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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리뷰

최용호, 야심만만한 시지포스 ①

2011-04-04


우리네 선비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로서 읽었던 책 사서삼경이란 논어(論語), 맹자(孟子),중용(中庸), 대학(大學)을 사서로 삼고 시경(詩經), 서경(書經), 역경(易經) 또는 주역(周易)을 삼경으로 일러 통칭하는 말이다. 뭔가 무지 고풍스럽고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다. 그냥 동아전과, 정석수학, 해문영어, 토익토플에 대응하는 그 당시의 필수 서적이라고 생각하면 될 테니까.

글 | 남대남 일러스트라이터( statchs@hotmail.com)
에디터 | 이은정(ejlee@jungle.co.kr)

그런데 그 가운데 대학을 살펴보면 수신제가(修身齊家)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라 이른 구절이 눈에 띈다. 이는 먼저 몸을 닦고(修身) 집안을 제어한 후(齊家) 나라를 돌보고 나서야(治國) 천하를 평정함이 마땅하다(平天下)는 뜻으로 대학 가운데 제일 유명한 말이라 할 수 있겠다. 모름지기 야심가들이라면 모두 이를 거울삼아야 할 진대, 예술계에도 야심가가 있을까?

물론 있다.

어느 뚱뚱한 여인이 양산을 들고 바닷가에 서 있다. 그리고 이 그림을 보았을 때, 나는 가당찮게도 최용호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무엇을 그리고자 하는지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 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겉보기에는 어떨지 몰라도 내가 보기엔 아주 건전한 욕심에 넘쳐나는 야심만만한 예술가다.

굵직한 선에 단조로운 색상. 힘이 넘치는 가운데 고유의 성질을 이용하여 그것을 제어하는 판화 작품이다. 판화라, 일단 꽤 특이한데 그 이유는 다들 짐작하다시피 일러스트레이션 계통은 수작업이 상당히 불편한 축에 들어가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뭐 하나 그려 주면 기다렸다는 듯이 수정 요구나 재작업 요구가 '컨펌 과정'에서 나올 수 밖에 없고 그것을 결정하는 광고주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인데, 그렇다면 그가 왜 굳이 수정도 어려운 수작업을, 그 중에서도 판화를 선택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나타날 수 밖에 없다. 해당 방면의 대가가 되기 위한 행위, 즉 스타일을 찾기 위한 몸부림의 해답으로 선택한 것이 판화라는 말이 되는데 대체 무슨 이유에서일까?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른 예술가들을 만나보면 상당히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바로 겉보기에서 느껴지는 첫인상과 실제로 구현된 그 자신의 내면적인 모습, 즉 작품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이다. 이는 대체적으로 작가가 스스로의 감추고 싶은 모습마저도 간파하여 여과없이 정직하게 화폭에 구성할 때 일어나는 현상으로서 겉과 속이 다른 표리부동의 대표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예술 작품은 메시지, 곧 시각적인 언어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진지하게 스스로의 모습을 재구성하다 보면 점점 작가 본인마저도 화폭의 작품을 닮아가는 언행일치 현상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에 저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를 대입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먼저 수신(修身)작업. 스스로를 분출하며 그려내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를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모습을 파악한 후 거기에 자신이 닿고 싶은 모습, 즉 이상이나 꿈을 싣는 것이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을 행하고 난 다음에서야 그것을 가장 뜻대로 표현할 수 있는 장르를 찾는 것, 즉 집안을 돌보기 위한 제가(齊家)의 노력으로서 다양한 매체를 섭렵하며 스스로의 수단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이 제가의 과정에서 개인의 고유한 스타일을 완성하게 되면 소위 히트쳐서 뜨는 것, 즉 치국(治國) 과정으로의 업그레이드가 가능해 지기 때문에 많은 작가들은 자신이 꿈꾸는 모습을 가장 알맞게 드러내어 보여줄 수 있는 스타일을 찾아 오만 가지 스킬을 연구하고, 배워보고, 익혀간다. 수작업, 디지털 일러스트에 판화, 조소는 물론이고 심지어 유행이 지나도 한참 지난 하이퍼 리얼리즘이나 패턴 페인팅까지도.

