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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임시 건축은 미래 주거가 될 수 있을까?

박진아 (미술사가·디자인컬럼니스트, jina@jinapark.net)​ | 2017-10-26

 


 

전 세계 인구 113명 중 1명은 난민이다. 매년 난민이 증가하면서 난민 수용소는 턱없이 부족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축제에서 주로 사용되는, 반짝 생겼다가 금방 사라지는 임시 공간과 건축물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반짝 지어졌다 금방 사라지는 축제의 임시 건축


독일 뮌헨의 옥토버페스트

매년 9월 중하순경부터 10월 첫 주말까지 약 16일~18일 동안, 독일 남부의 바바리아 주의 수도 뮌헨에서는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가 열린다. 19세기 초 (정확히는 1810년)에 지역 농산물 수확을 축하하고 도시를 외부에 홍보한다는 취지 하에 처음 시작된 옥토버페스트는 오늘날까지 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매년 열리면서 도시 홍보와 관광 수익에 큰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축제 방문객들은 맥주 페스티벌을 비롯해서 놀이공원, 전통 상점, 게임이 제공되는 카니발 공원, 경마, 전통 바바리아식 요리를 경험하면서 약 2주일 동안 왁자지껄 유쾌한 시간을 보낸다.

 

독일 뮌헨의 ‘비즌’ 잔디 공원에서 2~3주 동안 열렸다가 철거되는 연례 옥토버페스트 © 2012 picture alliance / Mario Siegemund.

독일 뮌헨의 ‘비즌’ 잔디 공원에서 2~3주 동안 열렸다가 철거되는 연례 옥토버페스트 © 2012 picture alliance / Mario Siegemund

 

 

태국 싸뭇쏭크람의 딸랏롬훕 시장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 동쪽으로 차로 약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싸뭇쏭크람 도(道)에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시장이 하나 있다. ‘딸랏롬훕 시장’은 채소, 과일, 생선부터 일용잡기와 옷가지에 이르기까지 기차길 옆 보따리 장수들은 매일 하루 8번 차양과 장사품을 폈다 거두기를 반복한다. 이곳 상인들은 메콩철도노선 철도 위로 물건을 진열해 놓고 팔다가 기차가 지나가는 시간이 되면 기차역 안내원의 호루라기 신호에 따라 짐보따리를 거둬 기차길 옆으로 피했다가 기차가 지나가면 다시 물건을 풀어 놓고 장사를 재개한다. 현대 교통안전 수칙의 견해에서 보자면 장터로 허가할 수 없는 위험천만한 환경일 테지만, 딸랏롬훕 시장은 1950년대부터 이 고을 사람들의 생활터전이자 일상문화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오늘날까지 별 사고 없이 운영돼고 있다.

 

태국의 딸랏롬훕 시장 © 2007 Soranart Sinuraibhan.

태국의 딸랏롬훕 시장 © 2007 Soranart Sinuraibhan

 

 

인도 알라하바드의 쿰바멜라 축제

인도 알라하바드에서 12년에 한 번씩 열리는 ‘쿰바멜라(Kumbha Mela) 축제’는 인도에서 열리는 수많은 종교 축제 중에서 가장 성대하기로 유명한다. 축제 때마다 어림잡아 5천만에서 1백만 명의 힌두교 신자들이 성스러운 겐지즈 강가 네 곳을 순례하면서 강 속에 몸을 담그고 영혼을 정화하고 간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순례자를 받아들여야 하는 4곳 도시들은 축제 기간 동안 임시적으로 손님 숙소, 식당, 각종 위생시설, 의료시설, 공공안전 등의 서비스를 한꺼번에 효율적으로 제공하는 행사 주최 도시로 용케 탈바꿈한다. 순례 기간이 끝나고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기면 모든 시설은 말끔히 철거되고 거주민들은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인도 알라하바드에서 열리는 쿰바멜라 축제. © 2013 Dinesh Mehta.

인도 알라하바드에서 열리는 쿰바멜라 축제. © 2013 Dinesh Mehta

 

 

사우디아라비아 메디나의 순례 지역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미 1970년대에 수많은 메카 순례자들을 질서 있게 수용하기 위해 건축 디자인의 도움을 받았다. 건축 수주를 담당했던 독일출신 건축가 마흐무드 보도 라시(Mahmoud Bodo Rasch)는 순례자들을 뜨거운 태양으로부터 보호하는 테플론 섬유 텐트를 도입하고 안전한 통행을 위한 통로 개선 공사를 시행했다. 당시 매년 약 2백 5십만 명의 순례자(현재는 연간 1천 5백만 명으로 증가)를 받으며 압사와 각종 안전사고가 잦기로 악명 높았던 메디나는 그의 건축적 개입으로 정돈된 텐트촌에서 순례자들에게 잠자리를 주는 휴식터 겸 찬란한 이슬람 건축 공간을 걷고 음미할 수 있는 사색의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사우디 아라비아 메디나 근처 순례자를 위한 미나 마을의 숙소용 텐트촌 © 1981 Hajj Research Center / Bodo Rasch Archive.

사우디 아라비아 메디나 근처 순례자를 위한 미나 마을의 숙소용 텐트촌 © 1981 Hajj Research Center / Bodo Rasch Archive

 

 

그외 전 세계의 다양한 지역 축제들

그런가 하면 1984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8월 말이면 미국 네바다의 사막 한가운데에서는 ‘버닝맨(Burning Man) 종합예술 페스티벌’의 막이 오르고 공동체 의식과 자립주의 정신을 예술로 표현하는 행사를 거행한다. 이스라엘에서는 매년 9월과 10월 한 해 농사와 수확을 축하하며 유대인들이 ‘라웁휘테 페스티벌’을 벌인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는 1723년부터 근 3백 년 동안 매년 2월 금식기에 접어들기 전 종교적 카니발을 열었는데, 그 유산은 오늘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리오 축제로 이어지며 리우데자네이루를 국제 페스티벌의 수도로 각인시켰다. 노천음악 페스티벌인 영국의 ‘글래스톤베리(Glastonbury) 축제’는 주변 농부들의 동의를 얻은 후에야 행사를 열 수 있다.

