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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인터뷰

캘리그래퍼 이산

2012-07-06


최근 캘리그래피는 드라마나 영화의 타이틀을 비롯해 다양한 영역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캘리그래피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직접 작업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큰 장점이다. 캘리그래피를 단순히 잘 쓴 글씨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담아내는 도구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만의 작업을 이어나가는 캘리그래퍼로서, 강사로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캘리그래피를 알리고 있는 이산 작가를 만났다.

에디터 | 정은주(ejjung@jungle.co.kr)

Jungle : 북 디자이너로 활동하다, 캘리그래피를 하게 되었다. 계기는 무엇이었나?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사실 캘리그래피라는 말이 나오기 오래 전부터 손 글씨로 북 디자인과 브랜드 작업을 해 왔다. 우연히 캘리그래퍼 이상현씨와 함께 ‘아름다운 우리 한글’이라는 작업을 함께 하면서 내가 해왔던 작업이 캘리그래피였다는 것을 알게 됐고, 캘리그래퍼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작업을 본격적으로 작업을 해 나가기 시작했다.

Jungle :캘리그래피가 대중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자신을 표현하는 일에 익숙한 시대적인 배경과 지나치게 디지털화된 환경 속에서 오히려 따뜻한 감성표현의 도구인 캘리그래피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생각한다. 아날로그적인 캘리그래피와 서예를 같이 분류하기도 하는데, 그 둘은 엄연히 다르다. 서예의 경우, 쓰는 방법이나 형태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어 오랜 수련기간을 거친 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반면, 캘리그라피는 쓰는 사람의 감정과 느낌, 새로운 도구나 글씨를 쓰는 습관에 따라 다양한 형태와 글씨를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크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유명작가들의 캘리그래피를 무조건 따라 쓰려고만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걱정이 되는 부분이다. 캘리그래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 자신이 갖고 있는 개성인데 형식이 정해져 있는 서예를 하듯 따라 쓰는 것은 문제가 있다. 따라하는 것에 머물면 캘리그래피라 할 수 없다.

Jungle : 그렇다면 캘리그래피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수강생들에게는 어떻게 수업을 진행하고 있나?

자신만의 개성을 갖는 것이다. 좋은 글씨를 따라 쓰는 것도 좋지만, 자신의 느낌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러한 개성을 찾기 위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써 보는 것을 권하고 있다. 특히 기초가 중요하다 생각해, 일반적인 선 긋기와 나이키 로고 모양이나 버들잎 모양, 갈매기 모양의 선 등 다양한 형태의 선을 연습하게 한다. 같은 작업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다양한 선 긋기를 해봐야 자신의 선을 찾을 수가 있다. ‘세상의 모든 글씨는 선’이다. 다양한 선 긋기 훈련은 곧 캘리그래피의 기본이다. 이러한 연습이 있을 때, 획일화된 글씨가 아니라 다양한 글씨를 구사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Jungle :캘리그래피에 쓰이는 도구는 다양하다. 특별히 선호하는 도구가 있나?

붓을 주로 쓰고 있지만, 나무젓가락, 펜 등 어떤 도구를 정해 놓지 않고 있다. 다만, 실제 작업에서 활용도가 낮아 현실성이 없는 도구들을 쓰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가령 파뿌리나 머리카락 등을 잘라서 쓰는 것은 잠깐은 재미있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으로 계속 작업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대신 기존에 있는 도구의 새로운 질감을 찾아내는 일은 흥미롭다. 펜이나 붓의 끝을 다른 각도로 잘라내거나, 나뭇가지를 으깼을 때의 질감을 이용한다.

최근 디지털 기기의 발전은 캘리그래피 분야에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데 가령 갤럭시노트의 펜은 생각했던 것보다 느낌이 좋았다. 붓을 주로 활용하는 지금의 캘리그래피 분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Jungle :캘리그래피는 작업을 의뢰 받기도 하지만, 창작 하는 경우도 있다. 창작할 때는 어떤 점에 중점을 두나?

