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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끝나지 않은 연재소설, 브랜드

2004-10-07

사람들에게는 이야기 본능이 있다.
신화나 전설, 소설이나 영화, 설화, 민담, 뉴스들 그리고 하물며 친구들과의 수많은 이야기들은 우리들의 의식구조를 지배하고 있다.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소비하며 또한 우리를 매료시키는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 나선다.
이야기는 본능이며 우리 의식 구조의 원형이다.
이야기는 우리에게 삶의 방식을 제안해주며 우리의 자아를 확인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훌륭한 브랜드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 거리가 있다.
더불어 상징적인 브랜드 디자인에도 그 역사적 흔적과 원초적 뿌리가 스며있다.
가시적으로 보이는 디자인 형상물은 모두 무엇인가를 상징하며 형태, 색, 질감 등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브랜드 디자인에는 브랜드의 역사성과 디자인의 근거가 상징적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굳이 기독교신자가 아니더라도 교회에 들어가서 십자가를 보면 마음이 경건해진다.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성경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십자가를 보면 하느님과 사랑, 믿음, 소망이 떠오를 것이다. 예수님의 흔적을 생각하고, 인류를 구원하려던 성인의 정신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의 불상을 보면 불교신자가 아니더라도 부처님의 행적을 되새기게 될 것이다. 살아있는 하찮은 생명이라도 존중해라, 너무 큰 욕심을 갖지 말라는 말씀 등 비록 구체적이진 못할지라도 우리는 그 형상에 깃들어 있는 정신세계를 상징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어떠한 종교에서든 상징적 형상이나 조형이 있는데 이를 보면 이에 대한 역사와 함께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과 그 정신적인 의미가 떠오르게 된다.

흔히 감성화된 현대사회에서는 브랜드를 구매, 소비하면서 상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 이미지를 구입하고 소비하는 것이라고도 한다.
상품의 물리적 기능이외의 또 다른 비물리적 기능이 브랜드에 존재하고 있으며 소비자는 이를 위해서는 기꺼이 그 대가를 지불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강력한 상품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다국적 선두 상품들에는 대부분 자신들의 브랜드스토리가 있다.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경우도 적지 않지만 자신들 만의 신화를 만들어가려는 의식이 강렬하다. 브랜드의 이야기를 통해서 사람들의 생활 속에 브랜드이미지를 내용으로 하는 의식구조를 형성하는 것이 자신들의 상품력(브랜드파워)을 강화하는데 절대적인 영향력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미국 패스트푸드업계의 선구자로 불리우는 커넬 샌더스 경.
커넬이 6살 되던해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일을 나가셔야 했고 커넬은 어린 동생들을 돌보며 스스로 요리해야 했다. 이렇게 요리를 시작하여 치킨 프랜차이즈를 만들게 된 커넬 샌더슨은 KFC가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게 된 후에도 KFC의 상징으로 남게 되었다.

미쉐린과 한국타이어의 브랜드마크이다. 각각의 브랜드 마크를 보았을 때 무엇이 떠오르는가? 어떤 것이 더 기억에 오래 남는가?

브랜드를 상징하는 이야기(또는 역사)들은 곧 그 브랜드에서 창조하는 라이프스타일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혹은 종교적으로 형성된 절대적인 이야기나 역사들은 사람들의 의식구조를 지배하게 되고, 감동을 받은 이야기나 흔적들을 삶의 모델로서 받아들이고 더불어서 그 이야기처럼 살고 싶어 한다.
사람들이 일정한 브랜드를 구입하는 이유는 그 브랜드의 이야기 구조 속에 들어가 자신을 동일시하고자하는 의식이 크다.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의 옷이나 악세서리 등의 물건들이 판매율이 높아지는 이유가 이를 증명한다.

올해 여름, 싸구려 저금통(금형비나 생산방식이 다른 제품과는 저렴하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했다) 생산업자들에게는 뜻하지 않은 대량생산이라는 횡재가 왔다.
복돼지 저금통이 이처럼 많이 팔린 것은 모방송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파리의 연인”이라는 드라마에 나오는 부담스럽게 큰 복돼지 저금통의 사연 이외의 다른 이유가 없다.
싸구려 복돼지 저금통이 드라마 속에서의 왕자님과 신데렐라의 로맨스를 상징하는 주요 소재가 되면서 드라마 속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수많은 연인들이 복돼지 저금통을 구입했다. 그들은 복돼지 저금통을 산 것이 아니라 신데렐라 스토리의 로맨스를 구입한 것이다.

