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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전시로 살길 찾는 디자이너들3

2008-03-25


회사에 소속되어 월급을 받는 인하우스 디자이너가 대부분인 한국과 달리 유럽은 자기 스튜디오를 가진 프리랜서 디자이너가 많다. 그렇기에 전시장은 그들에게 일거리를 사고파는 좋은 기회가 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환경이 다른 한국 디자이너에게 해외 전시에 참여한다는 것은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뚜렷한 목적을 가져야 성공할 수 있다.

단지 ‘외국에서 전시 했다’는 타이틀만을 위해서라면 너무나 많은 비용과 시간 낭비를 감수해야 할지 모른다. 참가자 대부분은 전시 참가 이후 곧바로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지만 꿈은 꿈일 뿐 현실은 냉정하다.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검증이 안 된 디자이너의 개발에 많은 비용을 투자하는 모험을 피하고 바로 제품화가 가능한 아이템을 원한다. 실제로 전시회에서 선택되어 시중에 나오는 제품은 미디어가 주목한 디자인보다 생산에 적합한 현실성 있는 디자인이 대부분이다. 이처럼 해외 전시는 여전히 디자이너들에게 난관인 만큼 많은 경험에서 얻은 몇 가지 노하우를 전한다.


전시장을 찾는 사람들은 대체로 새로운 디자인을 찾는 기업의 업체 관계자, 디자이너, 세계에서 모인 미디어, 디자인 숍에서 팔 제품을 고르는 큐레이터, 그 밖에 관람객으로 나눌 수 있다. 디자이너는 다양한 관객층이 원하는 바가 각기 다르기에 자신의 목적에 맞게 타깃을 정해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좋은 디자인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잘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기에 전시를 준비할 때 일반인을 위한 설명 자료뿐만 아니라 미디어를 위한 고해상도 사진과 영문 설명이 포함된 프레스 킷은 필수로 준비해야 한다. 또한 바로 양산화가 가능한 디자인을 가지고 나갈 때는 정가표(price list)를 준비해 비즈니스를 원하는 관계자들과의 만남에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 디자이너들에게 가장 어려운 것일 수 있겠는데, 자신의 디자인에 적합한 업체나 관계자가 자신을 방문하기를 기다리지 말고 먼저 찾아가서 만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런 것도 전시회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처럼 전시를 위해서 신경 써야 할 것이 적지 않기에 국내 제조사와 스폰서 형식으로 함께 참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디자인을 원하는 제조사 관계자보다는 당장 판매할 제품을 찾으려고 전시장을 찾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국내에서도 디자이너들의 활동 패러다임은 인하우스 디자인 시스템에서 아웃소싱 디자인으로 점차 변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럽 회사들처럼 높은 인건비로 인해 개발 비용 부담을 디자이너와 분담하는 차원에서 아웃소싱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로열티를 기본으로 한 계약이나 디자이너 이름을 제품에 명시하는 시스템에 국내 디자이너들도 점차 적응해야 한다. 기존의 클라이언트가 디자인을 의뢰하는 방식이 아닌 디자이너가 먼저 디자인과 프로토타입(대량생산 전 시험적으로 만든 모형)을 가지고 생산에 적합한 회사에 제안하는 방식으로 디자이너의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디자이너의 적극적인 전시 참여는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글 | 하지훈
계원조형예술대학교 가구디자인과 교수, 2000년대 초반부터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 <스칸디나비아 가구박람회> <뉴욕 icff> <런던 디자이너스 블록> <스톡홀름 가구박람회> 등 다양한 디자인 전시에 참가


Kim Jihwan 김지환

김지환은 올해 초 대학을 졸업하고 동료와 함께 디자인 스튜디오 제로퍼제로(zeroperzero)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일본의 각 도시와 서울의 지하철 노선을 이용한 그래픽 작업 ‘레일웨이 캘린더’는 갓 대학을 졸업한 디자이너의 작품으로는 드물게 <서울 디자인 위크> 에서 파격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그뿐만 아니라 전시가 끝난 이후 일본 디자인 숍에서의 판매를 타진하기 위해 도쿄의 디자인 숍을 찾아다니며 직접 비즈니스에 나서기도 했다. 비록 경험은 짧지만 디자인 유목민으로서의 자질이 충분해 소개한다.
www.zeroperzero.com


