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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인터뷰

피 흘리는 소년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2016-08-18

 


 

종이로 만들어진 소년의 입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 귀엽지만 그로데스크한 이 모습은 단편 애니메이션 〈사슴꽃〉의 한 장면이다. ‘사슴꽃’이라는 제목이 아기자기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느낀다. 붉은 핏빛일 것 같은 〈사슴꽃〉엔 어떤 사연이 담겨있을까. 

〈사슴꽃(DEER FLOWER)〉 포스터 이미지

〈사슴꽃(DEER FLOWER)〉 포스터 이미지



김강민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사슴꽃〉은 ‘보양식’을 접하게 된 한 소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문도 모른 채 사슴농장에 도착하게 된 소년은 사슴의 뿔을 잘라 피를 받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한다. 심지어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그 피를 먹게 되는데 결국 얻은 것은 ‘비싸고 희귀한’ 보양식이 남긴 부작용이다. 

소년이 경험한 이날의 사건은 단순히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얼마나 가혹해질 수 있는지 그 이기심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기대와 실망, 공포, 허탈, 또 다른 사건의 발생. 그의 영화에 담긴 이러한 감정을 마주하며 우리는 삶을 되돌아본다. 짧은 영상으로 긴 여운을 남기는 김강민 감독에 관한 이야기. 

〈사슴꽃(DEER FLOWER)〉 스틸컷

〈사슴꽃(DEER FLOWER)〉 07’34” 단편 애니메이션, 스틸컷



꼬마 아이가 피를 흘리고 있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포스터에 작품의 줄거리가 함축돼 있는 것 같은데 〈사슴꽃〉은 어떤 내용인가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사슴농장에서 사슴의 피를 마시고 벌어진 내용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단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다.

귀여운 캐릭터와 대조적인데 어떻게 이런 스토리의 작품을 제작하게 됐나
〈사슴꽃〉이전 작품 〈38-39°C〉를 제작할 때부터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단편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지난 작품의 경우 ‘아버지를 떠올리는 장소가 어디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했다면 이번 작품 〈사슴꽃〉은 ‘내가 겪었던 독특한 경험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했다. 그 질문에 사슴농장에서 겪은 일이 떠올랐다. 그리고 주변 지인들에게 이 아이디어에 대한 의견을 물었는데 대부분이 황당해하면서 제작하지 말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때 꼭 이 작품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 작품이 독특함을 지닐 수 있겠다고 그때 확신했다. 

〈사슴꽃(DEER FLOWER)〉 스틸컷

 

〈사슴꽃(DEER FLOWER)〉 스틸컷

〈사슴꽃(DEER FLOWER)〉 스틸컷



〈38-39°C〉는 어떤 작품인가
아버지로부터 받은 몽고반점을 싫어하는 남성이 목욕탕에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잠이 든 사이, 아버지를 만난다는 내용이다. 컷 아웃 방식의 인형과 미니어처 세트를 이용한 스톱모션 기법을 주로 사용했고 추상 애니메이션 효과를 만들기 위해서 35mm 필름 위에 락스를 뿌려서 변해가는 과정을 촬영했다. 나의 스타일을 만들고 발전시킬 수 있었던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된 작품이다.

〈사슴꽃〉과 〈38-39°C〉의 가장 큰 차이점
캐릭터 제작 방식이 가장 큰 차이점인 것 같다. 〈38-39°C〉에서 입체의 환경 속에 평면의 캐릭터를 집어넣어 만들었다면 〈사슴꽃〉에서는 입체적인 모형을 갖춘 캐릭터를 3D 프린팅으로 제작했다. 그 밖의 스토리 구성과 작업 방식은 이전 작품들의 연장선이다.

캐릭터의 제작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나
모든 캐릭터는 3D 프린팅 기법으로 제작됐다. 그리고 출력된 모형 위에 수채화 종이를 올려서 깔끔한 컴퓨터의 느낌을 가지면서도 종이 재료의 느낌을 살리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사슴꽃(DEER FLOWER)〉 인형 제작과정

〈사슴꽃(DEER FLOWER)〉 제작 과정


〈사슴꽃(DEER FLOWER)〉의 인형은 3D기법으로 제작됐다.

〈사슴꽃(DEER FLOWER)〉의 캐릭터는 3D 프린팅 기법으로 제작됐다.



작품 제작에 있어 특별한 방식이나 특징 같은 것이 있다면
보통 스톱모션을 하면 모든 것을 손으로 만들어서 제작하는 방식만을 생각하지만 난 항상 새로운 기술과의 접목을 추구한다. 또 2D와 3D 공간 사이에서 평면과 입체의 사물과 인형들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래서 때로는 드로잉 애니메이션으로 보이고 때로는 컴퓨터 애니메이션으로, 때로는 스톱모션으로 보이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많이 노력해왔다. 