컨텐츠가 있는 캘리그래피를 쓰려 한다. 예전에 서예를 배운 적이 있었다. 오랫동안 서예를 써 오시던 분들의 글씨를 보니 너무 잘 쓰셨다. 그러나 계속 지켜보니 그분들은 비슷한 문장 몇 개를 계속 따라 쓰고 있었다. 이러한 글은 잘 썼다고는 할 수 있지만, 그 내용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지 않을 것이다. 우리말 속에는 역사와 문화, 시간이 다 담겨 있다. 가령 시골 마을 할머니나 할아버지들의 말에는 그간 살아온 시간과 역사가 느껴지지 않나. 캘리그래피를 통해 역사와 문화가 담긴 우리말을 표현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 테마가 있는 캘리그래피, 기록이 남는 캘리그래피를 말이다.

Jungle :캘리그래피 작업을 할 때 어떤 부분에 영감을 받는가?

한자를 ‘상형문자(象形文字)’라고 하지만, 나는 캘리그라피 역시 상형문자(想形文字)라고 생각한다. 앞에 것은 사물의 형태가 글씨에 표현된 것이고, 뒤에 것은 생각을 글씨로 표현한다는 뜻이다. 내가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나를 살펴보면서, 우리말의 기원과 한글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우리의 전통언어인 사투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어쩌면 한세기가 지나면 사라질지도 모르는 사투리는 수만 년에 걸쳐 사용하던 우리의 언어인데 사라져버린다면 수만년의 역사와 문화를 잃는 것과 다름없다. 기회가 되면 캘리그라피로 사투리를 쓰는 가칭 '와볼랑가?' 전시를 계획하고 있다.

Jungle :캘리그래피를 하려는 사람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일반적으로 캘리그래피를 하는 사람들은 영화나 드라마의 타이틀을 쓸 기회는 적을지 몰라도, 활용할 수있는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부단한 노력과 개발이 요구되긴 하지만, 창의력과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는 어느 분야에서든 캘리그래피는 좋은 도구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캘리그래피를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내가 손 쉽게 구할 수 있는 도구들로,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캘리그래피이다. ‘톡’세대에겐 조금은 불편한 일일지라도, 예를 들어 아이에게 혹은 연인에게 편지를 써 준다거나 좋아하는 글을 손 글씨로 써서 붙이는 일을 하면 된다.

캘리그래피를 쓰면서 한글을 공부하는 중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한글에 대한 지식이 깊지 않다. 한글을 배운다고 하니 귀국한 이민세대로 알고, 누군가가 ‘ㄱ, ㄴ, ㄷ’을 배우느냐고 물었다. 우리가 한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그것 밖에 안 된다는 이야기다. 어떤 언어이든 그것을 자주 사용하고 연구하지 않는다면 서서히 사라지고 만다. 생활 속 캘리그래피를 활용하면, 한글을 더 자주 사용하게 되고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새로운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 이 과정이 한글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 될 것이다.


Jungle :앞으로 캘리그래퍼로서 목표는 무엇인가?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소재로 한 캘리그래피 작업을 하고 싶다. 생각해 보면 많은 컨텐츠가 있다. 예를 들어 사투리, 부적의 한글화(효험을 떠나서 디자인적으로), 캘리그래피 희망메세지 시리즈(긍정, 행복, 사랑 등을 테마로 한) 사회기부, 손 글씨로만 쓰여진 출판물 간행, 캘리그래피 매거진, 청소년 캘리그래피 교실 운영 등이 그것이다. 얼마 전 작업한 강원랜드 발행잡지 제호는 캘리그래피 작업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기 위해 실천한 프로젝트였다. 물론 현실성을 고려해야겠지만 캘리그래피를 활용한 아이디어는 너무도 많다. 캘리그래피는 단순한 글자가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며 사회적 소통의 매개라 할 수 있다. 이미 많은 캘리그래퍼들이 연구하고 있겠지만 나 역시 끊임없는 연구와 작업을 통해 작은 역할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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