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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스웨덴의 믹스 앤 매치, 혹은 올드 앤 뉴

조상우 시그마 커넥티비티 디자인랩 수석 디자이너 | 조상우 | 2017-05-25

 


 

믹스 앤 매치(Mix & Match)는 이미 패션계에서는 잘 알려진 테마이자 유행의 흐름 중의 하나이다. 어울리지 않을 듯한 아이템들과 소재, 컬러를 감각적으로 코디한 새로운 룩을 통해 앞서가는 트렌드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곳 북유럽에서는 그러한 흐름이 자연스럽게 건축분야에서도 보여지고 있는 듯하다. 오래전부터 이어져오는 전통을 유지하고 계승하되 새로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디자인’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또 다른 결과물로 재탄생 시킨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듯하다. 필자가 소개하고자 하는 아래의 건축에서 보이는 것처럼 몇 백 년의 역사를 가진 건물들이 첨단의 모던한 건축과 정교하게 융합(fusion)되어 새로운 아이코닉(iconic)한 디자인 랭귀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말뫼(Malmö)의 중심가에 위한 해양대학교(The World Marin University, WMU) 건물

말뫼(Malmö)의 중심가에 위한 해양대학교(The World Marin University, WMU) 건물


 

2015년 건축 디자인상을 수상한 바 있는 이 건축물은 덴마크 건축가 킴 우츤(Kim Ultzon)과 오스트리아 건축사무소 테루와(TERROIR)의 합작품으로, 현재 말뫼 해양대학교(The World Maritime University)가 입주해있다. 

 

다양한 이유로 건물을 증축하거나 보수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이들은 기존 건물의 파괴를 최소화하고 그 영역을 영리하게 확장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기존 건축물의 역사적 의미와 외관을 유지하려는 의지와 함께 시대를 앞서가는 첨단의 건축 디자인을 주저하지 않고 융합하여 덧붙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실로 놀랍다. 필자가 거주하고 있는 이곳 스웨덴과 덴마크에서는 벌써 여러 개의 건물들이 이러한 양식으로 또 다른 랜드마크가 되고 있다. 

 

건물 증축을 통한 실질적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지역의 힙플레이스(hip place)가 되어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는 이 매력적인 발상은 탁월하다. 때로는 잊혀가는 옛 건물의 퇴색함을 살려내 다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는 개념은 단지 디자인 분야뿐 아니라 사회, 문화적 측면에서 볼 때도 예상치 못한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가져오기에 부족함이 없다. 

 

말뫼 시립도서관(Malmo city library). 좌측의 캐슬과 우측의 스퀘어를 이어주는 실린더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말뫼 시립도서관(Malmo city library). 좌측의 캐슬과 우측의 스퀘어를 이어주는 실린더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말뫼 도서관(Malmo city library) 역시 세계 유수의 건축상을 수상하며 건축 디자인 부문에서 객관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이 도시를 찾는 사람들은 꼭 한 번씩 들러보는 명소가 되었다. 평범한 도서관 건물이 첨단의 소재와 구조를 만나 새로운 양식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사진에 보이는 죄측의 캐슬(Castle)과 우측의 스퀘어 건물인 ‘빛의 달력(The calendar of light)’을 중앙의 실린더(Cylinder) 건물이 이어주는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이 건축을 주도한 디자이너는 덴마크 건축가 헨링 라션(Henning Larsen)으로 지난 1997년 개관했다. 기존의 자료실 위주의 기능에 개인 학습, 기술의 습득, 그리고 토론을 위한 열린 공간으로 새롭게 재구성한다는 콘셉트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특히 빛의 달력이라 불리는 우측 투명한 건물은 지상 4층의 높이임에도 불구하고 전체가 오픈되어 완벽한 개방감을 선사한다. 바로 앞에 위치한 공원이 창문으로 투영되어 마치 커다란 액자를 보는 것 같다. 풍경을 바라보며 커피 한 잔의 여유를 갖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신, 구를 절묘하게 결합해 새로운 모양새를 만들어 냈지만 모두 각각의 콘셉트를 명확하게 유지하며 공존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평범한 기능을 가진 이 도서관이 유니크 한 건축 디자인을 통해 도시의 랜드마크(landmark)가 되었다는 것은 디자이너로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것을 만들지 않아도, 기존의 어떤 것에 무언가를 영리하게 더해 전혀 다른 시너지를 만들어 낸다는 쉽지만 어려운 발상의 전환 같은 것 말이다.

 

호텔, 콘서트홀 등의 문화복합 공간과 옛 건물이 시공간을 넘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호텔, 콘서트홀 등의 문화복합 공간과 옛 건물이 시공간을 넘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왼쪽에 보이는 높게 치솟은 건물들은 호텔과 콘서트홀의 복합 문화공간으로 지난해에 오픈했다. 그런데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그 바로 옆에는 백 년도 더 된 작고 소박한 교회 건물이 있다. 어찌 보면 매우 부자연스러울 것 같은 이 조합이 시내 한복판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작고 사소한 부분일지라도 그것이 담고 있는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첨단의 유선형 다리 뒤편으로 역사적 의미를 간직한 건물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다운타운

첨단의 유선형 다리 뒤편으로 역사적 의미를 간직한 건물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다운타운

 

 

첨단 디자인의 유선형 다리 너머로 오랜 역사를 가진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이러한 풍경을 보며 걷다 보면 현재와 과거의 역사를 잘 아우르는 이들만의 사려 깊은 배려가 느껴진다. 실제로 이곳에 거주하는 필자의 친구들은 이러한 섬세한 배려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뿌듯해한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성숙한 시민 의식이 디자인에 대한 투자와 노력을 통해서도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어우러짐을 위한 슬로 라이프(Slow life)

앞서 언급한 믹스 앤 매치 이야기처럼 무언가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는 것은 쉽고도 어려운 난제이다. 특히 디자인 분야에서는 그 난이도가 더 높은 것 같다. 때로는 이곳의 문화가 이 어려운 문제들을 예상 밖의 해결책으로 쉽게 풀어나가는 것을 본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그 시도를 통해 얻게 되는 배움에 대해 더 가치를 두고 있는 듯하다. 

