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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정문과 근정전

2013-03-12


국가의 큰 행사였던 왕의 즉위식은 일반인들의 예상과는 달리 근정전이 아닌 근정문에서 열렸다. 원칙적으로 근정전은 오직 국왕만이 사용할 수 있는 궁궐의 으뜸 건물로, 아직 정식으로 왕이 되지 않은 왕세자는 사용하지 못한다. 따라서 즉위식을 마치고 정식으로 왕이 된 이후에야 비로소 신하들을 대동하고 근정문에서 근정전으로 이동해 용상으로 올랐다. 근정문의 가운데 세칸은 평소에는 닫아두고 왕이 출입할 때나 국가적인 큰 행사가 있을 때에만 사용했다. 관리들은 그 양옆의 월화문과 일화문을 통해서 출입했다.

기사 제공 | 도서출판 담디(www.damdi.co.kr)
원작 | 최동군의 나도문화해설사가 될 수 있다 궁궐편
사진 | Rohspace, 담디


왕의 시작은 근정문에서

근정문으로 오르는 길은 3 부분으로 나뉘어진 삼도(三道)가 곧장 계단으로 이어져 있다. 삼도의 통행방식은 좌우 양쪽은 신하들이 다니고, 가운데는 임금의 길이라 하여 어도(御道)라고 부르며 임금만 다닐 수 있다. 근정문 계단의 어도 양쪽 소맷돌에는 서수(瑞獸)가 있고, 어도의 한 가운데는 두 마리의 봉황이 그려진 경사부분이 있다. 이를 답도(踏道)라고 하며 ‘밟는 길’이라는 뜻이지만 임금은 항상 가마를 타고 다니기 때문에 실제로 그곳에 임금이 발을 딛지 않았다.

근정문의 양옆으로 길게 이어진 행각은 근정전 마당을 `ㅁ` 자 모양으로 빙 둘러싸고 있다. 주로 통로로 이용되었지만 기둥과 기둥 사이에 간이 칸막이를 설치하고 공간을 만들어서 임시관청 등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지금도 몇몇 개의 기둥을 자세히 살펴보면, 나무기둥에서 간이 칸막이를 설치하기 위해 파냈다가 다시 메운 흔적들을 찾아 볼 수 있다.
기둥의 모양을 보면 근정전에서 봤을 때 행각 바깥쪽 기둥의 주춧돌은 네모난 모양이지만 안쪽은 둥근 모양이다. 같은 구조물인데도 불구하고 주춧돌의 모양을 달리한 이유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고 생각했던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행각의 바깥쪽을 땅으로 보고 안쪽쪽을 하늘로 본 것이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대부분의 전통 연못에서 네모난 형태의 연못 가장자리와 그 속에 둥근 섬을 만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음양오행 사상에 따라서 하늘은 땅보다 더 높은 서열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둥 중에서도 땅을 상징하는 네모난 기둥보다는 하늘을 상징하는 둥근 기둥을 더 격이 높은 것으로 여겼다. 그리고 옛날 사람들의 도구로 둥근 모양의 기둥이 네모난 기둥에 비해 만들기도 더 어려웠다. 나무의 모양이 다 고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제일 먼저 나무를 정사각형의 기둥으로 만들어놓은 다음, 모서리를 잘라 정8각형으로 만들고, 다시 정16각형으로 자르는 식으로 둥근 기둥을 만들었다. 그래서 둥근 기둥은 제작도 힘들었고 품도 많이 들었기 때문에 궁궐이나 격이 있는 건물에서 주로 썼고, 민가나 일반인들은 네모난 기둥을 주로 썼다.


