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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굿바이 원더걸

2012-02-22


문득 생각난 우화 한편. 개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하나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매달 그믐밤이면 구루의 설법을 들어야 했다. 어느 그믐밤에도 여느 때처럼 모든 개들이 개구루의 집에 모였다. 헌데 그날 설법은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과도 같았다. 오늘 이후로 달 보고 짖지 말 것! 내세에 복 있을지니! 남의 뼈다귀 탐하지 말라는 계도 흐르는 침을 삼키며 따랐지만, 달 보고 짖지 말라니! 맙소사, 이건 너무 하다 싶었다.

글,사진 | 현린
기사제공 | 월간사진


그래도 어쩌겠는가, 개팔자 고칠 수 있다는데. 순박한 개들은 준비해온 뼈를 바치며 그 계 역시 따르겠노라 서약하고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날, 무심한 달은 어김없이 떴다. 가늘고 연약한 초승달이 그날따라 어찌나 탐스럽던지. 다음날, 그 다음날, 또 그 다음날, 달에 살이 차오를수록 개의 피는 끓어올랐지만, 모두들 용케 계를 지켜냈다. 슬슬 불안해진 것은 오히려 구루였다. 독한 것들, 짖지 말란다고 정말 짖지 않으면, 구루는 대체 어떤 구라로 먹고 살란 말인가! 시간은 흐르고 흘러 마침내 보름달이 두둥실 뜨고야 말았으니, 마을의 모든 개들은 미치기 일보직전에 이르렀다. 하지만 다들 목을 움켜잡고 뜨거운 눈물만 줄줄 흘렸다. 구루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다. 정말이지 눈을 파고 목을 매고 싶을 지경이었다. 결국, 어~우. 스스로 계를 깨고 말았으니, 이를 신호로 마을의 모든 개들이 따라 짖기 시작했다. 어우, 아우, 오~우.

1. ‘문독’(Moondog)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눈먼 거인을 만난 것은 뉴욕의 한복판. 그는 동물의 어금니로 장식한 바이킹 모자를 쓰고, 군용 모포를 둘렀으며, 예언자처럼 지팡이를 짚고 서있었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자신의 개가 달을 보고 짖는 것을 보고, 이름을 저리 바꿨단다. 그 이름으로 자작시를 써서 팔곤 했는데, 이를테면 이런 시다. “기독교가 실수나 악에 대항하여 벌이는 타협 없는 전쟁이, 내게는 사악한 실수로 보인다.” 또한 그는 ‘오오’와 ‘우니’라는 타악기를 고안하기도 했고 음반도 몇 장 냈으며 나이트클럽은 물론이고 텔레비전에도 출연한 자칭 진지한 음악가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그가 하는 일은 구걸.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고 한 것은 칼뱅주의자들일 뿐, 헤르메스도 구걸을 했고 예수도 구걸을 했다. 따라서 구걸은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 그의 말씀. 이 아방가르드 아티스트이자 뉴 에이지 구루에 반해 그의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하자, 그는 조건 하나를 걸었다. 바퀴벌레가 들끓는 자신의 싸구려 호텔방에서 함께 밤을 보내자는 것. 당신이라면 이 괴짜 혹은 괴물을 따라가겠는가? 자신을 디안(Dee Ann)이라 불렀던 한 여성사진가는 따라갔다. 디안에게는 표정이라는 가면 없이 술 취한 듯 얼빠진 문독의 큰 얼굴이 서쪽 하늘로 떠가는 달처럼 평온해 보였기 때문이다. 달을 찾아 헤매던 디안으로선 그 초대를 마다할 수 없었다.

2. 패트리샤 보스워스(Patricia Bosworth)의 ‘다이앤 아버스’(Diane Arbus, 2005)에 따르면, 디안은 1923년에 가죽옷을 주로 취급하던 뉴욕의 한 유명 백화점 경영자의 딸로 태어났다. 루이스 하인(Lewis W. Hine)이 교사로 근무했던 에티컬 컬처 스쿨(The Ethical Culture School)에 다니던 시절엔 미술 천재라 불리기도 했고 ‘위대하고 슬픈 예술가’의 삶을 꿈꾸기도 했었다.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1865)나 ‘거울 나라의 앨리스’(Through the Looking-Glass, and What Alice Found There, 1871)를 읽으면서는 원더랜드를 모험하는 삶을 꿈꾸기도 했다. 온갖 괴짜와 괴물이 등장하는 탐정소설과 고딕소설도 탐닉했던 그녀는, 심지어 땅 아래나 거울 뒤 세계로의 작은 모험을 직접 실행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변태들을 만나기 위해 지하철 타기. 또는 아버지의 백화점에서 자신에게 굽실거리는 직원들의 가면 들쳐보기. 무엇보다도 그가 파는 가죽옷이 필요 없을 만큼 두꺼운 아버지 자신의 가죽 들쳐보기. 그러나 아버지의 세상은 예술가나 모험가의 삶을 허락하지 않았다. 자고로 남자는 남편과 아버지로서 직장에서 생산을, 여자는 아내와 어머니로서 가정에서 소비를! 이 계율에 과격하게 순종한 디안은, 열네 살에 아버지의 백화점 디자인실에서 만난 배우지망생 앨런 아버스(Allan Arbus)와 사랑에 빠졌고,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교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한다.

