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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인터뷰

[이야기를 담는 공간_ 정원] 삶을 품은 공간, 서사의 시작, 찍박골정원 김경희 대표

2025-10-16

정원은 식물들이 만들어내는 조화를 보여준다. 그러한 모습이 드러나기까지의 시간과 정성의 깊이는 말로 다 할 수 없다. 자연의 에너지를 경험하기 위한 순리와 인내의 시간에 인간의 노력이 더해져 완성되는 정원은 그래서 아름답고 신비롭다. 

 

정원은 식물을 중심으로 조성이 되는 공간으로, 누군가에 의해 꾸며진 정원은 자연과 어우러진 아름다움 외에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다. 식물에 대한 취향을 시작으로, 자연을 대하는 마음 가짐과 삶에 임하는 태도가 만들어낸 정원에는 누군가의 기억과 삶의 결심이 켜켜이 쌓여 있다. 한 사람의 경험과 철학이 만들어낸 정원의 첫번째 이야기를 찍박골정원에서 시작하려 한다. 

 

1만여 평의 땅에 자리한 찍박골정원

 

 

1만여 평 드넓은 땅에 자리한 아름다운 정원


강원도 인제군 하우고개길에 자리하고 있는 찍박골정원은 1만여 평의 규모로 이루어져 있는 개인정원이다. 간판 하나 없는 이곳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잠시. 정갈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식물들이 반기고 있는 찍박골정원의 입구는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에디터를 이끌었고, 이내 드넓게 펼쳐진 정원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었다. 

 

찍박골정원은 이곳의 주인인 김경희 대표에 의해 일구어졌다. 과거 서울에서 교육사업을 했던 김 대표 부부는 서울생활을 정리하며 남편의 바람대로 산 속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 터는 이들 부부 특히, 남편이 가지고 있던 모든 조건을 만족시키는 곳이었고, 이들 부부는 땅을 구입했다. 한적한 시골로 이사를 간다고만 생각했던 김 대표에게 정원은 계획에 없던 것이었다. 

 

 

 

드넓게 펼쳐진 정원 곳곳에 김경희 대표의 손길이 닿아있다. 

 

 

영국 가든 투어에서 시작된 정원에 대한 꿈


김 대표가 정원에 대한 꿈을 갖게 된 것은 가든 투어에서였다. 이곳에 막 이사를 왔을 즈음 그녀는 최시영 건축가와 오경아 가든 디자이너가 그녀에게 추천한 가든 투어에 함께했다. 정원의 나라인 영국의 가든을 보고 문화적인 충격에 빠진 그녀는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정원을 만들기 시작했다. 13년 전이었다. 

 

김 대표는 영국 가든 투어를 자신의 인생 터닝포인트로 꼽았다. 영국의 가든에서 영감을 받은 그녀는 자연스러움이 살아있는 자연주의 정원, 1년 내내 꽃이 있는 정원을 만들고자 했다. 당시 국내에서 코티지 정원에 대한 시도는 찾기 힘든 것이었다. 첫 시도였던 만큼 식물에 대해 문외한이었다는 그녀에게 그 과정은 수월하지 않았다. 정원의 곳곳에서 잘 살아갈 수 있는 식물들을 찾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도 겪었다. 그녀는 식물에 대해 공부를 하고 식물을 직접 심고 가꾸며 8, 9년차에 이르러서야 식물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찍박골정원 김경희 대표 (사진제공: 찍박골정원)

 

 

조화롭게 피어난 100여 종의 식물들


코로나 시기를 겪은 후 독일로 가든 투어를 다녀온 김 대표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또 다른 모습들을 정원에서 보았고, 식물들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또 다른 방식으로 눈을 떴다. 대부분 초본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정원은 그녀가 심고 뽑고 다시 심기를 반복하여 이루어 낸 결과물로, 볕을 좋아하는 식물들과 그늘을 좋아하는 식물들은 조화롭게 배치돼 최적의 환경을 이루며 함께 어우러지고 있다. 그녀의 정원은 4월부터 10월까지 늘 꽃으로 가득하다. 

 

식물을 심는 것은 물론 그녀는 길을 만들고 물길을 텄으며 암석을 얹기도 했다. 그렇게 13년간 만들어진 테마 정원은 암석 정원, 텃밭 정원, 자작나무숲, 개울 정원 등 모두 10개가 넘는다. 텃밭 정원에서는 열무, 고추와 같은 익숙한 식물들을 비롯해 자두나무, 사과나무까지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그녀의 정원에 있는 식물들은 총 100여 가지로, 무척이나 풍성해 보이는 것에 비해 그 수는 그리 많지 않다. 그중 초본류는 70여 가지로, 한달에 14종 정도가 꽃을 피운다고 그녀는 설명하면서 식물의 종류보다 중요한 것은 구성 방식, 식물의 조합이라고 말했다. 

 

 

 

찍박골정원은 총 100여 종의 식물들로 꾸며져 있다. 

 

정원에는 김 대표가 해외에서 직접 수집해온 다양한 소품들로 장식된 온실도 자리하고 있다. 