김지환 | 지난해 있었던 졸업 전시는 본게임에 앞서 전시를 이용한 디자인 비즈니스에 대한 평소 생각을 시험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공간이라는 그래픽 디자이너의 약점을 디자인 작업의 철저한 상품화로 보완하고자 했다. 마땅한 판매 공간과 작품 설명이 부족했음에도 5일 동안 150개 가까이 판매됐다. 졸업 전시였기에 그런 수치보다는 보완해야 할 것을 배웠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이뤘던 것 같다. 이후 한 달 뒤 개최된 <서울 디자인 위크> 에서는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특히 디자인 제품을 디자이너가 직접 판매할 수 있게 마련한 ‘디자인 사자’에서 내 제품을 선보이는 기회를 얻었다.
졸업 전시 성공으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 전시에서는 추가 제품을 구상했다. 기존의 제품이 조금 컸던 만큼 서울 지하철 노선도를 휴대하기 편하게 제작해 더 적은 비용으로 함께 판매하고자 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8일 동안 진행된 전시에서 500개가 넘는 대형 ‘레일웨이 캘린더’와 1000개가 넘는(돈을 받고 판 것만이 그렇다) ‘서울 지하철 포켓맵’이 판매되었다.
물론 이러한 상업적 성공이 돈만을 생각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내 디자인 철학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전시가 작품 판매를 위한 매우 효과적인 공간이고,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는 최고의 기회라는 것만큼은 확실히 배웠다.

30여 년의 한국 디자인 역사 중 오늘날과 같이 비즈니스와 연계된 디자인 전시의 출현은 채 10년이 되지 않는다. 이전에는 작가전, 포스터전, 회고전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디자인 결과물을 외부에 보여주는 것만이 주된 목적이었다. 그러나 2002년 디자인하우스와 한가람미술관이 함께 선보인 <디자이너스 블록> 을 시작으로 디자인 비즈니스화된 전시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이후 디자인하우스는 <서울 디자인 페스티벌> 로 그 형태를 독립해 더욱 강력한 비즈니스의 장을 마련하며 한국의 디자인 전시 산업을 이끌고 있다.
또한 한국디자인진흥원의 <디자인 코리아> , 지난해 서울시가 야심 차게 준비한 <서울 디자인 위크> 가 그 열기에 합류했다. 그 밖에도 작은 규모지만 능력 있는 디자인 큐레이터들이 좋은 신인 디자이너를 발굴하기 위해 만든 각종 커뮤니티 활동이 이어지고 있어 올 한 해도 한국 디자이너들에게는 비옥한 토양이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오랜 시간 동안 한국에서 디자이너들과 일을 하다 보니 느낀점이 있는데 한국 디자이너들은 지나치게 신중하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일단 대학교를 졸업하고 유학 갔다 와서 좋은 회사에 취직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시도하지 않는 것 같다. 학생도 마찬가지다. 아직 고등학생이거나 대학생이라고 해서 스타 디자이너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경험이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 과거가 미래를 만드는 것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디자인이라는 확신이 섰다면 그것을 전략적으로 준비하는 열정적인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전시는 그 꿈을 실현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국내에서는 2000년대부터 <서울 디자인 페스티벌> 을 비롯해 <디자인 코리아> <서울 디자인 위크> , 그 밖에 조그만 규모의 각종 커뮤니티 등 다양한 디자인 문화 전시가 생겨났다. 그러나 그 수가 그렇게 많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디자이너들은 1년 동안 벌어지는 각종 국내 전시에서 가능한 한 많은 시험을 해봐야 한다.
국내 전시가 세계적인 전시에 비해 아직은 완성됐다고 보기 힘들지만 자신의 가능성에 대해 자꾸 시험해 현재의 상태를 확인하고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디자이너들은 자신에게 맞는 전시를 찾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서울시가 주최하는 <서울 디자인 위크> 는 공공 디자인이나 시의 정책에 반영하는 디자인 또는 시민이 참여하는 큰 문화 이벤트가 많기 때문에 그러한 디자인 작업을 원하는 디자이너들이 참여하면 유익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는 디자이너의 셀프 브랜딩을 통해 국내외 비즈니스를 하고 싶다거나 해외 디자이너와의 프로모션 교류 전시 활동을 원한다면, 그리고 자신의 디자인과 디자인 경영 기업의 이미지를 묶어 함께 일할 기회를 얻고자 한다면 <서울 디자인 페스티벌> 을 활용하여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
아울러 국내외 디자인 업체 또는 제품 디자이너들과 비즈니스를 논의하고 싶다면 <디자인 코리아> 의 디자인 프로모션 프로그램에 참여해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렇듯 국내에서도 자신의 구미에 맞는 디자인 전시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그러한 기회를 통해 만반의 준비를 한다면 밀라노에 가든, 파리에 가든, 도쿄에 가든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현재 정부가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있기는 하지만 우리 디자이너들이 현재의 시스템으로 지원을 받으려면 큰 부담을 감수해야만 한다. 지원받는 금액도 크지 않은 데다 다녀온 이후 결과 보고서부터 계약과 관련된 각종 절차를 서류로 제출해야 하는 등의 부담에 지원 자체를 포기하게 만들고 있다.
이처럼 지원 액수에 비해 부담이 커서 정부의 지원은 형식으로만 남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사례가 드물다. 정부는 당장의 금전적인 지원보다 디자이너들이 자생적으로 무엇인가를 해나갈 수 있는 경쟁력 강화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비즈니스 마인드, 자기 표현 훈련에 대한 철저한 교육 등 디자이너들을 단계적으로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러한 역할은 역시나 정부가 운영하는 각 디자인 영역별 진흥 기관이 해주어야만 한다. 또한 디자인 비즈니스 프로그램에 대한 산업자원부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마침 디자인 브랜드 팀이 올해부터 디자이너들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실용 정책을 세우고 있다고 하니 그 결과를 지켜봐야겠다.


