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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인터뷰

디자이너의 사유 속으로 즐겁게 빠져든다

2009-07-21


분명 호남형은 아닌데, 그날 원두커피를 내리는 그의 뒷모습이 까닭 없이 인상적으로 느껴졌던 것은 ‘편안한’ 그의 움직임, 미끈한 날렵함보다는 자신감과 여유로 유연하게 움직이는 그의 사려 깊은 움직임 때문이었다.

에디터ㅣ 이찬희(chlee@jungle.co.kr), 사진ㅣ 스튜디오salt

애경그룹은 달랐다. 기업의 스케일을 떠나, 애경이 디자인경영을 성공적으로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구규우라는 한 투쟁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서는 ‘경영에 참여하는 디자이너(CDO)’로 거듭나기 위해 그에게서 어떤 ‘지침’이라도 얻고자하는 사람들로 들끓지만 디자인매니지먼트의 불모지였던 90년대 초, 어디를 둘러보아도 비평의 잔소리만 많았던 때였다.


‘디자인’으로 기업문화를 바꾸리라는 야무진 꿈을 꾸던 18년 전의 구규우 상무. 화장품 회사에 다니던 그는 애경으로 스카우트된다. “저는 소심한 사람이었어요. 평범한 직장인이었는데 애경이 화장품 사업을 하려고 저를 스카우트했고 전 디자인매니지먼트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감이 있었어요. 처음 왔을 때 디자이너가 2명 있었고 저는 과장이었죠. 사이사이 역량을 펼칠 기회를 얻었고 차장, 부장, 본부장, 이사, 상무로 올라갔어요. 당시 애경에서 같이 일하던 150명 중에 저 한사람 남았어요. 전 투쟁하면서 살아남았다고 생각해요. ‘디자이너들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말을 들으며 ‘어 내가 제대로 해야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아무튼 그때의 그 투쟁적 격변기를 겪으면서 자꾸만 커진 겁니다.”


아직 우리나라는 기업에서 경영에 참여하는 디자이너가 많지 않다. CDO(Chief Design Officer)라고 불리는 이들 중 구규우 상무가 갖는 존재감이 남다른 것은 자신의 소신을 잃지 않고 ‘디자인’을 순수하게 디자인으로 특화시킨 구 상무의 노력이 크다. “목적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91년 처음 애경에 왔을 때는 유니래버와 합착한 회사여서 디자인에 크리에이티브는 필요 없었고 영문을 국문으로 바꾸는 작업 정도. 그러나 성급하게 디자인을 보여주기 보다는 디자인이 제품에 어떤 가치를 주는지, 회사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 등 디자인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에 역점을 두었어요. 이를테면 디자인을 통해서 기업문화를 바꾸고 이러한 디자인의 기여도를 인정받게 하는 것이었죠. 결과물로 디자인을 인정받기 보다는, 결과물은 마케팅에서 보여주는 것이고, 소비자와 교감을 해 얻어진 결과물을 바탕으로 시장이 원하는 디자인을 제품화하는 것에 역점을 둔 거죠.”

91년부터 98년까지의 이 시기, 애경은 유니래버와 결별하며 폰즈를 잃은 대신 포인트라는 독자적인 브랜드로 시장을 선점했으며 그 저변에는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한 구 상무의 노력이 있었다. 그때 애경은 구 상무에게 더 많은 힘을 실어주며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서 디자인경영을 본격화하기에 이른다. 너무 동화스러운 오피니어 리더의 성공 스토리인가?(어쨌거나 그의 투쟁으로써 이룬 산물은 애경디자인센터라는 실물이 아닌 소비자가 인식하는 애경의 브랜드이미지다. 그것은 가치라는 판단으로 기준되며 제품이 아닌 브랜드로 제품을 선택하게 하는 결과에까지 오게 한다.)라는 물음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지만 지금까지의 글을 통해 충분히 감지했겠지만, 다행히도 그는 동화적 판타지가 아닌 현실세계에서 고통과 역경을 충분히 겪는 것으로 결과의 타당성을 인정하게 한다.


구 상무가 애경에서 디자인 부문을 극상시키는 과정에서 불거진 마케터와의 갈등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98년 이후 2000년대 중반에까지 그는 마케터와의 끈질긴 투쟁의 시기를 겪는다. “그때는 디자인의 역량, 디자인을 통해서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그런 작업을 했죠. ‘어! 디자인이 경영전략적으로 필요한 부분이구나’하는 것을 이해시키는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 갈등을 디자인이 중요하다는 말로서 표현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어요.

