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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리뷰

한국 캐릭터 산업의 참고서 쓴 개척자, 또 한번 신작로 뚫는다

2006-11-07


가끔 일반 독자들이 ‘씨엘코엔터테인먼트’가 어떤 회사냐고 물어올 때면 이렇게 답변한다. “마시마로.” “아아.” 마시마로라는 이름 하나만 대면 그걸로 충분하다. 누구나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서니 말이다. 한국이 탄생시킨 ‘1세대 사이버스타 캐릭터’내지 ‘엽기 캐릭터의 원조’로 불리는 마시마로는 말 그대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아이콘이다. 씨엘코엔터테인먼트(대표 최승호)의 간판 스타를 넘어 한국의 대표 캐릭터로 손꼽아도 손색이 없는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이 “지금 씨엘코엔터테인먼트 가족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라고 물어올 때면 일단 멈칫하며 “글쎄요”라고 운을 뗀다. 하긴 우리뿐 아니라 타 매체에서도 요즘 소식은 통 들려오질 않으니 필자도 궁금하긴 마찬가지. 뭐,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명언도 있지만 반면에 ‘아는 게 힘이다’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아, 이건 좀 아닌가. 하여간 ‘에라 모르겠다’ 하며 내친 김에 찾아갔다.


‘AGAIN 2000’, 마시마로
“갑자기 찾아왔죠?”
“그러게요. 손님맞을 준비를 못해 좀 어수선한데.”
김종서 씨엘코엔터테인먼트(주) 경영기획팀 과장은 “언제나 열심히 일한다는 말 외엔 딱히 드릴 만한 소식이 없는데”라고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면서도 “열심히 일하신다는 건 분명 뭔가 소식이 있다는 말인데”라고 묻자 “물론 있죠.”란 대답이 돌아왔다.
“마시마로를 이을 차기작 소식인가요?”
“언제나 새로운 캐릭터는 염두하고 있습니다. 다만 확정된 바는 없어요.” “그럼 역시 마시마로 사업?”
“그렇죠. 그동안 많은 노력과 고생이 있었으니 이젠 수확기입니다. 덕분에 해외출장이 잦아진 사람들도 있고 모두가 분주해요. 그렇지만 바쁘다는 건 좋은 거 아닌가요.”
김종서 과장은 “이제야 라이선스 사업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다”며 “그동안 비싼 수업료를 지불했던 보람이 있다”고 말했다.
“다시 한번 마시마로의 존재감을 널리 알려 2000년대 초반의 영광을 재현하자는 마음으로 모두가 노력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죠. 돌이켜 보면 정말이지 안타까운 일들이 많았지만, 또 한번 곱씹어 보면 그것들이 모두 소중한 자산입니다. 가치있는 고생길이었다고 할까요.” 어떤 일이 있었고 지금은 어떻게 수확을 거두겠다는 것일까. 마시마로의 어제와 오늘에 대해 묻자 그는 “너무 많이 알려져서 다시 새삼스레 꺼내놓자니 식상하지 않겠느냐”며 “하지만 캐릭터 라이선스 업계인들에게 좋은 참조내용이 된다면 마다하지 않겠다”고 입을 열었다.


