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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삶, 시간이 담긴 디자인

2016-05-12

 

 

 

제아무리 멋있는 것이라 해도 디자인은 하루하루의 일상 속에 존재해야 한다. 디자인이란 그렇게 삶과 시간을 품어야 은근하고 따뜻하게 우리와 함께 할 수 있는 거다. 우리는 오늘 안에 있고 오늘은 어제 없이 존재할 수 없으며 내일은 지금까지의 시간이 쌓여 올 테니까 말이다. 일상을 소중히 여기는 ‘스튜디오 프링크(studio PRINK)’의 디자인에는 오늘의 시간이 담겨있다.


에디터 | 최유진( yjchoi@jungle.co.kr)

‘스튜디오 프링크’는 스튜디오이자 아트샵이다. 디자이너 이연옥의 작업실인 이곳에는 ‘프링크앤드링크’라는 카페공간이 마련돼 있다. 이연옥 디자이너는 이곳에서 작업을 하고 사람들을 만난다. 

스튜디오 프링크는 새로운 듯 익숙하고 세련된 듯 빛바랜 느낌을 풍긴다. 쿨해 보이지만 따뜻함이 느껴지는 스튜디오 프링크의 디자인 감성은 카페공간에서도 드러난다. 천장에는 서까래가, 공간 전체엔 세월의 흔적이 묻은 가구가 자리하고 있고 세계 곳곳에서 모인 소품들을 구석구석에서 볼 수 있다. 

가구와 소품은 직접 발품 팔아서 구한 것들이다. 처음엔 이 모습과 달랐지만 집에서 살듯 공간을 꾸미다보니 지금의 모습이 됐다. 늘어나는 세간은 단골손님들과 함께 느꼈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로부터 어떤 스타일의 인테리어인지 가끔 질문 받을 때가 있다. 

정답은 바로 미국 스타일도 아니고 영국 스타일도 아니고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은 더더욱 아닌, 오브젝트 카페를 좋아하고 ‘느낌’을 중요시하는 ‘디자이너 이연옥의 스타일’이다. 자신이 살아온 세계에서 예쁘고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들로 꾸민 이 공간에서 그녀가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은 ‘조화로움’이다.

스튜디오 프링크에 마련된 카페공간 프랭크앤드링크

스튜디오 프링크에 마련된 카페공간 프랭크앤드링크

카페공간에서 볼 수 있는 이연옥 디자이너의 그래픽 작업

카페공간에서 볼 수 있는 이연옥 디자이너의 그래픽 작업


‘디자이너의 거실’같은 공간, 프링크앤드링크

그녀의 말대로 가구와 소품, 공간전체가 조화를 이루는 이곳은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느낌이다. “그냥 공부방처럼, 작업실처럼 오셔서 편하게 공간을 함께 쓰시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처음엔 손님이 많이 오실 거라 생각하지 못했는데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고 지금은 단골손님들도 많이 늘었어요. 전 오래계시는 손님들, 대환영이에요. 그래야 저도 작업을 할 수 있고요.” 

단골손님들이 많이 생기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자신의 공간을 누군가와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 때로 부담스럽진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사실 어떤 날엔 자리가 없어 멀리서 찾아오신 손님들이 그냥 돌아가시는 일도 있고, 종일 설거지만 하다 하루를 보내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날엔 작업을 하지 못한다는 고충이 없지 않지만 이곳에서 너무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게 돼서 아직까지 후회 같은 건 없어요.” 

사실 프링크앤드링크에 대한 아이디어는 영국에서 그녀와 함께 학교를 다녔던 졸업생들이 디자인스튜디오를 차리고 운영하던 카페 겸 아트샵에서 비롯됐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바쁘게 커피 파는 카페 말고 아지트나 살롱 같은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카페에 조회가 있다거나 경영을 잘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고요.” 평소 그녀가 좋아하던 작가, 예술가 등이 이곳의 단골손님이 되기도 했고 워크숍이나 스터디 같은 모임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어 단순한 작업실 겸 카페공간이 아닌 ‘교류의 장’으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illustration=expression

한국에서 도예를 전공한 그녀는 그림 그리는 것이 좋아 영국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선택했다. 영국 첫 수업에서 ‘연극을 하는’ 과제를 진행하면서 표현의 한 방식으로써의 일러스트레이션을 알게 됐고 ‘일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통해 가장 큰 생각의 전환을 맞이했다. 

“어느 날 교수님께서 ‘How was your travel in the morning? 오늘 아침 여행 어땠어?’라고 묻는 거예요. 학교 오는 길, 출근하는 길을 'travel'이라 표현한 거죠. 그때 생각했어요. 포르투갈 여행가면 남이 널어놓은 빨래도 카메라에 담으면서 왜 일상은 그냥 지나칠까 하고요.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때 난 어디를 지나고 있을까‘ 궁금해졌고 ’오늘이 여행이라면 나의 여행길을 찾아보자‘ 했어요. 그렇게 저만의 여행길을 도식화 시키는 작업을 하게 됐죠.”

<Victoria Line Chase> 프로젝트는 빅토리아 레일 라인에 대한 이연옥 디자이너의 맵핑 작업이다. 16개의 정거장으로 이루어진 레일을 따라 총 16개의 시리즈로 이루어져 있다.

프로젝트는 빅토리아 런던언더그라운드 라인에 대한 이연옥 디자이너의 맵핑 작업이다. 16개의 정거장으로 이루어진 레일을 따라 총 16개의 시리즈로 이루어져 있다.