 

특히 이곳 북유럽인들은 모든 일에 서두르는 법이 없다. 세상에서 가장 빨리 돌아가는 나라에서 온 필자이기에 더 크게 와 닿는 것일지도 모른다. 저렇게 천천히 해서 언제 이루어지려나 싶은 일들도 진득하게 기다리다 보면 어느 순간에 해결이 되어있다. 그것도 아주 완벽하게. 중요한 것은 바로 언젠가는 해결된다는 믿음과 신뢰가 전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뢰가 확고하면 조금 더뎌도 초조해하지 않을 수 있는 것 같다. 

 

앞서 말한 새로운 건축물의 시도 역시 이러한 신뢰가 바탕이 되어 지어졌으리라 생각해 본다. 납기일과 완료일을 중시하기보다는 스토리가 있는 콘셉트를 유지하며 완성을 계획하니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필자가 보아온 그 각각의 결과들은 완성도와 구성면에서 훌륭하다. 특히 디자이너라면 역사적 의미가 담겨있는 옛 것과 첨단의 기술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과제임을 잘 알 것이다. 

 

이 두 부분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완벽하고 설득력 있는 무언가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곳 사람들은 그 접점을 찾기 위해 천천히 고민하면서 수 없는 시행착오를 거친다고 한다. 그 시행착오에 대한 시간과 신뢰는 이미 충분히 주어져 있기에 서두르지 않는다. 하나의 건물을 완공하는데 아마도 이곳은 평균 1.5배 정도의 기간이 더 걸리는 듯하다. 하지만 완공된 뒤의 퀄리티는 상당히 높으며, 근래 들어 대부분의 모든 건축시공에는 디자이너들의 영향력이 상당히 크기 때문에 찍어낸 듯한 박스형 건물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건축물의 컬러, 소재, 비례, 구조, 주변 환경과의 조화 등을 고려해 잘 ‘어우러진’ 건물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기존 건물에 증축을 거쳐 새롭게 단장한 말뫼 중앙역

기존 건물에 증축을 거쳐 새롭게 단장한 말뫼 중앙역

 

 

이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바로 슬로 라이프의 또 다른 산물이라 할 수도 있겠다. 이 문화가 일상적인 생활뿐 아니라 디자인 분야에 있어서도 다양한 시도와 과감함을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이들의 문화 속에서 생활해왔지만, 속도에 따른 결과에 있어 강점을 보이는 아시아의 정서가 배어 있어서인지 이 부분은 아직도 낯설기만 하다. 물론 각각 일장일단이 존재하겠지만 디자인이라는 창조적인 결과물을 내야 하는 분야에서는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중요한 개념이 아닐까 싶다.

 

기존 주택단지 옆에 나란히 신축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전체적인 건물 크기나 구성면에서도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기존 주택단지 옆에 나란히 신축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전체적인 건물 크기나 구성면에서도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둥근 실린더 형태의 현대적이고 컬러풀한 종합병원 건물이 주변의 올드타운과 어우러져 있다.

둥근 실린더 형태의 현대적이고 컬러풀한 종합병원 건물이 주변의 올드타운과 어우러져 있다.

 

 

이러한 가치에 기반을 둔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은 다양한 분야에 걸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바로 문화가 생활 전반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을 말한다. 이는 식생활, 패션, 라이프스타일, 여행 등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친다. 그 나라와 사회를 이루고 있는 문화의 중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된다. 단순에 눈을 사로잡는 임팩트 있는 디자인보다 기본에 충실한 단순화된 결과물들이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부분을 어떻게든 느끼고 발견하게 된다. 문화로부터 쌓아온 깊은 내공이 느껴진다고 할까. 

 

미래적인 돔 형태로 지어진 기차역 트리앙엘 스테이션(Triangeln station). 주변 성당, 주택가와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미래적인 돔 형태로 지어진 기차역 트리앙엘 스테이션(Triangeln station). 주변 성당, 주택가와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의 믹스 앤 매치, 올드 앤 뉴의 흐름은 지금도 진화하고 성장하고 있다. 다양한 접점을 만나 지속적인 시너지를 일으키는 이들의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궁금하다.

 

글, 사진_ 조상우 스웨덴 Sigma Connectivity 사. 디자인랩 수석 디자이너(sangwoo.cho.0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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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조상우 디자이너
현재 북유럽 스웨덴에서 산업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삼성전자 모바일 디자인 그룹 책임 디자이너, 소니 모바일(Sony mobile) 노르딕 디자인 센터를 거쳐, 현재 스웨덴 컨설팅 그룹 시그마 커넥티비티(Sigma connectivity), IoT 부문 수석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다.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근원지에서 살아가며 느끼는 경험들을 바탕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www.sangwooch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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