마케팅이 생각하는 디자인이 있었고, 우리가 원하는 디자인이 있었죠. 하지만 애경이 원하는 디자인이 아닌 소비자가 원하는 디자인이 중요했기에 소비자 리서치를 통해서 어떤 제품이 많이 나가는지, 소비자에게 어떤 미적 욕구가 있는지를 연구했어요. 디자이너들이 추진했던 제품들이 시장에서 더 호응이 좋았는데 예를 들면, 마리끌레르라는 라이센스 브랜드가 있었죠. 프랑스의 잡지사 이름인데 브랜드만 들여와서 화장품 브랜드를 만들었어요. 그때 핸드폰 등 제품디자인에 지금도 많이 사용하는 실버메탈릭한 텍스츄어 질감을 도입했죠. 10개 선두기업이 저희들을 따라했고 시장에서 저희의 성공은 마케팅과 디자인의 합작을 통해 이뤄진 것으로 인정받았어요.

물론 돈이 많이 들어갔죠. 하지만 실증, 리서치를 통해서 디자인의 관여도, 기여도를 입증해 냈다는 데 의미를 두었죠. 마케터들한테 디자인의 가능성을 통해서 성공의 가능성을 이해시킨 거죠.” 그렇다면 디자인은 만병통치약일까? “그렇지는 않아요. 성공의 저변에는 디자인이 아니라, 소비자를 이해하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분석하려 애쓴 디자이너들이 있다는 거죠.”


이 시기에 애경의 디자인 부문은 마케팅 조직 아래가 아닌 대표이사 바로 밑, 수평조직으로 이동했고 경영에 참여하게 된다. 소비자의 니즈를 바탕으로 디자이너의 사유 속으로 즐겁게 빠져드는 것, 그것은 애경의 인용찬(당시 CEO) 부회장에 의해 진보할 수 있었다.

“애경이 디자인경영을 하게 된 것은 인용찬 부회장님의 역할이 상당히 컸죠. 디자인에 힘을 실어 주셨고 인정해주고 뒷받침 해주니까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거죠. 디자이너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불러주셨고 발에 물집이 잡히면서도 함께 시장조사를 다녀 주셨어요.” 그는 구 상무를 비롯해 모든 디자이너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보인다. “디자인이 구로동에 있어야 되겠어?”라는 인용찬 부회장의 말에 구 상무는 디자인센터가 들어설 마땅한 곳을 찾아 다녔고 다행히도 그 장소는 너무 협소하거나 거창하지도 않은 애경디자인의 패러다임이 충분히 성장할 수 있는 홍대로 정해졌다.

디자인에 있어서 ‘장소’는 디자인을 둘러싸고 이루어질 수 있는 여러 가능한 행위들을 만들어 내는 기능을 한다. 어떤 이들은 겉멋이라고도 말하지만 불행히도 디자이너에게 겉멋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디자인은 가장 철학적이면서도 가장 미적인 작업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2007년 구로동 본사에서 떨어져 나와 홍대 앞에 디자인센터로 입주할 당시 구 상무는 마케팅 업무까지 겸한다. 디자이너가 마케터의 역할까지 한 것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상징적인 일이었는데, 그는 당시 감성마케팅으로 이슈를 일으킨다. “1년 동안 마케팅을 하고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당시에는 업계에 있지 않았던 디자이너의 역할의 다양성을 보여준 상징성이 있었어요.”

그렇다면 애경 디자인의 아이덴티티는 무엇일까? “아쉽게도 저희는 제품의 아이덴티티가 확고하거나 하지는 않아요. 저희는 브랜드 마케팅을 하기 때문에 브랜드에 충실한 마케팅과 디자인을 하는 거죠. 그리고 소비자들에게 어떤 편의성을 줄 것인가, 최근에는 지속 가능한 리사이클링한 제품들로 소비자의 편의성은 물론 자원의 생산성까지 생각하며 제작하고 있어요. 요즘 화두가 되는 친환경적인 것으로 사용의 즐거움을 주는 것. 결국은 편의성으로 집약되지만요.” 결국 애경은 소비자 편의를 위한 디자인이 화두인 셈이다.

그의 말처럼 디자인이 중요한 이 시대에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디자이너의 중요성, 그들의 역할상은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디자이너 자신의 디자인에 대한 사유죠. 저는 디자이너들에게 마케팅 교육을 많이 시켜요. 디자이너들이 미적인 감각만 앞세우는 시대는 지나갔죠. 소비자들의 니즈를 알아야 하고 마케팅에 해당하는 많은 범주들을 알아야 해요. 그 안에서 그네들이 요구하는 디자인, 그네들이 생각하는 디자인, 우리들이 생각하는 디자인으로 컨셉트를 잡아 크리에이티브를 만들어 내죠. 그러려면 일단은 우리가 크리에이티브를 가지고 움직여야 해요.