최용호의 홈페이지 한 구석에 위치한 Visual+ 폴더를 보면 그가 낙서하듯 그린 것들을 볼 수 있다. 대개는 그냥 스케치 식으로 끼적인 그림들이지만 흔히 작가적 모색기라고도 불리는 스타일 구성 직전의 단계에 해당함직한 그림들이 많이 올라와 있는데, 한두 점 정도만 살펴보자.

격동의 난장판. 아… 초장부터 맛이 가고 있다. 그런데 어느 정도는 완성작처럼 보인다. 더 손볼 구석이 안 보인다는 것이 그 이유인데, 이 자체로도 어느 정도의 완성이 보이는 진짜 이유는 이것이 엄청나게 격렬한 능동을 구현한 나머지 스스로의 스타일조차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파괴하고 있기 때문이다. 속에서 들끓는 분노의 파동을 이 정도로 격렬하게 표출할 수 있는 작가는 흔한 편이 아니란 사실을 접어 놓더라도, 이 작가의 내면에 숨은 무언가는 최소한 이 정도의 격동을 보일 수 있는 감성이라는 사실은 여기서 드러난다.

여기서 보여지는 최용호는 한번 화가 나기만 하면 실제로야 모르겠지만 작품적으로는 모든 것을 뒤집어 엎을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건데, 사람이 자신의 이런 격렬한 모습을 편안히 바라볼 수 있을까? 어려운 노릇이다. 이렇게 수신(修身), 즉 몸을 닦는 일이라 말할 수도 있는 작업과 스스로의 본성을 알아보는 일은 절대 쉬울 수가 없다. 지속적인 스트레스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이 단계는 스스로의 내면 보다는 스스로가 보여주고 싶어하는 환상을 바라보기 쉽다는 점에서 종종 신출내기 작가들의 착각을 불러일으키곤 하지만, 작가 최용호는 눈을 돌려 보고 싶은 것만 골라보려 들지 않았다. 스스로 느끼기에 그리 달갑지 않게 보일 수도 있는 자신의 본성을 맨 정신에 똑바로 응시한다는 것은 고문에 가깝지만, 하나도 예쁘지 않은 저 낙서에 가까운 습작에서 우리는 적어도 이 예술가의 수신(修身) 작업, 즉 자기 자신에 대한 응시가 꾸준히, 그리고 제대로 이루어 졌음을 알 수 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하나만 더 보도록 하자.

얇은 선묘로 형태를 잡고, 빨간색과 파란색, 노란색의 세 개의 색상만을 사용하여 전체를 묘사했다. 아까의 난장판보다는 훨씬 점잖은 분위기이다. 하지만 겨우 요 정도의 얄팍한 선만으로 저 격렬한 최용호의 내면을 표현할 수 있을까? 난제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오로지 '오늘을 잊지 않으리'처럼 그리면서 밥을 먹고 살 수는 없다. 속이야 후련할 지 모르겠지만 그 스타일로 저렇게 그리는 작가에게 광고의뢰는 절대 안 들어올 것이 불을 보듯 뻔한 노릇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최용호를 둘러싼 현실과 그의 내면이 괴리를 일으키기 시작하자 최용호는 난처해져 버렸다. 내면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저 난장판 정도의 두꺼운 선과 절대 잊지 않겠다는 확언에 가까운 확신이 필요하고, 일단 먹고 살기 위해서는 아이슬란드에서 보여준 얄팍한 선처럼 그것을 버려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 도저히 타협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던 현실적인 요구와 내면의 욕망 사이에서 그는 어떻게든 강렬한 그림 스타일을 찾아 작가적 돌파구로 삼아야 했다. 그래서 그는 여러 편의 그림을 감상했고, 이윽고 그가 원하는 것을 찾아내어 합성하는데 성공했다. 그가 감명을 받아 따로 홈페이지 한 구석에 스크랩해 둔 그림들을 살펴보면 꽤나 골고루 편식 없이 찾아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아마 의재 허백련의 한국화에서는 선과 여백을 주목했을 지도 모르고, 조종성의 작품에서 현대 미술의 참혹한 진실, 복제물로서 존재할 수밖에 없는 팝아트의 기세를 살폈을 거다. 요안나 라이코프스카의 깡통미술에서는 그 안에서도 어떻게든 비비고 드러내어 보려는 작가의 몸부림에 공감했을 테고, 운창 임직순의 소묘에서는 '내공의 힘'이란 것을 맛보았을 터. 박준과 위영일의 그림에서 절제된 색상과 공허한 선놀림에 공감을 느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하나로 뭉뚱그려져 작가 최용호의 소묘를 구성시켰고, 거기에 스스로의 능동 분출에 대한 욕망과 복제성을 가미하자 최용호 버전의 판화가 탄생해 버렸다. 이렇게 수신과 제가의 갈등 사이에서 그는 해결책으로 판화를 스스로에게 제시한 셈이다.