 

벽돌로 지어진 반영구적 건축을 꼭 고집해야 할까?

이 모든 행사의 공통점은 행사 기간에만 급조되었다가 사라지는 임시 공간과 건축물에서 거행되는 행사들이라는 것이다. 옥토버페스트 부지는 ‘비즌(Wiesn)’이란 애칭으로 불리는 궁정 안 잔디밭에 차린 임시 축제장에 불과할 뿐 축제가 열리지 않는 대부분 기간에는 푸른 잔디가 자라는 대정원으로 휴식한다. 종교 순례, 문화 축제, 장터, 군사기지, 광산촌이 임시 거주처 겸 도시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자연재해, 정치적 충돌, 기후 재앙의 피해가 유독 잦아진 오늘날의 우리는 반드시 콘크리트, 벽돌, 철근으로 만들어진 반영구적 건축과 도시를 고집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버닝맨 페스티벌 © 2015 Google, DigitalGlobe

버닝맨 페스티벌 © 2015 Google, DigitalGlobe

 

 

예로부터 서구 문화권에서는 텐트나 거주용 컨테이너 같은 임시적 건축 형태에 대한 인식이 썩 좋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서양에서의 그같은 인식은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시대 건축가 겸 토목공학자였던 비트루비우스(Vitruvius)가 주장했던 ‘영원무궁의 건축’ 철학, 즉 건축이란 모름지기 오래 존속하도록 지어져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근 하버드 디자인대학원의 라훌 메로트라(Rahul Mehrotra)와 칠레 산티아고 도시 생태학 센터의 펠리페 베라(Felipe Vera) 두 학자는 건축에 대한 그같은 서구적 사고방식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두 학자는 ‘일시적 도시(Ephemeral Cities)’라는 주제로 공동 진행한 연구서를 통해 임시 건축이란 단지 철거 유효기간이 없을 뿐 영구적 형태의 건축물과 다름없는 거주 형태라고 재정의했다.

 

난민 증가로 재정의되는 임시 건축과 미래의 도시 문화

2015년부터 시리아 난민을 비롯하여 중동과 북아프리카 난민이 대거 유럽으로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유럽의 모든 국가들은 난민 수용시설의 부족과 그에 대한 대책을 시급하게 강구해야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현재 독일 뮌헨의 피나코텍 미술관 부설 건축박물관에서는 ‘건축은 영구적이어야 하는가? - 일시적 도시화’ 전(9월14일-2018년 3월18일)을 진행하고 있다. 전시는 인류 역사와 여러 문화권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임시 건축물의 순기능적 사례들을 살펴보고, 자연재난과 전쟁, 지정학적 충돌로 인해 발생하는 재난으로 난민 신세가 된 유랑인구를 수용하는 방책으로서 임시건축의 가능성을 모색해본다.

 

인도 알라하바드는 3년 동안 수백만 순례자들을 수용하는 축제 주최 도시로 일시 탈바꿈한다. KUMBH MELA FESTIVAL, ALLAHABAD, INDIEN © 2013 Dinesh Mehta

인도 알라하바드는 3년 동안 수백만 순례자들을 수용하는 축제 주최 도시로 일시 탈바꿈한다. KUMBH MELA FESTIVAL, ALLAHABAD, INDIEN © 2013 Dinesh Mehta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큰 난민수용소는 케냐에 있다. 케냐 다다압 난민촌에는 현재 40만 명이 임시 텐트촌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지금도 계속 늘고 있다. 난민촌 면적은 그 주변으로 퍼지며 확장되고 있다. 1990년대 초 소말리아 내전으로 발생한 피난민들 대대수는 이 수용소에 온 지 25년이 지나도록 고국 귀환을 하지 못한 채 반영구적 거주민들이 되어가고 있지만 난민수용소는 도시나 국가적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다. 

 

도시계획 전문가들과 정책가들에게 임시 수용시설은 악몽의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종교 순례, 문화축제, 혹은 럭셔리 모험 캠프에 모여드는 군중은 공유하는 가치관과 사회적 규율에 따라 행동한다. 반면에 수용소에 감금된 생면부지의 낯선 이웃들은 이들을 응결시키고 자체 통제시키는 공통된 가치관이나 규율이 없으며, 따라서 임시 수용소는 예상치 못한 불상사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선진국에서도 대다수 국가들은 임시 행사장이나 수용소의 관리 규율이 지독히 엄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건축계는 점점 임시 건축과 도시 설계를 미래 건축 솔루션으로 포용하려는 추세다. 미래의 건축은 임시 건축이 될 것인가? 적어도 임시 건축과 일시적으로 형성된 도시는 글로벌 시대 노마디즘 추세를 타고 미래 인류의 주거와 도시 문화에 영감을 줄 것으로 보인다.

 

 

_ 박진아 (미술사가·디자인컬럼니스트, jina@jinapa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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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아 칼럼니스트
미술평론가, 디자인 및 IT 경제 트렌드 평론가, 번역가이다. 뉴스위크 한국판, 월간디자인의 기자를 지냈고, 워싱턴 D.C. 스미소니언 미국미술관, 뉴욕 모마, 베니스 페기 구겐하임 갤러리에서 미술관 전시 연구기획을 했다. 현재 미술 및 디자인 웹사이트 jinapark.net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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