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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리뷰

디자人 유감

2008-01-01

이 말에 동의 하든 그렇지 않든 디자이너인 당신은 새로운 무엇을 찾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획기적으로 새롭게 나온 아이디어든, 내키지 않은 미지근한 썸네일이라도 어쨌든 ‘남보다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는 크리에이터라면 짊어져야 할 업보 제1장 제1조가 아닐까 합니다.

어떤 형태로든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형이하학적인 결과물을 내놔야 하는 우리들은 새로운 생각과 남다른 ‘이미지’에 굶주려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디에서 어떻게 구합니까?
축척 된 100% 나의 상상? 무의식과 의식 속에 저장된 이미지? 생활 속 주변? 책이나 판매용 이미지 데이터? 동료가 흘려준 무심한 말 한마디 혹은 넌지시 던져준 이미지?...

모두들 각자의 방법과 스타일로 오매불망 머리를 쥐어짜고 있을 줄 압니다. 많이 생각하고 한번 더 고민하고, 관심을 가진 만큼 새로운 것이 더 많이 보일 것임은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런 와중에 하나의 사물이나 주위의 참고용 이미지가 예사로 보이지 않을 것 입니다. 뒤집어 보고, 비틀어보고, 붙여보고, 떼어 놓고 보고....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눈과 손과 머리가 시도 때도 없이 ‘윙~’, ‘쓱쓱~’ 소리를 내면서 언제나 현재 진행형으로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 줄 압니다.

10여 년 전후만해도 자료(책)를 얼마만큼 가졌는가의 정도가 한 사람의 크리에이티브(실력) 정도를 판단하는 기준처럼 생각할 정도로 자료의 중요성은 대단하였습니다. 인터넷에 정보가 공유되기 이전엔 외국의 최신 정보나 이론으로 무장한 따끈따끈한 학문을 독점한 교수의 정보력은 그 교수의 실력으로 인정하고, 우러러 존경하였던 것처럼 남보다 많은 자료는 당시엔 대단한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파워를 가지곤 하였습니다.

단순히 자료의 양으로 판단하는 것이 일견 문제가 있지만 현실적으로 좀 더 많은 이미지 자료를 접하는 디자이너는 분명 커다란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패션 관련 디자이너들은 꽤 오래 전부터 이탈리아를 비롯한 선진 유럽과 미국 일본의 각종 패션 잡지를 공식 비공식을 통하여 때가 되면 수입되어 그들의 트렌드와 스타일, 모델의 포즈, 컬러, 이미지 심지어 그들의 아이디어를 참고도 하고 가공에 도용마저 심심찮게 하곤 하였습니다. 학생은 물론 초자나 전문가의 디자이너라도 아주 당연한 것처럼 말입니다. 너무나 자연스런 일상이 되었습니다. 패션분야 뿐만이 아닙니다.
그 후 디자인이나 디자이너 근처에만 있어도 외국 잡지며 두껍고 비싼 외국의 자료 정도는 소장 되어야만 일이 진행되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한 권이라도 더 가지려고 안달이 나 있었고, 개인은 개인대로 회사는 회사차원에서 효율적으로 선별한다고 하지만 대단한 지출마저 감수해야 했습니다.

남의 나라 문화며 문물을 받아들여 모방도 하고 베끼기도 하면서 열심히 하다 보면 급기야 그 문화를 딛고 일어서 새롭고 고유한 우리의 디자인 창조를 위한 감수해야 할 과정이라면 중요한 수단임에 분명하며, 지금뿐 아니라 앞으로도 여전히 중요한 일임에 분명합니다. 물론 당시 디자인이라는 분야가 선진의 나라와는 엄격한 격차가 있었기에 부득불 참고용이거나 경향의 분석을 위한 긍정적인 면과 한 수 위 선진 모방의 이유도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나 당연한 일상 다반사가 되었고, 그 시대적 시기마저 짧지가 않았습니다. 그런 분위기에 디자이너들도 조그마한 문제의식마저도 없이 안주(?) 하기에 이르지 않았나 되돌아 보게 합니다. 문제는 지금도 여전히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디자이너를 비롯한 외국의 크리에이터들은 (외국의) 수많은 자료를 보면서 새롭게 낸 자신의 아이디어가 이미 다른 크리에이터가 내놓은 것과 유사한가를 확인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점을 이 땅의 크리에이터라면 되씹어 보아야 할 중요한 관점입니다.

패션 디자이너라면 필수로 구독하고 봐야 하는 ‘Italian Vogue’를 비롯한 각국의 잡지며 책이 널 부러져 뒹굴고 있고, 일러스트를 위한 책이 거의 정해져 있고, ‘Archive’, ‘Ad Flash Monthly’, 카피 연감, 아트디렉터 등은 광고 디자이너를 위한 지정 교과서 마냥 있고, ‘Work Book’을 포함한 포토그래퍼 들과 디자이너를 위한 디자인 작품모음집과 디자인 관련 수입서적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그리고 보무도 당당하게 디자이너 가까이에 있습니다.
이러한 외국 자료 책은 여전히 아이디어의 원천이고, 참고와 도용(?)을 위한 디자이너의 ‘일용할 밥’이 되어 버렸다면 이 땅의 디자인과 디자이너를 너무 얕잡아 보는 편협한 시각이라고 할지요.

