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전체보기

분야별
유형별
매체별
매체전체
무신사
월간사진
월간 POPSIGN
bob

그래픽 | 리뷰

달을 물들인 작가의 이야기

2010-01-19


한국적인 정서를 담뿍 담은 그림책『달은 어디에 떠 있나?』에서 장호 작가는 사실 그대로보다는 작가의 주관적인 해석에 따른 색감을 통해 감정을 충분히 드러내고자 한 표현방식을 선보였다. 이것이 독자들에게는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다면, 그림책 작가로 입문한지 얼마 되지 않은 그에게는 큰 영예를 안겨주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어린이 책 박람회인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달은 어디에 떠 있나?』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된 것.

에디터 | 이영진(yjlee@jungle.co.kr)

눈이 부셔 흘깃 쳐다보기도 힘든 태양보다, 어두운 밤에 은은한 빛을 내는 달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에디터뿐일까? 우리는 달맞이를 하며 소원을 빌고, 날마다 달라지는 달에 특별한 의미를 담기도 한다. 하지만 흔히 달의 모양이 달라진다는 사실만을 인지할 뿐, 달에 따라 뜨는 시간과 뜨는 곳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달은 어디에 떠 있나?』는 초승달, 반달, 보름달 등 달라지는 달의 모습과 함께, 그 달의 행로를 쫓아가며 달이 뜨는 시간과 위치가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 주는 동화책이다.


『달은 어디에 떠 있나?』의 각 장면마다 주인공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것은 인물이 아니다. 어느 페이지에나 꼭 나와 있는 ‘달’이다. 초저녁에 뜨는 초승달은 아빠와 딸이 어둑해지는 강변을 달리고, 밤새도록 뜨는 보름달은 시끌벅적하고 풍성한 시골 장터를 비춘다. 새벽에 뜨는 그믐달은 어슴푸레 밝아오는 골목을 청소하는 청소부 아저씨에게 조명이 된다. 적절한 장면 설정과 미묘한 색감의 차이를 표현하면서 달을 볼 수 있는 시간대를 과학적으로 설명해주는데, 이 달은 그림만으로도 마치 종이에 특수 처리를 한 것처럼 달이 빛나는 효과를 내기까지 한다. 『달은 어디에 떠 있나?』를 그린 일러스트레이터 장호는 이 달을 그리는 데만 3개월이 걸렸음을 털어놓는다. “그때가 여름이었어요. 작업실이 집까지 거리가 좀 돼 자전거를 타고 다녔지요. 매번 부천 중동의 중앙공원을 지나다녔는데, 그곳에서 달을 관찰하기 시작했어요. 고민도 고민이지만 고생을 많이 했어요. 채색하는데 여러 달 걸렸거든요.” 3배 접지인 장지에 반수처리(아교+백반+물)를 세 번 하고, 그 위에 아크릴로 작업하는 등 보통 아크릴을 유화처럼 두껍게 칠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는 물에 탄 연한 아크릴을 여러 번 칠하는 방법을 썼다. 칠하는 게 아니라 물들인다는 기분으로 했다는 것. 그래서 그의 ‘달’이 유난히 물감으로 물들어 은은하게 빛나 보이는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사람, 그러니까 초상화 작업을 주로 해왔던 일러스트레이터 장호는 사실, 어린이 책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올해 초 볼로냐아동도서전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되고, 프랑스 출판사와 저작권 계약을 맺은 것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그림책에 사랑을 담아 그리고 있다는 그의 말을 충분히 증명하는 셈이다.


Jungle : 이번에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달은 어디에 떠있나?』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에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선정 소식을 듣고 느낌은 어떠셨나요?
처음엔 이 상의 의미를 몰라 소식을 전해준 사람이 더 좋아하며 흥분하였던 거 같습니다. 아는 사람들을 통해 멋진 상이라는 얘길 듣고 기분이 아주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Jungle : 달은 어디에 떠있나?』에서 가장 애착 가는 페이지는 어딘가요?
제 딸이 모델로 이 책의 아이를 그렸어요. 딸과 같이 자전거 타고 산책 나가고 야영하곤 했는데 이런 추억들을 각 장면에 담았지요. 아무래도 이런 장면들이 애정이 갑니다.

Jungle : 『달은 어디에 떠있나?』에서 가장 그리기 힘드셨던 그림은 어떤 부분인가요?
별과 달이 힘들었습니다. 특히 반짝 반짝 빛나는 별 그리기가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었습니다. 고민도 많이 했고, 채색하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Jungle : 『달은 어디에 떠있나?』를 보는 독자들이 어떤 부분을 꼭 챙겨 봐주면 좋을까요?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다 보입니다. 그림 속에서 아빠와 다정히 함께하던 딸이 혼자 하늘을 보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장면에 고양이가 자신의 새끼로부터 자꾸 멀어지고, 새끼 부엉이는 스스로의 힘으로 날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넣어보았습니다. 제가 그린 달을 보고 아이들의 스스로 꿈을 이루어 가는 징검다리가 되어준다면 바랄 게 없겠습니다.

