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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8인의 버튼씨

2010-05-11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호랑이가 자취를 감추고 없는 요즘, 귀가 솔깃한 이야기는 종이에서 은막으로 이어진다. 진짜 같은 가짜 이야기가 소설책에서 필름으로 옮겨가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 그 중에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는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인기몰이를 하자, 다시 관련 서적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닮은 듯 다른 8인의 벤자민 버튼씨를 소개한다.

에디터 | 정윤희( yhjung@jungle.co.kr)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의 원작이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된 것은 2006년 『번역자, 짧은 글의 긴 여운을 옮기다(사키 외, 엔북 펴냄)』를 통해서였다. 번역자들이 손수 고른 단편소설 모음집으로 유명세를 타진 못했어도 긴 여운을 남기는 명작들을 엮은 책이다. 이 책을 통해 「벤저민 버튼의 기이한 일생」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을 찾은 버튼 씨. 2009년 필름을 타고 다시 한 번 한국을 찾는다. 데이빗 핀처, 브래드 피트, 케이트 블란쳇 등 영양가 넘치는 미끼를 덥석 문 관객들이 줄을 잇자 서점가에도 버튼 씨의 책이 쏟아져 나오기에 이른다. 노인으로 태어나 아이의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벤자민의 이야기는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소설로, 흥미로운 이야기만큼이나 출간된 도서들의 면면도 각양각색이다. 영화가 두 배우의 얼굴을 전면으로 내세워-배우가 배우니만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리라 믿는다-심심하게 마무리된 것이 궁색할 정도. 주요 등장인물의 캐릭터 포스터가 허전함을 메워주고 있기는 하지만 소설 표지 디자인에 비하면 아직 멀었다.

어쨌든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같은 내용을 디자인이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 되겠다. 문학동네, 펭귄클래식, 느낌이 있는 책, 북스토리 순으로 많은 판매량을 보였다는 후문. 디자인에 따라 독자들의 반응을 얼마나 이끌어 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기도 하다.
출간된 소설 가운데 노블마인에서 출간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그래픽노블로 피츠제럴드의 글에 케빈 코넬의 그림이 덧입혀졌다. 원작에 충실한 각색과 인물의 생생한 감정 표현, 당대 시대배경의 빼어난 재현으로 주목받은 그래픽노블로 원작 소설 전문을 함께 싣고 있다. 케빈 코넬이 진행했던 1860년에서 1930년 사이의 패션, 건물구조, 기술 발달 수준, 골동품, 그리고 장소적 배경이 되는 당시의 볼티모어, 예일, 하버드의 풍경에 대한 광범위한 자료 조사 덕분에 일러스트에 소설 속 시대배경을 오롯이 담을 수 있다. 북스토리에서 출간된 『벤자민 버튼…』은 한글 번역본과 영문 원작을 함께 실었다. 앞표지의 상하를 뒤집어 뒤표지로 사용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단순히 한 장의 그림을 뒤집었을 뿐 아니라 그림 속 주인공의 ‘시간’도 함께 뒤집어 놓은 것이 이채롭다. 원작 자체가 단편소설이다 보니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내기에는 분량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을 터. 번역자들이 꼽은 명작 단편을 함게 수록한 엔북이나 원작을 덧붙인 북스토리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출판사들이 피츠제럴드의 단편들을 묶거나, 『벤자민 버튼…』을 포함하여 출간됐던 피츠제럴드의 『재즈 시대 이야기』를 번역해 출간했다.

『벤자민 버튼…』은 소설이 영화화 된 것뿐이므로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의 우수 사례로 꼽기에는 모자란 감이 있다. 그러나 묻혀 있던 소설 한 편이 영화를 계기로 다시 주목받았다는 것과, 이를 계기로 출판사들이 너도나도 『벤자민 버튼…』을 출간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하다. 좋은 콘텐츠가 여러모로 쓰임이 많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나, 좋은 콘텐츠를 어떻게 우려 마실 것인가에 대해서는 신중해야 한다는 의미다. 아무리 맛좋고 향 깊은 녹차라도 3번 이상 우려 마시면 떫은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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