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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평론가, 출판을 캐스팅하다!

2012-06-12


요즘 아들과 독서삼매경에 빠졌다. 옆집 친구에게 빌려왔다는 일본만화가 다이수케 테라사와의 히트작 <미스터 초밥왕> 때문이다. 1992년에 일본에서 초판이 발행되었으니 이제 꽤 된 작품이지만, 지금도 쇄를 거듭하는 것을 보면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모양이다. 이 책은 여러 판본으로 국내에 소개됐다. 필자는 오래전 대본소용 불법복제물로 흥미 있게 본 작품인데 지금은 정식 출간되어 350쪽의 두툼한 ‘애장본’이라는 이름으로 나왔다.

글, 사진 │이상엽(이미지 프레스 대표)
기사제공│월간사진

이 책이 다시 봐도 재미있는 것은 요즘 유행하는 미드(미국드라마)처럼 에피소드 위주로 구성되어 잔재미와 작가의 박학다식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 쇼타가 어린나이에 초밥계에 입문해 요리왕 대회에 출전하면서 점차 명인으로 성장한다는 큰 줄기에 자잘한 에피소드들이 이어지면서 잔가지를 구성하는 방식이다. 이 작품은 한국과 일본에서 요리 붐을 몰고 왔고, 이후 <맛의 달인> 이나 허영만의 <식객> 등의 작품에도 많은 영향을 줬다.

너무나 열심히 책을 보는 아들에게 “너 학교 그만두고 초밥집에 들어갈래?” 했더니 “아뇨!”라며 손사래를 친다. 사실 아들은 초밥을 먹지 못한다. 그런데도 이렇게 책에 빠져드는 것은 초밥이라는 소재를 변화무쌍하게 요리하는 테라사와의 능력이다. 초밥을 만드는 온갖 재료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희로애락의 인간사를 꿰뚫는 능력은 작가로서 명인의 반열에 섰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일본에서 소설가보다 만화가가 한수 위인 것은 당연해 보인다.

재미있는 사진책을 찾아서

하지만 한국에서 만화는 아직도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영화나 게임의 원 소스가 되는 출판만화는 일본에 비해 아주 작은 규모를 형성하고 있을 뿐이다. 원인이야 여럿이 있겠지만, 국내 만화의 침체는 구성이나 그림체의 문제가 아니라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양만화의 부재에 있다. 일본의 경우 <미스터 초밥왕> 과 같은 요리뿐 아니라 낚시, 산악과 같은 취미에서부터 정치, 사회, 경제경영의 다양한 사회인문서까지 만화로 만들어진다. 시간이 있는 사람들은 글로 된 책을 읽지만 많은 셀러리맨들은 전철에서 만화로 된 교양서를 읽고 있다.

필자는 최근에 사진과 관련된 출판물을 기획하면서 만화로 된 사진교양물을 진행했었다. 주변에 능력 있는 만화가 후배가 있어 직접 사진을 가르치기도 하고 책의 구성에 대해 많은 조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만화가가 사진의 참맛을 단기간에 느끼기는 부족했다. 사진의 역사며, 사진의 미학에 대한 인문학적인 배경은 물론이고 사진의 세세한 테크닉까지 공부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결국 출판기획은 수포로 돌아갔고 만화로 된 사진교양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했다. 만화가를 사진전문가로 만드는 것보다 만화의 원작이 될 만한 것을 찾기로 한 것이다. 그 때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이 평론가로 활동하던 현대사진연구소 진동선소장의 <사진사 드라마 50, 영화보다 재미있는 사진 이야기> (푸른세상, 2003)였다.

사진의 역사로부터 시작해 각 시대별 대표 작가들의 이야기를 제목처럼 ‘드라마’로 구성 각색한 독특한 책이다. 드라마라고 하지만 없던 이야기를 꾸며낸 것은 아니다. 엄격하게 기록된 사실에 의존해 작가가 상상력을 동원해 재구성해낸 것이다. 이 책은 그 문체의 발랄함과 생생함으로 독자들에게 크게 어필했다. 독자들의 평점은 10점 만점에 8.14로 매우 높았고, 덕분에 1만권 가까이 팔려나가면서 사진교양물로서는 드물게 베스트셀러가 됐다.

