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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 리뷰

스바라시 일본건축 최종회

2004-12-28

르꼬르뷔지에의 도미노 시스템의 개발 이후 인류는 동일한 방법과 과학이라는 신의 영역을 벗어난 자율의 힘으로 모든 것을 디자인을 하여 왔다. 그러나 21세기가 시작되는 지금의 디자인은 또 하나의 전환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거대한 자본의 구조 속에 디자이너들은 절망하고 또한 도전을 한다.
가속하는 세계화의 변화 속에 디자인은 자본의 잉여재생산의 고 리를 벗어나지 못한 체, 구속되어 가고 있다.
무엇이 바른 것인지, 무엇이 틀린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지 그냥 나아갈 뿐이다.
그리고 만들고 그것은 소비되어 질뿐이다.
때론, 강연장의 디자이너들은 서로의 이론과 컨셉이 최고 이라 떠들어 댄다.
과연 누구의 디자인이 우리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가는 그 누구도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얻는 것은 아무런 말도 없이 강연장을 쓸쓸히 걸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디자인은 무엇인가? 그리고 디자이너인 나 자신의 디자인은 나에게 얼마나 많은 만족감을 줄 수 있는 것인가? 이런 자신에게 계속되는 질문은 오늘도 여전히 빛의 속도로 밀려드는 2진수의 영상 속에 또 하나의 장면의 전환을 맏이하고 있다. 그러나 단 한가지, 우리가 전환 시키려고 하는 것은 사회도 아니며, 디자인도 아니다. 단지 그냥 오늘도 무언가 조끼듯이 만들어갈 뿐인 우리의 생활의 모습일 것이다.

건축은 전환되어가고 있다.
다양한 방면의 퓨전이 시도되고, 건축가가 옷을 디자인하고 패션디자이너가 자동차를 디자인하는 시대가 바로 우리의 시대 디자인의 현주소이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절대적인 가치라는 것은 이제 종교의 영역에 국한 된 것이 뿐이다.
21세기의 디자인의 바다는 넓고 험난하다. 그리고 20세기의 몇몇의 선장에 의하여 길을 열어 놓은 바다는 이제는 미개척지가 없을 만큼 많은 부분이 열려 있다. 이제 앞서간 사람들이 열러 놓은 길을 우리가 하나로 이어 나가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13회 사이토우 기념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매년 열리는 오페라 페스티벌에 19세기 독일의 자연학자 게오르그 퓨이나의 원고에 기초한 가극인 워체크의 공연이 결정 되었다.
워체크의 내용은 근세, 하급병사의 무상한 일상을 그린 작품으로서 20세기 오페라의 걸작중 하나로 꼽히는 작품중 하나이다. 이 오페라를 베를린 국립가극단 총감독인 베타 무스바흐가 13회 사토우 기념 페스티벌의 연출을 담당하게 되었다.
가극의 형태라는 것이 어느 정도의 정해진 무대의 배경과 시대의 감각, 그리고 한정된 공간에서의 무대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기에 연출자의 연출의도가 무대에 배어 나와 관객에 전달되어야 한다.

특히 이번 무대의 총감독인 베타 무스바흐의 연출의 특징인 시대와 국경을 넘는 추상화의 작업이라는 자신의 연출의 특징을 다시 한번 무대 위에서 성공적으로 실현해 내고 있다.
무스바흐가 이번 무대의 연출에서 의도 했던 것은 국경을 초월한 추상적인 이미지의 구성으로 완전한 보편적인 코드가 넘쳐나는 무대를 만들었다.
무대의 추상화작업을 통해 등장 인물의 성격과 각인물의 세밀한 인격적인 부분을 그 속에서 표현하기 위함이었다.

이번 일본 공연에서 무대 디자인을 담담한 디자이너는 일본과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ANDO TADAO’에게 디자인이 주워졌다.
건축디자이너인 ‘ANDO TADAO’에게 무스바흐가 요구한 것은 순수한 규브의 공간과 무한히 넓어져가는 깊이가 있는 공간이었다. 이런 일련의 연출가의 요구를 ‘ANDO TADAO’는 44000개의 PT병의 적층으로 표현해 내고 있다. 이러한44000개의 PT병의 적층으로 무대는 현대적인 무색의 공간이 만들어 졌고, 그공간속의 가시와 비가시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무대를 밀어 넣고 있다.

PT병에 의한 공간은 두께 3mm의 필름 의 두께를 가지는 PT병을 사용 하고 있고, 마개와 마개의 접합으로 수평방향으로 구속시켜 전체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이 적층되어진 구조체의 무계가 다른 재료에 비하여 가벼운 것이 문제가 되어 2mm의 두께를 가지는 와이어 로프로 천정에 고정시키어 무대의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

무대라는 공간이 큰 것에 반해 내부가 밀폐되어 있다라는 것이 많은 건축 디자이너의 고심거리이고, 이 폐쇄공간을 유지하는 공조시스템의 공조의 흐름과 재료에 따른 음향의 잔향의 문제는 늘 디자이너를 괴롭히는 골칫거리이다.

