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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이 아니면 안돼

2014-02-18


마음을 잃고 얼룩소가 된 청년과 인공위성에서 인간이 된 소녀의 사랑 이야기. 현실에서 일어나는 것이 가능할까 싶은 애니메이션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가 오는 2월 20일 관객들을 만난다. 2008년 ‘무림일검의 사생활’로 독립 애니메이션 팬들의 사랑과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장형윤 감독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이기도 한 이번 작품은 5년 동안의 제작기간, 총 5만 장의 그림이 모여 탄생했다. 오랜만에 관객들을 찾은 한국 창작 애니메이션인 동시에, 일상의 연장 선상에서 그만의 판타지를 영화로 표현한 그의 새 영화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에디터 | 정은주(ejjung@jungle.co.kr)
자료제공 | 스튜디오 ‘지금이 아니면 안돼’

영화는 지구 주변을 떠돌고 있던 인공위성 우리별 일호(이하, 일호)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지구를 떠나온 지 20년이 지난 일호는 우주 쓰레기로 내몰릴 위기에 처해 있다. 아득히 의식이 멀어져 가려는 찰나, 때마침 들려온 노래에 이끌려 일호는 지구로 향한다. 한편, 경천은 길거리나 작은 클럽에서 공연하는 인디 뮤지션이다. 좋아하는 여자에게 고백도 하지 못하는 소심한 성격에, 뮤지선으로서 인기도 없는 남자다. 그는 우연히 마법에 의해 얼룩소로 변한 후 동물의 간을 내다 파는 오 사장과 마구잡이로 동물을 집어삼키는 소각자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러던 중 화장지로 변한 마법사 멀린에 의해 구출되고, 그곳에서 소녀로 변한 일호와 만난다.

이 영화에서는 얼룩소로 변한 경천과 인공위성에서 소녀가 된 일호, 화장지 마법사 멀린과 동물로 변해버린 인간들을 평화로운 곳으로 이끄는 멧돼지 북쪽마녀까지 이들은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독특한 캐릭터를 고루 만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사람 옷을 입으면 일시적으로 사람이 되는 얼룩소, 하늘을 자유롭게 나르거나, 로봇팔처럼 팔을 뗐다 붙였다 하면서 위기 속에서 경천을 구하는 인공위성 소녀 등의 설정은 작품의 생동감을 부여하면서 인물들을 이어주는 매개체로서 그 역할을 다한다.

무엇보다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고 부족한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따뜻한 이야기는 이 영화가 가진가장 큰 매력이다. 마음을 잃을지라도,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두 주인공의 진심은 어떤 것보다도 사람들의 마음을 이끈다. 장형윤 감독은 이미 ‘무림일검의 사생활’에서 커피 자판기로 환생한 무사가 사랑을 배워가는 과정을, ‘아빠가 필요해’에서는 곰이 아빠가 되어 가는 이야기를 섬세하게 다룬 바 있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만 존재하는 이야기라면, 쉽게 공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는 우리의 현실과 맞닿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설득력을 갖고, 관객들과 만날 수 있다. 만약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가 아니었다면, 이 이야기가 갖고 있는 폭은 판타지에 묻혀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과 환상을 적절하게 배치한 애니메이션이기에 구현할 수 있고, 애니메이션이기에 더욱 빛날 수 있는 아름다움을 곧 만날 수 있게 될 것이다.

Jungle : 첫 장편 애니메이션을 마친 소감이 궁금하다.

만족스러운 부분도 있고, 아쉬운 부분도 있다. 우선, 목소리 연기를 해준 유아인, 정유미 두 배우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생각보다도 캐릭터와 너무 잘 어울렸던 것 같다. 고경천 음악 감독 덕분에 영화와 음악이 어느 정도 밸런스를 맞춘 것도 좋았다. 다만, 첫 장편이라 그런지, 단편과는 다른 스토리텔링 방법에 적응하는데 애를 먹었다. 제작 기간이 길어지면서, 이야기가 바뀌기도 하면서 전체적인 이야기의 개연성이 부족해진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영화가 완성돼서 다행인 것도 있다.

Jungle : 5년이라는 긴 제작 기간이 걸렸다. 그 동안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나?

개인적으로는 영화 시나리오를 진행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장편에 맞는 스토리텔링을 만드는 것이 어려웠다면, 제작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영화 내용이 계속 변할 수밖에 없었다. 단편은 길어야 2년 정도인데, 장편은 시간이 계속 늘어나다 보니 이야기의 중심을 찾아, 꾸준히 진행해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1993년에 극장용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이 처음 나왔다고들 하는데, 2011년 ‘마당을 나온 암탉’을 제외하고 흥행에 성공한 영화가 거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믿고 투자해 주는 사람을 찾기 힘들어 초반에 자금적인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Jungle : 처음에 구상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나?

‘원스’ 같은 음악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음악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많이 연상했다. 그중에는 어중간하게 음대를 졸업한 20대 남자가 우연히 한 여자를 보고 사랑에 빠지는데, 그 여자가 밤마다 얼룩소로 변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밤마다 풀을 뜯어 먹는 그녀를 위해 첼로를 켜주는 그림을 연상하기도 했는데, 결과적으로 장편에 어울릴까 생각하다가 접었다. 다른 하나는 대관령에서 살던 얼룩소가 우연히 근처에서 열린 음악 페스티벌에서 한 소녀를 보고 반해서 그녀를 따라 서울로 간다는 이야기도 생각했었다. 이야기를 구상하다 보니 점점 인어공주 느낌도 나는 게 마음에 걸렸다. 그러다 보니 결국 음악 영화의 탈을 쓴 애니메이션 영화가 되었는데, 나쁘지 않은 것 같다.

Jungle : 영화의 이야기가 변화해왔는데, 줄곧 얼룩소라는 캐릭터는 남아 있다. 이유가 있나?

영화를 구상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캐릭터다. 음악영화를 하면 어떨까 생각하던 때부터 얼룩소 캐릭터를 생각했기에, 이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했다.

Jungle : ’마음을 잃은 인간이 동물로 변한다’는 점과 무자비하게 동물의 간을 팔아 먹는 오사장 등의 설정은 여러모로 현재 한국의 현실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다.

꿈과 환상의 세계를 그리는 애니메이션도 있지만, 우리가 사는 지금에 대해 그리는 애니메이션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너무 어둡지도, 가볍지도 않게 현실을 그릴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Jungle : 전작인 ’무림일검의 사생활’과 연장선상에서 이어지는 부분이 있다. 특히 일상의 판타지를 극화시킨 점에서 공통점을 많이 느끼는데, 원래 이러한 설정을 좋아하는 것인가?

이것을 꼭 영화로 만들어야겠다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구상하고 생각을 하게 하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이번 영화에 등장한 일호는 인공위성의 수명이 5년 이내로 짧다는 것과 그 이후로 지구와 교신이 끊기면 우주를 떠돌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떠올리게 됐다. 얼마나 외롭고 쓸쓸할까 생각하다 보니 캐릭터로 만들었다.

Jungle : 다음에는 어떤 작품을 선보일 예정인가.

단편이 될지, 장편이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래도 관객들과 더 많이 만날 수 있는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다. 2005년에 개봉한 ‘아빠가 필요해’라는 단편을 장편화해 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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