아버지의 기대에 못 미치는 남편을 선택함으로써 살짝 반항을 하긴 했지만, 디안은 아버지 세상의 계율을 충실히 따를 작정이었다. 그런데 결혼 직후 사진병으로 징병된 앨런을 통해 사진을 배운 후부터는 늘 카메라를 목에 달고 다녔다. 마치 앨리스가 굴속에서 찾은 황금열쇠라도 되는 듯.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엔 밥벌이를 위해 앨런과 함께 패션사진 스튜디오를 열었다. 이때 일거리를 제공해주면서 아버지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디안을 도와주는데, 물론 돈 벌라는 얘기였다. 처음엔 디안도 촬영을 했지만 나중엔 대형카메라가 마음에 안 든다며 스타일링만 맡았다. 디안의 스타일링 덕에 일거리는 넘쳐났고, 당시 번창하던 잡지광고계에서 그들 사진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10년 정도 지난 후, 두 사람은 무대를 만들고 모델에게 가면과 가죽을 씌우는 이 ‘비즈니스’가 싫어졌다. 심각한 우울증을 앓게 된 디안은 스타일링마저 그만두었고, 앨런은 배우가 되기 위해 어린 학생들과 함께 연기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이제 제대로 된 사진을 하라며 앨런이 ‘위대하고 슬픈 예술가’의 꿈을 부추겼지만, 정확히 무엇을 찍을지 몰랐던 디안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게다가 앨런에게 어린 연인이 생기는 바람에 디안은 아내의 자리마저 잃었다. 그러나 두 딸의 엄마 자리까지는 잃고 싶지 않았다. ‘위대하고 슬픈 예술가’와 사랑받는 딸과 엄마의 길, 디안은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었고, 그녀의 우울증은 날로 깊어갔다.

3. 길을 잃었을 때 동화 속 앨리스는 이렇게 물었다. “부탁인데, 말 좀 해줄래요. 내가 어느 길로 가야 할까요?” 그랬더니 고양이가 이렇게 답했다. “그거야 네가 가고 싶은 곳에 달렸지.” “난 어디든 별로 상관없어요.” “그렇다면, 어느 길로 가든 괜찮아.” “하지만 난 미친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가고 싶지 않아요.” “오오,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여기 있는 것들은 모두 미쳤거든. 나도 미쳤어. 너도 미쳤고.” “내가 미친 걸 당신이 어떻게 알죠?” “너는 분명히 미쳤어. 미치지 않았다면 여기 오지 않았을 테니.” 방황하던 디안이 사진가 리젯 모델(Lisette Model)에게 길을 물었을 때, 모델도 꼭 고양이처럼 대답했다. “자신만의 소재를 찾아라.” 가난함과 기괴함을 초연하게 담아내 디안의 관심을 끌었던 이 사진가는 인도의 구루 크리슈나무르티를 추종하는 신비주의자이기도 했는데, 이후 사진만이 아니라 삶에서도 디안의 구루가 된다. 마침내 디안이 자신은 ‘악한 것’을 찍고 싶다고 말하자, 이 구루는 악하건 그렇지 않건 강력하게 찍고 싶은 것을 찍지 않으면 절대로 사진을 찍지 못한다고, 최고의 사진들은 전복적이고, 비이성적이며, 제정신이 아닌 경우가 많으니 얼마든지 찍으라고 부추겼다. 개들에게 달을 보고 짖지 말라고 했던 개구루와 반대로 이 구루는 앨리스가 공작부인네 문 앞에서 만난 개구리처럼 말한 것이다. “너 좋을 대로 하렴.” 영리한 구루들은 이제 전술을 바꿨고, 순박한 디안은 앨리스처럼 문턱을 넘어섰다.

