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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4인 4색, 디자인의 맛 제대로 느끼기

나태양(tyna@jungle.co.kr) | 2015-08-20


크리스 로 멘토의 ‘직관’, 성재혁 멘토의 ‘로직’, 오디너리 피플의 '커뮤니케이션'에 이어 이준형&한명수 멘토의 '잉여'까지. 주제도 다양하지만 커리큘럼을 이끌어가는 과정, 결과물을 도출해내는 방식 또한 팀별로 각양각색이다. 2부에서는 오디너리 피플과 이준형&한명수의 커리큘럼을 집중적으로 소개해 본다.

에디터 | 나태양(tyna@jungle.co.kr)
 


오디너리 피플의 대화로 만들어나가는 패턴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동기들은 내 작업에 “귀엽다~”는 식의 영혼 없는 한 마디 정도 던지고 스쳐 지나가기 일쑤다. 워크숍에 참여해 봐도 강연자-학생 혹은 멘토-멘티 이외의 관계 형성은 기대하기 힘들다. 강진, 서정민, 안세용, 이재하, 정인지 디자이너는 부대끼고 다니며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들을 하나도 아닌 넷이나 모아 일찌감치 오디너리 피플을 결성했다. 이들을 두고 감히 ‘운 좋다’ 할 이유는 작업 메이트를 만나기가 생각보다 녹록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디자이너와 디자인 지망생들에게 소통의 부재는 뜻대로 해결되지 않는 과제다.

크리스 로 멘토의 ‘직관’, 성재혁 멘토의 ‘로직’에 이어 이번에는 ‘커뮤니케이션’이다. 오디너리 피플의 ‘반복과 확장’은 소통에 갈증을 느끼는 디자이너를 위한 처방전이다. ‘반복과 확장’이라는 주제 자체도 커뮤니케이션과 패턴 사이에 존재하는 교집합을 지시한다. 패턴이 반복 확장 가능한 매체이듯이, 커뮤니케이션의 반복과 확장을 통해 결과물을 끌어내는 것이 워크숍의 목표.

거칠게 요약하면 키워드를 이용한 패턴 제작 수업이라 하겠지만, 커뮤니케이션을 유기적으로 결부시킨 작업 프로세스는 꽤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다. ‘반복과 확장’에서 멘티는 ‘나’를 표현할 수 있는 키워드를 소스로 삼되, 시선의 거리를 기준으로 ‘내가 생각하는 나’, ‘나와 가까운 사람이 생각하는 나’,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 생각하는 나’의 세 영역으로 범주화된 키워드를 얻을 수 있다. 말만 들어서는 피상적으로 느껴지지만, 오디너리 피플은 ‘짝꿍’ 시스템으로 프로젝트를 풀어간다.


캠프 첫날, 멘티 14인은 무작위 추첨으로 두 명씩 짝을 지었다. 짝꿍으로 맺어진 두 사람에게 가장 먼저 주어진 과제는 ‘심층 인터뷰’ 하기. 짝꿍은 서로의 인터뷰이-인터뷰어가 되어 자기 자신을 꺼내 보여주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다.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좋아하고,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고 싶은지, ‘나’라는 인간을 공유하다 보면 짝꿍은 제법 친밀한 관계로 발전한다. 인터뷰를 통해 멘티는 자신의 키워드를 개진시키고, 친근한 거리에서 바라본 짝꿍에 대한 키워드도 작성한다.

이와 동시에 각각의 멘티는 누군가의 ‘시크릿 짝꿍’이기도 하다. ‘시크릿 짝꿍’은 마니또 같은 존재로, 거리를 두고 대상을 관찰한 결과를 근거로 키워드를 만들게 된다.

세 가지 시선의 키워드가 모두 취합된 뒤, 멘티는 그중에서 어떤 재료를 골라 무슨 요리를 할지 고민하는 단계로 넘어간다. 개인적인 선호에 따라 키워드를 걸러낼 수는 있지만, 근 이틀간 3인의 머리에서 쏟아져 나온 키워드의 양이 많다 보니 필터링 작업조차 만만치가 않다.

오디너리 피플은 “사람들은 대개 디자이너의 일이 영감, 직관, 아이디어로 해결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디자이너에게는 수많은 선택지 가운데 무슨 소스를 취해 어떻게 활용하는가도 큰 문제다. 이 선택 프로세스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다”며 커리큘럼의 의도를 설명했다.