근정전 자세히 살펴보기

근정전 앞 마당에는 좌우로 총 24개의 품계석을 볼 수 있다. 품계(品階)는 조선시대 관리들의 계급을 나타내는, 품과 계를 합쳐 이르는 말이다. 품(品)은 1품부터 9품까지 정(正)과 종(從)으로 나눠진다. 계(階)는 상계(上階), 하계(下階)로 더 세분화 되어서 총 30개로 구분된다. 그런데도 근정전 마당의 품계석은 모두 24개뿐인데, 이는 농경사회였던 조선에서 24절기의 숫자를 차용한 게 아닌가 추측한다. 경회루의 바깥 기둥도 총 24개로 경회루전도(慶會樓全圖)에서 24절기를 상징하기 위해서 그렇게 만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근정전 마당에는 바닥의 곳곳에 쇠고리가 박혀있다. 이는 큰 행사가 많았던 근정전 마당에서 천막을 칠 때 고정시키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이런 고리는 근정전의 기둥과 기둥 위의 창방, 평방에서도 발견되는데 모두 같은 용도로 쓰인 것이다.
한편, 근정전 마당에는 모양이 울퉁불퉁하면서도 제 각각인 박석이 깔려있다. 자연스러운 멋을 살렸다고 볼 수도 있다. 일부 사람들은 이 박석 때문에 신하들이 늘 고개를 숙이고 조심조심 걸어 다니도록 하게 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또는 임금이 근정전에서 내려다 볼 때 눈이 부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다른 각도로 박석을 깔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근정전 앞쪽의 세발 달린 솥은 왕권을 상징한다. 이 솥은 정(鼎)이라고 하는데, 오랜 옛날 중국에서 유래된 것이다. 원래는 제사 그릇으로 이용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고대 중국에서 삼황오제의 뒤를 이어 하나라의 시조가 된 우왕이 중국 전역에 걸쳐 있던 아홉 개의 주에 청동을 모아오게 했다. 그것으로 세발 달린 큰 솥인 정(鼎)을 만들었고 이를 구정(九鼎)이라 불렀다. 이것이 고대 중국 왕권의 상징이 되었고 이것을 빼앗는 것은 곧 천자의 자리를 빼앗는 것과 같은 뜻이 되었다. 그 이후 춘추전국시기의 혼란기에 구정은 사라졌고, 진시황제부터는 옥새를 황제권의 새로운 상징으로 삼았다고 한다.


근정전이 국보로 지정된 이유

근정전의 기둥에는 `귀솟음` 이라는 공법이 사용되었는데, 전면의 안쪽 기둥보다 맨 바깥쪽 기둥의 높이가 살짝 더 높게 만들어졌다. 이런 공법은 근정전과 같은 큰 지붕의 건물을 지을 때 사용하는 것으로, 앞쪽의 모든 기둥의 높이를 실제로 똑같이 해서 수평으로 만들면, 오히려 착시현상을 일으켜서 지붕의 양 끝이 아래로 쳐져 보이게 된다. 이를 시각적으로 교정하기 위해서 오히려 맨 끝 쪽의 기둥을 살짝 더 높게 만들면, 기둥 위의 창방과 평방이라는 수평 방향의 건축 부재가 끝 쪽으로 갈수록 약간씩 솟아오르면서 시각적인 교정효과를 내는 것이다. 그리고 바깥쪽 건물 기둥의 윗부분을 살짝 안쪽으로 쏠리게 하여 건물이 옆으로 퍼져 보이는 착시 현상을 교정하는 `안쏠림` 공법도 사용되었다.

근정전 내부의 핵심인 국왕이 앉는 자리를 용상이라고 하고, 용상 위에 화려하게 만들어 놓은 것을 닫집이라고 한다. 그리고 용상 뒤쪽의 병풍은 일월오봉병이라 한다. 일월오봉병은 말 그대로 해와 달, 그리고 다섯 봉우리가 있는 그림병풍인데, 이는 곧 동양의 근본사상인 음양오행을 뜻한다. 그리고 음양오행은 곧 우주를 의미하기 때문에 임금은 곧 우주만물의 주재자와 같은 존재라고 여겼다. 따라서 조선의 임금은 반드시 이 병풍 앞에 앉아야 비로소 왕권이 인정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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