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전체보기

분야별
유형별
매체별
매체전체
무신사
월간사진
월간 POPSIGN
bob

그래픽 | 리뷰

디자인도 통역이 되나요?

2010-01-19

지금을 살고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는 ‘넘침’을 경계한다. 정신 없이 쏟아져 나오는 신기술, 디자인에 대한 눈이 날이 갈수록 높아져가는 대중, 국경 없는 디자인의 경계까지 그들을 옥죄는 족쇄는 차고 넘친다. 그리고 이 기술과 사람과 국경은 아무 말이 없이 디자이너에게 ‘보다 나은 디자인’을 원한다. 귓가에 누군가 기가 막힌 해법을 전달해준다면 얼마나 고마울까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뉘앙스 없이 명료하게 디자인을 번역한 비즈앤비즈의 『무엇을 위한 그래픽 디자인인가?』

에디터 | 이안나(anlee@jungle.co.kr), 자료제공 ㅣ 비즈앤비즈


“무엇을 위한 그래픽 디자인인가?” 이 질문을 받으면 뭔가 의미 있는 답을 먼저 찾으려 하겠지만, 간단히 말하면 그래픽 디자인은 ‘의사소통에 쓰이는 일종의 언어’이다. 그래픽 디자인은 누군가가 원하는 것 혹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전달하기 위해 사용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결코 쉽지 않다.

우리는 이런 질문에 답할 때 보통 ‘어쨌든’이라는 말로 얼버무리며 갑자기 대화를 끝내버리든가, 그래픽 디자인이 적용된 모든 아이템과 그 효과를 열거하면서 이야기를 끝내려고 할 것이다. 물론 더 구체적인 답을 늘어놓을 수도 있다. 돈을 벌려고 상품이나 아이디어를 파는 것이라거나, 정치적 목적을 위함이라는 둥. 하지만 이때 우리는 그래픽 디자인이 그런 행위 자체를 비판하기 위해 쓰이기도 한다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된다. 그래픽 디자인의 목적은 모호한 것을 분명하게 하고, 심지어 생명을 구할 때도 있지만, 복잡함과 미묘함 그리고 뉘앙스를 가미해 우리의 일상을 풍요롭게 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사람들이 나아갈 길을 찾고 데이터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반면, 새로운 아이디어와 환상적인 이야기, 풍경 속에서 길을 잃게 하거나 제시된 정보에 대해 의문을 갖고 반박하게 하기도 한다.


그래픽 디자인은 사회생활의 모든 측면과 연관되어 있다. 그 범위는 운전자들에게 차를 멈추라고 알려주는 교차로의 정지 신호, 식품에 얼마나 많은 콜레스테롤이 함유되어 있는지를 알려주는 성분 표시, 영화의 분위기와 주제를 그래픽적으로 요약함으로써 관람객의 선택을 유도하는 타이틀 시퀀스에까지 이른다. 그래픽 디자인이 분석 대상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그 고유의 모순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래픽디자인 제품과 결과물의 다양성과 파급 효과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의 사회적 맥락에서 볼 때, ‘목적’을 갖거나 무언가를 ‘위함’이라는 디자인 개념은 다소 시대착오적이다. 그것은 마치 이데올로기나 근본적 진리가 통하고 여러 성명이 발표되던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20세기 초반에는 유럽에 뒤이어 미국에서도 많은 디자이너가 모더니즘을 지지했다. 그 시기에는 디자인의 힘을 사회적·정치적 발달을 위해 쓰는 것이 자신들의 (도덕적) 의무라 여겼고, 디자이너들은 공통된 시각적 소통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국제 관계가 보편적 이해를 통해 형성되기를 바랐다. 이들은 미적 매력보다는 처절한 의무감 때문에 미래지향적 그래픽 언어로 자신들을 표현했다. 이제 그래픽 디자인은 형성부터 20세기 초의 정치적 혁명과 연계된 하나의 수단이자 사회적 발전을 목표로 하는 도구가 된 것이다.


오늘날의 디자이너들은 주제와 어떻게 냉정하고 비판적인 거리를 유지할 것인가 그리고 일상적인 현상과 모호함, 복잡함, 심지어 부재를 어떻게 세상에 알릴 것인가와 같은 문제를 고민한다. 또한 전통적으로 숭배하는 소통 모형에 대해 끈질기게 문제를 제기한다. 이런 모형에서 디자이너는 작가이자 선동가,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청중, 메시지 전파자 또는 그런 메시지를 소비하는 소비자의 위치에 선다.

오늘을 사는 21세기의 그래픽 디자이너들은 어렵지만 흥미진진한 도전과제에 직면해있다. 그것은 바로 클라이언트와 소비자 간의 새로운 상호작용을 돕는 신기술, 디자인에 대해 점점 더 유식해져 가는 대중, 그리고 국경 없이 주고받는 전 세계적 문화적 영향 등이다. 그뿐만 아니라 고민거리는 더 있다. 크래프트와 복잡성, 다학문적 디자인의 필요성, 버나큘러 디자인, 저항을 위한 디자인 등. 이 책은 이러한 동시대 디자인을 형성하는 이슈들을 탐구하고 그래픽 디자인 분야를 샅샅이 살펴본다.
디자인의 참뜻을 깨닫는 이상적인 디자이너는 어떠해야 하냐는 질문에 정답은 없다. 이 책에 실린 세계 각지에서 활동하는 뛰어난 그래픽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엿보면서 해답을 찾아보는 것이 대안이다.

facebook twitter

당신을 위한 정글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