캠프 3일차, 키워드를 선택 과정을 마친 멘티들은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했다. 첫날부터 폼보드와 씨름하던 크리스 로 팀이나 포스터를 제출해야 했던 성재혁 팀과 비교하면 늦은 시작. 프로젝트를 소화하기에 일정이 빠듯하지는 않은지 묻자, 강진 디자이너는 “정말 촉박하다. 천천히 생각하고 싶어도 시간적인 압박이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덕분에 ‘선택’이라는 이슈가 더욱 부각되기도 한다”고 답했다. 이에 다른 팀 멤버들은 “강진 디자이너가 가장 조급해하는 장본인이다. 디자인캠프의 취지에 맞지 않게(?) 새벽 서너 시까지 일하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응수하기도.

오디너리 피플은 기계적으로 강의만 듣고 나가는 워크숍이 아닌, 관계를 형성해가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워크숍을 원한다. 처음엔 멘토 자신들조차 짝꿍 시스템의 효과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고 한다. 커뮤니케이션은 강제로 끌어낸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디너리 피플의 프로젝트는 현재까지 순항하고 있는 듯하다. 영한 에너지로 멘토-멘티뿐만 아니라 멘티-멘티 간에도 유대감을 형성하며 인간적인 하모니를 만들어내고 있다.

프로젝트 마지막 날, 완성된 패턴은 배지(badge)로 제작될 예정이다. 오디너리 피플은 “워크숍이 끝나면 남는 것 없이 돌아가는 경우도 많지 않나. 그래서 스스로 만든 배지를 기념품 삼아 가져가게 하려고 한다. 우리 팀뿐만 아니라, 500개 정도를 제작해 디자인캠프 전체에 나눠 줄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너, 디자인의 맛을 아니? 이준형&한명수의 디자이너 클리닉

‘4인 4색’이다. 네 가지 커리큘럼이 이토록 다른 개성을 발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다. 이준형&한명수 멘토가 끌어가는 프로젝트의 주제는 ‘잉여’. 제목만으로도 다른 세 워크숍의 바운더리를 훌쩍 뛰어넘어 버린다. ‘잉여’는 직관, 논리, 커뮤니케이션과 같은 디자인 접근 방법론보다는 사회학이나 인문학 섹션에 어울리는 키워드가 아니던가. 이준형&한명수 멘토와 13인의 멘티들은 ‘잉여’로 어떤 디자인을 보여줄지 궁금해진다.

이준형&한명수 멘토 팀의 커리큘럼에 대해 한명수 멘토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Jungle : 디자인캠프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이지원 선생이 나를 섭외할 때 “디자인의 맛을 보여주자”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순전히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학생이든, 현업 종사자든, 멘티마다 나름대로 디자인의 맛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알고 있는 맛은 일부에 불과하다. ‘디자인의 맛을 보여주는 것’이 캠프의 목적이라면, 몰랐던 새로운 맛을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사실 디자인을 잘 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그들이 학교나 회사로 돌아가서도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끈’을 만들어주고 싶다.

Jungle : 커리큘럼을 지도할 때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다면.

필드에 있는 사람 입장에서 얘기하자면 디자인은 ‘쌔끈한’ 아웃풋 하나면 된다. 많은 학생이 디자인의 명확한 목표와 제약 조건도 모른 채 디자인을 한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건 좋지만, 막상 디자이너로 살아남으려면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고 싶은 영역으로 끌어올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지금도 멘티들이 뭘 하려고 하면 일부러 못 하게 한다. 못 하게 하면 오히려 하고 싶어서 기를 쓰고 목적을 만든다. 험악한 업계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래야 한다. 이 같은 훈련을 통해 최종적으로는 학교와 현장의 괴리라는 단어가 없어지는 캠프가 되었으면 한다.


Jungle : 프로젝트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나?

처음에는 포스트잇에 ‘잉여’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을 자유롭게 써서 작업대 보드에 붙이게 하고, 키워드 그루핑(Grouping)을 해서 공감하는 키워드를 기준으로 4개 팀을 구성했다. ‘잉여’라는 느슨한 키워드에서 안에서 가능한 주제를 설정하라고 했다.

‘잉여’를 사회적인 이슈에 연결하는 팀도 있고, 절망적인 측면을 표현하고 싶다는 팀도 있다. 어떤 팀은 잉여를 긍정적인 의미로 재해석하려 시도한다. 멘토는 진행 상황을 보면서 개별적으로 가이드를 해준다.

Jungle : 2인 체제로 팀을 끌어가고 있는데, 이준형 멘토와는 의견이 잘 맞는 편인지.

