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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마할 정원의 롤모델, 체헬수툰

김형기 | 테헤란 | 2013-03-27



타지마할(1632–1653)보다 약간 앞선 시기에 완공된 국빈접대용 궁전, ‘체헬수툰(Chehel Sotoun)’ 은 이슬람 건축에 늘상 함께하는 ‘물’이 가지고 있는 ‘멈춤’의 모습을 가장 잘 나타낸 것으로 알려져 있는 건물로 ‘사파비 왕조’의 압바스 Ⅰ세의 명령으로 건축되기 시작해, 압바스 Ⅱ세에 의해 완공(1647) 되었다. 타지마할을 비추는 호수의 전형이 되였던 체헬수툰은 그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 해가 뜨고 지는 각도에 따른 호수의 위치, 앞뒤로 위치한 호수와 건물과의 관계, 건물의 축과 ‘에스파한 도시계획’의 전반을 고려한 이란 정원 건축의 ‘정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글 | 김형기 테헤란 통신원




16~17세기 ‘에스파한’에서 이란예술의 문예부흥을 이끌었던 셔 압바스Ⅰ세는 ‘오스만투르크’와의 전쟁 이후, 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지역을 찾아 이란 북서부에 있는 ‘타브리즈(Tabriz)’에서, ‘까즈윈(Qavin)’, 다시 이란 중부에 있는 ‘에스파한’으로 수도를 옮긴다(1592년). 강을 끼고 있는 수도로서 최고의 입지조건을 갖춘 도시, 그러나 이미 이전의 몇몇 왕조가 자리를 잡았던 에스파한에서 압바스 1세는 자신의 권력을 확고히 하기 위한 특별한 방책이 강구하기에 이른다.


왕의 사심, 도시계획 그리고 건물의 각도

에스파한은 이미 ‘셀주끼 시대(1016~1153AD)’에 수도로 선택 받은 곳으로 도시의 기능적 역할이 모두 완비되어 있는 곳이었다. 이전에 존재했던 광장, 금요모스크를 중심으로 시장이 확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 도시의 중심을 완전히 이동한다고 해도 이미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동선의 축이 바꾸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셔 압바스 Ⅰ세는 이전의 도시 형태와는 완전히 다른 중앙정부 중심의 도시계획을 내놓는다. 이란의 전통적인 광장중심의 문화를 유지하면서, 행정처가 포함된 중앙광장과 모스크, 그리고 이미 존재하는 바자르를 연결시키는 그의 계획은 오래된 전통과 새로운 도시(중심)을 하나로 묶는데 성공하기에 이른다. 그의 새로운 영역은 이전 수도가 가지고 있는 동서쪽, 다시말해 께블레(무슬림들이 기도하는 방향)로 향해진 축을 완전히 무시한 채, ‘낙쉐자헌’이라는 장방형의 광장을 도시에 새로운 축으로 설정하게 된 것이다.


태양을 따라 놓여진 건물들

에스파한 도시의 도면은 그래픽디자이너가 종이의 크기를 염두하고, 구도에 맞춰 건물들을 점으로 찍어낸 것처럼 보일 정도로 훌륭한 모습을 하고 있다.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조차 도시의 축에서 벋어나지 않았음은 물론, 이란 정원양식과 이슬람 도형방정식이 그대로 적용되어 있는 각각의 건물은 도면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공간에 들어선 사람들에게 조차 건물 하나 하나가 보석같이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지도에서처럼 에스파한의 중심, ‘낙쉐자헌(파란색부분)’ 광장은 도시구조의 기본 방향을 제시하며, 남북을 기준으로 15° 정도 남동쪽으로 틀어져 설계되어 있다. 이러한 형태는 이란의 지형상 건물의 그림자를 최소로 만들어 내는 각도로 태양이 광장 전체를 비추도록 되어있음을 뜻하는 것으로, 주변의 건축물 역시 동일한 방향으로 위치하고 있는 것을 도면상에서 쉽게 알 수 있다.
가을이 시작되는 첫 달과, 이란의 새해(양력으로 3월 21일)가 시작되는 봄을 알리는 첫 날, 해가 뜨고 지는 각도와 수직이 되도록 계산된 이 광장은 약 2400년전 건물인 ‘페르세폴리스(아케메니아)의 봄의 궁전’과 ‘탁테술레이만(Takht-e Soleiman)’과 같은 방향을 하고 있다. 이 광장의 각도는 아마도 세계를 지배했던 아케메니아의 영광처럼, 단 한 명의 ‘왕’에 의한 ‘이슬람 예술의 부흥’을 알리는 시작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행정구역들의 연결된 ‘얼리꺼푸(Ali Qapu)’의 문을 통하는 다양한 건축군들의 네트워크으로 연결된 모든 장소는 국빈들로 초대받는 사람들을 위한 장소로 그 중에 하나가 체헬수툰이다. 체헬수툰은 정확히 광장의 축과 수직을 이루며 위치한, 가로 225m*275m 의 정방형 구조물로, 입구에선 보이지 않지만, 건물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는 크기가 다른 인공호수가 자리하고 있다.