“정신이 나간 시대였다.” 디안과 교류하며 큰 영향을 주었던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는 당시를 그렇게 회상한다. 힌두교, 마리화나, LSD, 섹스와 함께 새벽까지 열리는 광적인 파티에는 각종 소문과 험담, 성적인 실험이 넘쳐났다. 마약은 쾌락의 원천, 섹스는 힘의 원천이었고, 위험을 감수하며 흥미진진하게 사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점차 커졌다. 구루의 격려까지 받은 디안은 주저하지 않고 이 세계를 맘껏 탐험했다. 곧잘 지하철 D라인을 타고 코니아일랜드로 갔고, 기형인들이 공연을 하는 휴스턴 박물관이나 심지어 시체공시소를 방문하기까지 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람을 발견하면, 문독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 정말 멋진 모습이네요!”라고 감탄하며 붙잡았다. 그렇게 나체주의자, 남녀양성인, 불구자, 매춘부, 기형인,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 그리고 시체를 담아냈다. 물론 두려웠다. 하지만 그 두려움이 그녀의 권태와 우울을 깨고 살아 있음을 느끼게 했다. 얼마 후에는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사람들이 존경심을 갖고 자신을 대하며 거리를 두는 탓에, 더 안전해진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그래서 디안에게 카메라는 원더랜드의 문을 여는 열쇠이자 그곳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패이기도 했다. 이제 카메라를 멘 이 원더걸은 당시 뉴욕에 부쩍 늘어난 거리의 사진가들과 함께 아버지 세상이 금지한 것을 맘껏 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디안은 아버지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그의 금지에 맞설수록 그의 인정이 또한 필요했다. 방법은 단 하나, 돈이었다. 아버지의 자리를 채워주던 앨런이 떠난 뒤에 디안은 이제 아트디렉터 마빈 이스라엘(Marvin Israel)을 선택하고 그에게 절대적으로 의지하고 순종한다. 그를 통해 소개받은 ‘에스콰이어’ 편집진은 경쟁사인 ‘플레이보이’보다 더 원더한 사진을 필요로 했고, 디안의 사진이 제격이라고 판단했다. 이렇게 해서 디안은 모험의 대가로 적은 돈이나마 벌 수 있었고, 힘들게나마 두 딸을 부양했다. 이스라엘이 ‘바자’의 아트디렉터가 된 후엔 ‘바자’ 역시 디안의 사진을 실었다. 자신이 너무나 자랑스러웠던 디안은 자신의 사진이 실린 1961년 11월호를 아버지에게 보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디안은 이스라엘과 함께 ‘바자’의 터줏대감이던 리처드 아베돈(Richard Avedon)과도 어울렸는데, 두 사람 모두 한결같이 더 깊숙이 들어가라고 디안의 강박을 부추겼다. 워커 에반스(Walker Evans) 역시 디안의 사진에 감탄했고, 뉴욕현대미술관의 새로운 사진부장 존 샤코우스키(John Szarkowski)에게 그녀를 보냈다. 그리고 샤코우스키가 기획한 1965년의 그룹전에 이어 1967년에는 마침내 <뉴 다큐먼트> (New Documents)전에 참가하게 된다. 디안은 이번에도 이곳저곳에 초대장을 보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는 보낼 수 없었다.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이제 금지도 인정도 없었다.

4. 존 샤코우스키는 새로운 사진가들은 사진을 통해 삶을 바꾸려 하지 않고 다만 삶을 알려고 할 뿐이라고 했다. 삶을 바꾸려 한 사진가들을 50년대 매카시즘이 이미 제거해버렸으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전시에 동참했던 리 프리들랜더(Lee Friedlander)나 개리 위노그랜드(Garry Winogrand)는 모르겠으나, 디안의 경우엔 달랐다. 극심한 우울증을 앓으며 예술가의 길과 딸의 길 사이에서 방황했던 디안은, 사진을 통해 자신의 삶이나마 바꾸려 했고 결국엔 자신의 삶을 희생해서 사진을 얻어냈다. 그러나 원더포토가 넘쳐나고 원더랜드가 갈수록 좁아지자, 디안은 더 원더한 사진을 얻기 위해 예전의 패션사진을 찍을 때처럼 다시 무대를 꾸미고 가면을 써야 했다. 매혹적인 인물을 유혹하기 위해서라면 가면을 쓰는 데 주저함이 없었고, 유명인사의 가면을 벗기기 위해서라면 상대의 가죽을 공격하는 데도 주저함이 없었다. 이렇듯 자신이 원하는 가죽을 얻을 때까지 디안이 카메라로 무두질을 한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자, 사람들은 그녀의 카메라를 피하기 시작했다. 결국 마지막에 그녀가 찾아간 사람들은 자신의 의도를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갖지 않는 지적장애인들이었다. 그들에게는 아버지의 금지나 인정은커녕 문독의 조건조차 없었다. 완전히 노출된 그들의 얼굴은 디안이 더 이상 넘어갈 수 없는 거울이었다. 디안은 그 거울에서 마침내 자신을 봤던 것일까. 매달 월경 때면 피비린내를 맡으며 살아있음에 기뻐하고 손목에 난 자해 흔적에 흥분하곤 했던 디안은, 결국 1971년 자신의 손목에 깊은 상처를 내고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떠나자마자 그녀를 떠밀었던 개구루인지 개구리인지들은 가엾은 원더걸에 관한 동화를 팔기 시작했다. 어우, 아우, 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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