그 속에서 소비자를 이해하고 시장을 이해해야 해요. 우리는 상품을 만드는 것이지 작품을 만드는 게 아니거든요. 시장에서 원하는 원가라든가 마케팅이 원하는 시장성 등을 철저히 분석해야만 그네들 모두에게 인정받는 상품을 만들 수 있죠. 디자이너 역할의 진화는 단순한 스킬의 문제가 아니에요. 디자이너들의 시야가 넓어져야 가능한 것이죠. 끝없이 공부하고 발품을 팔아야죠. 이를테면 저는 스토리텔링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인류학, 사회학 등의 책을 많이 읽어요. 디자이너는 자기 자신을 가꾸기 위해 어떤 것을 했는지 인지해야 해요. 순수하게 디자인책만 보고는 크리에이티브가 나올 수가 없어요. 베끼는 것 말고는.”


그의 비평은 날카롭다. “우리나라 디자이너들은 전문지식을 너무 많이 갖추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론적이라는 건가요? “이론적이기보다는 너무 전문화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 보니까 스킬이 작고 시야가 줄어들 수밖에 없지 않나. 인문사회학이나 역사학 등의 다른 경험을 많이 하면서 크리에이티브를 키워야 하는데, 손재주 잘하는 사람은 많아요. 대신 디자이너들의 사고가 확장되어야 해요.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손재주만 가지고 드로잉만 잘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죠. 최근의 모든 학문분야를 이해하지는 못할지라도 마켓과 소비자를 이해하려는 시야는 꼭 가져야 해요.”

디자이너의 성공은 사고, 역량과 결코 무관하게 행해질 수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디자이너는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까? “디자이너들은 불공평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제 사고로 봤을 때 전문적인 부문에서 이상만 쫓는다면 디자이너의 순수한 포지션에만 머물거에요. 약간이 기획력과 디자인적 재능으로 더 큰 역할은 불가능해요. 디자이너는 자신의 일에 대한 개념정리를 다시 해야 해요. 장르야 다양하지만 디자인의 모든 것들이 모여서 디자인의 가치를 형성하는 것이죠. 디자이너들이 사고의 확장, 그 안에서 근간을 가지고 움직이되 유기적일 때 그릇이 커진다고 생각해요. 디자이너 특유의 폐쇄성보다는 커뮤니케이션에 적극성을 띨 필요가 있죠. 단순히 내 영역만 잘하면 된다라는 개념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의 착한 디자인은 무엇일까?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디자인을 보면서 사용하면서 따뜻하고 편안한 것. 그것이 디자인이 가져야 하는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디자인은 그게 탐욕스럽다기보다는 ‘참 갖고 싶고 예쁘다. 사람을 편안하게 해준다’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너무 오버 해석하기보다는 그냥 자체로 디자인을 만드는 것이 디자인이죠. 디자인이 좋지만, 사용하기에 불편하다면 디자이너의 희생정신이 부족한 거죠. 오피니언 리더나 이런 사람을 제외하고 일반 사람들의 대중적 눈높이를 봤을 때 편의성을 배제시킨 디자인은 고려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제품디자인은 실용성이 없다면 가치가 없어요. ‘편안하게 쓰이는’ 디자인이 정직한, 착한 디자인이죠.”

그가 디자인업계에 미치는 파장은 단순한 디자인경영의 차원이 아님을 말하고 싶다. 그가 꺼낸 첫 단어부터 마지막 단어까지, 단순명료하게 내뱉는 그의 소신은 디자이너지만 디자이너를 옹호하지 않으며 디자이너의 가치를 부풀리지도 않는다. 기업디자인을 하는 사람으로서 정직하게 말하는 그의 가치평가가 날카롭다. 홍대거리 그 건너편에 애경디자인센터가 있다. 홍대가 주는 트렌디한 감각과 다양한 문화소통이 가능한 곳, 디자이너들이 자유롭게 커뮤니케이션하며 일할 수 있는 곳. 건물 자체가 주는 이미지는 콩크리트 건물 특유의 차가움이지만, 그곳 디자이너들의 가슴은 뜨겁다.

라디오 주파수 93.1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선율에 휘감긴 애경디자인센터는 기업디자이너들에게는 최적의 공간이다. 디자이너와 엔지니어가 한 곳에 있어 상상하여 그려진 디자인은 바로 제품화되고 실용성이 연구되어 진다. 기업이 디자인에 투자하는 만큼 디자인의 퀄리티는 높아지고 그곳에서 일하는 디자이너의 프라이드 또한 상승한다. 이로써 기업은 과감한 투자에 대한 긍정적인 결과를 거둔다. 크리에이티브한 그대들의 감성과 감각을 이해해주고 격려해 주는, 디자인에 최적한 공간까지 마련해 주는 곳에서 일하는 그대들이 우리나라 제품디자인의 퀄리티를 격상시켜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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