마시마로를 보면 캐릭터 사업이 한 눈에 보인다
“사실 마시마로는 행운과 불운이 겹친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우선, 태동에 있어서는 정말로 시대를 잘 만난 캐릭터였죠.”
김 과장은 “적어도 데뷔 무대와 시기만큼은 베스트 오브 베스트였다”고 밝혔다.“마시마로는 김재인 작가가 2000년 여름에 선보인 플래시 애니메이션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당시 크리에이터들 사이에서 붐을 일으켰던 플래시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을 통해 탄생한 이 작품은 솔직히 말해서 처음부터 ‘잘 나간 케이스’는 아니예요.”
김 작가는 아기자기한 동물캐릭터들의 이야기가 담긴 플래시 애니메이션을 들고 찾아갔던 첫 번째 캐릭터 업체에서 퇴짜를 맞았다. 일찍이 사례가 없던 터라 전반적으로 상품화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 반응을 기대하긴 어려웠던 것. 그러나 어이없을 만치 당돌한 토끼의 코믹발랄한 이야기는 인터넷 커뮤니터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했고 새로운 가능성을 감지한 씨엘코엔터테인먼트(당시 승현엔터테인먼트)가 손을 내밀게 된다. “우리가 마시마로에서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캐릭터 속에 녹아있는 시대상이었죠. 가만히 보니까 이 쬐그만 녀석이 글쎄, 직장상사에게 치이는 직장인과 온갖 스트레스 속에서 손해보고 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회의감을 느끼는 현대인들의 가려운 곳을 제대로 긁어주고 있는 거예요.
엽기라고 하는 코드를 통해 식상하던 관념을 깨 버리고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마시마로는 그 당시 ‘엽기토끼’라는 별명이 본명(?)보다 더 유명했어요.”
푹신푹신해 보이는 토끼의 엽기적 행각과 본의 아니게 말려들어 생각지 못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동물 친구들은 제각기 강한 개성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시대적인 흐름 역시 씨엘코 측에 다양한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첫째, 인터넷이 전국적으로 보급되던 시기에 등장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지금이야 특화성이 줄었들었지만 당시만해도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되는 이슈덩어리는 갖가지 오프라인 매체를 통해 전국적인 뉴스거리로 알려졌거든요. 플래시 애니메이션이라는 독특한 틀에 담겨서 매력적인 캐릭터성을 발휘하는 마시마로 일행은 순식간에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둘째, 그때는 캐릭터의 르네상스 시대라 불리는 호황기였어요. IMF 여파가 어느 정도 가라앉은 상황에서 일본 문화 개방과 맞물려 토토로 등의 해외 캐릭터가 국내에 상품으로 소개되던 시기죠. 캐릭터 사업이 새로운 부가가치 시장으로 떠오르자 ‘어째서 국산 캐릭터는 없느냐’는 아쉬운 목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했어요. 마시마로의 등장은 정말이지 절묘한 타이밍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셋째, 사회 전반에서 인기를 얻던 엽기코드를 잘 반영했던 점이 주효했습니다. 동물 세계에서 약자로 분류되는 토끼가 곰이나 사자 등의 맹수 앞에서 펼쳐 보이는 ‘짓눌린 자의 반항’은 속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엽기적으로 전달하고 있었으니까요.” 마시마로는 당대 최고의 스타 이영애와 함께 KTF CF에 출연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나란히 브라운관에 서는 등 ‘국빈’ 대접을 받기 이르렀다. 그런데 이것이 또 한번 시장 확대를 이루는 기폭제가 됐다. 대통령과 함께 하는 맹랑한 캐릭터가 미국 CNN 방송에 소개되면서 전 세계에 한국 대표 캐릭터로 각인된 것.
“해외 반응이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심지어는 ‘헬로 키티’도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돌았으니까요. 해외 유수의 전시회에서 작가 사인회를 열고 싶다는 요청이 쇄도했습니다. 내수시장과 해외시장에서 라이선스 사업을 펼칠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열렸던 시기입니다.” 라이선스 사업은 다양한 아이템을 통해 확산됐다.


완구와 팬시 등은 물론 어린이 감기약과 자동차 용품, 심지어 가전제품과 의류 시장까지 확대되면서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는 아이콘으로 떠올랐고 유럽과 미주 시장에서도 꾸준히 높은 가능성이 타진됐다. 2001년부터 현재까지 마시마로의 라이선스 사업 현황을 간략히 알아보자.
국내에선 100여 개가 넘는 업체와 라이센스 계약을 맺었고 해외에선 미국ㆍ일본ㆍ중국ㆍ홍콩ㆍ대만ㆍ싱가폴ㆍ프랑스ㆍ네덜란드 등 20여 개국에서 100여개의 라이선시를 통해 500여 품목의 아이템이 출시됐다. 이 중 상당수가 사업 전개 초반에 이뤄낸 성과임을 감안한다면 당시 마시마로가 얼마나 높은 브랜드 인지도를 확보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사업이 본격화되던 시기에 불운이 따르기 시작했다. 장기간에 걸쳐 캐릭터 사업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이 한국엔 아직 자리잡지 못했던 것. 국내 시장과 해외 시장 모두 마시마로의 불법 도용 상품과 유사품들이 판치기 시작했고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은 막막했다. 짧은 역사의 국내 캐릭터 시장에서 사실상 최초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한 마시마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참고 사례는 전무하다 싶을 정도였고 씨엘코는 ‘짝퉁’ 제재와 단속, 소송 등 법적 대응에 많은 시간을 잡아먹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마케팅 활동이 제대로 이뤄질 리 없다. 결국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씨엘코는 뜻하지 않게 부딪친 문제를 해결하느라 힘이 분산됐고 마시마로는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정말이지 두고두고 아쉬워할 시기였습니다. 한창 마케팅 활동을 펼치고 브랜드 잠재력을 끌어올려야 할 상황에서 급한 불을 끄느라 시간과 능력을 낭비하고 말았으니까요. 라이선스 사업에 대한 경험부족도 큰 장애였습니다. 단발적 이벤트가 아니라 오랫동안 진행할 수 있는 마케팅 전략을 기획해서 펼쳐야 하는데 역시 벤치마킹할 수 있는 대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스스로도 이 작품이 이 정도로 성공할 거라곤 생각 못했던 터라 준비가 늦었어요. 스누피와 찰리 브라운이 탄생한 게 벌써 60년이 넘었던가요? 한국도 이렇게 캐릭터의 생명력을 장기간 유지하려면 하루빨리 캐릭터 사업의 기반이 마련돼야겠구나 하고 몸소 느꼈습니다.”
그러나 김 과장은 “아쉬움을 삼키면서도 한편으로는 좋은 경험이었다”며 “이젠 캐릭터 사업과 라이선스 사업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잘 알게 됐으니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빠르게 앞서나갈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 5년간의 일들은 씨엘코의 노하우로 축적됐습니다. 캐릭터 사업에 대한 마인드도 정립할 수 있었어요. ‘마시마로의 전성기는 지나간 것이 아니라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지금까지는 워밍업, 이제부터가 수확의 계절’이란 생각으로 내일을 준비하렵니다.”


