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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다시, 건축에서 시작하는 이야기

2014-06-19


지난 6월 7일 개최된 ‘2014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개막식에서 한국관이 최초로 황금 사자상을 수상했다. 이는 한국관이 베니스 비엔날레에 첫선을 보인 1995년 이후 19년 만의 일이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미술과 건축 전시가 격년에 한 번씩 열리는 세계 문화, 예술계의 대표적인 행사 중 하나다. 이번 한국관 전시는 ‘2014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의 총감독인 렘 콜하스가 제안한 ‘근대성의 흡수(Absorbing Modernity : 1914-2014)’를 남북한의 건축 역사와 흐름으로 풀어낸 <한반도 오감도> 였다.

에디터 | 정은주( ejjung@jungle.co.kr)
자료제공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반도 오감도> 는 시인이자 건축가였던 이상의 시 ‘오감도’를 모티브로, 서로 다른 정치, 사회적 환경 속에서 변화하게 된 남북한의 건축을 한자리에서 조망할 수 있도록 한 전시다. ‘삶의 재건’, ‘모뉴멘트’, ‘경계’, ‘유토피안 투어 등 총 4가지의 섹션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한국이 처한 특수한 상황과 정치적 이데올로기보다 세계 건축의 흐름 속에서 남북한 건축의 맥락을 짚어보려고 했다. 이를 사진, 영상, 회화 등 다양한 장르에서 작업하고 있는 국내외 39명의 작가를 통해 조망해 보려고 한 시도는 흥미로운 지점 중 하나였다.

‘삶의 재건’에서는 남북한이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분단에 이르게 된 현재의 역사를 훑는 동시에 대표적인 도시인 서울과 평양의 변화상을 사진과 영상 등을 통해 살펴보게 했다. 먼저, 북한의 경우 전쟁으로 인해 평양을 비롯한 대부분의 도시가 초토화되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전쟁의 피해를 수습하고, 삶의 공간을 다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이들의 건축물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이 바로 사회주의 이념이었다. 웅장하면서 압도적인 형태의 기념비적 건축물들이 이 사실을 대변해준다. 반면, 서울은 자본주의 이념 아래 국가 성장의 목적으로 토목 공사 위주의 도시 재개발을 통해 변화한 곳이다. 두 도시 모두 각기 다른 국가관과 사회 구조 속에서 변화했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으며, 건축의 역할이 삶의 공간을 구현하는 것을 넘어서서 삶의 방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려주는 섹션이다.

이어지는 ‘모뉴멘트’는 도시의 변화 과정 아래 중요한 역할을 했던 남북한의 대표적인 건축가인 김수근과 김정희의 건축물을 소개한다. 두 사람 모두 주요 건축 프로젝트 참여했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건축가의 위상에는 차이가 있었다. 김수근이 자신의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한 건축가로서 인정을 받았다면, 김정희는 ‘평양 재건 마스터 플랜’ 등에서 알 수 있듯 국가를 위한 건축가의 역할에 충실했던 것이다. 건축물의 형태부터 건축가들을 대하는 태도 등을 통해 남북한이 건축을 대한 서로의 관점을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남북한의 ‘경계’는 DMZ와 같은 물리적인 공간부터 보이지 않는 문화, 사회적 측면까지 매우 광범위하다. 이 섹션에서는 경계 지점에서 서로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기보다, 상상으로나마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내려고 한다. 마지막 섹션인 ‘유토피안 투어’에서는 북한을 자주 오가면서 관광 상품 개발, 영화 제작, 문화 행사 등을 기획하며 북한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닉 보너의 컬렉션 작품으로 꾸며졌다. 1993년 중국 베이징에서 고려그룹을 설립한 이래 다양한 사업을 진행한 그의 작업들과 함께 수집한 판화와 선전 포스터 등은 북한의 일상 생활을 가늠해볼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다.

당초 이번 전시는 남북한의 건축가들이 함께 만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북한의 건축가들이 참여할 수 없게 되면서 지금의 전시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때문에 한편에서는 북한을 보는 관점이 남한의 시각에 맞춰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남북한의 건축을 이야기함에 있어, 반드시 북한의 건축가가 직접 참여해야 한다는 명제를 내걸어야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남북한의 건축을 비교, 대치하는 방법이 아니라 열린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는 건축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관점은 ‘2014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의 전체 주제인 ‘펀더멘탈(fundamentals)’. 즉 기본 혹은 근본과도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다. 총감독인 렘 콜하스는 ‘2014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에 대해 “유명 건축가들을 소개하거나 건축적 특징을 반영하지 않은 채 미술 혹은 디자인 전시와는 방향을 달리하겠다”고 말했다. 건축의 기본에 충실하고자 하는 그의 의도는 지난 건축전과 비교해보면 더욱 그 차이가 드러난다. 이제까지 주제전이 일부 건축가나 예술가들의 작품을 만나는 자리였다면, 이번에는 복도, 지붕, 벽, 문 등 건축의 요소 자체를 전시로 옮긴 것. 또한 커미셔너의 주관에 의해 진행된 국가관 전시를 하나의 맥락으로 통일시킨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근대성의 흡수: 1914-2014’라는 국가관의 주제는 총 65개국의 국가들이 하나의 주제 아래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건축을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줬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한국관 전시는 이렇듯 전체 주제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바탕으로 남북한이 처한 특수한 상황을 세계의 건축 흐름에 연결시키면서 사회, 문화적 관심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한편, 조민석 커미셔너를 필두로, 배형민 서울시립대 교수와 안창모 경기대 교수가 큐레이터로 참여한 큐레이팅 방식과 포스터와 리플렛 등 디자인 전반을 맡은 슬기와 민의 통합적인 디자인이 더해져 한국관은 더욱 빛을 발했다. 전시는 오는 11월 23일까지 베니스 비엔날레를 거쳐, 내년 초에는 국내 아르코미술관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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