하지만 진동선의 책처럼 사진교양물이 출판사나 독자들에게 대접을 받는 것은 아니다. 각종 인터넷서점의 판매량을 종합 집계하는 포탈의 사진책 순위를 살펴봤다. 1위부터 50위까지 포진하고 있는 책들 중에 교양서가 8권, 사진에세이가 6권, 작품집은 겨우 2권뿐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카메라나 사진 테크닉을 다루는 기술서들이었다. 출간된 책들의 편식이 엄청나다는 것을 증명한다. 마치 10년 전 한국출판계를 풍미하던 ‘컴퓨터기술서’ 시장의 재림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컴퓨터 기술의 발전으로 책을 보지 않아도 컴퓨터를 만질 수 있는 시대가 오자 컴퓨터 출판시장은 사라졌다. 사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의 디지털카메라 기술이면 조만간 사진기술서를 보지 않아도 훌륭하게 사진을 찍어낼 카메라가 등장할 것이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어떻게 찍어야 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왜 찍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다. 그래서 사진출판물에 교양이라는 기둥이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독자들의 취향을 파악하고 궁금증을 박학다식하고 유려한 문장으로 풀어내는 진동선의 존재가 우리 사진계에서 소중한 것이다.

사진계의 이야기꾼

만화로 된 사진교양물을 기획하면서 진동선의 책이 눈에 들어온 것은 이야기꾼의 책이란 점 때문이다. 마치 <미스터 초밥왕> 처럼 짧은 에피소드로 구성된 점이라든지, 이야기 하나하나에 자신의 폭넓은 지식들을 한데 버무렸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책의 텍스트는 흔히 말하는 ‘원 소스 멀티 유징’이 가능한 창고의 역할까지 갖고 있었다. 그렇다면 진동선은 어떻게 말과 글이 함께 가는 이야기꾼이 될 수 있었을까?

그의 사무실이 있는 서울 인사동 근처의 오피스텔로 찾아갔다. 작지 않은 원룸 오피스텔이지만 벽을 가득 메우고 있는 그의 책들 때문에 더 좁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과 관련된 이론서와 사진집, 외국서적은 영미권의 책들이 주류다. 아마도 그가 미국에서 유학을 했기 때문이라 짐작해 본다. 사무실 가운데 좌상이 놓여있고 앉은뱅이 의자가 늘어서있다. 이곳이 그가 후학들을 가르치는 곳이다. 그곳에 마주앉아 일층에서 뽑아온 에스프레소를 놓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편하게 이야기를 풀기 위해 이론을 공부하게 된 사연을 들어봤다.

93년에 유학을 갔다. 좀 늦은 나이였던 것 같다
홍대 대학원을 마치고 유학을 결심했다. 그 전까지 아마추어사진가로 활동하다가 당시 강단에서 사진을 가르치는 분들에게 감동해 사진이론을 공부하기 위해 다니던 직장도 때려치우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배병우선생과 김장섭선생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사진가로서 많은 한계를 느꼈다. 주변에서 소외도 느꼈다. 그래서 유학을 결심했다. 작가로서가 아니라 이론과 비평을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당시에는 미국에서 이론을 전공하고 온 사람이 없었다. 나 역시 어디로 갈지 모르고 무작정 시카고로 갔다.

특이하게도 학부부터 다시 했다.
한국에서 학부 때는 사진을 전공하지 않았다. 그래서 궁금했다. 미국의 학부에서는 사진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말이다. 다행히 1학년부터 한 것은 아니고, 내가 진학한 위스콘신대학교는 2학기 36학점만 자신의 학교에서 이수하면 졸업장을 줬다. 나는 한국에서 이수한 학부와 대학원 학점이 넘쳤다. 그래서 2년 동안 어학과 기초 사진학을 공부했다.