브랜드디자인이란 지금 당장 세련된 그림이나 조형물을 만들었다고 해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조형물이 있기까지의 시간적 지속성과 함께 역사성(이야기나 배경)이 담겨 있어야만 한다.
이야기 없는 상징물이나 형태 없는 스토리로는 강력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기 어렵다.
브랜드가 강력한 생명력을 얻으려면 역사성 있는 이야기와 함께 가시적으로 연출되는 상징적 형태가 공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것이 곧 브랜드 디자인이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비누 가운데 하나인 “아이보리” 비누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어처구니없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약126년 전에 기계조작의 실수로 물에 뜨는 불량품(?)의 비누를 만들었다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물에 뜨는 비누의 탄생은 소비자들에게 자극없고 순수한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전달하여 폭발적인 주문으로 이어졌다.
장난감처럼 둥둥 뜨는 비누는 아이들 흥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목욕시키는 부모들에게도 욕조 바닥에 가라앉지 않아서 도리어 편리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 아이보리비누의 성공은 '순수함(pure)‘과 ’부드러움‘이라는 제품의 컨셉과 물에 뜬다는 제품의 물리적 속성, 형태, 색상 등의 제품의 외형적 속성이 일치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아이들을 하루에 한번씩 목욕하게 만든 아이보리 비누는 실수로 태어났지만 결국 지금의 거대한 다국적기업인 P&G가 탄생하게 된 신화(이야기거리)가 되었다.



‘시속 125㎞에도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자동차’
‘아무리 빨리 달려도 커피 잔이 흔들리지 않는 자동차'
‘달리는 별장’ ‘황제의 자동차’….
가장 우아하고 부드럽게 달린다는 꿈의 자동차 “롤스로이스(Rolls-Royce)”라는 브랜드의 상징적 마스코트에도 흥미로운 역사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영국의 귀족 사업가였던 찰스 롤스(Rolls)와 빈민가 출신의 엔지니어 헨리 로이스(Royce)라는, 전혀 다른 배경의 두 사람이 롤스로이스를 탄생시켰다.
‘로큰롤의 황제’였지만 점잖지 못한 가수였던 엘비스 프레슬리가 롤스로이스사로부터 “우리 고객 명단에 당신의 이름은 없다”며 점잖게(?) 판매를 거부당했다는 일화는 롤스로이스의 가치를 설명해주는 또 하나의 브랜드스토리다.
롤스로이스는 보닛 끝에 달린 상징적 디자인조형물(마스코트)로 유명하다.
‘환희의 정신(Spirit of Ecstasy)’이라 불리는 이 마스코트는 영국 조각가 찰스 사이크스가 1911년 롤스로이스의 대주주였던 존 몬태규의 비서이자 애인이던 엘레노어 손튼을 모델로 만들었다. 그녀를 사랑했던 몬테규 경은 4년 후 제1차 세계대전 중이었던 1915년 영국 식민지인 인도 주재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손튼과 함께 인도로 가던 중 크레타섬 부근에서 독일 군함의 어뢰를 맞아 침몰하였다.
손튼은 익사하고 몬테규 경은 4일 만에 극적으로 구조돼 영국으로 돌아왔는데 죽은 여비서를 못 잊고 괴로워하는 몬테규 경의 모습을 안타깝게 여긴 롤스로이스의 사장은 그를 위해 손튼의 조각상을 롤스로이스의 영원한 마스코트로 삼아주었다. 원래 조각에는 날개가 없었으나 손튼의 명복을 빌기 위해 엠블럼에 날개를 달아줬다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도난 방지를 위해 차체가 충격을 받거나 억지로 잡아 떼려고 하면 요란한 경적음과 함께 자동으로 라디에이터 그릴 안으로 숨는다는 롤스로이스라는 브랜드의 상징적 디자인조형물에 대한 애착은 대단하다. 그 안에 롤스로이스의 브랜드 정신이 담겨져 있다.