이준형 멘토는 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디자이너다. 우리는 멘티의 개별적 상황을 이해하는 것을 우선적인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사전에 이메일을 보내 멘티들의 인격, 경험, 디자인 이해도 등에 대한 설문을 조사했다. 고정된 커리큘럼으로 진행하기엔 멘티들 상태가 제각각이더라. 편하게 즐기고 싶어하는 친구도 있지만, 제대로 된 크리틱을 받아본 경험조차 없는 친구들도 많았다.

낙오자가 생길 것 같아 일부러 커리큘럼을 열어 놨다. 결과물의 형태도 자유다. 프레젠테이션으로만 끝내는 방법은 없나 궁리하고 있을 정도다(웃음).

Jungle : 이제 4일 차인데, 학생들은 잘 따라오고 있는지 궁금하다.

확실히 사회 경험이 있는 멘티들이 잘한다. 스스로 목적을 만들어낸다. 그들에겐 “여기 왜 왔냐?”고 물어봤는데 나름대로 상처가 있더라. 한 명은 자기가 하는 디자인이 너무 괴로워서 리프레시하러 왔다고 하기에 그냥 놀고 가라고 했다. 가기 전에 멋있는 작업 하나 보여주라고.

디자인을 좋아하기만 하는 학생들은 뭘 해야 할지를 몰라서 문제다. 사실 디자인은 리서치만 잘해도 끝난다. 리서치는 생각의 밭이고, 길이 좁아져야 리서치다. 하지만 핀터레스트를 아무리 들여다봤자 자극만 받고 방향성은 없다. 노트북 덮으면 그만이다. 좋은 작업들을 많이 접해도 그 뿌리가 뭔지를 모르면 오염당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 기본조차 모르는 학생들이 많다.


Jungle : 듣다 보니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 상상이 안 된다.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비장의 마술 같은 막판의 프로세스를 알려 줄 거다. 극한의 상황은 엄청난 크리에이티브를 발생시킨다. 밑바닥에 있는 크리에이티브는 궁지에 몰릴 때 솟아 나온다. 그 강렬한 경험 하나만 가져가도 성공이라 생각한다.

Jungle : 수년 전부터 논의됐던 주제인 ‘잉여’를 굳이 커리큘럼 제목으로 택한 이유는 뭔가?

사실 별 뜻 없다. 이지원 교수가 ‘잉여’는 어떻겠냐고 던진 게 주제로 채택됐다(웃음).

개인적으로는 잉여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지나간 유행이기도 하고, 부정적인 뉘앙스가 확 와 닿는다. 멘티들은 ‘잉여’라는 주제를 좋아하더라. 주류 디자이너도 아니고, 할 일도 없는 본인의 상태가 불편한 거다. 필드에서 지친 친구들은 아무거나 해도 되니까 재밌다고 한다.

Jungle : 프로젝트 ‘잉여’로 지향하는 바가 있다면?

배움의 갈망이 있는 친구들이 좋은 스승을 못 만나 많은 시간을 허비해왔다. 공모전을 위한 디자인 연습을 한다거나, 목적 없이 조형 연습을 한다거나. 크리틱도 마찬가지다. 깊이가 없으면 구덩이를 파서 들어갈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하는데, 생각할 기회도 없이 “깊이가 없다”고 비판만 한다.

이 친구들에게는 도움이 필요하다. 다들 잘하는 게 있는데, 뭘 해야 할지를 모른다. 엉터리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왜 취업이 안 될까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아웃풋만으로 도움을 주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디자인의 시작은 나를 드러내는 것부터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나라는 정보를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일은 쉬우면서도 어려운 과제다. 여기서 자기소개 훈련이라도 잘하고 갔으면 좋겠다.

이준형&한명수 멘토의 ‘잉여’ 프로젝트는 다른 방향에서 멘티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듯하다. 길 잃은 디자이너를 치유해주는 ‘클리닉’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이준형&한명수의 멘티들에게는 디자인캠프가 디자인의 ‘맛’을 볼뿐만 아니라, 좋은 스승과의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마지막날, 오픈 하우스 전시회 작품 스케치

마지막날인 8월 19일, 디자인캠프는 그 동안의 과정을 모두 소화하고 멘티들이 작업한 작품을 전시, 외부인에게도 공개했다고 한다.

비록 전체 전시회 장면을 담지는 못했으나, 디자인캠프 오픈 하우스에서 전시된 작품들 중 일부를 소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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