대학원은 뉴욕에서 다녔다.
뉴욕주립대니 뉴욕은 맞다. 하지만 내가 다녔던 버팔로는 맨해튼까지 장장 8시간 거리였다. 난 정말 미국에서 2년 살면서도 그렇게 미국이 넓은 줄 몰랐다.(웃음) 그곳은 신디 셔먼이 다닌 학교라 사진과의 인연도 깊은 캠퍼스였다. 신디 셔먼을 연구하면서 ‘하숙집은 어디고, 작업실이 어디고, 연애는 누구와 했고’하는 밀착취재를 통해 당시를 상상하기도 했다. 영화의 시나리오처럼. 나중에 <사진사 드라마 50, 영화보다 재미있는 사진 이야기> 를 쓰는 밑천이 된 것 같다. 당시 정말 많은 책을 보고 사진을 보러 다니며 고민을 했다. 행복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한국에서 나올 때부터 결혼한 상태였고, 집을 팔아 마련한 돈은 3700만원이었다. 학기는 마쳤는데 졸업논문을 쓸 여유가 없었다. 더 이상은 미국에 체류할 방안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언제고 다시 온다고, 그리고 졸업하겠다고. 하지만 지금도 뉴욕주립대는 수료 상태다.

하지만 돌아와서의 활동은 엄청났다.
혁명을 해보자는 심정으로 돌아왔다. 사진에 대한 관점과 논점을 변화시키자. 그러던 차에 마침 사진예술의 이명동 선생이 조건 없이 지면과 원고료를 주셨다. 매달 50만원씩 5년간을 주셨다. 나는 이것이 ‘나의 최저생계비다’라고 생각하고 글을 썼다. 물론 과격한 글이 많았다.(웃음) 그뿐 아니라 배병우선생의 주선으로 김승곤, 임향자 선생을 만나 <사진비평> 을 창간했다. 본격적으로 비평권력이라는 칼까지 쥔 셈이었다. 그런데 ‘수석편집위원’이라는 이름을 달고 책을 만든 것은 7호까지였다. 99년 광주비엔날레 전시팀장으로 내려 간 것이 김승곤 선생에게 실망을 안겨준 모양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사진계를 위해 스스로 첩자가 되어 정보를 수집하겠다는 결심이었다. 스스로 충정은 대단하지만 현실은 꼬여버린 셈이다. 그리고 2000년에는 인사동에 하우아트 갤러리를 열었다. 정말 정신없이 살아온 느낌이다.

몸만 바빴던 것이 아니라 글도 많이 썼다. 이론 한다고 글 잘 쓰는 것은 아닌데 원래 글 쓰는 일에 관심이 많았나?
연애편지를 너무 잘 썼다. 학교 다니면서는 도시락을 싸갈 필요가 없었다. 대필 말이다.(웃음) 잡지에 기고도 많이 했다. 그때 사람들을 혹하게 하려면 이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훈련한 셈이다. 그리고 독서를 통한 문학적 상상력, 어려서는 한수산을 지금은 신경숙의 소설을 좋아한다. 그들의 글은 상당히 사진적이다.

책 인세로 오십 이후를 설계한다

사람은 계절을 탄다. 그리고 나이도 탄다. 10년을 주기로 자기를 돌아본다. 최근 진동선이 그렇다. 작년 이후로 전시장에도 나타나지 않고 일체의 저널에서 글 쓰는 일을 중단했다. 오십의 문턱에 서서 그는 지금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 것일까?

최근에 혁명에 대한 책들을 읽었다고 했다. 그것을 새롭게 읽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혁명의 전개과정을 이해하려 했다. 혁명의 전개과정에서 그것을 수행하는 사람과 추수하는 사람이 있다. 지난 10년간 한국의 사진계는 더욱 좋아졌는데, 나는 불가피하게 적들이 많이 생겼다. 징검다리역할은 했을망정 결국 추수하는 사람이 되지 못했다. 나는 스스로를 반성하며 이론비평에서 2선으로 물러난다는 심정으로 저널에 글 쓰는 것을 중단한 것이다.

