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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인터뷰

생산하는 디자이너가 진짜 디자이너

2011-06-24


온 대한민국이 ‘디자인’으로 들썩이는 이 때, 우리나라가 디자인 강국의 대열에 들어섰다는 아나운서의 멘트를 들으면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정말?’ 깨끗한 초 고층의 건물과 판자집이 공존하는 21세기 한국에 살며 이 말을 곧이 곧대로 듣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격차의 외형화 현상이 비단 한국만의 현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디자인 강국이라는 단어 그 자체의 어감에는 좀 부적절하게 보였다. 그래서 우리는 겉으로 훑어만 본 우리의 모습이 아니라 속에서 새어 나오는 오늘날 우리의 디자인 역량을 시원하게 말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렇게 시작된 이탈리아 산업 디자이너 출신의 안드레아 디끼아라 홍익대 IDAS 교수와 국민대학교 디자인 연구소 d_페다고지 소장 조현신 교수의 대담은 유쾌하고 거침없었다.

대담 | 조현신 국민대학교 디자인 연구소 d_페다고지 소장
진행 | 김소연 d_페다고지 연구원
에디터 | 최동은(dechoi@jungle.co.kr)


=요즘 어떻게 지냈나?

지난 주에 통영이란 곳에 갔었다. 통영시와 함께 진행하는 프로젝트 때문에 통영시장과 만났는데, 그들은 나를 석양이 아름다운 한 곳에 데려가 주었다. 12시간을 기다릴 수 있다면 한 곳에서 일출과 일몰을 다 볼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너무 아름다워 마치 꿈만 같았다. 나는 아시아, 아메리카, 유럽 등지를 엄청나게 돌아다녀 봤는데도 내 평생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한국에는 그런 숨겨진 장소가 많은 것 같다.

=한국에는 언제, 어떻게 오게 되었나?

2006년 8월에 서울에 왔다. 올해로 5년째다. 나는 아시아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아시아에서 살만한 곳을 찾고 있던 중, IDAS에 머물고 있던 한 이탈리아 친구가 나에게 전화해서 ‘경험 많은 교수를 한 명 찾고 있다’고 지원서를 내보라고 했다. 나는 이탈리아의 미대나 디자인대학에서 가르친 적도 있고, 미국의 파슨스 스쿨이나 바르셀로나에서도 가르친 경험이 있었다. 나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었기 때문에 당장 하겠다고 했다. 나는 17살에 디자인을 시작해서 혼자서 배웠기 때문에 디자인 분야에서 쌓아온 나의 40년간의 경험을 젊은이들에게 나누어주고 싶었다.


=당신이 디자인의 전 과정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디자인은 생산이다. 직접 생산하고 프로세스를 경험해야지만 진짜 디자이너라고 할 수 있다. 디자인은 예술이 아니라 사용하기 위한 물건을 만드는 경제이며 비즈니스이기 때문이다.

내 이야기를 하자면, 20년 전 내가 아카데미를 졸업하기 전 이탈리아의 한 가구회사에서 내가 디자인을 해줬으면 한다고 연락이 왔다. 회사로 찾아갔는데 작업실을 구경하는 도중 밖에서 불꽃을 튀기며 일하는 직원들을 보았다. 그들은 그 회사의 목수이자 대장장이라고 하더라. 나는 순간 사랑에 빠졌다. 그 사람들이 만들고, 하는 일들에. 그래서 나는 디자인하는 대신 저기 저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싶다고 이야기 했다. 그 후 나는 그 곳에서 1년간 목수와 대장장이로써 일했다. 그리고 나서 대표에게 다시 찾아가 “저는 이제 디자인할 준비가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때서야 나는 내가 이 회사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된 것이다. 그걸 모른다면 무엇을 디자인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항상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일하기 전에 먼저 그 회사를 방문해보라고 한다. 그래서 그 곳에서 자신의 진정한 열정이 살아나는지에 대해 점검해 봐야 한다. 학위장은 필요가 없다. 일을 시키는 사람이 보고 싶은 것은 당신이 전에 무엇을 했는지, 어떤 컴퓨터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는지이지 학위장이 아니다.

=매우 인상적인 말이다. “디자이너로 시작하기 전에 일해 봐야 한다. 그러면, 사람들이 어떤 디자인을 원하는지 알 수 있다”는 것.

