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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광고 문법에 딴죽 걸기

2006-07-26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하자마자 한 연설에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습니다’라고 단결을 호소했다. 그러나 우리의 광고 문법은 정치 화법과는 정반대다. 즉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는 것이다. 남들과 같은 방법, 경쟁사와 비슷한 어프로치로는 치열한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소비자의 눈을 붙잡고, 경쟁사의 가슴을 덜컹 내려앉게 하려면 뭔가 다른 ‘썸씽 뉴’가 있어야 한다.

기존의 광고 문법에 딴죽을 걸어서 소비자들의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는 브랜드 중에 디젤은 가히 천재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디젤은 1975년 한 패션학교를 갓 졸업한 청년 Renzo Resso에 의해 설립되었다. 처음엔 동료들과 공동 창업을 했지만 그의 넘치는 끼와 도발성 그리고 패션에 대한 생각이 달라 결국 10년만인 1985년 독자 노선을 걷게 됐다. 그는 평이한 디자인과 소재로는 기존 브랜드들과 경쟁해서 이길 수 없다고 판단 하고 패션의 이단아가 될 것을 스스로 다짐했다고 한다. 디젤은 원래 워크 웨어와 진의 장르를 갖춘 브랜드로 시작하여 패션계의 그 누구도 그가 오늘의 성공을 거두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늘 세계를 향해 선전 포고를 해온 그는 드디어 2002년에 200여 개가 넘는 매장을 통해 6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런 고도성장의 핵심은 창업자 렌조 로소의 계산된 엉뚱함에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는 잘 나가는 CEO이지만 여전히 락커 같은 해괴한 복장과 사장답지 않은 언행으로 그 자신이 트렌드 아이콘이 되고자 한다. 그 자신이 세속에 길들여지는 순간 브랜드 디젤도 같은 길을 걸으리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는 지금도 10대 아이처럼 스노우보드 매니아이며 요가로 심신을 단련하고 트렌드에 앞서가기 위해 매달 150여권의 잡지를 섭렵한다고 한다.

그의 이런 기행(?)은 광고 전략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그는 내로라하는 경쟁 브랜드들이 수십억 달러를 마케팅 비용으로 쓰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약 4천만 달러 정도밖에 사용하지 않는다. 그 정도 집행해 봤자 광고가 난무하는 요즘에 간에 기별도 안 간다고들 하겠지만 조사에 의하면 디젤의 인지도는 이미 프라다, 알마니, 베네통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을 정도이니 가히 놀랄 만하다. 또 디젤사 디자이너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디자인과 소재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세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특이한 장난감, 옷, 음악, 책, 악세서리 등을 광범위하게 수집한다.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니면서 뭔가 수상쩍은 것이 있으면 가차없이 그들의 손아귀에 들어간다. 이들이 수집한 것은 평균 나이 25세 정도의 젊은 디자이너 30여 명으로 구성된 다문화분석팀(multicultural team)에서 치열한 토론을 거쳐 다음 작품의 테마나 아이디어 소스로 활용된다. 그 한 예로 2000년 아프리카 Mombasa로의 테마 여행은 그 해 최고의 유행을 선도한 'Chic Afrique'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디젤은 1992년부터 최근까지 ‘FOR SUCCESSFUL LIVING' 이라는 슬로건으로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한눈에 봐도 ‘어, 디젤이잖아’라는 감탄사가 나오도록 성공적으로 집행하고 있는데, 제품뿐만 아니라 광고에 대한 매니아 그룹을 만들어 내기까지 하고 있다. 다음 광고는 무엇일까 하는 기대감에 디젤은 그들만의 광고 화법으로 재미는 물론 브랜드 인지도 제고 및 호의도 형성에 기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1992년 처음 디젤의 캠페인 광고가 세상에 나오자 반응은 그리 썩 좋지 않았다. 암호 같고 비밀 지령 같은 광고로 난해했으며 무엇보다 제품에 좋은 이미지를 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소위 포스트모던 스타일의 광고는 젊은 층에서부터 서서히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고 그 광고들은 또한 디젤을 유행에 휩쓸려 다니는 다른 브랜드와 확실히 선을 긋는 역할을 해주었다.

(광고1)은 일명 ‘WORK HARD’ 캠페인으로 불리는 광고인데 레이아웃 포맷과 어프로치 방향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좌 상단에 로고와 슬로건이 보이고 그 대칭선에 카피가 같은 형태로 보여지고 있어 시선의 분산됨을 최대한 배제시켜 주목도를 높이고 있다. 이런 포맷은 캠페인이 끝날 때까지 지속되고 있어 수많은 광고 속에서 디젤 광고임을 알게 하는 인식의 코드로 삼고 있다.

또 이 캠페인 광고에 테마로 불리고 있는 ‘WORK HARD’의 내용이 웃음을 참지 못하게 할 정도로 재미있고 디젤스럽다. 모델이 뭔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서 느끼는 ‘WORK HARD’는 있지만 그 내용은 다분히 키치적이다. 웃음이 절로 나오고 역발상의 아이디어가 빛을 발한다. 광고가 단순히 영업을 지원하고 마케팅의 수단을 넘어 타깃과 공감하고 그들의 정서를 이끌어 가는 동안 자연적으로 브랜드를 선호하고 충성 팬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광고2)은 더욱 교묘한 수법으로 커뮤니케이션하고 있다. 캠페인 슬로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진땀 흘리며 양말을 올리고 있는 모델의 모습에서 폭소에 가까운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단순히 웃기는 데 그치지 않고 앵글의 중심에 팔고자 하는 제품을 클로즈업 시켜 장사는 장사대로 하고 있다.

(광고3)도 여행 가방을 낑낑거리며 끌고 가는 모습을 잡아 소구하고 있다. 이 캠페인의 논리대로라면 젊은이들의 모든 행위에 ‘WORK HARD’를 붙여 놓아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을 듯하다. 그만큼 캠페인의 확장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공감의 폭도 넓다는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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