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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일상의 라이트모티프

2012-08-31


앙리 카르티에-브레송(Henri Cartier Bresson)은 ‘결정적 순간’이라는 말로 함축된다. 이는 한편으로 현장의 사건성에 집착하지 않고 사진가의 시각이 강조되는 모던 포토저널리즘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다. 즉 카르티에-브레송의 사진에 각인된 순간들은 일상의 르포르타주이자 동시에 탈사건 중심의 현대사진이 시작된 순간이다.

글│ 정훈 (사진학/시각문화이론)
기사제공│월간사진

사실 브레송적인 결정적 순간은 즉각적인 사물의 구성을 이뤄내는 훈련된 사진가의 능력과 카메라의 기계적인 시각을 결합하면서도 이와는 차별되는 독자적 인식까지 포함한다. 카르티에-브레송은 “순간 속에서 사건의 중요성과 엄격한 형태의 완벽한 구성이 어우러져 사건을 올바르게 표현할 수 있는 동시적인 인식”이 이뤄진 순간을 결정적 순간이라고 생각했으며, 이 점에 근거해 “사소한 것도 훌륭한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그의 관점은 조지 6세 대관식에서 왕위에 오르는 장면 대신 대관식을 바라보는 군중 속에서 아이러니한 장면을 포착한 것이나 마오쩌둥에 의해 국민당 정부가 무너지고 공산정권이 수립되는 순간 속에서 평범하게 식사를 하는 중국인을 촬영한 사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다시 말해 카르티에-브레송의 사진이 지니는 중요성은 그의 작업으로부터 사진의 시각이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일상 속의 사건으로 향하는 전회가 이뤄졌다는 데에 있으며, 그의 사진으로부터 현대사진은 역사적인 사건성에서 해방되어 일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결정적 순간, 탈-사건의 시작

따라서 카르티에-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은 우리에게 일상의 의미를 제공하는 순간이며, 사진가는 이러한 순간을 직관을 통해 알아채고 카메라로 담아낼 때 창조적이게 된다. 이러한 그의 관점은 보는 주체와 보여지는 객체가 구분되는 관습적인 사진의 전통에서 일탈하며, 그렇기에 사진적인 순간은 대상과 사진가가 하나의 공간 속에서 상호 조우하는 순간을 의미한다. 사실 이런 면모는 카르티에-브레송 사진이 갖는 고유성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가 삶을 영위했던 20세기 초중반 유럽의 현대성과 뗄 수 없는 관계를 지니기도 한다. 점차 속도감이 더해지는 현대적인 삶의 양식과 대중 중심적인 문화로의 변화 속에서 우연적인 마주침이 돌이킬 수 없는 필연으로 바뀌는 것은 유럽사회에서 빈번하게 볼 수 있는 새로운 모습이었으며-가령 제1차 세계대전도 어떠한 전쟁의 개연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당대를 뒤엎었던 초현실주의와 같은 예술사조에서도 빈번하게 발견되었던 특성이었다. 카르티에-브레송의 사진에 대한 관점 역시 이와 같은 우연과 필연이 뒤얽히는 삶의 실타래 속에서 형성됐다. 어릴 적 삼촌의 영향으로 회화에 관심을 가진 이후, 카르티에-브레송은 “카메라를 지니지 않은 사진의 스승”이라고 스스로 일컬었던 입체파 화가 앙드레 로트(Andre Lhote)로부터 회화적인 기술을 배웠다. 이론에 엄격했던 로트의 교육은 카르티에-브레송이 형태의 완벽한 구성으로서 시각적인 입체파적 포착을 사진을 통해 직관하게 되는 근거가 되었다. 이후 카르티에-브레송은 파리를 뒤덮었던 초현실주의의 열풍 속에서 전위적인 예술가들과 교류하면서 사진의 자동기술적인 특성과 잠재의식 그리고 즉각성에 몰입했으며, 점차 회화에서 사진으로 관심을 옮기게 되었다.

현실과 초현실의 공존

카르티에-브레송은 젊은 시절 영국과 아프리카에서 시간을 보낸 후에 사진가 데이빗 시모어(David Seymour)와 가까운 친구가 되었고, 그로부터 로버트 카파(Robert Capa)를 소개받아 세 사람이 스튜디오를 함께 쓰게 되었다. 당시 카파는 카르티에-브레송에게 “초현실주의 사진가의 꼬리표를 달지 말고 포토저널리스트가 되라. 만약 매너리즘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초현실주의는 너의 마음 속에 간직할 수 있을 거야”라고 말했는데, 카파의 이 말은 매그넘 포토스의 공동 창립자이면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현대포토저널리즘을 열기 시작한 카르티에-브레송의 사진을 이해하는데 적절한 말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가 역사적인 사건 속에서 촬영한 사진이 갖는 독특하고 미학적인 매혹은-사진이 특정한 사건성을 묘사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현장에서 사건성에 가려질 수 있는 일상의 의미가 사건과 함께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게 하는 면모로서-현실의 극명한 모습이자 동시에 그 극명한 현실 속에서 초현실적인 의미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카파와의 만남과 그의 조언은 카르티에-브레송 삶의 ‘결정적 순간’이었으며, 브레송적인 결정적 순간의 이중적인 특성의 본질과 직결된다. 포토저널리즘적 사진이면서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은 카르티에-브레송 사진의 단적인 예는 그가 멕시코의 집창촌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성매매 여성이 웃으며 상반신의 일부분만 문의 사각틀 밖으로 드러낸 모습은 마치 팬터마임을 하는 피에로의 우스운 동작처럼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순간이면서도 쉽게 웃을 수 없는 애수를 느끼게 한다. 이 사진을 바라보는 우리는 사진을 통해 당대 멕시코의 적나라한 사회문제에 대해 인식할 수 있으며, 동시에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기거하는 삶의 진한 페이소스를 경험하게 된다.

