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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에도 서열이 있다

2013-01-04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복궁, 창덕궁, 종묘나 유명 고찰 등 주로 궁궐이나 사찰건축물을 꼽는다. 수많은 외부의 침략과 일제 강점기, 그리고 급속한 산업화를 거치며 우리는 전통건축문화를 잘 지켜내지 못했다. 그나마 앞서 언급한 궁궐이나 몇몇 고찰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전통 건축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기사 제공 | 도서출판 담디(www.damdi.co.kr)
원작 | 최동군의 나도문화해설사가 될 수 있다 궁궐편
사진 | Rohspace


조선의 건국이념은 성리학이다. 그런데 성리학의 세계관은 인간, 자연, 사회를 포함하여 세상의 모든 것에 질서를 부여했다. 질서에는 당연히 지켜야 할 순서, 즉 서열이 생겨난다. 사람의 신분에도 반상(班常)의 서열이 생겨났고, 같은 신분 내에서도 장유유서, 부부유별 등의 세부적인 서열이 존재한다. 사람뿐만 아니라 심지어 건물에도 서열은 존재한다.

궁궐은 서양에서 궁전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궁전은 임금이 사는 집을 뜻하며 서열로 치자면 임금이 생활하는 곳이기 때문에 가장 서열이 높은 건물이다. 건물의 서열은 대체로 전(殿)-당(當)-합(閤)-각(閣)-재(齋)-헌(軒)-루(樓)-정(亭) 순이다. 궁궐에 가서 ‘ㅇㅇ전’ 혹은 ‘ㅇㅇ당’ 등 현판에 붙은 글자를 보면 그 건물의 서열을 대강은 알 수 있다. 이는 건물에 왕이 거처를 하느냐, 왕세자가 거처를 하느냐와 같이 건물 주인의 지위에 따라서 혹은 침전이냐 서재 등 건물의 용도에 따라서 계급을 나눈 것이다. 전하나 합하, 각하라는 존칭도 건물의 서열에서 따왔다.

특히 황제의 경우에는 폐하라고 부르는데 폐하는 섬돌 폐(陛)자를 썼다. 궁궐의 건물 중 가장 서열이 높은 `전` 중에는 보통의 건물들과는 달리 돌로 만든 커다란 기단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을 더 높이 친다. 경복궁의 경우 근정전이 이에 해당한다. 물론 지붕이 2층으로 되어 있어 다른 건물들보다 훨씬 돋보이기도 하지만, 건물의 아래쪽 사방에 돌로 만든 단인 월대를 두어 그 위용을 높이고 있다. 그렇지만 황제국인 중국의 제후국이었던 조선의 임금에게는 `폐하` 라는 호칭 대신 한 단계 낮은 `전하`라는 호칭으로 불렀다. 월대 또한 중국의 궁에서만 3단으로 쓸 수 있었다. 경복궁의 근정전이나 창덕궁의 인정전 등 궁궐의 서열 높은 건물은 모두 2단의 월대가 쓰였는데 이 모든 것이 성리학에서 규정한 황제와 제후가 지켜야 할 예법에 따른 것이었다.


궁전과 궁궐?

궁궐은 임금이 사는 집을 뜻하는 궁(宫)과 망루를 뜻하는 궐(闕)을 합하여 부르는 말이다. 임금이 사는 건물을 지칭하는 궁전(宫殿)의 상위개념인 셈이다. 현재 경복궁의 광화문 밖으로 나와 왼쪽 끝에 보면 궁궐의 망루였던 동십자각이 남아있다. 이것이 궁의 망루인 궐의 흔적이다. 일제강점기에 서십자각이 헐리었고 최근 그 터로 추정되는 곳에 표석이 설치되었다.

궁궐을 여러 개 만든 이유

조선은 유교의 나라이며 모든 것이 유교의 예법에 따라 이루어졌다. 그리고 조선의 국왕이 반드시 지켜야 할 예법 중에서 하나는 ‘군주남면(君主南面)’이라는 것이 있었다. 군주, 즉 왕은 반드시 북쪽에 자리잡고 남쪽을 바라봐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모든 궁궐에서 제일 중심이 되는 곳은 군주가 자리잡고 앉아야 하는 북쪽이다. 그래서 궁궐 중 경복궁은 북쪽에 자리잡고 있어 가장 으뜸이 되는 궁궐로 법궁 또는 정궁이라고 불렀다.
나머지 궁궐은 이궁이라고 불렀다. 여러 개의 이궁을 만든 이유 중 하나는 궁궐이 화재에 취약한 목조 건축물이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괴질이나 전염병이 돌 때 임금이 피신해야 할 곳도 필요했다. 그런데 왕을 위해 만들어진 다른 이궁과 다르게 창경궁은 왕실의 어른인 대비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전통공간의 보고 궁궐 답사」는 도서출판 담디에서 출판된 「나도 문화해설사가 될 수 있다 궁궐편」에 수록된 내용을 발췌 정리했다. 이 책의 저자인 최동군은 연세대를 졸업한 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IT업계에서만 20년 이상을 근무한, 문화와 역사에 특별한 지식이 없는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이었다. 그러던 중 1997년 처음으로 경험했던 2박3일간의 경주 문화 답사에서 신내림에 가까운 문화적 충격과 감명을 받았고, 그 후로 우리 문화와 역사에 대해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평소 ‘배워서 남 준다’는 소신으로 현재까지 많은 문화 답사 모임(http://cafe.daum.net/NaMoonSa)을 통해 주변에 우리 문화와 역사를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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