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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스웨덴의 오픈하우스와 시스템 디자인

조상우 | 2017-09-12

 

 

우리가 일상의 대부분을 보내는 주거 공간인 ‘집(house)’은 세계 어디를 막론하고 아주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필자도 처음 스웨덴에 이주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앞으로 살아갈 ‘집’을 찾는 과정이었다. 낯선 나라에서의 생소한 그리고 난해한 과정들을 경험하며 느낀, 이들의 일상 속에 자리 잡은 시스템 디자인(system design)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오픈하우스를 알리는 부동산 안내 푯말

오픈하우스를 알리는 부동산 안내 푯말


스웨덴의 주택시장은 일반적으로 ‘햄네트’( Hemnet.se)이라는 통합 사이트를 통해 진행된다. 이 사이트를 통해 구매하려는 집의 위치와 구조, 주변 교통 정보 등 필요한 모든 정보를 미리 검색할 수 있다. 워낙 다양한 인종이 어울려 사는 나라이다 보니 외국인도 어렵지 않게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다.

특이한 것은 대부분 매물로 나온 아파트, 주택에는 ‘오픈하우스(open house)’ 라는 개념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Svensk fastighets, Bjurfors, Bulowlind, Maklarhuset 등 브랜드화된 다양한 스웨덴의 부동산들이 오픈하우스를 주관한다. 매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방문 가능한 날짜와 시간이 명시되어 있고, 그 날짜에 맞춰 방문하면 해당 부동산 직원의 가이드 하에 집안을 둘러볼 수 있는 개념이다. 대략 1시간 정도 오픈하우스가 진행되며, 그 시간 동안 집주인은 자리를 비운다.

브랜드화되어 있는 스웨덴의 부동산 매장

브랜드화되어 있는 스웨덴의 부동산 매장


오픈하우스 시간을 통해 집의 크기나 방의 구조, 편리성 등을 확인하기도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그 집 주인이 살고 있는 리얼한 현장까지 보게 된다는 것이다. 인테리어 취향과 감각 등 모든 것이 사는 모습 그대로 노출된다. 주방 살림살이부터 방금 아이들이 놀던 놀이방까지 그대로 보이게 된다.

실제로 오픈하우스를 통해 많은 방문자들은 아이디어와 영감을 얻기도 한다. 재미있게도 필자의 동료 중에는 인테리어 디자인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오픈하우스만 찾아다니는 친구들도 있다.

그리고 실질적인 예상 구매자들은 오픈하우스를 통해 ‘내가 이 집에 들어오면 이렇게 꾸며야지, 저렇게 배치해도 재미있는데…’ 등의 신선한 아이디어가 오고 간다. 예상했겠지만 타인이 우리 집에 들어오니 귀중한 것은 감추고 치우는, 이런 불필요한 절차는 ‘신뢰’가 바탕이 되므로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두, 세번 정도 오픈하우스를 진행하고 비딩(bidding)을 시작한다. 시장에 나온 매물가와 구매자의 희망단가를 맞춰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최고가를 입찰한 이와 거래가 진행된다.

스웨덴 주택시장을 한눈에 볼 수 있는 www.Hemnet.se의 메인 화면. 매물뿐만 아니라 스웨덴 사람들의 인테리어 감각을 엿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스웨덴 주택시장을 한눈에 볼 수 있는 www.Hemnet.se 의 메인 화면. 매물뿐만 아니라 스웨덴 사람들의 인테리어 감각을 엿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오픈하우스가 있기 전에 해당 부동산에서는 방문자들에게 배포할 브로셔를 제작한다. 전담 부서가 따로 방문해 인테리어 조언과 함께 적정한 가구 배치 등도 알려주고, 집안 분위기와 맞는 소품들까지 공수해 세팅을 도와준다.

이렇게 작업된 이미지는 웹사이트에 게재되고, 별도로 상당히 퀄리티가 높은 브로셔 형태의 책자로도 제작된다. 집 안의 구조, 빛의 조도와 컬러 배색 등을 고려해 상당히 디테일한 이미지가 작업 된다. 그리고 이는 잠재적 구매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디자인’이라는 요소가 소비자의 구매에 영향을 주는 실질적인 사례인 것이다.

퀄리티 높은 디자인으로 제작되는 부동산 매물 브로셔

퀄리티 높은 디자인으로 제작되는 부동산 매물 브로셔


국내에도 진출해 있는 이케아(IKEA)의 쇼룸 코너에 방문해보면 실제로 거실, 서재, 부엌, 아이 방의 인테리어 예시를 보여준다. 단순히 가구를 파는 비지니스를 넘어 집 꾸미기에 대한 영감을 주는 것이다. 위에 언급한 햄네트 사이트에 접속하면 바로 이 영감(inspiration) 코너가 따로 있다. ‘그 정도 평수면 이렇게 한번 꾸며보는 건 어떨까요?’, ‘거실 창문이 크다면 이런 식으로 꾸며보세요.’라는 식의 상당히 디테일한 예시로 영감을 준다.