사건의 진실과 일상성

이처럼 카르티에-브레송의 사진이 갖는 초현실주의적인 속성과 포토저널리즘적인 면모는 한장의 사진에서 동시에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하나의 측면만이 강조되어서 나타나기도 한다. 만 레이(Man Ray)의 사진을 연상시키는 아르헨티나의 화가 레오노르 피니(Leonor Fini)의 누드는 초현실주의의 영향이 두드러진 사진이다. 물 밖으로 튀어나온 가슴과 물 속 하반신의 성기가 주는 이질적이면서도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잠재의식 속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시각성을 가시화한 사진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독일의 수용소에서 게슈타포 정보원을 심판하는 장면은 전형적인 포토저널리즘적 시선이 짙게 배어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카르티에-브레송의 사진은 이러한 이분적인 구도로 나눌 수 없는 지점에 위치하며, 초현실주의적이면서도 포토저널리즘적인 양가적 특징이 동시에 배어있는 사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면모는 카르티에-브레송이 매그넘 포토스의 공동 창립자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결정적 순간이라는 사진의 매체미학적 완결자라는 점에 초점이 맞춰지도록 했으며, 그로 인해 그의 대표적인 사진들에 역사적 진실이 배어있다는 관점이 간과된 측면이 적지 않다. 그러나 카르티에-브레송은 20세기 중반의 급변하는 역사의 흐름 속에 언제나 서있었으며, 역사적 사건 속에 놓여진 인간의 실재적 일상에 시선을 향했다. 일례로 1954년에 모스크바의 메트로폴 호텔 카페테리아에서 촬영한 사진은 사건성이 배제되어 있으면서도 시대적 진실의 단면을 엿보게 하는 카르티에-브레송 특유의 포토저널리즘사진이다. 이 사진은 레닌과 스탈린의 초상이 걸려있는 홀에서 춤추고 있는 노동자들의 모습과 그들을 바라보는 경직된 또 다른 노동자들의 시선을 담고 있는데, 공산주의 사회의 경직성과 더불어 그 속에서도 인간미를 잃지 않은 삶이 존재하는 이중적인 당대 모스크바의 문화상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모든 순간은 결정적 순간

이런 점은 1936년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주 5일 근무제와 연 2주의 유급휴가가 실시된 역사적인 순간을 일상의 풍경을 통해 담고 있는 사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카르티에-브레송은 초기 유급휴가를 묘사하기 위해 1938년에 마른 강변에서 휴가를 보내는 중산층의 모습 이외에도 1936년에 첫 유급휴가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도 담았다. 중산층으로 보이는 두쌍의 커플이 평범한 프랑스의 시외에서 망중한을 보내는 모습은 평범한 일상 이외에는 어떤 역사적인 사건성을 엿보기 힘들다. 만약 사진 설명이 없다면 이 모습이 역사상 처음으로 유급휴가가 실시된 이후의 일상이라는 의미를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일상을 향한 카르티에-브레송 특유의 시선은 그의 사진의 흐름 속에서 언제나 지속되었으며, 역사적 사건 속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변모를 남기고 있었다. 이는 유급휴가 풍경을 촬영하고 30여년이 지난 후에 베를린장벽이 만들어지는 곳에서 촬영한 사진에서도 마찬가지다. 세 사람이 장벽 건너편의 건물들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은 역사적 사건을 고착화하기 위해 사건성을 극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으로 인해 변화되는 일상을 인식하는 순간이다. 바로 이 점이 그가 “이 세계에서 결정적 순간이 아닌 것은 없다”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우리의 삶과 문화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변화의 순간 속에 놓여있다는 것을 카르티에-브레송은 이해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카르티에-브레송은 그러한 변화 속에서 반복적으로 다가오는 일상의 마주침을 각인한다. 이 일상의 작은 변화의 순간들이 그의 사진의 중심으로서, 하나의 라이트모티프(leitmotif)가 된다.

브레송을 만나는 국내 회고전

카르티에-브레송의 사진은 순전히 시각적이며, 그 매체적 완성도의 결정체이다. 그렇기에 그의 사진은 미학적인 완성도에 비해 사회적인 메시지에 대한 한계지점도 명확하다. 이 점은 그의 사진이 지닌 시각적인 완성도가 바라보는 이들을 사진 위에서 결정되어버린 순간에 고정시키는 마법 같은 힘이 있기 때문이다.(반면 로버트 프랭크의 사진이 갖는 사회적 메시지는 이와 같은 사진의 미학적 힘을 어느 정도 제거했기에 가능했다) 어쩌면 이것은 사진미학이 갖는 숙명이자 역설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카르티에-브레송이 사진을 통해 시각적 완결성과 함께 이끌어낸 일상의 의미는 이후의 사진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사건성에 사로잡히지 않은 새롭고 다양한 시각을 탄생시키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그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준비했던 회고전이 오는 9월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개최되어 지금껏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카르티에-브레송의 여러 사진들을 대거 소개한다. 세계 순회전의 일환이지만 전시는 카르티에-브레송이 주로 초점을 맞추었던 대상의 주제적 측면을 다섯 섹션으로 구획해, 그의 사진과 삶에 대한 인식을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도록 하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특히 그의 생전을 기억할 수 있게 해주는 영상자료와 기념사진 및 소품들은 ‘사진의 신화’로서의 카르티에-브레송이 아닌 ‘일상의 사진가’로서의 그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고유한 모습들이 카르티에-브레송에 대한 그리고 현대사진의 시류를 보다 깊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동인이 되기를 기대한다.

결정적 순간 사진미학의 거장,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전시

장소 :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기간 : 2012년 5월19일~9월2일
홈페이지: http://www.hcb201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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