스톱모션이라는 방식을 택한 특별한 계기는
SADI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전공할 당시에 스톱모션을 접했다. 그 당시는 모션그래픽 붐이 일어나고 3D 기술의 발전이 많이 이루어지던 시기였고 나도 컴퓨터를 이용한 영상작업에 푹 빠져있었다. 그러던 중 윈디씨티의 〈엘리노 프로디고〉라는 곡의 뮤직비디오를 SADI 박훈규 교수님과 만들면서 처음으로 스톱모션을 접했다. 스톱모션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종이와 작은 카메라, 크리스마스 조명을 이용해 만들었는데 기술적으로 많이 부족했지만 손으로 작은 영화를 만들어가는 것 같은 과정들에서 많은 매력을 느꼈다. 

또 카메라를 통해 보이는 작은 세상은 실제 사물의 색상과 질감이 더해지면서 컴퓨터로 만들어진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이러한 방식에 푹 빠지게 되면서 지금까지 스톱모션을 하고 있다. 

사슴꽃 제작장면

사슴꽃 제작장면

〈사슴꽃〉 제작장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스톱모션 작품이 있다면
자신만의 고유한 느낌을 지니고 있는 작가를 좋아한다. 그러한 면에서 러시아 스톱모션 작가인 유리 놀슈테인(Yuri Norstein)을 가장 좋아한다. 스톱모션 기법 중에서도 나는 컷 아웃 기법을 자주 사용해왔는데 유리 놀슈테인의 컷 아웃 애니메이션은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고유의 아름다움과 깊이를 가지고 있다. 그야말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분야의 장인, 거장이라고 말하고 싶다. 

‘손맛을 중시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스톱모션을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일 것 같다. 디자인 단계부터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종이를 자르고 붙이며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것을 좋아한다. 손과 몸을 움직일 때 머리가 더욱 빨리 자극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손맛’ 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 중 하나는 컴퓨터로 만들어진 이미지의 완벽함과는 거리가 있는 불완전한 사물, 캐릭터의 움직임이 주는 느낌을 더욱 선호하기 때문이다.

〈사슴꽃(DEER FLOWER)〉 스틸컷

〈사슴꽃(DEER FLOWER)〉 스틸컷

〈사슴꽃(DEER FLOWER)〉 스틸컷

〈사슴꽃(DEER FLOWER)〉 스틸컷



〈사슴꽃〉으로 매우 많은 상을 수상했다. 어떤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생각하나
좋고 나쁨을 떠나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스토리를 기반으로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스톱모션을 주 기법으로 사용하지만 CG와 2D 기법을 섞으면서 8분 정도의 짧은 시간 속에서 다양한 이미지의 병치들이 가져오는 효과들이 좋은 평을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너무 개인적인 스토리로 작업하다 보니 호불호가 확실히 갈리는 것 같다.

단편 애니메이션 제작 이외에 다른 작업도 많이 하는 걸로 알고 있다. 어떤 작업들을 진행하나 
평상시에는 그래픽 디자이너자 스톱모션 아티스트로 광고, 뮤직비디오, 단편 등의 일들을 하고 있다.  〈크리스마의 악몽〉의 감독으로 유명한 헨리 셀릭(Henry Selick)의 장편에 스텝으로 참여하기도 했고 ‘case / lang / veirs’라는 아티스트의 뮤직비디오 〈Atomic Number〉, ‘Two Gallants’라는 그룹의 incidental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GLAS Animation Festival의 signal film과 포스터 제작 작업을 마무리했다.

 

 

 


독립 애니메이션 감독이자 스톱모션 제작자로서 제작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조언 한마디 
많은 분들이 스톱모션을 생소하고 어렵게 느끼고 스톱모션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장비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자신에게 가장 친근한 재료와 간단한 기법을 이용해 짧은 작업들을 우선 만들라고 말하고 싶다.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들도 직접 몸으로 움직이고 부딪히면서 실수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멋진 작품들이 나올 거라 생각한다. 

앞으로의 계획

당분간은 프리랜서 디자이너와 스톱모션 아티스트로서 계속 활동하면서 다음 단편 시나리오를 발전시킬 계획이다. 기회가 된다면 다른 아티스트와 협업을 통해 장편에도 도전해보고 싶다. 

 

 

김강민 www.studiozazac.com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스톱모션 아티스트로 SADI(Samsung Art and Design Institute)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CalArts(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에서 실험 애니메이션 BFA, MFA를 마쳤다. <38-39°C>, <사슴꽃>으로 대한민국콘텐츠대상, 부산단편영화제 대상, 미쟝센 단편영화제 최우수상, 전주국제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등 국내외 영화제에서 다수의 수상을 했다. 

 

 

에디터_ 최유진(yjchoi@jungl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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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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