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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하이힐과 화장실

2014-04-21


몇 년 전, 모 통신사 티브이 광고에 “궁정엔 화장실이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거리엔 배설물과 오물이 가득했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해 하이힐을 신게 되었다”라는 광고 카피가 있었다. 이 이야기는 이제, 마치 상식처럼 되어버린 하이힐의 예쁘지 않은 과거이다. 그러나 단지 굽이 높고 그 면적이 작아진다고 해서 오물을 다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과연 하이힐의 유래는 단순히 오물 때문인 것일까?

글 ㅣ 윤예진 패션디자이너
에디터 ㅣ 김미주 (mjkim@jungle.co.kr)

현대의 여성 패션에서 없어서는 안될 아이템인 하이힐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 전에, 우리는 '궁정엔 화장실이 없었다'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광고 카피의 내용은 17세기 프랑스의 베르사유(Versailles) 궁에 한정된 이야기 일 것이다. 베르사유에서는 화장실 대신 요강이 사용되었고, 당시 '태양왕'이라 불리던 루이 14세는 요강에 앉아 볼일을 보면서 사람들을 맞이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루이 14세는 당시 ‘살아 있는 법률’과 같은 존재였고, 스스로 '짐(朕)은 곧 국가이다'라고 할 만큼 절대주의시대의 대표적 전제군주였다. 그래서일까? 왕의 유별난 배변 습관은 왕 외의 사람들 역시 궁 안의 아무데나 용변을 보는 것을 스스럼 없게 생각하게 만들었으며 때문에 베르사유는 늘 악취가 진동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보통 중세 궁정이나 귀족들의 주거지에 화장실은 있었다. 단지 현대와 같은 수세식의 아주 청결한 수준은 아니었더라도 배변 용무를 보는 곳은 분명 존재했다. 13세기경, 화장실이라는 단어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을지 모르겠으나 몸을 씻고 물에 몸을 담그는 욕실이 있었다. 이는 그들이 물을 사용하여 위생에도 신경을 쓰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단순히 우리의 상식적인 면으로 생각을 해보더라도 물이 있고 욕실이 있는데 단지 배변 보는 곳만 없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그러나 욕실이라는 개념은 일종의 휴식의 공간이었고 배변활동이 주가 되는 화장실의 개념은 조금 달라 따로 존재하였을 수도 있다.

중세 성 안의 화장실은 긴 복도 끝이나 성 내부의 가장자리에 벽보다 돌출되게 만들어졌는데, 이는 수세식이 아닌 단지 배설물을 밖으로 내어버리는 형태로써 사람의 인적이 드문 절벽 쪽이나 외양간(동물 배변과 섞이도록) 근처 성벽에 만들어지곤 했다. 어찌되었든 배설물이 정화되지 않고 그대로 밖으로 버려지는 것은 맞으나 궁정이나 성에 화장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또한 중세 시인들의 기록에 따르면, 간단한 형태지만 성 안에는 파이프나 펌프 등의 물을 공급하는 시설들이 있었으며, 이 기록은 수세식 화장실이 존재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고대에 이미 목욕탕 문화가 있었던 로마에는 공중화장실(public toilet)이 있었으며 이는 물로 오물을 흘려 보내는 수세식이었다.

당시 유럽의 그다지 청결치 못했던 위생관념은 후에 흑사병이라는 엄청난 재앙에 한 몫을 하였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위에서 언급한 화장실의 개념에서 볼 때 그들 나름의 배변 처리에 대한 방식은 있었던 셈이다. 따라서 수세식이었던 아니면 그냥 밖으로 떨어뜨려 버렸던 그 오물의 피해를 보던 사람들은 궁정 사람이나 귀족들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물의 피해는 성 밖에 사는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 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화장실은 커녕 번번한 집도 없이 살던 서민들이 오물을 피하고자 하이힐을 신고 다녔을 리는 없다. 하이힐은 왕정 사람들과 귀족들의 소유물이었고 그들에게 선택된 아이템이었다.