디자이너는 생산의 맨 꼭대기 층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편안한 디자인, 지속가능한 디자인을 하기 위한 막중한 책임이 있다. 제품 하나가 생산되기 전에 우리는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 생각하고 재료를 찾아야 한다. 기술과 재료를 공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첫 번째 단계다. 의자를 나무로 만드는 것과 플라스틱으로 만드는 것은 감성적인 접근 방식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작년에 타계한 패션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이 한 인터뷰에서 “나는 악을 사람들이 직시할 수 있도록 디자인하고 싶다고 말하고, 또한 나를 위한 디자인을 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흥미로웠다. 이런 맥락에서 당신의 디자인 컨셉, 디자인 철학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디자인 분야 중 패션에서는 특히 이런 멋진 말에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제품 디자인 그룹에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디자이너는 카림 라시드다. 왜냐하면 이 남자는 석유 회사를 운영하는 이집트의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다. 처음부터 스튜디오를 가지고 있었고. 애초에 돈으로 자란 거다. 그의 자서전도 아무도 사지 않았던 처음부터 그가 돈을 주고 산 것이다. 그는 몇몇 디자이너를 모방하기도 했고. 그가 등장하는 장면은 언제나 한 편의 쇼다. 선글라스를 끼고 구두와 안 어울리는 핑크 수트를 입은 채. 나는 몇 년 전 그가 처음으로 밀라노에 왔을 때를 기억한다. 그는 2명의 예쁜 모델을 데리고 스타처럼 등장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스타라'고 이야기한다. 우리가 스타라고? 우리는 스타가 아니다. 우리는 디자인전문가다’ 그래야 하는거지. 나는 이런 종류의 예술을 싫어한다. 사람들이 디자인을 오해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디자인에 대한 당신의 의견을 들려 달라

내가 처음으로 한국과 사랑에 빠진 것은 약 17년 전쯤이다. 당시 도무스 아카데미에서 공부하던 젊은 한국 여성에게서 한국에 관한 아름다운 책을 받았다. 거기서 한국의 문화에 대해 읽고, ‘이 사람들을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그 전엔 한국에 대해 몰랐다. 사실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밀라노역에 가면 사방에서 삼성, LG 광고판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은 삼성이 일본 회사인지 중국회사인지 대만회사인지 모른다. 그 어떤 회사도 자신들을 From Korea라고 자신 있게 드러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일본과는 매우 대비되는 현상이다. 일본의 소니 같은 경우 그들은 옛날부터 자신들이 일본에서 왔음을 강조해왔다.

한국에는 아름다운 영혼이 있는데 왜 당신들은 그 영혼을 보여주지 못하나?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과거로부터 문화를 가져오지 못하고, 다른 나라의 문화를 가져오기만 한다. 나는 가끔 한국인들, 특히 젊은이들이 서양인처럼 살고 싶어 하는 것을 느낀다. 다른 문화와 접하고 연결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이제는 당신들 스스로 나라를 알려야 할 때다. 한국처럼 깊고 아름다운 문화를 가지지 못한 나라도 많지만, 그들은 자신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외국인들은 한국의 문화가 휴대폰, TV 같은 기기와 함께 태어난 신생 문화의 나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산업의 한 분야일 뿐 문화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대부분의 외국인들에게 한국에 대한 물어보면 전통적인 부분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디자인은 생활이며 현재이다. 전통적인 부분에서 느끼는 한국의 특성이 아닌 한국의 현대 디자인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듣고 싶다.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다. 솔직히 지금 한국에서는 어떤 디자인도 보이지 않는다. 한국에는 많은 회사가 있지만 나는 그들에게서 경탄할만한 디자인을 본 적이 없다. 회사 이름을 지우면 다 똑같아 보인다. 개성이 없는 것이다. 프라다, 페라리, 브라운 같은 존경 받는 회사들은 모두 자신들만의 개성이 있다. 그리고 그 개성을 담아낸 것은 국가 내부에서 생산해야만 한다. 다른 나라에 생산을 의뢰한다면 당신들은 결코 어떻게 하는 것인지 배울 수 없다.

최근 나는 전문가용 칼을 디자인하고 전시하면서 이를 제작할 회사를 찾고 있었다. 많은 회사를 돌아다녔지만 모두 중국에서 생산하는 곳뿐이었다. 왜 싼 것에만 집착하나? 싸게 파는 방법은 국가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좋지 못한 전략이다. 중국인들은 멍청하지 않다. 싸게 만들어달라고 하면 싼 재료를 써서 싼 물건을 만들어 준다. 그러므로 디자인을 제품의 품질이 망치는 경우도 많다고 본다. 한국 고유의 생산력이 있어야 디자인도 성장한다. 그리고 충분히 한국은 그런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의 디자인 현실에 지금보다 더 큰 역량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가?

그렇다. 에쿠스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차에 왜 못생긴 장식물을 붙여 놓나? 디자인은 장식이 아니다. 장식은 예술의 한 부분이지. 디자인은 간결해야 한다. 바우하우스의 일원이자 유명한 건축가였던 미스 반 데어 로에는 ‘Less is More’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몇 년 후에 디터 람스가 ‘Less and More’이라고 이야기 했고. 덜어내는 것이 집어넣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이것이 디자인에서 가장 어려우면서 또 가장 흥미로운 점이다.

