀에서 ‘접시안테나’로 전시를 했다. 2010년엔 빠르게 변해가는 개발의 흐름 속에서 잊혀져 가는 기억을 더듬는 작업이었던 <아주 평평한 공터> 전을 열고 동명의 출판물을 내놓았고, 같은 해에 <믹스라이스 리포트 : 웰컴, 마이 프렌드!> 라는 전시가 역시 아트스페이스 풀에서 있었다. 2010년 이후 작업 결과물의 중간보고전 성격으로 사진과 텍스트, 드로잉, 수집 오브제 등이 소개되었다. 현재는 2월에 백남준미술관에서 단체전이 예정되어 있다. 믹스라이스의 그간 작업들의 파편을 모두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믹스라이스의 작업을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이주노동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노동비자 쟁취로, 일할 수 있을 만큼 일하게 해달라는 요구이다. 이것은 이들에게 당장 절실한 요구이지만 우리는 여기서 더 깊고 넓게 질문을 던져야만 한다. 우리는 이주로 인해 벌어지는 불합리한 일들, 주체와 타자의 문제, 인종과 문화간의 문제 등 다양한 사회적 질문을 제기하려 하며 이 모든 것은 결국 우리를 다시 바라보고 한국사회를 반추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이 신장되는 것은 그에 따르는 효과이다.

믹스라이스가 이주라는 주제로 활동해온 지 10년을 넘어섰다. 앞으로의 고민 혹은 계획이 궁금하다.
이주노동자에 집중해서 작업해 왔지만 동시에 이주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인간존재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들도 있었다. 이주에 관련한 여러 문제들에 개입하고자 하는 의도이다. 이것의 연장으로 내년에는 식물의 ‘이주, 이동’에 관련된 작업을 준비 중이다. 예를 들어 아파트 조경을 위해 심어놓은 보기 좋은 나무가 어떤 경로를 통해 의지와 상관없이 자본이 축적된 지역으로 옮겨오게 되는지에 대한 것이다. 또 국내뿐만 아니라 버마를 방문해 그곳의 나무 대부분이 중국으로 수출되는 상황에 대한 작업도 할 예정이다.

이러한 변화가 작업의 폭이 넓어진 것인지, ‘이주노동자’라는 사람을 바라보던 시각이 이주를 둘러싼 더욱 ‘다양한 상황’으로 이동한 것인지 명확하게 정의내리긴 모호하다. 다만 이 이슈의 다른 상황을 만나려는 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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