나르는 천사라고도 불리는 이 엠블렘은 롤스로이스의 상징적 브랜드마크다.
파르테논의 신전을 보고 감명을 받은 로이스는 이를 라디에이터의 그릴에 적용시켰다.
파르테논 신전 위에 있는 나르는 천사
롤스로이스의 명성은 단지 가격이 비싸다는 이유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그 흔적과 역사성이 선명하다.
특히 우리나라 브랜드 가운데 가장 비싸다는 에쿠스라는 자동차에 붙여진 엠블럼과 비교하면 디자인이 형태와 뿌리를 지녀야하는 당위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에쿠스의 엠블럼은 에쿠스의 의미인 개선장군의 말, 천마의 날개를 상징으로 했다고 한다.

첨단 기술력으로 무장한 우리나라의 기업들을 생각하면 여러 가지 디지털 기기들이 떠오르겠지만 삼성, LG, 현대 등의 브랜드가 지닌 성격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떠오르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 매우 아쉽다.

웃는 얼굴을 형상화한 LG의 브랜드 마크라고는 하지만 웃고 있는 얼굴 뒤에 어떤 사연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기업의 미래를 제시하는 여러 가지 비전 중에서 유독 웃는 얼굴을 선택했다면 웃고 있는 시각적 형상의 인지를 강력하게 만들어줄 이야기가 필요하다.
삼성의 브랜드마크(기업마크도 된다)는 무대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미지로서 타원형으로 만들어졌다고도 하는데 확인하기 쉽지 않다. 그저 들은 얘기이니 대다수의 사람들은 브랜드 마크의 둥근 형태가 스포트라이트인지도 모를 것이라 생각된다.

글로벌 기업이고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다는 국내 상품들에서 나타나는 상징적인 브랜드디자인에 대한 어떠한 이야기도 듣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자랑스러운 우리 기업들의 브랜드, 브랜드 디자인에는 두고두고 사람들을 유혹할 만한 신화적인 이야기는 물론 작은 에피소드 조차도 없다. 한마디로 디자인 히스토리가 없는 것이다.

브랜드를 대표하는 조형으로서의 브랜드 심볼은 그 상품의 정체성이나 역사를 알리고 회상하는 주요한 역할이다.
그 가운데 상품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역사성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는 상징적 브랜드마크에는 별다른 이야기 거리가 생각나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있다.

우리 기업들이 외국 기업들에 비해서 역사가 짧기 때문에 이어져오는 브랜드스토리가 없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미흡하다.
오히려 격동의 시기를 거쳐 경제적 성장을 이룩했던 국가적인 기업들의 성장 과정을 돌이켜보면 브랜드가 만들어지기에 적합한 여러 소재들이 존재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서양문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오랜 역사와 문화적, 정신적 사상을 중요시 하던 민족이었음을 상기한다면 브랜드디자인에 뚜렷한 철학, 또는 풍부한 이야기 거리가 함유될 수 있었으리라 예상되기 때문이다.
예술적 표현(현대 산업사회에는 디자인으로 대체되는 경향으로도 보인다)에 있어서도 생략과 비움을 통해 사유의 공간을 마련해두었던 동양문화의 전통에 비해서 브랜드디자인이 너무나 표피적으로만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반성할 필요가 있다.


어느 기간이 지나면 잊혀진다면 그 이야기는 이미 신화가 아니다.
곧 잊혀질 이야기로는 브랜드 신화가 창출될 수 없다.
이야기는 곧 역사로서 가장 큰 특징은 그 연속성에 있다. 세헤라자드의 아라비안나이트처럼 이야기는 계속된다.

브랜드 스토리와 브랜드 디자인은 어느 쪽이 더 중요하다고 판가름할 필요 없이 쌍방으로 기능하여 브랜드 인지를 보다 강력하게 구축시킨다.
브랜드의 존재 방식은 생명을 지닌 인간을 닮아, 과거가 쌓여 현재의 이야기를 뒷받침하고 현재가 계속되면서 미래가 만들어진다.
이것은 곧 인간의 존재자체이며 인간이 존재하는 방식이다.
인간의 존재 자체가 곧 이야기고 역사인 것처럼 브랜드디자인도 기업과 브랜드역사의 진행 과정이 담긴 조형적 실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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