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전체보기

분야별
유형별
매체별
매체전체
무신사
월간사진
월간 POPSIGN
bob

아트 | 리뷰

물결 잔잔한 온천탕의 분위기 촬영

2004-03-18




‘다시다’하면 탤런트 김혜자 씨가 “그래, 이 맛이야~!”하던 텔레비젼 광고가 떠오릅니다.
보글 보글 끓는 찌개를 한 술 맛보고 “캬~!” 하는 이런 류의 광고에서 벗어난 참신한 시도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천연 양념 재료들이 솥에 들어가 즐겁게 온천욕(?)을 즐기는 장면을 내보내기로 했지요.
무공해 유기농법으로 재배된 재료로 만들어지는 다시다 순. 이를 강조하기 위해 천연재료들을 있는 그대로 사용했고, 검은깨, 잡곡 등으로 눈, 코, 입을 만들어 붙여 표정을 연출했습니다.
따스하고 정감있는 분위기 속, 상큼한 기분이 들 만큼 싱그러운 표정을 지닌 환한 얼굴의 야채 캐릭터들….

스트로보의 모델링 라이트 냉각용 팬에서 나오는 바람에 수증기가 흩어지지 않도록 A4 크기의 투명 아크릴 판을 조명 앞 15cm 정도에 설치했습니다. 자~, 이제 촬영 준비 끝!
가습기와 연결된 호스를 갖다대고 자연스런 모양이 되도록 김을 뿌린 후, “하나, 둘, 세엣!” 소리와 동시에 스탭 가운데 한 사람이 빨대로 공기를 불어 넣었습니다.
이제 공기방울에 의해 만들어지는 수면의 파장, 김의 모양, 위치 등을 감안하여 ‘결정적 순간’을 잡아내야 하는 것이지요.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룬 순간에 셔터를 눌러야 했고, 스탭들과의 호흡도 중요했습니다.
생각보다 참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수증기는 좋았는데 물의 파동이 약하다든지, 물결은 좋았지만 수증기가 너무 많아 캐릭터가 부옇게 보인다든지, 다 좋은데 수증기가 뭉쳐서 모양이 예쁘지 않다거나. 수증기이든 물결이든 이 변수들이 워낙에 제 멋대로라서 말이지요.
결국 최선(?)의 사진을 결정한 다음, 그래도 아쉬운 부분은 다른 사진에서 옮겨다 합성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촬영을 계속 했습니다.


사실 지난 8월 20일, 촬영 전날밤에는 천둥 번개와 함께 몹시도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아침 9시 예정이었던 촬영을 준비하기 위해 6시 30분에 스튜디오에 도착을 해서 문을 여는 순간, 이게 웬일입니까, 스튜디오 마루 바닥이 온통 물바다였습니다.
마침 배수 펌프가 고장나 전날 내린 폭우가 환기구를 통해 쏟아져 들어왔던 겁니다.
물을 퍼내고 온풍기, 선풍기, 제습기, 에어컨, 바람이란 바람은 모두 동원하여 물기를 말리는데…
엎친데 덮친다고, 누전 때문인지 이곳 저곳에서 “퍽~ 퍽~” 소리를 내며 전구가 터져 나갔고, 누전 차단기마저 떨어졌습니다.
순간 왠지 서글퍼지더군요.
‘오늘 촬영을 포기하자’, 아니 ‘이런 상황에서는 촬영이 불가능하다’하는 생각이 밀려 왔습니다.
오늘 촬영을 위해 혼자 조용히 생각하고 준비하려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는데…,
예정대로 준비했더라도 부담스러웠을 촬영인데…,
이렇게 스튜디오가 엉망이 된 상황이라면 ‘촬영 연기’는 당연한 일이 아닐까…,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늘 저를 다잡고 있는 ‘고객과의 약속’이 떠올랐습니다. 결코 포기할 수 없고, 아직까지 포기해본 적도 없는 그 약속. 마음을 다시 독하게 고쳐 먹었습니다.
한 시간 반이 지난 오전 8시. 약속보다 1시간이나 일찍 도착한 스탭분들께 “지금 청소중”이라 말씀드렸습니다.
모두들 촬영이 끝날 때까지 아침의 물난리에 대해서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시더군요.
그날 촬영 결과에 만족해 하는 광고주를 보면서 저는 그분들보다 더 큰 웃음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물과의 전쟁이 아닌, 저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후였기 때문이었지요.


facebook twitter

당신을 위한 정글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