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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인터뷰

책으로 따뜻한 디자인을 전하는 디자이너

2010-12-23


좋은 책은 사람을 바꾼다는 말이 있다. 한 사람의 미래를 바꾸고 그것은 결국 이 사회를 바꾸는 힘이 된다. 책에 디자인을 담고 디자인을 매개로 세상에 따뜻함을 전하는 디자이너가 있다. 그래픽 디자이너 홍동식 교수는 학생들에게 디자인을 가르치며 이 시대의 디자인을 책에 담고 있다. 세상을 바꾸거나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한 욕심이 아닌 이 시대를 ‘남기기’ 위한 의지가 그를 부단히 움직이게 한다.

에디터 | 최유진(yjchoi@jungle.co.kr)


jungle: 책 만드는 작업을 많이 해오셨습니다. 여러 디자이너들과 함께 작업하시는 것이 쉽진 않으셨을텐데 이렇게 많은 작업을 해 오신 이유가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저는 그래픽디자이너로서 디자인교육자로서 많은 욕심이 있습니다. 먼저 그래픽디자이너로서 감각적이고 좋은 작업을 갈망합니다. 세계 그래픽디자인의 흐름과 트렌드를 감지하도록 노력하고, 재미있는 그래픽 작업을 하려고 해요. 책은 그래픽디자이너의 철학과 아이디어, 콘텐츠 구성에 따른 도큐멘테이션(Documentation) 능력, 비주얼라이제이션(Visualization) 능력을 모두 보여줄 수 있고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문화적 결과물이기에 몇 년 전부터 작업해오고 있습니다. ISBN을 붙여 정식으로 출간한 책은 5권이고 앞으로도 다양한 콘텐츠로 책을 만들려고 해요. 책은 그 시대를 표명하는 문화적 유산이 되고 영원히 남길 수 있는 그래피즘의 결과물이잖아요. 이를 대신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jungle: 최근 만드신 책이 부산 전통시장의 숨겨진 이야기를 담은 책이었습니다. 어떠한 점을 전달하기 위해 기획하셨나요?

부산은 대한민국 제2의 도시답게 약 190여 개의 크고 작은 전통시장들이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많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죠. 부산의 전통시장에 관한 책은 영문버전 포함해서 3권을 만들었습니다. 첫 번째 책은 ‘재래시장, 추억 사이소’로 구포시장, 국제시장, 기장시장, 부산진시장, 부전마켓타운, 자갈치시장, 자유평화시장 등 부산시내 7개 특화시장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비전을 담았다고 할 수 있어요. 각 시장의 역사적 내력과 특성, 일반 전통 시장과의 차별화, 상품의 특색을 담는데 주력했습니다. 두 번째 책은 ‘재래시장, 추억 사이소’의 영어판으로, ‘Truly No Margins Markets’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만들어졌습니다. 세 번째 책은 가장 최근의 저서로 11월에 출판한 ‘시장, 그곳에 가면’이에요. 이 책은 첫 번째 책 ‘재래시장, 추억 사이소’와는 달리 부산 전통시장을 소재로 하여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만들었습니다. 각 챕터마다 다양한 시장을 등장시켜 전개했죠. 시장 그리고 가족, 시장 그곳, 시장 속 사람들, 시장 이야기, 이렇게 4가지의 큰 카테고리로 나누어 다시 각 카테고리에 다양한 이야기를 전개해 조금씩 다른 시장을 소개하도록 구성했습니다.
전통시장을 소재로 한 책들은 각 전통시장을 상세히 소개하며 독자들에게 이해시키는 책이 아니에요. 생각보다 가볍고 진지하지 않게 전개한 것은 각 시장의 매력적인 모습을 조금씩 전하고자 한 것이죠. 텍스트를 모두 읽지 않아도 삽화와 사진을 통해 이해할 수 있고 위트를 삽입해 스토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책장을 넘기도록 유도했습니다. 약 6개월간 학생들과 시장을 누비며 인터뷰하고 사진을 찍었어요. 촬영 금지 품목을 촬영하다가 쫓겨나기도 했고 상인들의 넉넉한 인심에 감동 받기도 했죠. 많은 사연들이 함축된 책입니다.


jungle: 지금까지 작업하신 책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책이 있으신가요?

1년에 한 권정도의 책을 만들어왔는데 ‘Made in Busan’이라는 제목으로 2004년 시작했죠. 책의 콘텐츠는 부산의 16개의 구(남구, 동구, 해운대구 등등)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 구의 다양한 이야기, 즉 유래와 문화, 구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 특별한 곳 등을 담아 출판하고자 했어요. 아쉽게도 이 책은 출판에 따른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함께 작업한 학생들과 사비를 털어 기념으로 한권씩만 나눠 가지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죠. 그래서 저도 한 권만 소유하고 있고 많은 추억이 서려있습니다. 2005년 여름, 다시 책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책을 만들 수 있는 열정과 실력을 겸비한 예비디자이너들을 결성하여 여름방학 합숙에 돌입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오감과 영감에 관한 이야기를 시각화시킨 이미지 북을 만들었어요. ‘5+1, Five Plus One’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 그리고 영감에 대한 브레인스토밍을 거친 후 각 조별로 디자이너를 구성하여 약 2개월간 밤새워 만든 책이에요. 디자이너의 특성상 모두 밤 시간에 작업이 강해서 아침엔 숙면을 취하고 오후엔 인터뷰, 사진촬영, 취재를 했고 밤에는 일러스트레이션, 이미지 리터칭, 타이포그래피, 편집 회의 등을 진행했어요. 예상외로 콘텐츠가 많아져 인쇄를 하니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으로 완성됐죠. 이 책은 오감과 영감을 보는 남다른 발견과 발상, 해체와 해석의 유추로 고민한 흔적이 녹아있는 결과물의 결정체에요. 독자들에게는 구체화된 오감과 영감을 특별하게 음미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입니다. ‘오 플러스 일’이 말하는 오감은 더 이상 글자가 아닌 오감으로 느껴지고 이미지는 읽힐 수 있는 것, 텍스트는 보일 수 있는 것을 말해주죠. 감각을 시각화함으로서 독자에게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매혹적인 작품들로 채워 넣어 예비 디자이너들의 톡톡 튀고 발랄하고, 때론 엽기스럽기까지 한 일러스트레이션과 타이포그래피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두 권이 기억에 남네요.