중국을 교두보로 글로벌 사업 추진ㆍ국내 시장 확보 두 마리 토끼 쫓는다
“그나저나 박 차장(박영국 씨엘코엔터테인먼트 경영지원팀 차장)님 해외출장이 잦으시던데.”
“네. 좋은 조짐이 감지되고 있어요. 우선은 중국을 전초기지로 삼아 내수와 수출 시장을 열 계획입니다. 중국 상해 지사를 통해 내수시장 역수출과 해외 시장 공략을 병행하는 한편 유럽과 북미 지역도 노크할 겁니다. 그리고 내수시장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린다면, 이미 유통망 구축은 상당 부분 진척됐어요. ‘유통 라인의 지원 없이는 판매도 불가능하다’는 마인드로 오랜 기간 물밑작업을 진행했죠. 온라인을 통한 판매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현재 국내 최대의 할인점인 이마트를 중심으로 아동복 시장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다른 아이템도 하나 둘 선보일 겁니다.”
그는 “헬로 키티처럼 애니메이션 작품 없이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공한 캐릭터들은 그 자체의 매력뿐만 아니라 현지시장의 안정성 및 상품개발에 따른 효율적 유통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라며 “생활가전, 신발류 등 친숙한 상품군에 스며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미 지난해 기준으로 마시마로 관련 출시 상품은 4천여 종을 넘었다. 자동차 용품만 5백여 아이템이 넘는 등 입이 떡 벌어지는 수량이나 김 과장은 “아직도 진출할 영역은 무한하다”고 말했다. 마시마로 외에 진행 중인 사업을 묻자 “강원랜드의 캐릭터 제작이라던가 서울시 대표 캐릭터 리뉴얼 작업을 맡는 등 국가기관 및 공기업의 CI, BI 작업이 진행 중”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분명 씨엘코는 다작을 지향하는 회사는 아닙니다. 그동안 마시마로 사업에 집중해 왔죠. 하지만 사업 전개 능력은 물론이요, 언제 어떤 캐릭터를 선보여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개발력을 보유한 리딩 기업임을 자신합니다. 앞으로도 순수 캐릭터 창조와 마케팅 영역 모두에서 인정받는 기업을 지향합니다.”
그는 “앞으로도 분명 사업상에서 여러 가지 장애물을 만나게 될 것”이라며 “그러나 그 수는 확연히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씨엘코엔터테인먼트와 마시마로의 동향을 궁금해 하던 독자들에게 속시원한 답변이 되었을지, 이번엔 필자가 궁금해진다. 확실한 것은 앞으로도 마시마로를 우리 일상 가까운 곳에서 언제든 만날 수 있다는 것.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했던가. 씨엘코엔터테인먼트 측은 “어제의 난관이 우리의 오늘을 만들고 내일을 기약하게 만들었다”며 긍정적인 시각을 보여준다. “시기가 좋으냐, 나쁘냐와 브랜드 파워가 죽었느냐, 아직 잠재된 채 나오지도 않았느냐의 문제는 보는 관점에 따라 해답이 달라진다”며 장밋빛 미래를 준비하는 그들을 다시 주시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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