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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리뷰

중국현대미술의 속살 들여다 보기

2010-03-30


열혈 아트 컨설턴트로 중국미술 현장을 누비는 저자와 그 과정에서 만난 중국인 아티스트, 버려진 군수공장에서 현대미술의 중심지가 된 798예술구까지, 여전히 굳건한 중국현대미술의 힘을 실감케 하는 『꿈꾸는 미술 공장, 베이징 일기』속으로 들어가 보자.

에디터 | 이영진(yjlee@jungle.co.kr)


『꿈꾸는 미술 공장, 베이징 일기』는 미술사나 미학적인 관점에서 중국 작가들이나 중국현대미술에 대해 논하는 책은 아니다. 중국현대미술이 폭발하던 2000년대, 운 좋게도 그 현장 한복판에 있었던 저자 한혜경이 중국 미술 현장에서 보고 듣고 겪은 이야기들을 책에 담았다. 2001년 베이징으로 건너간 저자가 중앙미술학원의 유일한 외국인 학생에서 798 예술구의 풋내기 갤러리스트로, 어엿한 아트 컨설턴트로 성장하기까지 현장에서 마주친 중국 미술의 다양한 풍경과 아티스트들에 대해 그리고 있다. 저자가 현장에서 부딪치고 겪은 이야기들은 중국현대미술의 빠른 성장이 가져온 혼란까지도 고스란히 드러낼 만큼 생생하다.


올림픽을 앞두고 베이징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을 때, 올림픽만큼이나 빠짐없이 화제의 중심에 오른 것이 있었다. 바로 다샨즈(大山子) 798 예술구. 버려진 군수공장이 가난한 예술가들의 아틀리에촌으로, 다시 중국현대미술과 아시아 미술의 중심지로 탈바꿈한 극적인 스토리는 전 세계인을 사로잡았다. 798 예술구가 이토록 관심을 끈 것은 버려진 군수공장과 현대미술의 조합에서 오는 공간 자체의 매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례 없는 호황기를 맞은 중국현대미술의 대약진이라는 배경도 주효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현대미술의 화려한 비상 이면에는 일찍이 거품 논란이 있어 왔고 지나친 상업화로 인한 부작용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 무성한 논란 속, 중국현대미술이 겪은 극적인 변화는 저자가 소개하는 한 에피소드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불과 20여 년 전 “중국 아티스트들에게는 돈과 작업실만 빼고 다 있다!”라는 말로 대변되던 중국현대미술의 상황은, 과장된 우스갯소리일지언정 “현재의 중국 아티스트들에겐 돈과 큰 작업실을 빼곤 아무것도 없다!”라는 말로 요약될 정도로 급변했다. 5백만 원을 조금 웃돌던 작품이 3개월 만에 2천만 원으로 뛰고(93~97쪽), 젊은 작가들 사이에선 시장에서 먹힐 만한 일정한 스타일이 유행처럼 번지는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한다. 저자 역시 그런 과열 현상에 대해 느꼈던 반감을 숨기지 않는다. 전례 없는 중국 미술시장의 호황 이면에 드리운 그늘은 중국현대미술 붐의 주역인 1세대 작가 웨민쥔과 리우웨이의 이야기에서도 드러난다. 중국현대미술과 거의 동의어나 마찬가지인 웨민쥔은 지금의 유명세를 부담스러워하며 오히려 춥고 배고프던 옛 시절을 그리워하고, 리우웨이는 화풍에 급속한 변화를 주며 속세와는 거리를 둔 채 작업에만 매진한다.