예를 들어 이 볼펜을 보라. 나오토 후카자와의 디자인인데 몸통을 만든 후 고리를 갖다 붙인 다른 볼펜들과 달리, 그는 몸통을 파서 고리를 만들었다. 이것이 디자인에서의 차이점이고 지능이다. 디자인 지능은 디자인 할 사물의 깊은 곳까지 들어가본 후, 이를 아름답고 유용하게 해결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한국의 디자인 교육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당신은 학사 과정의 디자인 커리큘럼, 디자인 교육 방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이론 바탕의 수업이 아니라 현업에서 일어나는 일들 위주의 수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탈리아의 디자인 학부에서는 학위 없는 강사들이 학생들을 가르친다. 일종의 파트타임 강사인데 목수, 플라스틱 주형 전문가, 기업에 있는 사람 등 각 분야의 진정한 전문가들, 기술에 정통한 사람들, 과정에 대해 긴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 와서 수업을 한다. 그들의 각 분야에서의 누구도 모르는 노하우를 가르치는 것이 교육이다. 디자인은 결코 말이나 이론적 과정의 설명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국 디자인 학교에는 유능한 학생들이 많지만, 그들의 능력이 디자인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학교에서 가르치면서 본 재능이 넘치는 디자이너들이 졸업 후에 일반 기업에 들어가 디자인과 관련 없는 일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실력 있는 디자이너들이 매일 매일 의미 없는 일만 반복하고 있다. 한국은 왜 젊은이들이 무언가를 시도해보도록 이끌어주지 않는가? 우리가 그들을 현장으로 이끌어 주어야 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어떤 시기가 될 때 까지 “절대 드로잉 하지 말라”고 한다. 디자이너들은 항상 종이와 펜, 마우스를 가지고 무언가를 그리는데 상당한 열정을 쏟아 붇는다. 하지만 적어도 첫 15일간은 드로잉 하지 말아야 한다. 이 기간에는 클라이언트의 모든 이해 경쟁사에 대한 모든 이해를 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그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묘사해야 한다. 즉, 말로써 디자인의 세세한 부분을 그리는 과정을 거치면서 디자인 컨셉과 결과를 상정한 후에 드로잉에 들어가야 한다. 습관적으로 그리는 것은 좋은 디자인 태도가 아니다. 나뿐만 아니라 내가 만난 유명한 디자이너들도 핸드폰으로 통화하면서 말로 일단 디자인을 한다. 그 후에 스케치를 하면 된다.


=한국 대학의 디자인 교육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다.

한국의 디자인 교육은 너무 많이 분산되어 있고 깊게 파고드는 것 같지 않다. 이거 저거 한 두 시간씩, 마치 뷔페에서 음식 고르듯 강의를 골라 듣는다. 이런 한 학기에 두 시간 세 시간의 강의로는 어떤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기초가 잡히지 않는다. 그러면 자연히 학생들은 디자인의 전 과정이나 그 근간을 보는 능력을 기를 수가 없어서 디자인의 표면적인 것만 보게 된다. 마치 케익 포장처럼 말이다. 이 과정은 당연한 결과이다. 물론 아름다운 포장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은 패키지가 아니라 케익을 사는 것이다. 아름다운 케익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아름답고 맛있는 케익이 수 없이 많은 시행착오와 긴 시간을 거쳐 탄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국의 디자인과 디자인 교육에 대해 보충할 부분이 실질적으로 어떤 부분인지에 대해 의견을 말해 달라.

디자인은 훌륭하고 재능도 많다. 하지만 진정한 한국의 미감을 낼 수 있는 자국의 디자인이 많아야 하고 그것을 싼 값에 다른 나라에서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디자인의 본성을 살려 줄 수 있는 국내에서의 더 많은 생산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만 회사들은 싼 값에 생산하도록 압박한다

그것이 생산을 해야만 하는 이유다. 디자인 분야에서는 직접 생산하고 프로세스를 경험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가 없다. 종이 상에서는 왼쪽으로 선을 그리나 오른쪽으로 선을 그리나 똑같아 보인다. 하지만 막상 생산하려면 왼쪽으로 그리면 100만원, 오른쪽으로 그리면 200만원이 드는 것이다. 생산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으면 이렇게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디자인을 하고야 만다. 이런 예는 수없이 많다. 디자인은 생산과정에 대한 체험적 지식을 익히면서 배우고 가르쳐야만 발전한다.

예술에서의 클라이언트는 아름다움을 사는 것이기 때문에 비용을 줄여야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생산 프로세스 가장 위에 위치한 디자이너는 비용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한다. 아름답지만 저렴한 가격, 좋은 재료의 사용 등을 위해서 우리는 프로젝트를 이끌고 나가야만 하고, 학교에서 이런 부분을 가르쳐야 한다. 결국 좋은 디자이너는 이를 위해 더 많이 일하는 디자이너다.

그리고, 사람들은 더 좋은 디자인에는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한다. 좋은 디자인을 위해 디자이너는 더 생각하고, 더 리서치 하고, 더 드로잉한다. 사람들은 이런 우리의 전문성을 존중해주어야 한다.


안드레아 디끼아라(Andrea Dichiara)는 홍익대학교 국제디자인전문대학원(IDAS) 제품디자인학과 교수이자 디자인 스튜디오 <2 in Asia> 공동대표이다. 그는 이태리 안코나에서 태어나 1988년부터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아트디렉터로 활동하였고, 유럽 전역과 미국, 일본 등지에서 작업한 바 있다. 그가 운영하는 <투 인 아시아> 는 밀라노와 서울에 거점을 두고 제품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컬러 컨설팅, 재료 컨설팅 제안 등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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