아직도 한글보다는 영어가 왠지 멋있어 보이고, 서구의 8등신 모델과 외국의 인쇄발과 사진발이 부지불식간에 우리 디자이너의 DNA에 박혀 있어, 무조건적인 반사로 버터냄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불량유전자(?)에 기인한 안타까운 결과 인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국제화와 글로벌을 이야기 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요즘, 비즈니스와 문화마저 국경이 사라진 듯 지구촌 시대가 되었으니 당연히 외국의 경향과 참고 자료도 많이 접해야 하고, 아이디어의 영감도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야 할 때입니다. 나쁠 것 하나 없습니다. 그렇게 해야 하구요. 처음에 말했듯이 세상에 새로운 것이 없으니까요.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이 땅의 디자이너는 거의 100% 외국 잡지며 서적에 여전히 일방적으로 올인 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부분적으로는 우리의 것을 외치고 있어 좋아지고 달라졌는지 모르지만 수입서적에 전적인 의존은 디자인과 디자이너의 자존심에도 무시 못할 면입니다. 일부 잡지는 주요 수입원(?)인 열혈 한국독자를 배려한 편집마저 불사한 경우까지 있다고 하니 고마워해야 할는지… 어쨌든 디자이너를 위한 수입 서적의 통계가 공식적으로 없으나 그 물량은 우려할만한 양임에 분명합니다.

혹, 우리의 아이디어 대부분이 그 외국자료에서 나온다면…
혹, 그런 책마저 없어서 우리의 크리에이티브와 디자인이 지금의 수준마저 유지 못한다면…
혹, 우리 디자인이 그들의 문화와 의식이 스며있는 그들의 책에서 전적으로 뽑아 낸다면…

혹자는 말합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남의 자료를 챙겨 우리 것을 뽑아 낼 수도 있다고 항변 하겠지만 부지불식간에 깊숙이 스며드는 맛과 향처럼, 악화가 양화를 점령하듯 쉽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유구한 역사와 문화 국가를 외치는 마당에 우연인지 필연인지 문화관광부가 하필 미국대사관과 나란히 붙어 있는 모양새를 보자니 왠지 모를 자존심에 찝찝한 기분이 드는 것처럼 말입니다.

외국의 디자이너도 우리 디자이너가 그들의 자료를 열심히 보듯 참조할 만한 제대로 된 우리의 잡지며 자료용 서적이 지금껏 거의 없다는 것은 디자인을 부르짖는 시대의 거센 조류 속에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닌가요. 너무하다 할 정도로 무책임하지 않은가 생각이 듭니다. 먼 훗날을 보면서 부족하면 부족한 그대로 차근차근 우리의 자산을 이용한 우리의 자료를 챙겨야 하지 않을까요. 외국 디자이너가 참조 할만한 우리의 ‘Kateigaho(家庭畵報)’며 ‘Archive (아카이브)’가 벌써 나왔어야 하는 게 아니었나 아쉽습니다. 일부 모음집이나 연감이 있긴 하지만 우리가 봐도 내용이며 편집, 지질, 사진, 인쇄빨 등 디자인 때깔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눈에는 영 성에 차지 않지요. 이젠 짧지않은 이 땅의 디자인역사와 세계적인 경제규모로 보나, 우리들의 넘치는 디자인 관심사에 비견하면 그렇다는 것이지요.

미우나 고우나 또 한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와 새 대통령마저 맞이하는 즈음, 뾰쪽한 대안 없는 넋두리 같지만 한 번 정도는 되돌아 봐야 할 우리의 ‘새로운 생각’과 ‘아이디어를 참고하는 이미지의 원천’을 어디에서 찾고 있었는지, 우리가 여태 남의 잡지나 외국의 참고용 자료만을 무방비로 무책임하게 ‘이지고잉’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존심 차원에서도 더 늦기 전에 한 번쯤 반성해 봐야 할 과제입니다.

유구한 대한민국의 디자인史에 남의 책 뒤적거려서 베끼고 도용하는 후진 디자인 의식을 가진 부분이 있었다면 벌써 청산했어야 할 밀린 숙제임이 분명합니다… 이런 작지만 진지한 문제의식 없이, 이 땅의 진정한 혼이 담긴 크리에이티브 없이, 세계적인 디자인을 꽃 피울 지금부터의 미래는 녹록하지 않을 수도 있기에.….

아무튼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고 찍소리 말고 모른 척, 얌전히 있으면 좋은 게 좋은 건가요. 아닐 겁니다. 지금까지 그 무수한 외국의 자료를 참고한 무지막지한(?) 디자이너들의 디자인 저력을 전력 삼아, 그에 뛰어 넘는 ‘새로움’을 겸비하여 부디 ‘여성 중앙’이든 ‘디자인’ 잡지며 ‘디자인 연감’이 노랑머리에 코 큰 어느 디자이너가 꼬부쳐 두고 부릅뜬 눈으로 참조할 만한 주요‘외국서적’으로 태어나기를 기대 하여 봅니다.

“2008년 무자년, 디자이너 여러분 또 힘 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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