그렇다면 귀족들에게 하이힐의 진짜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하이힐의 기본적 기능은 우선 키를 커 보이게 한다는 것에 있다. 현대에 키를 커 보이게 한다는 것은 늘씬한 몸매나 아름다운 다리의 각선미를 위한 것으로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중세 무렵 여성의 옷차림을 생각해볼 때 다리의 각선미는 둘째치고 무엇을 신었는지 조차 보이지 않는 하의를 착용했던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가 하는 말 중에 '높은 계층'이란 표현이 있다. 이는 신분과 더불어 권력, 재력 등의 힘 또는 능력을 표현할 때 쓰이곤 한다. 여기서의 '높다'라는 단어가 주는 상징적 의미는 사람 신장의 높이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짐승에게도 천적보다 자신이 더욱 강하게 보이기 위한 위장술들이 있는데, 대부분 그런 것들은 자신의 몸집을 실제보다 크게 만들곤 하는 방법이며, 인간 역시 그러한 본능은 많이 다르지 않다고 본다. 쉬운 예로 왕의 왕관은 대부분 머리위로 높이 솟는다. 또한 17~18세기 남성 귀족들의 높은 가발과 귀부인들이 선호했던 천장에 닿을 듯 높이 만들어 올린 헤어스타일 역시 그렇다. 하이힐을 신음으로써 높고 거대한 체구를 만들 수 있었으며, 그렇게 자신의 키보다 땅 위에서 올라간 굽의 높이는 50cm가 넘기도 하였다. 15세기 번성하던 이탈리아의 도시국가인 베네치아의 쵸핀(chopine)이 그 예이다. 이후 쵸핀, 즉 당시의 하이힐은 나무나 코르크로 만든 밑창에 비단과 보석, 레이스와 술 등을 이용해 장식 됐고, 신분을 가진 사람이라면 실내에서든, 실외에서든 언제나 착용하는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여기서 또 한가지, 위에서 말했듯이 50cm 가까이 되는 하이힐을 신고 높은 신장을 유지하며 자신의 신분의 위대함을 두각 시키고 싶었을 귀족들은 과연 그런 신발을 신고 어떻게 이동했을까. 당연히 혼자 걸음을 옮긴다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설령 걸을 수 있다고 해도 그 모습은 한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뒤뚱거릴 수 밖에 없어 웃음거리에 가까웠을 것이다. 때문에 최대한 안전하고 우스꽝스럽지 않게 이동을 하기 위해서는 걸을 때마다 부축하고 도와주는 몸종들이 필요했다. 일종의 인간 지팡이의 역할이다. 상상해보라. 높은 신분의 높은 키를 유지하기 위한 하이힐, 그리고 이동 할 때마다 따라다니면서 모든 시중을 드는 몸종. 한 사람의 계급과 권력을 나타내기 위해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구성 아닌가.

18세기 경 남성들 역시 하이힐을 착용하는데, 사실 이는 현대의 하이힐이라는 개념보다는 당시의 우아하고 멋있는 고급 구두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단지 당시 남성들이 신은 신발은 현대의 그것처럼 납작한 밑창이 아닌 약 5~6cm 내외의 뒷굽이 들어간 비단이나 가죽으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만들어진(마치 현대의 여성용 구두 같은) 신발들 이었다. 그러나 세기가 변화하고 의복이 변화함에 따라 남성들은 현대의 신사화에 가까운 남성용 구두를 착용하게 되었고, 하이힐은 여성들의 전유물로 남게 되었다.

현대 여성의 하이힐은 이렇다 저렇다 상징성을 따지기도 전에 너무나 확고한 자리를 잡고 있는 패션 아이템이다. 의복의 유행과 비교되지 않을 만큼 강한 패션 경향을 몰아가고 있으며, 여성에게 더욱 여성적이며 아름다움을 과시할 수 있는 소품으로 자리하고 있다. 현대의 하이힐은 스틸레토(stilettos), 펌프스(pumps), 플랫폼(platform), 웨지힐(wedge heel) 등 그 이름과 형태도 다양하다. 19세기 이후 각종 하이힐의 종류와 형태들이 등장하면서 각 시기를 주름잡는 유행들이 나타났다 사라졌으며, 현재는 하나의 유행보다는 새로운 디자인과 소재들을 사용한 다양한 하이힐들이 사랑 받고 있다.

'여자의 눈의 크기는 아이라인까지이고, 남자 키의 높이는 깔창까지이다'라는 영화 대사가 있었다. 안타깝게도 남성들은 더 이상 하이힐을 신지 않는다. 하지만 남성들 역시 사회가 허락한다면 하이힐을 착용하기를 원하지 않을까 싶다. 여자들만의 전유물이기엔 너무나 매력적인 하이힐, 하이힐을 사랑하는 많은 애호가들(남녀불문하고)이 배설물 때문에 탄생되었다는 하이힐의 향기롭지 못한 과거에 더 이상 연연하지 않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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