아파트, 하우스 등 다양한 형태가 공존하는 북유럽의 주거 형태

아파트, 하우스 등 다양한 형태가 공존하는 북유럽의 주거 형태


위의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이 북유럽 도시의 대부분은 아파트와 주택 등 다양한 주거형태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아파트와 같이 규격화된 집의 구조가 아닌 다양한 건축양식이 존재함으로써 인테리어 디자인의 폭이 상당히 넓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바로 북유럽 사람들의 인테리어 디자인에 대한 관심도와 그 이유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재미있는 예로 마트에 가면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일상용품뿐만 아니라 가드닝 제품, 승마용품까지 다양하고 광범위한 카테고리에 놀라곤 한다. 그만큼 서로의 거주 공간과 생활 환경이 다양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잘 설계된 시스템 디자인

집을 사고파는 매매에 있어서, 앞서 말한 주택매매 시스템을 통해 모두에게 평등한 기회가 주어지고 있음을 본다. 한마디로 투명하다.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있는 입찰 상황을 볼 수 있으며, 몇 명이 참여하고 있는지까지 알 수 있다. 마치 우리에게 익숙한 옥션의 시스템과도 흡사하다. 이런 부동산 매매시스템은 북유럽 사회의 ‘투명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시에 불과하다. 사회 전반에 걸쳐 이러한 투명성에 기반을 두니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피하게 된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자연스럽게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가 찾아오게 되는 것이다. 다소 지루하거나, 따분할 수도 있는(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이 생활은 바꿔 생각하면, 아주 안정적이고 평온한 삶이다.

실제로 스웨덴의 뉴스는 상당히 재미(?)없다. 이번 여름이 얼마나 찬란한지 며칠씩 보도하기도 하고, 길가에 가로수가 쓰러져 도로를 막은 기사도 심도 있게 다룬다. 그만큼 나라가 들썩일만한 일이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는 반증이다. 사실, 우리의 일상은 지루하고 무미건조한 시간들로 대부분을 채운다. 커피를 사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고, 버스에 앉아서 졸거나, 옆자리 동료와 어제와 비슷한 점심을 먹거나... 하지만 평온하며 지루한 그 시간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우리는 잊고 살기 마련이다.

필자가 느끼는 북유럽 사회 전반의 평온함과 안정감은 ‘잘 디자인된 시스템’으로부터 온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지키고 발전시켜 나가는 현(現)세대들의 노력이 덧붙여져 나날이 개선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북유럽 사람들은 말수가 적고 차분한데 그 이유 중 하나는 모든 행정 처리가 이메일, 문자메시지, 온라인으로 완벽하게 처리되기 때문”이라 한다.

다시 말해 내가 원하는 서비스를 받기 위해 굳이 전화하고 찾아가서 일일이 요구할 일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물론 느리다는 단점도 있지만). 또한, 이곳 스웨덴을 포함한 북유럽은 이미 현금 없는 사회가 되었다. 껌 하나도 신용카드 결제가 가능하다. 이러한 흐름은 투명한 신용 사회를 위한 첫걸음이다. 개개인의 금전 출처가 분명하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검은 돈(?)이 유통될 수 없다. 모든 시스템이 투명하게 관리되는 것이다. 이렇듯 필자가 다양한 상황들을 통해 경험하고 있는 이곳의 ‘사회 시스템 디자인(Social system design)’은 느리지만 정확하고, 조용하지만 확신이 있다.

위 사례들을 통해 우리 각자의 삶도 반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가 원하는 것이 언제 이루어질까 조급하기보다, 현재의 시간에 온전히 투명하게 충실하다 보면 어느새 우리가 열망하던 그 ‘순간’은 옆에 와있을지도 모른다. 느리지만 조용히, 차분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글·사진_ 조상우 스웨덴 Sigma Connectivity사. 디자인랩 수석 디자이너 (sangwoo.cho.0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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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우 디자이너
현재 북유럽 스웨덴에서 산업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삼성전자 모바일 디자인 그룹 책임 디자이너, 소니 모바일(Sony mobile) 노르딕 디자인 센터를 거쳐, 현재 스웨덴 컨설팅 그룹 시그마 커넥티비티(Sigma connectivity), IoT 부문 수석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다.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근원지에서 살아가며 느끼는 경험들을 바탕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www.sangwooch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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