이 맵핑 작업을 통해 그녀는 태어나서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길을 갔고 그 길 위를 지나는 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유명하지 않지만 그 어떤 길보다 의미있고 아름다운 길에서의 ‘여행의 기록’은 총 16개의 시리즈로 구성, 에디션으로 제작돼 졸업전시와 갤러리 초대전, 런던 아트북 샵 등에서 판매됐다. 

여행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그녀는 여행을 기록한 많은 디자인 작업을 선보였다. “오감이 가장 잘 열릴 때예요. 그래서 여행을 좋아하죠.” 몽골 봉사활동의 기억을 담은 북아트 작업에는 가장 인상 깊었던 ‘단순하지만 아름다운 하루의 삶’을 담았다. 붉은 흙 위를 말들이 지나갈 때 났던 먼지 냄새를 기억하기 위해 가장 비슷한 향신료를 넣었고, 한정수량으로 제작된 30권의 아트북은 북아트 라이브러리 등지에 소장됐다. 

그녀는 여행지의 느낌, 그곳의 냄새, 감성을 모두 담은 북아트 디자인을 선보였다.

그녀는 여행지의 느낌, 그곳의 냄새, 감성을 모두 담은 북아트 디자인을 선보였다.

여행을 좋아하는 이연옥 디자이너는 여행 태그(travel tag)를 정리하다 아이디어를 얻어 카드와 엽서 등을 제작했다.

여행을 좋아하는 이연옥 디자이너는 여행 태그(travel tag)를 정리하다 아이디어를 얻어 카드와 엽서 등을 제작했다.

영국의 비오는 날의 이미지를 표현한 디자인

영국의 비오는 날의 이미지를 표현한 디자인


시간이 쌓인 듯한 감성, 리소프린팅

그녀의 많은 작업은 리소프린팅으로 이루어진다. 그녀가 리소프린팅을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디지털프린팅이 흉내 낼 수 없는 ‘리소만의 느낌’ 때문이다. 

마치 복사기같이 생긴 프린터기에 한 가지 색상의 드럼을 넣어 인쇄를 하는데 각각의 색상을 인쇄할 때마다 처음 인쇄했던 종이를 다시 넣어 다른 색상을 인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A3가 맥시멈이라는 단점이 있지만 실크스크린의 번거로운 과정을 생략할 수 있어 편리하죠. 무엇보다 가장 매력적인 점은 여러 층으로 이루어지는 인쇄의 감성이에요. 우연치 않게 나오는 결과물들이죠.”

리소프린팅이 주는 이러한 느낌이 좋아서 그녀는 리소프린터기를 작업실에 들이기로 했고 빈티지한 느낌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영국에서 공부할 때 접했던 버전을 미국에서 찾아 직수입했다. 현재 리소프린터기 RP3790과 빨노초파보검, 청록, 핑크 8개의 색상을 보유하고 있는 그녀는 리소프린터기로 ‘잘 놀고 있다’고 했다. 

“이걸로 명함도 만들고 엽서도 만들고, 여러 가지 작업들을 프린트해요. ‘fine’하진 않지만 의도적으로 만들 수 없는 리소만의 감성이 있어요. 가끔은 레이어를 미처 지우지 못할 때가 있는데 오히려 더 재미있게 나오는 경우도 있어요.” 

스튜디오 프링크는 리소프린터기 RP3790과 빨노초파보검, 청록, 핑크의 8개 색상을 보유하고 있다.

스튜디오 프링크는 리소프린터기 RP3790과 빨노초파보검, 청록, 핑크의 8개 색상을 보유하고 있다.

일상과 시간을 디자인으로 기록하는 이연옥 디자이너

일상과 시간을 디자인으로 기록하는 이연옥 디자이너


프린트와 잉크, studio ‘PRINK’

스튜디오 프링크는 인쇄소로서의 역할도 할 계획이다. “큰 인쇄소 말고 핸드메이드카드나 조그만 아트포스터 같은 작업 위주로 백매 이하의 소량 인쇄를 하는 인쇄소요.” 

리소프린팅에 대한 워크숍 문의도 많이 들어온다. “대부분 그림을 그리시는 분들인데 이렇게 그렸을 때 리소프린트를 하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 하시면서 직접 그림을 보여주시는 분들도 계세요.”

현재 스튜디오 프링크는 워크샵을 예정하고 있으며 상상마당에서 열리는 전시 ‘장 자끄 상뻬전’과의 연계 프로그램으로 원데이 리소프린팅 클래스 및 정규 리소프린팅 워크샵을 진행할 예정이다. 

“전 익숙하고 편한 분위기가 참 좋아요. 공간도 마찬가지죠. 여행을 다니면서 곳곳에서 접했던 많은 나라의 문화, 그들의 생활공간에서 느껴지는 그들만의, 그 집만의 느낌을 스타일로 규정짓진 않잖아요. 이 공간 또한 저의 집을 꾸미듯이 새 것 같은 느낌보다는 누군가의 집처럼 편안한 느낌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제 디자인도 마찬가지고요.” 

그녀는 곧 서울의 한강 다리에 대한 아카이브를 그래픽 형식으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선보일 예정이다. 일상에서 늘 보아오던 서울의 한강 다리가 그녀의 감성을 통해 어떤 모습으로 완성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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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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