무려 수 백 가지를 헤아리는 미술 장르 가운데에서도 판화는 매우 특이한 장르로 구분되는데, 이는 그것이 제작 초부터 아예 복제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 지기 때문에 오로지 복제품일 수 밖에 없는 진품(?)의 이중적인 매력 덕분이다(순수미술에서의 판화는 예정된 프린팅 이후 원판을 공신력 있는 사람들 앞에서 파기하는 게 관습).

하지만 사실 상업예술과 순수예술의 사이에 자리한 이 장르는 그 방식의 합리성만을 따지자면 철저한 상업예술에 종속되어야 하는 게 순리인데, 어쩐 일인지 상업예술이 장르를 선도하다시피 하고 있는 근래에 이르러 오히려 판화는 그리 환영 받을 수 있는 장르가 아닌 상태가 되어 버렸다.
그것은 타 장르에 비하여 압도적인 장점이랄 수 있는 복제성이라는 것이 그보다 훨씬 발달한 사진, 인쇄술에 밀려 완전히 무너져 내림으로써 날개를 잃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화는 여전히 매력적인 장르일 수 밖에 없다. 최용호가 주목한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가 작업하는 방식의 종이판화도 마찬가지지만 일반적인 판화는 꽤나 약점이 많은 예술 장르다. 우선 기본적으로 웬만한 판화는 선을 '그리지 않는다'. 물론 에칭이나 석판화 같은 특이한 제작방식은 제외하겠지만, 물리적인 노력과 열정을 기울여 '깎아내야' 한다는 것이 상식. 사용하는 색상에서 엄격한 제한을 받을 수 밖에 없으며, 실제로 다양한 색상을 적용할 경우 그 공정은 한도 끝도 없이 늘어나 판화의 매력인 '손쉬운 복제성'을 해치게 된다. 수정 또한 불가능에 가깝다. 칼로 파서 만들어버린 선이기에, 수정을 하려 들면 통째로 들어내고 다시 만들어야 할 정도다. 따라서 큰 수정을 요한다는 말은 재작업을 하라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최용호는 판화를 택했다. 그것은 판화야 말로 복제본만이 가질 수 있는 특이한 마력과 더불어, 제작 과정에서 기울이는 작가의 땀과 노력을 숨김없이, 아니 몇 배로 증폭시켜 드러낼 수 있는 미술의 장르이기 때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대개의 현대 판화가처럼 작가 최용호 또한 판화의 단점을 장점으로 전환하여 효과적인 무기로 장착했다. 판화의 선은 칼로 파이거나 날카로운 무언가에 잘려나간 것처럼 형성된다. 수정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지극히 준엄하다. 디지털 일러스트처럼 컨트롤+Z 명령이 먹히지 않으며, 아크릴 컬러나 유화처럼 그 부분을 다른 색상으로 덧칠하여 바꿀 수도 없다. 마치 죽음의 선고처럼 엄중하기 짝이 없어, 한번 그어진 선은 거기서 끝장이다. 이거라면 이거고 저거라면 저거. 그러하기에 확신이 없는 자가 아니면 엄두를 낼 수 없고, 표현된 선마다 작가의 확신 어린 목소리를 배어들게 할 수 있다.

