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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리뷰

교과서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2005-03-08


세상에서 가장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는 책을 꼽으라고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아마도 '역사교과서' 일 것이다. 졸린 눈을 비벼가며 수업시간에 배웠던 고리타분한 이야기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외면을 받아왔던 역사 교과서가 베스트셀러가 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그것도 학생들 사이에 가장 인기가 높다고 하니 오히려 의아할 따름이다.
휴머니스트에서 제작한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는 총 1, 2권을 합쳐 2002년부터 지금까지30만부가 넘게 팔려 나갔다. 지금까지 역사 교과서가 재미없다는 사람들의 인식을 한번에 바꿔놓은 '살아있는 역사 교과서'의 제작 스토리를 담아왔다.

취재 | 권영선 기자 (happy@yoondesign.co.kr)

얼마 전까지 필수과목이었던 국사 교과서가 선택과목으로 바뀌게 되면서 일반 출판사에서도 국사 교과서의 제작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렇게 정책이 바뀌게 되자 휴머니스트에서는 그 동안 딱딱하고 지루했던 국사 교과서의 새로운 변신을 꿈꾸었다.
맨 처음 이 책이 세상에 나왔을 때 모두들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의 신선하고 알찬 내용에 반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현재의 복잡한 학교 행정으로는 이 책으로 수업을 하는 데 많은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부단한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그대로 세간에 사장이 되어 버리는 줄 알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일부의 생각 있는 선생님들에 의해 이 책이 쓰이기 시작했고, 학생들 사이에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어느새 이 책은 매달 평균 3천부 이상이 나가는 베스트 셀러가 되어 버렸다.

지금까지 교과서 디자이너의 역할이 편집단계의 마무리를 담당했다면, 이 책을 만드는데 있어서 디자이너의 역할은 기획단계부터 최종단계까지 함께 참여를 하는 아트 디렉팅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 전체 디렉팅을 담당했던 이준용 디자이너는 제작의 거의 첫 단계라 할 수 있는 기획단계부터 작업에 함께 참여했다.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는 국사 교과서의 구성요소인 연표의 개수, 이미지의 양, 텍스트의 분량까지 하나 하나까지 회의를 거치면서, 작업의 대부분이 이루어 졌으니 디자이너의 새로운 영역의 확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과거의 북 디자인은 '책의 디자인'보다 내용이 더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판매에 열을 올리기 위해 표지 디자인에만 치우쳐 발전해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점점 시각화 되는 소비자들의 다양한 욕구로 인해 북 디자인에도 표지 디자인과 더불어 본문까지도 디자인화 되는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덕분에 일반 교과서의 디자인까지도 이미지가 전체를 좌우하는, 소위 잡지식의 편집 스타일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하지만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의 경우에는 일반적인 북 디자인의 흐름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잡지식의 편집 스타일을 따르기 보다는, 책의 내용을 중시하는 단행본의 형식을 따랐다. 지나치게 화려한 본문의 디자인으로 인해 정작 중요한 내용을 해치는 것 보다, 적절한 이미지 요소들의 배치로 책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책'의 본질적 의미를 살리는데 주력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교과서가 '보는 책'에 컨셉을 맞춰 제작을 했다면 '한국사 교과서'는 '읽는 책'에 컨셉을 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글의 가독성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이미지들을 하단에 배치하고, 이미지와 텍스트가 서로 상호 보완할 수 있는 레이아웃을 고려하여 작업에 임하였다.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를 디자인하는 일은 디자이너의 감각보다는 역사에 대한 이해가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작업이었다. 내용에 맞는 이미지 배치와 레이아웃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편집진과의 계속되는 회의를 거쳐 이미지의 양과 위치, 텍스트의 분량을 정해 전체 단원의 흐름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렇게 진행을 하다 보니 디자이너가 제공하는 구성요소가 오히려 많아지게 되었다.
다섯 명의 선생님들로 이루어진 집필진과의 수많은 이견의 거리를 좁혀가며, 디자인 작업에만 총 6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1. CG, 포토 애니메이션으로 다양한 표현의 변화를 모색하다.
과거의 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역사서의 경우, 거의 모든 출판사에서 동일한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다. 예전의 교과서와 지금의 교과서에 실려 있는 이미지가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에 있어 편집팀과 디자이너는 이미지의 업그레이드 방법에 대해 많은 논의를 거쳤다. 보다 다양한 표현으로 색다른 교과서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CG작업과 포토 애니메이션 기법이다.