그러나 저자가 얘기하고자 하는 중국 미술의 진짜 모습은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을 현실로 이루어 내는, 꿈이 실현되는 현장이라는 점이다. 세계 미술계에서 변방인 아시아, 그것도 현대미술과는 근본적으로 양립하기 힘든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의 현대미술이 세계를 호령하게 되는 꿈같은 일이 이루어지기까지, 거기 깃든 아티스트들의 기개와 열정이 어떠했는지, 저자는 원명원 작가촌 시절, 중국 최초의 현대미술 전시인 《No U turn》展같은 중국현대미술사의 핵심 순간들을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로 녹여서 짚어준다. 또 대작이 많기로 유명한 중국 미술이 실질적으로 탄생하는 공간인 조각공장을 소개하면서는 “중국 아티스트들은 자신들의 꿈을 용감하게 실행하고 현실로 만들어 내는 강단이 있다. 나로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구상을 눈앞에 현실로 펼쳐 보이는 그들의 모습을 볼 때면 거기에 깃든 아티스트의 노력과 또 그런 일들이 가능한 시대를 만난 그들의 행운에 매 순간 감동하게 된다.”라고 말하면서 중국 미술의 꿈과 저력을 한마디로 정리해 준다.


중국 미술의 저력은 미술계 사람들과 아티스트들의 이야기를 통해 구체화된다. 학생 시절 저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며 마음의 멘토가 되었던 로렌츠 헬블링을 비롯하여, 중국 미술의 미래라고 할 수 있는 또래 젊은이들, 예를 들어 안정된 수익이 보장되는 블루칩 작가들은 뒤로 하고 70년 이후에 태어난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는 모험을 택한 스타 갤러리의 젊은 디렉터 팡팡, 남들보다 이른 성공을 거두었지만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 납득할 만한 아티스트가 되고자 애쓰는 젊은 아티스트 천커등의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성공’이라는 화려한 이름 뒤에는 언제나 미술을 향한 진심과 열의가 존재했음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런 진심과 열의가 있기에 거품 논란이나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팡팡의 말처럼 중국 아티스트들과 중국 미술이 “가장 견고하고 강한 거품이 될 것”임을 보여 준다.

이 책은 중국 미술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저자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내내 그림을 그리고 한때 미대 입시를 준비하며 막연하게 미술과 함께 하는 삶을 꿈꾸었던 저자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어린 나이에 ‘불시착’이라고 표현할 만큼 무모하게 베이징행을 택했다. 이 책은 베이징이라는 낯선 도시에서 저저가 어떻게 잠시 잃었던 ‘미술’이라는 꿈을 향해 다시 나아가게 되었는지 보여 준다. 중국의 대표 미술대학인 중앙미술학원의 유일한 외국인 학생으로 고군분투하던 저자는, 상하이 박물관 특별전을 보기 위해 줄지어 선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미술을 향한 열의와 진심을 배우고, 학교 과제를 위해 베이징 최초로 열린 아트페어 현장을 찾았다가 몇 번의 우연이 필연으로 이어지면서 미술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798 예술구에 최초로 진출한 한국 갤러리였던 ‘스페이스 이음’의 스텝으로 처음 미술계에 입문한 이후 어엿한 아트 컨설턴트로 성장하기까지 베이징과 중국 미술계가 자신에게 베풀어준 인연에 대한 저자의 깊은 애정이 책 곳곳에 스며 있다. 그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애정이 있기에 저자가 전하는 중국 미술 이야기들은 한층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이 책은 798 구석구석을 누빈 저자의 경험을 살려 798 예술구를 제대로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798 예술구의 형성부터 지금까지 겪은 변화를 소개하는 것은 물론, 갤러리를 비롯해 카페, 서점, 숍 등 저자가 직접 선별한 곳들을 지도와 함께 수록했다. 중국 미술계와 798 예술구를 깊숙이 누빈 저자가 소개하는 798의 갤러리들은 중국 미술의 파워와 세계 미술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공간들이다. 또한 여기 소개된 카페, 레스토랑, 각종 숍들은 베이징 최고의 관광 명소이자 힙 플레이스이기도 한 798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다. 더불어 베이징 생활 동안 저자에게 위안이 되었던 곳들, 베이징의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 곳들도 소개했는데, 베이징을 찾는 사람들이 저자가 경험한 만큼 다채롭고 신나는 베이징을 경험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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