Jungle : 원고를 보시면, 어떻게 그려야겠다고 바로 떠오르시나요?
글을 보면 어떤 재료를 써야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은 바로 떠오르는 편입니다. 대신, 연출은 그림책 작업에 있어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것 같습니다. 다섯 차례를 넘게 밑그림 구상을 하거든요. 이때 디자이너와 편집자, 그림 작가의 치열한 신경전을 펼치는 거 같아요^^ 저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 편입니다. 아직까지는 그림책 화가로 몇 년 안되니 배운다는 생각으로 이야기를 나눌 때가 많습니다.


Jungle : 이전에는 초상화 작업에 관심이 많으셔서 작업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최근에는 그림책에 집중하시는 것인가요?
초상화는 얼굴도 닮아야지만 정신을 닮게 그려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실적인 기풍에 살아있는 속 마음을 그릴 수 있다는 점이 초상화의 매력입니다. 문제는 초상화로 먹고 살 수 없다는 겁니다. 때가 되면 초상화를 다시 그릴 것입니다. 거리의 초상화가요. 제 꿈입니다.

Jungle : 초상화나 그림을 그리실 때 모델이 있을 것 같은데, 누구인가요?
학원강사를 그만 두면서 초상화 개인전을 계획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림책의 그림을 그리면서 무기한 미뤄졌어요. 그 때 여러분을 모델로 생각해두었죠. 저를 가르치셨던 선생님, 벗, 짝사랑했던 여성*^^*, 아이들. 주로 그려왔던 모델은 딸아이와 저 자신이었습니다.

Jungle : 그러면 초상화를 그리시다가 그림책을 그리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부터 그림을 잘 그린다는 소릴 많이 들었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어요. 학교 쉬는 시간에 미술부 선배가 교실에 들어와 “미술부 나와!”라고 소리쳤는데 얼떨결에 일어나 미술실에 잡혀갔어요(웃음). 그 뒤로 계속 그림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대학에서도 그림을 전공했구요. 하지만 졸업 후 소수의 유명한 화가들을 빼면 대부분 배고픕니다. 다른 일을 해서 그림을 그리는 일을 계속하게 되는데, 저는 학원 무명강사를 했습니다. 15년을 했으니 젊음을 다 바친 거죠(웃음). 2005년에 학원을 그만두게 되었고, 운 좋게 알고 지내던 그림책 아트디렉터의 도움으로 그림책 작가로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출판사 관계자의 요구에 맞추어야 하는 그림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는데, 직접 작업을 하면서 느낀 것은 그림작가의 생각을 존중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생계를 유지하면서 좋아하는 그림을 온종일 그릴 수 있다는 게 너무 즐거웠습니다.

Jungle : 따님도 있으시다면, 아빠가 그린 그림책을 좋아할 것 같아요.
잘 표현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그런지 표현을 잘 안 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5학년인 딸의 친구들에게 가끔 자랑하는 거 같습니다. 돌고 돌아 제 귀에 들리기도 하거든요. “그림책 화가라면서요?”라고요.^^


Jungle : 지금까지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오신걸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작 『강아지』에서 유화 재료를 사용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강아지』의 노마, 기동이, 그리고 아이들이 생동감 넘칩니다. 역동적인 아이들을 표현하는데 유화가 좋을 거라는 판단이 먼저 들어서였습니다. 또 흙장난하길 좋아하는 아이들의 특성상 흙담의 질감과 색을 살릴 수 있는 유화로 그렸습니다.

Jungle : 존경하는 일러스트레이터가 있으신가요?
『어린왕자』를 쓰고 그린 생텍쥐페리를 존경합니다. 그의 『어린왕자』를 여러 번 읽고 보았습니다. 그의 그림은 참 맑은 것 같아요. 어린왕자의 맑은 눈을 그릴 수 있는 화가가 되고 싶습니다.

Jungle : 요즘 읽었던 그림책 중에 가장 마음에 남는 책이 있다면요?
이수지씨의 『파도』가 진하게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생기 넘치는 표현력, 그리고 검은색 사물들과 하늘빛 파도의 절묘한 만남, 다시 보지 않을 수 없어요.

Jungle : 독자들에게 어떤 작가로 기억되길 바라시나요?
잘 웃는 화가로 남고 싶습니다. 보고 나서 또 다시 보고 싶어지는 그런 그림을 그리는 그림책 작가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Jungle :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 주세요.
최근에 출간한 그림책 『강아지』를 예쁘게 봐서인지 동물들과 관계된 그림책을 내놓게 되네요. 올 3월엔 암탉 이야기 그림책이 나와요. 이어서는 구렁이와 흰 여우 이야기, 내년에는 병아리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이 나올 예정입니다. 동물의 왕국을 자주 본다는 걸 사람들이 아나 봐요(웃음). 그리고 지금까지는 그림 작업만 해왔는데 이제 글과 그림을 함께 해볼 생각입니다. 꿈이죠. 시 같은 글을 조금씩 준비하고 있어요. 꿈을 이루도록 말에요.

facebook twitter

당신을 위한 정글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