 

 

순리를 깨닫게 해준 정원


김 대표는 정원을 가꾸어 가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기다림과 시간이라고 했다. 식물을 심고 자라기까지도 기다림이 필요하지만 식물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간만큼 중요한 또 하나의 요소는 정원주의 손길이라고 강조했다. 실내 인테리어 조차도 디자이너의 작업 후 사용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지다고 말하는 그녀는 정원은 사용자의 관리가 더더욱 중요하다며 정원의 모습은 디자이너가 어떻게 디자인을 하느냐가 아니라 사용자가 어떻게 관리를 하는지에 따라 다르게 완성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가 아무리 예쁘게 정원의 하드스케이프를 만든다 해도 소프트스케이프인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불과 1~2달 사이에 풀밭이 된다는 것이다. 김 대표 역시 일부 정원에 대한 차별화를 위해 외부 업체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현재 그 모습은 김 대표의 손길에 의해 그녀만의 스타일로 완성됐다. 
 
봄이 되면 얼었던 땅을 깨고 올라오는 잎사귀에 마음이 설렌다는 그녀는 7월 장마 후부터 8월까지는 잡초와의 전쟁을 치른다. 수선화가 피는 4월, 다양한 종류의 꽃들이 흐드러지는 6, 7, 8월에 가장 정원이 예쁘다고 하는 김 대표가 가장 좋아하는 시기는 9월. 풀이 잘 자라지 않는 그때 그녀는 자신의 정원을 마음껏 즐긴다.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겨울이다. 정원을 가꾸기 시작하고 몇 년간은 3월이 되면 가슴이 뛰어서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는 그녀는 시간이 흐르면서 ‘순리’를 깨달았고, 자연의 섭리와 인내를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과거 서울에서의 생활과 달리 지금 이곳에서는 강물이 흐르듯 살고 있다는 그녀는 자연과 함께하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알아가게 된 점이 가장 큰 변화라고 말했다. 

 

 

 

찍박골정원에서는 사계절 내내 꽃이 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진제공: 찍박골정원)

 

 

10년간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시간


김 대표가 처음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을 당시 국내에서는 정원에 대한 관심이 지금처럼 크지 않았다. 찍박골정원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정원의 곳곳이 아름답게 완성된 후, 그간 10년이 넘는 긴 시간동안 정원을 가꾸며 완성시켜온 그녀의 노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최근 2~3년 사이 부터다. 관계자뿐 아니라 일반인들까지도 그녀의 정원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에 대해 김 대표는 GDP의 성장을 언급했다. GDP가 3만 불 이상의 시점에서 정원 산업이 발달하기 시작한다고 설명한 그녀는 더 여유 있고 행복한 삶을 꿈꾸기 시작한 때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찍박골정원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이곳을 방문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점차 많아지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찍박골정원은 일반에 공개된 공간이 아니다. 찍박골정원의 방문은 디자인하우스나 로얄앤코의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통해야만 가능하다. 김 대표가 디자인하우스를 통해 하고 있는 정원 강의 역시 인기가 높다. 해당 강의에는 국내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조경가, 외국에서 정원을 공부했지만 국내에서의 실질적인 경험이 없는 디자이너, 자신의 정원을 직접 가꾸고자 하는 일반인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한다. 

 

찍박골정원은 지금까지 대중에 공개되는 시설로의 전환에 대한 제안을 무척이나 많았지만 김 대표는 모두 거절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언제가 될 진 모르겠지만 사업이라는 것에 대한 준비가 모두 이루어졌을 때 그녀는 찍박골정원을 대중에게 공개할 계획이다. 

 

 

 

 

꽃이 만발하는 봄을 비롯해 여름과 가을에도 다양한 꽃들을 볼 수 있다. (사진제공: 찍박골정원)

 

 

김 대표는 최근 두 번째 책인 <이지 가드닝을 위한 정원식물 100>을 출간했다. 그녀는 이 책에다른 식물들을 방해하는 식물, 손길을 많이 요구하지 않지만 스스로 잘 자라는 식물 등 가드닝에 필요한 중요 정보들을 담았다. 

 

김경희 대표의 두 번째 책 <이지 가드닝을 위한 정원식물 100>의 출간을 기념해 11월 15일 북토크가 진행된다. (사진제공: 찍박골정원)

 

 

지속가능한 정원 이룰 것


그녀의 목표는 찍박골정원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수익이 창출되지 않는 이 정원을 어떤 방식으로 지속가능하게 할지는 아직 고민중이다. 정원의 지속을 위해 그녀는 건강에도 특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garden’에는 ‘즐거움’, ‘기쁨’(oden)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정원에서 누리는 기쁨이 단어 그 자체에도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이다. 그녀가 정원을 가꾸어 온 지는 13년이나 되었지만 13년만에 이렇게 정원이 조성된 사례는 찾기가 어렵다. 2~3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정원이 완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정원을 완성시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정원을 가꾸며 느꼈던 그녀의 기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김 대표의 아름다운 정원에 대한 바람과 정원에 대한 애정으로 일구어진 찍박골정원은 식물과 함께 자라나는 꿈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인터뷰어_ 정석원 편집주간

에디터_ 최유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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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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