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05
-한국주민자치중앙회 전상직 회장의 25년 자치 여정
주민자치는 주민 참여에 중심을 두고 주민이 주체가 되어 지역의 문제를 함께 논의하고 결정하며 지역사회의 공적인 문제에 대해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의 초석으로, 주민이 주도하고 만들어가며 발전시키는 주민자치는 정치, 행정학적인 측면을 넘어 인간을 성장시키고 인격자로 만들며 마을을 공동체로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삶에 주민자치가 필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지역 주민 모두가 지역 사회의 주인이 되어 주체적으로 삶을 주도해 나갈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한국주민자치학회 전상직 회장은 지난 25년간 이러한 주민자치를 널리 알리고 주민자치가 우리 사회에 바르게 정착할 수 있도록 이끌어왔다. 한국주민자치중앙회의 회장을 맡고 있기도 한 그는 <주민자치>, <공공정책>의 발행하고 있으며, 한국주민자치회를 통해 지금까지 1149회의 주민자치 연구 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했다. 또한 중앙대학교 행정대학원 특임교수인 그는 국내 최초로 국내 유일의 ‘주민자치학과’를 개설, 올해 처음으로 석사를 배출한다.
한국주민자치학회 전상직 회장
‘노인학’, ‘어른학’ 등을 통해 ‘경험, 사회, 품위’라는 노인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제시하고, 스스로 어른에 대한 답을 내릴 수 있도록 하기도 한 그는 “‘잘 먹고 잘 살고 잘 노는 것’, ‘이웃사촌 만들기’가 주민자치”라 말한다.
여러가지 측면에서 우리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주민자치의 범위는 그래서 넓다. 자발적인 참여와공감을 통해 이루어지는 문화와 예술의 향유는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인 주민자치를 사회의 번혁과 운영의 중요한 원리이자 가치로 인식하고, 주민자치 실질화를 통해 지역 사회 및 국가의 발전을 이루고자 하는 전상직 회장으로부터 주민자치에 대해 들었다.
Q. 주민자치에 헌신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처음 어떻게 주민자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나?
주민자치와 인연을 맺은 지 어느덧 25년 가까이 되었네요. 풀뿌리민주주의 초석인 주민자치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학문적 탐구라는 순수한 지적 호기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정치·사회·역사·종교·철학 등 다양한 관점에서 주민과 이웃, 그리고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연대하며 영위해 온 우리나라 민초들의 삶이 근대와 현대를 거치며 무참히 파괴되고 왜곡되는 안타까운 현실에 주목했기 때문이지요. 더불어 어떤 이에게는 평범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비범한 우리네 주변 사람들의 삶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봐 왔습니다.
특히, 선택과 집중의 기조 아래 단기간 압축성장으로 발전해 온 한국 현실에서 점차 소멸되고 있는 공동체를 복원할 해답이 지역과 마을의 구성원인 주민에게 있음을 인지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구조적 대안으로 주민자치를 제시했습니다. 주민의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주민자치라는 시대적 화두가 위기에 놓인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극복할 현명한 보완책이자 풀뿌리민주주의의 기틀이라는 확고한 신념에 근거한 것입니다.
1999년 김대중 정부가 주민자치회를 설치하려 하자 ‘사람을 인격자로 만들고 마을을 공동체로 만드는’ 주민자치를 주창하면서 이때부터 주민자치 실질화에 지대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2000년 전국 읍면동장을 대상으로 주민자치 실질화 토론회를 개최한 후 서울시 주민자치활성화위원회 위원, 참여연대 참여사회연구소 이사장을 역임하며 주민자치 현장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와 시민운동을 경험했지요. 그 과정에서 주민자치와 관료행정·시민운동 간의 간극이 매우 크지만, 주민자치에 대한 적극적인 연구가 현저히 부족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주시 주민자치박람회에서 축사 중인 전상직 한국주민자치학회장
Q. 한국주민자치중앙회, 한국주민자치학회의 설립 배경은 무엇인가?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주민자치에 대한 적극적인 연구에 대한 필요성 때문이었습니다. 체계적이고 심층적인 주민자치 연구를 위해 2006년 사단법인 한국주민자치학회를 설립했습니다. 한국주민자치학회는 현재까지 1,144회(2024년 9월 19일 기준)에 달하는 학술대회·교육·특별강연·워크숍·세미나 등을 개최하며 주민자치의 이론적 배경을 다져가고 있습니다. 2012년에는 사단법인 한국주민자치중앙회를 창립하고 전국 광역시도 주민자치회를 설립, 주민자치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주민자치를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다양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지요. 현재 한국주민자치학회와 한국주민자치중앙회는 국가 예산 지원 없이 자체 재원을 통해 운영되고 있습니다.