런던의 디자인 전시 산업은 관련 영역의 통합 정책으로 정부가 주도하는 것이 특징이다. 정부가 디자인 센터를 통해 다양하게 진행되는 디자인 관련 이벤트를 큰 틀로 묶어 어떤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게 조율해주는 것이다. 반면 일본은 함께 참여하는 일사분란함이 특징이다.
매년 열리는 <도쿄 디자인 위크> 에서 미드타운을 비롯 여러 기업과 디자인 숍들이 하나의 목표 아래에서 거대한 디자인 도시를 선보인다. 그 기간의 도쿄는 도시 전체가 마치 하나인 것처럼 움직이는 인상을 준다. 세계 디자인 전시의 대표 주자라고 할 수 있는 그들의 전시는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관광 사업과 연계된 전시 기획은 관람객들의 방문을 추가의 이익 수단으로 이어가기까지 한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정부의 지원과 의식이 부족해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 모 지방에서 열린 디자인 행사에 세계적인 명사들이 오고 가는데도 서울에 있는 우리는 모르고 있는 게 현실이다.
또 행사 하나만 달랑 하고 조급하게 끝내는 경우가 많다. 디자인도 양질의 문화가 경쟁력이다. 그 지방과 주변까지 연계해 다른 문화 상품들도 함께 단계적으로 발전시킬 기획이 필요한 때이다. ‘문화가 다르다’는 것은 오랜 전통을 지닌 그 지역의 고유 식문화, 주거 문화, 생활 문화와 더불어 체험 문화 등을 의미한다. 우리 디자이너들의 감성과 정책적인 운영 시스템이 조화를 이룰 때 전 세계인을 즐겁게 불러들일 수 있는 ‘문화 잔치’로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

글 | 신승원
디자인하우스 전시기획사무국 본부장, 2002년부터 지금까지 <서울 디자인 페스티벌> <리빙 디자인 페어> <세계실내디자인대회> 등 각종 디자인 관련 전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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