입구와 마주하는 동쪽에 위치한 인공호수는 아침에 태양이 떠오르면서 호수의 수면 위에 비추도록 설계되어 빛을 건물에 전달해주는 물의 역할과 환영으로 생긴 건물을 비추는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으며, 서쪽의 작은 호수 역시 해가 지는 오후에 같은 모습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러한 계산된 빛의 방향은 왜 체헬수툰이 광장과 수직각을 이뤄 동서축을 기준으로 건물이 안쳐졌는지를 알게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20개의 기둥, 그리고 물에 비친 기둥

호수에 비춰진 건물의 환영은, 건물보다 훨씬 더 먼저 우리 시각에 들어온다. 스무개의 기둥이 마흔개에 기둥이 되는 순간이다. 파빌리온 앞에 설계된 장방형의 인공호수는 건물을 더 멀고 작게 느끼게 할 뿐만 아니라. 같은 크기로 비춰지는 건물을 더 크게 보이는 착각마저 들게 하는 건축가의 지략이 돋보인다.

대부분의 여행책자에는 20개의 기둥이 물에 비춰 생긴 기둥 스무개와 합쳐져 40개의 기둥이라는 명칭을 얻었다고 적혀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이란어’에서 40이란 숫자는 ‘많다’라는 지칭하는 숫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예를 들어 샹들리에는 ‘체헬체럭(40개의 전구), 퀼트는 ‘체헬테케(40개의 조각)’으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알고 있는 중동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도 사실은 ‘많은 도둑’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실질적으로 체헬수툰은 단지 에스파한 뿐만 아니라. 사파비의 이전 수도였던 타브리즈, 까즈윈에서 역시 건축되었으며, 주로 국빈을 위한 연회장으로 사용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기둥, 장식 그리고 전망을 위한 배려

‘기둥’은 때로는 없앨 필요가 있는 건축 요소이기도 하며, 하중을 위해 견디기 위해 세워야 하는 건축 요소이기도 하다. 돔을 올려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면, 넓은 공간에서의 기둥은, 잘나가는 건축가이든 오늘 들어온 건축과 신입생이든 간에 반드시 그려 넣어야 하는 굴레같은 것이다. 이 체헬수툰은 정원을 향해 열려 있는 삼면이 막힌 테라스와 삼면에 개방된 또 다른 테라스가 연결되면서, 테라스 지붕을 좁은 간격으로 세워진 기둥들이 떠받들고 있다. 이 지붕의 하중을 견디기엔 지나치게 가늘어 보이는 이 외형상의 나무기둥은, 내부가 철재로 되어있어 하중을 견디는 역할을 대신하며, 위로 올라가면서 좁아지는 기둥 덕에 분수를 향한 열린 전망을 끌어들이는 역할에도 충실하다.

사실 역사나 건물은 이미 만들어진 결과라 만약이라는 것은 존재하진 않지만, 이 테라스의 기둥 두께나 천장의 높이를 지금과 다른 조건에서 상상해본다면 지금의 전망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쯤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당장이라도 목이 부러질 것 같은 이 기둥들이 지붕의 무게를 견딜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왜 건축가가 안팎의 재질을 달리하면서까지 이러한 형태의 기둥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는 것은, 나중에 공간을 사용할 주인, 그릇에 담겨질 사람에 대한 배려가 묻어나고 있는 것, 그렇다면 우리가 ‘건축가’에게 할 수 있는 대답은 체헬수툰 테라스에 서서 명경(明鏡)같은 호수에 비친 하늘을 감상하는 일이 아닐까?


아침에 들러, 오후에 다시 와야 할지를 고민하고, 언제까지 있어야 할 지를 망설이게 하는 건물, 태양의 세기에 따라 여름과 겨울 빛깔이 다른 공간, 태양의 이동 경로에 따라 그림자의 모양이 또 다른 장식요소로 존재하는 이슬람 건축은, 나에게 건축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빛이라는 걸 순간에 알려준 건축물이다. 무슬림들이 말하는 “빛을 창조하신 신의 이름으로” 라는 기도문에서처럼, 신의 모습을 건물에 담아낸 공간이 존재하는 곳이 여기 중동의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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