jungle: ‘대한민국을 바꾸는 61가지 방법’이라는 책은 제목부터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 책에 담으신 사회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입니까?

‘대한민국을 바꾸는 61가지 방법’은 사실 우연하게 만들어진 타이틀입니다. 원제목은 ‘For the Better World-Graphic Messages’라는 좀 심각한 타이틀이었는데 고민 끝에 ‘대한민국을 바꾸는 61가지 방법’으로 결정했죠. 디자인은 예쁘고 화려하며 무언가 대상을 꾸미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시각디자인으로 사회에 기여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공익광고 포스터와 차별화시키는 시각적 부산물 만들기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1년 여 동안 함께 예비 디자이너들과 작업해 만든 책입니다. 2007년 여름, 저와 팀원들은 먼저 우리 사회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들, 혹은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을 모두 나열한 후 그것들을 ‘Do’와 ‘Don't’에 넣어본 뒤 하나하나의 항목들을 두고 토론을 했습니다. 그렇게 몇 차례의 토론을 거쳐 나온 것이 이 책의 목차를 이루고 있는 61가지의 항목들이에요.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 자기긍정’부터 ‘지구 온난화-반드시 이겨야 할 CO₂와의 전쟁’에 이르기까지 개인의 미시적이고 일상적인 실천부터 사회적으로 함께 노력해야 할 것들로 정리되었습니다. 사실 61이라는 숫자는 동양에서 사람들이 환갑과 회갑을 지나 새롭게 출발하는 숫자로 의미부여가 되어있는데 이 책에도 그러한 강한 의미가 부여되었어요. 이 책은 벌써 4쇄가 출간되었어요. 문화관광부 우수도서에 선정되었고 2009년에는 책따세(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www.readread.or.kr)에서 우수 권장 도서로 선정되어 청소년들에게 많이 읽혀지게 되었어요. 청소년과 대학생들에게는 우리 사회의 고민과 희망을 읽는 재미있고 유익한 교과서이고 시각 표현에 관심을 가진 대학생과 일반인들에게는 이미지로 사회적 발언을 행하는 사례 모음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책 한권으로 사회가 바뀐다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각박한 사회에서 타인을 위한 조금의 배려가 좀 더 행복한 삶을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jungle: 디자인철학은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전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했고 교수라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그래픽아티스트로 불려지길 희망합니다. 실제로 제 명함의 직함은 ‘Professor’가 아닌 ‘Graphic Artist’로 찍혀 있어요. 늘 새롭고 재미있는 그래픽 작업을 갈구하며 다양한 사람들에게 작업을 평가받길 원해요. 피카소와 초현실주의 작가인 만 레이의 셀 수 없는 많은 작업과 철학을 존경합니다. 세상의 강력한 디자이너를 만나는 것은 10대 청소년들이 연예인을 만나는 감동에 버금가는 가슴 벅찬 일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교육자로서 학생들의 감성을 깨워주는 일이 급선무라 생각합니다. 미국의 크랜브룩 스타일을 주창하며 획기적이고 실험적인 디자인 교육에 획을 긋고 있는 에드워드 펠라(Edward Fella, 현 미국 칼아츠의 디자인교수)의 디자인 철학을 거울삼아 깊이 연구하고 있어요. 여기에 경제적 실속을 차리는 정치적 활동을 통한 클라이언트의 획득은 절대 배제하려고 합니다. 다양한 작업 속에서 본인의 스타일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그러한 스타일로 클라이언트가 생기고 작업을 의뢰받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책을 만드는 경우도 마찬가지에요. 이런 경우가 가장 행복한 디자인 작업의 경우라 생각해요. 전 디자인과 현대미술의 경계에 서서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하려고 합니다. 작품 활동으로 세계디자인 비엔날레에 포스터 등을 출품하기도 하고 그 결과로 폴란드 바르샤바 포스터비엔날레, 모스크바 골든비, 테허란 포스터비엔날레, 슬로바키아 트르나바 포스터 비엔날레, 뉴욕 ADC, 도쿄 TDC, Tokyo TDC등에서 작품이 선정되기도 했어요. 전시 활동과 함께 논리적 사고와 감성의 표출을 적절히 조합하는 것이 좀 더 좋은 콘텐츠의 책을 만들어 내는 방법이라 생각해요. 좀 더 부지런히 두 가지 활동을 하려고 해요. 디자인 작업과 작품 활동을 통해 자신의 것을 찾는 것이 중요하고 생각해요. 정말 자신의 것이 무엇인지 찾기가 쉽지 않지만 냉철히 자신의 표현과 사고를 점검 하려고 하죠. 포스트모던 이후 세상에서 “새로운 표현이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는 말이 있듯이 본인이 어떠한 영향을 받았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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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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