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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리뷰

태연하게 그리고 평범하게 하지만 다르게 놀기

2007-01-30


서점 진열대 위의 책들이 각자 생긴 얼굴로 누워있다.
책의 모양을 하고 껍데기만 바꾼 채 서로 다른 이야기를 품고 누워있다.
정치 디자인, 디자인의 정치란 다소 정신 산만해 보이는 타이포가 들어온다.
이들은 정직한 타이포로 시작했지만 서로 얽히고 설켜 정직함을 거부했다.
표지 디자인도 붉은 태극기와 초록 성조기가 오묘하게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 재미있다.
게다가 현재 가장 안 나가는 단어 정치와 가장 잘 나가는 단어 디자인이 함께 존재하는 책이라니…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길래 이런 긴장감 도는 디자인이 나왔을지 그 속이 궁금해졌다.

취재| 이동숙 기자 (dslee@jungle.co.kr)

붉은 태극기의 앞 표지와 녹색 성조기의 뒷 표지가 서로 대치하는 가운데 정치와 디자인은 서로 얽혀있었다. 그 것들은 내지에서 해체되고 분해되어 나열되고 이어서 정치 디자인에 관련된 내용들이 줄줄이 엮어진다.
이 책의 편집디자이너 이정혜씨는 책에서 보여지는 것들에 대해 특별한 의미와 연관성을 부여하고 싶었다고 한다. 붉은 톤의 태극기가 가진 붉은 색에 대한 우리민족이 가진 적대감, 억압 등 미묘한 감정을 표현하고 녹색의 성조기는 군인의 군복색인 녹색으로 전쟁을 의미하면서 서로 대치된 상황을 은유적으로 표현하였고 다른 책에서는 사용하지 않았던 내지에 그것들을 해체시켜 배치함으로써 가볍게 책이 가진 고정된 양식을 비틀어냈다.

이 책은 전시의 도록이다. 단행본처럼 둔갑을 하고 서점에 놓여있지만 기본출발은 도록이었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정치 디자인에 관련된 서로 다른 목소리와 감정을 가지고 프로젝트를 진행하였고 그 모든 것을 담아내기 위해 도록은 단행본이란 정형화된 책의 종류를 택했다. 가장 많이 자세하게, 그리고 다른 느낌으로 표현하기 위한 편집디자인의 장치는 책의 곳곳에서 발견된다.
아주 평범하고 고루한 판형의 책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서 벌어지는 틀을 깬 모든 것들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신선하게 다가올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게다가 흔한 판형은 가격도 정직하다. 속에 담을 종이는 세가지를 택한다. 아주 싼 종이, 그보다는 좀 더 비싼 종이, 그리고 또 다시 그 보다 저렴한 종이. 그 종이들 또한 담아내는 내용에 따라 달리하기 위한 그녀만의 표식이자 원가절감의 결과를 이끌어 낸 아이디어다. 전시도록은 작품을 담아야 하기 때문에 속지선정에 있어서도 일반 책에 비해 양질의 종이를 택해왔기에 두꺼운 단행본을 모두 채우기엔 가격을 무시할 수가 없다.
아주 작은 잔꾀를 부려 저렴한 종이에는 학자와 연구자 등의 서술이 우선시 되는 전시작을 담았고 번쩍이는 비싼 종이에는 시각적인 작업 위주로 담아냈다. 서로의 섹션을 구분해 주는 것을 물론 원가 절감이라는 효과도 얻었다. 독자에게는 또한 새로운 시작점과 끝나는 점을 손으로 느끼게 해주는 역할도 한다.


세가지로 나뉘어진 종이는 또다시 작가별로 다른 타이포와 배열을 통해 나뉜다. 작가의 성격, 작품의 내용 등 작가가 가진 색을 뽑아내어 가장 적합한 형태의 타이포와 배열을 찾아내어 서로 다른 모습의 편집 디자인들을 한 책으로 묶어냈다.
특이한 것은 그러한 설정이 눈에 거슬리기 보다는 서로 알 듯 모를 듯 조화를 이루고 있어책이 산만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것은 각각의 내용이 조금씩 연관성을 가지고 디자인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디자인적인 요소는 이정혜씨의 다른 작업들에서도 서로 연관을 띄며 발견된다. 그녀가 처음 책이란 매체의 편집디자인을 작업했던 <욕망의 사물, 디자인의 사회화 objects of desire, design and society since 1750> 에서도 앞 표지부터 그 속의 텍스트와 그림 배열, 그리고 마지막 뒤 표지까지 창이라는 모티브로 연관성을 가지면서 기존의 일반적인 편집 틀을 깨면서 실험적인 시도를 했다.


이러한 틀을 깨는 시도는 단순히 디자인적인 면에서 독창적인 작업을 추구하기 위해서가 아닌 책이 담아내는 컨텐츠의 특성까지 고려한 디자인으로 그 내용에 따라 그릇을 달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단순히 디자이너가 디자인만 하는 것이 아니라 책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 지는 알고 디자인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녀는 서구로부터 일방적인 수용을 해야만 했던 산업적인 책의 생산방식으로 인해 답습되고 고정된 틀을 서서히 깨나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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