색상은 단조로워야 했는데, 이것은 애초부터 지나친 색의 파노라마를 경계하던 최용호의 선택으로, 그가 장점으로 아주 자연스레 전용된 부분이다. 최용호가 두세 가지 색상만 사용한다 할 경우 독자로서는 A 색상을 먼저 보던지 아니면 B색상에 주목하던지 양단 간에 선택해야 한다. 이는 준엄한 선의 선고에 맞추어 색상 주목에 대한 선택의 여지를 좁힘으로써 최용호가 노리던 강렬한 이미지를 여지없이 부각시킬 수 있었다.

똑같은 그림을 판화로 그린 것과 유화로 그린 것이 생판 달리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두 가지 표면적인 까닭이 크다. 하지만 최소한 그게 전부가 아니다. 숨은 이유는 하나 더 있다. 판화라는 녀석은 누구도 따르지 못할 숨겨진 일면을 슬쩍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복제성 뒤에 숨어있는 익명성이다. 복제성이란 판화가 가지는 일차적인 특징이지만, 이 기묘한 성질을 이용할 경우 판화는 예술사진이 가지고 있는 특성인 객관적인 익명성마저도 슬쩍 차용할 수 있다. 실제로 현대 판화가들은 대부분 이것을 차용한다.

사진에 대상으로서 잡혀버린 순간, 피사체는 무한에 가까운 복제성을 지니게 되어 스스로 가지고 있어야 하는 고유한 성질을 잃어버리고 작가가 노출하고자 하는 메시지만을 부각시키게 된다. 카파의 유명한 사진을 보라. 누구도 저 병사의 군번이나 이름에 주목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가 어느 누구의 군대에 소속 중인지도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느끼는 것은, 생명을 박탈하는 행위와 그렇게 힘없이 빼앗겨 버리는 생명의 덧없음뿐이다.

최용호 역시 이 부분을 일정 부분 주목했고, 필요할 경우는 그 힘을 자유자재로 휘둘러 왔다. 준엄한 선고에 찬 확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개인을 드러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는 자신의 선택에 어떤 확신을 가지고 있으나, 강한 긍정은 부정이나 마찬가지이고 확신과 허세는 동전의 양면인 법이다. 어쩌면 그는 작품을 통하여 타인에게 선고하듯 말하는 자신의 모습을 끝없이 회의하며 바라보고 있지는 않을까.

고래여인에는 바로 그러한 최용호의 모습이 담겨있는데, 어쩌면 작품을 통하여 내리는 그의 확신에 찬 선고들은 모두 자기 스스로를 위한 최면이나 세뇌인지도 모를 일이다. 왜 고래여인의 머리 위에만 비가 내리고 있는가. 왜 그녀는 똑바로 서 있지 못하고 10도 정도 기울어져 있는가. 답은 최용호만이 알고 있으나 그 역시 확답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며칠 전 그가 일하는 곳에 찾아가 초면의 그에게 뻔한 질문 한 가지를 던져본 적이 있었다.

- 지금 자신의 작품들에 얼마나 만족하는가?

그는 4초 정도 생각하는 체 하더니 뻔한 대답을 말해 주었다.

- 70% 정도.

어차피 인간이란 욕심을 벗어날 수 없고, 욕망이야말로 개인의 본질이라는 낡아빠진 그리스 철학 구절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어차피 고래여인의 속삭임이 던지는 확신은 작가가 느끼기에 30% 부족한 상태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어쩌면 그도 알 지 모르는 것을. 아니, 모를 리가 없다. 자신의 작품에 대해 100% 만족하는 순간, 예술가는 무의미한 작업을 일삼으며 공전하다가 결국 좌초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그는 꾸준히 만족을 경계하고 있다. 수신에 제가, 치국까지 어느 정도 마치고 평천하를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도 만족을 모르는 것이다. 설사 평천하를 완전히 달성한다 해도 그는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만족을 모르는 야심을 가진 자는 그래서 예술가다. 그 누가 뭐라 하던 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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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정
잡지디자이너 과심은 여러분야에 관심은 많으나 노력은 부족함 디자인계에 정보를 알고싶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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