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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Happy Birthday to Panty

2018-03-28

 


 

우리가 매일 입은 속옷, 그중 팬티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다. 현재는 위생의 개념을 넘어 패션 아이템으로 활용되기도 하는 팬티가 올해 100주년을 맞았다.

겨우 100년? 그전에 사람들은 속옷을 안 입었나? 라고 반문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그전에도 팬티와 비슷한 개념의 속옷은 존재했다. 르네상스 시대 귀부인들이 ‘엉덩이 고삐’라는 이름으로 착용하긴 했지만, 지금과 형태가 전혀 다른 몸에 달라붙는 바지정도 였다. 

우리나라 역시 단속곳, 고쟁이 등의 이름으로 불리며 한복 안에 속옷을 착용했지만, 지금의 형태와 다르다. 그럼, 우리가 알고 있는 속옷은 누가 언제 만들었을까?

 

 

Paper doll cut outs, 1920s-1930s, illustration by Germaine Bouret

Paper doll cut outs, 1920s-1930s, illustration by Germaine Bouret


 

바로 프랑스 브랜드 ‘쁘띠 바또(Petit Bateau)’가 그 주인공이다. 프랑스 트루아(Troyes) 지역의 촉망 받던 편물공의 후계자이자 형제가 차린 회사 ‘발튼 앤 선스’(Valton & Sons)의 에티앙 발튼(Étienne Valton)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쁘띠 바또’라는 이름은 그의 부인 저메인(Germaine)이 아기들에게 불러주던 유명한 동요에서 따온 것이다.

 

 

En vogue dans la nouvelle vague

En vogue dans la nouvelle vague


 

 

당시의 속옷은 너무 길어서 갈아입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에 그는 가위질 한 번으로 기존의 속옷을 대체할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어냈다. 말 그대로 ‘다리가 없는 팬티’였다. 

이 제품은 2x2 립(rib)이라는 새로운 스티치 기법으로 짜였고, 울, 울과 면의 혼합, 또는 순면으로 제작되었다. 이 중 2x2 립을 가장 큰 히트로 이끈 것은 바로 화이트 순면 모델이었다. 부드럽고 신축성이 뛰어났기 때문에 전후 세대의 아기들이 더는 피부 자극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게끔 했다.

 

 

Pour bien habiller les enfants

Pour bien habiller les enfants


 

사실 이 팬티는 1913년에 고안되었으나, 1914년에 발발한 세계 1차대전으로 대중에게 알려지지못하다가 1918년 종전과 함께 폭발적인 반응을 받았다. 

자유로운 움직임과 편안함, 높은 퀄리티 그리고 어린 시절 듣던 동요로부터 온 신선함과 추억이 깃든 이름이 대중에게 다가간 결과였다. 아기도, 어머니도 쁘띠 바또 팬티에 열광했다. 1921년부터 1930년까지 3천만 개가 넘는 ‘쁘띠 바또’ 라벨이 만들어졌다. 

 

 

Vous economiserez

Vous economiserez


 

1930년대에 들어서며 팬티는 발전하기 시작했다. ‘바또-라스틱’(Bateaulastic)이라는 튼튼한 밴드로 허리를 감쌌고, 양다리의 단을 점점 더 높게 커팅했다.

특히 기존의 ‘2x2 립’보다 더 유연하고 부드러운 ‘1x1립’이 1935년 새롭게 탄생했다. 이 모든 혁신적인 변화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바로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PUB-1920-Noel

PUB-1920-Noel

제품의 성공과 함께 수많은 아류 브랜드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이에 쁘띠 바또는 광고 캠페인으로 브랜드의 차별화를 확립했다. ‘쁘띠 바또 팬티: 아이들에게 옷을 입히는 올바른 방법’ ‘쁘띠 바또 팬티를 입는다는 것은 이롭고 아름다운 모든 것을 사랑한다는 것’ 등과 같은 슬로건을 내놓았으며, 1924년 일러스트레이터 베아트리스 말레(Beatrice Mallet)와 함께 마리네뜨’(Marinette)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1920

1920


 

세 개의 작은 리본을 머리에 꽂은 통통한 여자아이인 마리네뜨는 팬티를 포함한 모든 상품을 대표하는 캐릭터였으며, 당시 만화에 등장하던 영웅만큼 높은 인기를 끌었다. 이렇게 브랜드를 성공으로 이끈 독창적인 광고 캠페인과 제품의 우수함은 1937년 국제 예술과 기술 박람회에서 쁘띠 바또 전시와 마네킹에게 최우수상을 안겨주었다. 

 

Nouveautes marque Petit Bateau

Nouveautes marque Petit Bateau

Culottes marque Petit Bateau

Culottes marque Petit Bateau

 

긴 세월을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디자인과 기술력이다. 팬티의 퀄리티는 면을 짜는 실을 선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엄격한 검사 과정을 걸쳐 선발된 장섬유 실을 기계에 넣으면 고치가 풀리듯 길게 늘어나며 립(rib) 형태로 촘촘히 짜인다. 

이렇게 만들어진 수 킬로미터의 니트 원단이 차곡차곡 케이스에 쌓이면 세탁 또는 염색 공정으로 옮겨진다. 

 

그 후, 길이 350미터에 달하는 각각의 원단 밴드는 전문가들의 손에서 건조, 완화 및 안정화된다. 제작 과정의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팬티가 움직일 때마다 이리저리 움직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조립 단계다. 니트 원단을 자르고, 잘라낸 조각들을 극도의 정밀함을 바탕으로 이어 붙인 후 트림(trim) 장식을 더한다.

 

Advertisement, 1920s, Studio SNP, illustration by Magd Herest

Advertisement, 1920s, Studio SNP, illustration by Magd Herest

 

 

실의 퀄리티부터 최종 결과물까지, 모든 제작 공정은 굉장히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다. 모든 팬티는 바늘땀 한 땀까지 세밀하게 테스트된 후에만 공장을 나갈 수 있다.

 

단순히 팬티 발명에 그치지 않고 쁘띠 바또가 100년이 지나도록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은 끝없는 기술 개발과 차별화된 광고와 디자인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00주년 기념 팬티

100주년 기념 팬티


 

매일 새로운 브랜드가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현재, 조금 더 브랜드만의 철학과 기술력을 고민해봐야 할 때다.

 

에디터_ 김영철(yckim@jungle.co.kr)

사진제공_ 쁘띠 바또(www.petit-batea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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