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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서승모의 즐거운 탐구생활

2008-10-14


외모만 보고 섣불리 판단을 하는 게 아니었다. 수려한 용모에 세련된 취향까지 두루 갖춘 그를, 오로지 타고난 감각만으로 승부를 거는 부류로 착각했으니까. 그는 되려 장식과 치장을 꺼리는 눈치다. 마치 도형 놀이를 유희하는 어린아이처럼, 서승모는 건축의 기본 요소, 즉 지붕과 벽, 천장과 바닥 등 그 자체로 창조되는 무한 가능성을 ‘탐구’해나가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니 헝클어진 머리와 염소수염 역시 ‘간지’가 아니라, ‘실험’이지 않겠는가!

에디터 | 이상현 (shlee@jungle.co.kr), 인물사진 | 스튜디오 salt

건축가 서승모는 경원대학교를 졸업하고 도쿄 예술대학원에서 건축학을 수학한 뒤, 서울로 돌아와 ‘상대적으로 다르게 인식되는 밀도’라는 뜻의 개인 건축 사무소 ‘r da unit’을 차렸다. 일본의 작지만 뚝심 있는 젊은 건축가들의 행보를 유심히 지켜보며 고국 땅에서도 소신껏 제 갈 길을 가보자는 의지의 발로였다. 그리고 경복궁 근처의 조용한 골목길에서 발견한 한옥을 현재적 관점으로 개조해 아틀리에로 재탄생 시켰다.

한국에서의 첫 작업이었던 한옥 리모델링은, 북촌을 중심으로 한바탕 불었던 ‘모던한 스타일의 한옥 열풍’의 선두에 있었던 움직임으로서, 이를 통해 그는 여러 매체의 관심과 이목을 집중시키며 그 이름을 서서히 알리기 시작했다. 단일 프로젝트만으로 그는 촉망 받는 젊은 건축가로 손꼽히게 됐다. 하지만 이 한옥 아틀리에 쏟아졌던 관심과는 상관없이, 좀처럼 클라이언트의 의뢰가 들어오지 않았다고 털어놓는다. 사십 줄을 훌쩍 넘겨야 간신히 이름을 걸고 건물을 올릴 수 있는 꼬장꼬장한 국내 건축계에서, 고작 삼십 대 중반의 그는 “새끼 건축가”에 불과했으니까. 그러나 크고 작은 전시와 프로젝트, 실내 디자인 등을 통해 그의 고민과 실험을 타진해갔다.

굳이 건축 설계와 실내 디자인의 영역을 구분하지 않았다. 스케일보다는 디테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실내 디자인을 즐기며 참여했다. 다양한 경험의 축적은 건축가에게는 두둑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리 작은 공간이라도 그의 건축적 사고와 비전은 일관되게 관철시켰다. “장식적으로 공간을 풀어가는 해법은 오히려 쉬어요. 하지만 지루하지요. 저는 공간을 구조와 틀로 새롭게 해석해나가는 데 재미를 느낍니다.” 건축가 서승모의 화두는 바로 ‘틀’과 ‘선’이다.

예를 들어 “돈을 벌 목적”으로 친구들과 동업, 문을 연 다이닝 바 ‘가로수길 프로젝트’를 살펴보자. 이곳은 공간을 막힘 없이 뻥 뚫은 채 테이블과 의자를 부려두듯 두고 사면을 유리로 감싸 열린 구조를 만들었지만, 천장의 패턴을 통해 공간이 구획되고 장소의 규칙을 만들어냄으로써 내방객에게 열린 해방감과 안정적 소속감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실험을 감행했다. 다른 장치 없이 오로지 비정형의 패턴만으로 공간의 분절과 집합이 가능했던 것이다.


“일본의 꼼데 가르송의 재미있는 셔츠를 본적이 있어요. 윗옷은 당연히 구멍이 3개인데, 디자이너는 4개를 만들었어요. 구멍을 하나 더 만들었을 뿐이지만 옷은 입을 때마다 다양한 형태로 변해요. 머리통과 두 팔이 어느 구멍을 꿰 차느냐에 따라 옷의 볼륨이 시시각각으로 달라지거든요. 가장 기본적인 변화가 옷의 기능과 형태를 전혀 새롭게 바꿔놓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서승모 역시 지붕과 벽, 천장과 바닥, 기둥과 복도 등 건축의 기본 요소의 변형만으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는 탐구를 즐긴다. 특히 앞서 언급한 가로수길 프로젝트와 같이 대부분 공간을 칸막이 없이 하나로 연결하고, 그 안에 구획을 만들어내는 ‘연속적 분절’이 바로 건축가 서승모의 시그니쳐로 평가 받는다. 신사동 가로수길의 편집매장 ‘히로시홍’은 천장을 가로지르는 빨간 곡선과 바닥의 수납장 배치를 연결해 매장 내의 자연스러운 동선을 만들어내고, ‘광주요 도자 갤러리’는 한지를 사용한 깊이 있는 여백과 돌과 나무 등의 물성을 통해 모던한 오리엔탈리즘을 표현했다. 이때 벽이나 기둥의 변화뿐 아니라 빛이나 사람들의 움직임 등도 건축 요소로 적극 끌어들인다. 서승모의 이러한 접근을 평론가들은 ‘형태 없는 건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숲을 생각해봐요. 숲에는 둘레와 길이가 가지각색인 나무들과 잔디, 이름 모를 꽃과 풀, 돌멩이, 벌레, 그리고 빛과 바람 등 다양한 요소가 널려있어요. 직접적인 형태가 없어 보이지만 이들이 모여 엄연하게도 숲이라는 전체를 만들어내지요. 이러한 유닛을 지붕, 벽, 기둥, 바닥 등 구체적인 건축 요소로 치환해보는 거에요.” 그래서 그의 열림과 텅 빔 속에 존재했던 규칙과 꽉 참을 느낄 수 있었을까. 숲의 자유로운 규칙성을 아는 건축가 서승모는 오늘도 도시를 숲 속 거닐 듯 산책하며 공간을 몸으로 느끼고 사유한다. 그렇게 그의 즐거운 탐구생활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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