1권에서는 우리 문화재를 좀더 효과적이고 흥미롭게 구현하기 위해 컴퓨터 그래픽으로 문화재를 보여주는 새로운 시도를 해보았다. 총 11장의 표제지로 꾸며져 있으며, 각 시대별로 그 시대를 대변 할 수 있는 문화재로 구성하였다. 이 11장의 표제지를 모두 펼쳐 놓으면 조선 후기까지 우리나라의 주요한 문화사를 읽을 수가 있다.
기존의 교과서나 박물관의 도록에서 사진으로만 보아오던 평면적인 모습과는 달리, 생동감과 입체감이 느껴지는 우리의 문화재를 실제처럼 살펴 볼 수 있을 것이다.

2권은 근 현대사를 주로 다루고 있다. 1권과 마찬가지로 11장의 표제지로 구성이 되어 있다. 포토 애니메이션 기법은 출판 쪽에서는 처음 사용한 기법으로 자칫 무겁게 비칠 수 있는 중요사건들을 밝은 캐릭터들로 다시 자연스럽게 재현했다.
역사라고 하면 무겁거나 동떨어진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지금 아이들의 모습을 캐릭터화하여 또래의 아이들이 겪었을 역사 속의 일들이 이 책을 읽는 학생들의 일처럼 느껴지게 했다.

2. 두드러진 색 체계를 통해 시대적 특징을 살펴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보자기를 살펴보면 여러 가지 색들이 조화를 이루며 하나됨이 더욱 강조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모티브를 얻어 각 시대별 색 체계를 만들었다.
전통적인 색동색이 아닌, 다양한 색채를 통하여 각 시대적 특징을 각인시키고자 노력했다.
국가의 태동기는 땅의 느낌을 주는 브라운 계열을, 화려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신라는 핑크색을, 고려시대는 그 시대를 대표하는 청자를 떠올리기 쉽게 파스텔 그린으로 각각 표현하였다. 이는 통일감 있는 색 체계를 통해 역사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고, 오랫동안 기억될 수 있게끔 한 것이다.

3. 지도를 보면 역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지도는 반도로서 대륙에 걸쳐 있는데다가 모양이 세로로 길어서 지면상에 자리를 잡기가 그리 쉽지 않은 형태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생각을 한 것이 기존의 교과서와 달리 지도를 네모 박스 안에 가두지 않고, 만주와 연결된 지형적인 특성을 살려 전체적인 모양이 나오도록 하는 것이었다.
내용상으로 글을 보지 않고도 지도만으로 어떤 역사적 사건이 있었는지를 살펴 볼 수 있도록 지도에 내용을 담아 표현하였다.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본문의 각 시대별 나라별 색 체계도를 지도에 적용함으로써 보다 쉽게 역사에 다가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리 쉽지 않은 작업이었던 만큼 우리나라 지도 표현의 새로운 장을 연 계기가 될 것이다.

4. 우리나라의 기본 서체로 전통의 단아함을 전한다.
한글은 역사와 같이 끝없이 개발하고 가꾸어 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이다.
이런 생각에 현재 흔히 사용하고 있는 한글의 변형체보다는 오랜 세월 동안 다듬어진 기본 서체를 사용하도록 노력했다. 본문에 명조체와 명조체의 변형을 사용함으로써, 전체적으로 단아한 한글의 미를 살렸다. 소제목으로는 조금 더 정리된 고딕 서체를 브라운 계열로 사용함으로써 본문보다 도드라지지 않으면서도 본문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도록 하였다.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의 디자인을 담당했던 이준용, 김준희 디자이너는 풀어야 할 과제가 많았던 만큼 보람이 있는 작업이었다고 말을 한다. 책의 특성상 최소한 5년 이상을 내다보아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되기는 하였지만, 많은 학생들에게 오랫동안 읽힐 수 있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지금까지 가슴이 벅차오니 말이다.
이 책의 디자인을 처음 시작한 것이 2001년이고, 책이 발행 된 것이 2002년, 그리고 베스트셀러로 개정판이 나온 것이 작년 12월이었으므로 최초 발행 후, 3년 만에 다시 태어났다고 말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세상에 빛을 발하지도 못할 것만 같았던 역사책이 교과서로는 처음으로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뜻밖의 성과에 그들의 기쁨도 무척이나 컸다.
많은 사람들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그들은 지금도 책 디자인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교과서로는 이례적으로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랐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재미없고 외울 것만 많은 국사 교과서를 단지 지식의 나열로만 표현하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았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소설처럼 재미있게 읽히는 책을 만들자' 라는 것이었고, 그것이 맞아떨어진 것 같다.
현직 교사들을 주축으로 원고를 보다 열심히 집필했고, 그에 발맞추어 디자인 작업에 적극적으로 임하였다. 그런 일련의 노력들이 모여 빛을 발했다고 생각한다.
강의와 암기만으로 이루어지는 역사 수업을 넘어, 생동감 있는 이야기와 감동이 살아 숨쉬는 역사 속 이야기들을 전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대략 몇 권의 책들이 팔렸는가?
일반적인 단행본의 첫쇄(초판본의 수)는 대략 3천부에서 5천부로 3개월 안에 첫쇄를 모두 파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의 경우 지금까지 15쇄가 찍혔으며 약 30만부 이상이 팔린 것으로 알고 있다.
보통 매번 부수를 정해서 찍어 내는데, 이 책의 경우에는 15쇄 까지 인쇄가 될 정도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구매층도 다양화되어 학생뿐만 아니라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거나, 교양을 쌓기 위한 사람들까지도 이 책을 즐겨 찾는다고 한다.