이러한 문제 꺼리는 ‘ANDO TADAO’는 무수한 실험과 테스트의 결과로 자신이 생각하는 공간을 무대라는 폐쇄 공간 속에 실현해 내고 있다.
일련의 투명한 소재의 사용으로 만들어진 공간의 거리감은 객석에서의 시선을 흐려내고 천체적인 무대의 표정을 넘어 배우 각자의 역할이 확장되어 가는 무대를 만들어 무대를 무한한 상상과 가능성이 공존하는 공간과 색이 추출되어 버린 무색의 빛과 공간만이 남아 있는 공간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ANDO TADAO의 지중 미술관은 입면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건축의 인상인 회색의 콘크리트 벽은 미술관에 들어 서기까지는 보이지 않는다.
ANDO TADAO답지 않는 건축일까?
최근의 건축의 흐름 중 단연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LANDSCAPE ARCHITECT로 불려지는 건축의 분야일 것이다. LANDSCAPE ARCHITECT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경관설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최근의 흐름은, 그런 경관 계획으로만은 이야기가 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기본적으로 경관계획은 쉽게는 조경의 개념에 가깝지만 지금의 흐름은 그런 조경의 개념을 건축의 조형적인 의미로 풀어 보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ANDO TADAO의 지중 미술관은 지금 진행되고 있는 LANDSCAPE ARCHITECT의 의미와는 조금 다른 면이 있지만 ANDO TATAO 특유의 자연과 풍경에 대한 개념이 담겨 있는 작품으로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ANDO TADAO의 건축은 자폐적인 느낌과 동굴적인 느낌이 강하다. 막상 사진으로 바라보는 그의 건축과 실상 체험되는 그의 건축적인 이미지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실제로 처험되는 공간에서는 자신의 무엇인가에 대한 저항이라기보다는 스스로의 세계에 대한 몰입으로 표현되는 긴 침묵의 이미지가 강하다. 이 침묵의 이미지는 때로는 일본의 미학과 접목되어 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미술관 전체는 ANDO TADAO 자신의 조형적인 언어인 입방체와 정삼
각형의 형태는 지상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이 미술관 이전의 작품이 바라보는 것에 의한 조형의 이미지에 가까웠다고 한다면, 이 지중미술관에서는 체험되는 조형의 언어를 만들어 내고 있다.

전체는 각각의 정삼각형, 정사각형의 선큰코트를 중심으로 엔트러스부분과 겔러리의 각 부분을 연결하는 연결통로로 구성되어있다. 전체적인 내부의 인상은 순수한 기하학적인 이미지를 형상화한 콘크리트의 보이드의 공간과 유연성을 가지는 연결통로의 부분과 공간의 질서를 잡아주는 선큰코트의 부분의 강한 회색의 이미지로 고착되어있다.
이 회색의 공간을 지상에서 떨어지는 빛에 의하여 명암을 구분하여 내고, 색의 추출로 인하여 콘크리트의 조형적인 언어를 건축가인 자신의 침묵의 언어로 만들어 내고 있다.
일본에 있어서 ANDO TADA는 독특한 위치를 가진다.
다른 여타 건축가들이 동경이라는 거대도시에 자신의 작업의 기반을 두고 할동하고 있는 반면, 안도다다오라는 건축가는 오사카라는 동경보다는 초라한 도시를 고집하고 있다.
그가 오사카에서의 작업을 중요시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비판적인 지역주의의 입장에서의 모던이즘의 잃어버린 건축의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자라왔고 자신이 고난을 격이고 연전연패를 경험한 곳을 사랑하고 있는 이유에서 일지 모른다.
또한, 그것을 가르쳐준 오사카라는 자신의 고향을 ANDO TADAO라는 건축가는 자신의 언어인 노출콘크리트로서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최근의 ANDO TADAO의 모습은 자신감에 차있다.
망설임 또한 그의 작품에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항상 그의 공간은 고독하다. 무언가 얻으려고 하였지만 그것이 실현되지 않은 체로 끝나버리는 절망 같은 것이 녹아 있다.
이런 포장되어지지 않은 디자인이 지금의 일본디자인의 한 단면을 장식하는 한 디자이너의 모습이며, 우리시대의 디자인의 모습일 것이다.

2년간의 긴 시간이 지나갔다. 처음에는 힘들었고 시간이 없다라는 핑계로 많은 것을 전달하지 못한 것에 독자들에게 미안함이 앞선다.
그러나 나에게는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게 한 2년의 시간이 였고 또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던 시간이 였다. 이제 조그마한 나의 모니터에서 나의 작업의 일부분을 마무리하는 시간이 온 것 같다.
그러나 우리모두의 디자인은 여전히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져 가고, 좋든 나쁘든 다양한 방향성을 가지고 나간다. 2년간의 작업 속에 가장 노력 했던 것은 일본건축, 인테리어라는 것이 어느 고정된 개념으로 보여지지 않기를 노력 하였지만 그것이 잘 전달 되었는지는 미지수이다.
길지만 짧았던 시간 많은 격려와 조언해주신 디자인 정글의 편집원 여러분들과 독자들 그리고 나를 여기까지 걸어 오게 하여 준 하느님께 감사 드리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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