디지털의 발전으로 인해 대학도 이론전공보다는 실기전공자들이 대우받는다. 이와도 관련이 있는가?
이번에 한 대학에서 이론전공자가 임용됐다. 더 이상 대학에 이론전공자가 없다는 이야기는 할 수 없게 됐다. 이제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지금 사진계는 주변이 사진을 살리고 있다. 사진의 온라인 문화가 그것이다. 그래서 새롭게 사진문화운동이 필요한 시기이다.

진동선은 지난 10년간의 활동을 스스로 비판적으로 평가하며 새롭게 구상하는 것이 ‘책’이다. 그의 말대로 “연금도 없고 퇴직금도 없기”에 책 인세가 유일한 삶의 방편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현재까지 17권의 책을 기획 편집했고, 그중 10권이 자신의 책이다. 1998년 그가 처음으로 쓴 <현대사진가론> 은 학생들의 교재로 가장 각광받은 책이고, <한국현대사진의 흐름> 은 전시를 통해 본 한국사진계의 헤게모니와 쟁점들을 정리한 책으로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회자된 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스스로 새롭게 발견한 자신의 책은 <한 장의 사진미학> 이다. 상급 아마추어사진가를 위한 교양서였던 이 책은 4쇄를 발행했고 이번에 다시 정리해 2판을 준비하고 있다. 진동선은 “사진에 대한 전문이론은 내 영역이 아니었다. 현대사진의 쟁점은 독자와 관객을 중시한다. 대중들의 눈높이를 끌어올리는 책, 대중문화의 영역으로 가기 위해 인문을 강화하고, 사진과 문학, 영화, 철학을 아우르는 그런 책을 만들어 볼까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진동선의 노력이 만들어낸 책이 얼마 전 나온 <사진, 영화를 캐스팅하다> 이다. 이 책은 사진에 관한 에피소드가 담겨있는 영화를 선별해, 태생은 같지만 전혀 다른 사유를 품고 있는 사진과 영화가 어떻게 한데 어울려 존재론적인 의미를 생성시키는지 자못 진지한 책이다. 하지만 매우 대중적인 영화장르를 끌어들여 자칫 난해해지기 쉬운 시각예술의 세계를 맛깔 나게 인도하고 있다. 게다가 현대사진연구소에서 활동하는 사진가들의 사진을 함께 배치해 영화스틸이 제시하지 못하는 사진의 맛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책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이 입체적으로 전개되었다는 점이 이 책의 미덕이기도 하다.

그는 올해에만 4권을 책을 출간할 예정이고, 또 다른 3권의 책이 계약되어 있다. 아마도 전업작가로 가겠다는 다부진 결의처럼 보인다. 사실 전업작가의 출판 전략은 다작에 있다. 많은 책을 독자들에게 제공함으로써 작가의 인지도를 높이고, 그 책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는 책을 기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성공적인 책이 어떤 것이 될지는 작가도 출판사도 예상할 수 없기에 꾸준하게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다.

그 때문일까? 진동선은 최근 카메라를 잡았다. 한동안 잊고 있었지만 사진을 찍는 즐거움을 다시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라이카 디지룩스 2를 사용한다. 필름을 써야한다면 오래전부터 갖고 있던 핫셀블러드 C/M이 있다. 사진을 다시 시작한 것은 전시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 책을 좀더 풍부하게 하는 그리고 콘텐츠의 일관성 있는 구성을 위해서다.”

그가 요즘 관심 갖고 촬영하는 주제는 ‘길’이다. 지난 10년간의 공부와 10년의 활동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또 앞으로의 10년은 또 어떤 길을 가게 될지 스스로 반성하고 탐색하는 작업일 것이다. 그의 멋진 포토에세이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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