교과서 디자인과 일반 북 디자인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무엇인지 말해달라.
다른 북 디자인과 달리 교과서 작업은 생명력이 길어야 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한번 제작이 되어 세상에 나오면 1,2년 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보통 5년 이상 시중에 유통되기 때문이다. 보통 단행본의 사이클이 1년 미만임을 감안한다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북 디자인이야 '1년이 지나고 나서 개정을 하면 되지' 라고 쉽게 생각 할 수 있지만, 교과서 디자인의 경우 5년 후에도 유행을 타지 않는 디자인을 해야만 한다.

1초판의 디자인뿐만 아니라 개정판의 디자인까지도 직접 했다고 들었는데……
그때 당시 그 책은 이미 20만부 정도가 팔려나간 베스트셀러였고, 내가 작업한 디자인을 다시 손봐서 업그레이드 한다는 것에 많은 부담감을 느꼈었다.
자칫 잘못하면 그 동안 쌓아왔던 책의 이미지에 오히려 악영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비슷한 느낌을 유지하면서도 똑같은 요소들을 배제하며 디자인 작업에 임했다. 먼저 각 권의 메인 이미지들을 오브젝트화 하여 입체감을 살렸고, 교과서 제목 서체를 변형체로 바꾸어 개정의 이미지를 더 명확이 주었다. 그리고 태극의 느낌이 나는 컬러로 권 구별을 쉽고, 친근하게 보이게 하여 독자 접근성을 높였다.
개정 이후에 더 좋은 반응을 보여 뿌듯했던 프로젝트로 기억하고 있다.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를 만들 때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역사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부족과 표현의 한계점을 들 수 있다.
역사학자들은 글을 쓰면서 지도로 표현하는 것에 무척 어려움을 많이 느끼고 있는데, 그 이유는 역사의 사실부분에 있어 논쟁의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적의 논쟁을 최소화 하기 위해 다양한 역사의 사실이 부족한 것이 요즘의 역사 교과서라는 것을 많이 느꼈다.
물론 이 부분은 내가 관여할 부분이 아님을 알고 있지만, 전체적인 디렉팅을 담당하며 집필진들과 많은 공감대를 형성했던 부분이기도 하기에 이 책을 만드는데 있어서의 아쉬움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두 번째는 표현의 한계점인데, 이는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책을 만들다 보니 사진 자료들이 한정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거의 모든 역사 교과서에 같은 이미지들이 들어가 있는 것을 우리가 만드는 책만은 탈피하고자 노력을 하였다.
그래서 다양한 방법을 구상하고 나름대로의 표현으로 색다르게 만든다고 구성을 했지만, 시각 자료의 한계성을 뛰어넘을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우리가 조금 더 나은 여건이 된다면 사진작가와 함께 역사 유물을 다시 한번 사진으로 담아 더욱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들고 싶다.

사람들이 어떻게 책을 보아주었으면 하는지 말해 달라.
우리가 지금 살아 숨쉬는 지금의 공간이 있기까지는 역사 속의 무수한 사건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우리와 같은 나이에 그 역사 속에 있었을 사람들을 생각해 보자.
우리의 역사적 사실은 그들에게 있어 생활이자, 그들의 삶을 바꿔놓는 커다란 사건이었다. 역사는 지금의 우리를 만든 바탕이자, 앞으로의 미래를 살펴 볼 수 있는 교훈서라고 생각한다. 쉽고 재미있게 읽는 소설책처럼 이 책을 보아주었으면 좋겠다.
역사의 다양한 지식과 볼거리가 가득한 이 책은 단지, 학생들만의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금은 열린 마음으로 역사를 재미있게 바라볼 수만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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