Q. 먼저 ‘주민자치’에 대한 바른 이해가 중요할 것 같다. ‘주민자치’란 무엇을 의미하나?
쉽게 말해 인간이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잘 먹고, 잘 살고, 잘 노는 것’을 뜻합니다. 이러한 행위를 혼자 하는 것은 개인 자치이고, 정치인들이 하는 것은 정치이며, 공무원들이 하는 것은 행정이지요. 하지만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정치가 해주지 못하는 것이 있고, 행정이 해결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지요. 하지만 주민들이 함께 하면 채우지 못하는 많은 부분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주민들이 함께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주민자치입니다.
과거 장례식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정치도, 행정에서도 해주지 않는 일이지요. 마을의 주민들의 도움이 필요하지요. 벼농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혼자 하는 것보다 여럿이서 하는 것이 효율이 훨씬 높습니다. 바로 이러한 부분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런 부분을 챙기는 것이 주민자치인 것이지요.
주민자치 연구세미나에서 토론 중인 전상직 한국주민자치학회장
Q. 해외의 경우엔 어떤 사례가 있는지 궁금하다. 주민자치가 잘 실행되고 있는 나라는 어디인가?
선진국일수록 주민자치, 주민들이 정치에 개입하는 정도가 큽니다. 스위스의 경우를 예로 들 수 있겠는데요, 스위스에서는 이민자들에게 국적을 부여할 때 주민들이 참여를 합니다. 법무부에서 진행을 하는 우리나라와 다르게 직접 주민들에게 투표를 하게 하지요. 한 마을에 사는 주민들이 가장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지역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보아온 시민들이 그들을 주민으로 받아들일지에 대해 직접 투표를 해서 이민자들에게 국적을 부여하게 됩니다. 주민들에게 권한을 주는 것이 주민자치입니다.
Q. 현재 우리나라의 베이비부머 세대에 대한 문제도 주민자체로 해결할 수 있을까?
물론입니다. 현재 각 지역마다 베이비부머 세대 은퇴자들이 무척 많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워라벨을 실천하고자 하지만 그들은 일을 하고자 하지요. 젊은 사람들의 업무 시간을 줄여주고 그들의 일을 베이비부머 은퇴자들에게 준다면 균형을 맞출 수 있습니다. 주민자치는 바로 이러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Q. 실제로 이런 주민자치가 이루어진 사례가 있다면 소개 부탁한다.
마을 행사를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서울 삼성동에 사시는 어떤 분이 딸아이의 성인식을 해주고 싶다고 하셨어요. 주택에 사시던 그분께 제안을 드렸지요. 초청장을 만들어 골목에 있는 32가정에 ‘성인식에 초대한다’는 내용을 초청장을 나누어 드리고 마을 행사로 진행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18가정이 행사에 참여를 했고, 과거에 성인식을 진행했던 것처럼 동네의 어른들이 성인식을 하는 20세 학생에게 절을 했습니다.
이 작은 행사 하나에서도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도 동네 주민들끼리 서로 인사를 하며 지내고 싶어합니다. 어린 20살 학생은 어른들의 절을 받음으로써 앞으로 그 어른들에게 인사를 드리게 되겠지요. 마을의 어른들이 함께 참여하여 도덕적인 가르침도 주는 그런 의미 있는 행사가 되는 것입니다.
매주 목요일 개최하는 주민자치 연구세미나에서 강의 중인 전상직 한국주민자치학회장
Q. 한국주민자치중앙회에서 주민이 주체가 되어 마을을 일구는 데 중점을 두고 계신데, 이러한 주민자치 활동을 통해 사회적(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어떤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특히 문화예술 활동을 통해 어떻게 주민 간의 연대와 화합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말해달라.
주민자치가 잘 되려면 나태주 시인의 시처럼 주민이 주민을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주민자치가 제대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주민이 주민들을 자세히 보고 오래 볼 시간이나 기회가 너무 부족합니다. 그래서 이웃사촌 만들기를 더욱 적극적으로 해야 합니다. 이웃을 위한 미덕이 결국 마을의 공덕으로 이어지기 때문이지요.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문화예술 활동이 훌륭한 매개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행정복지센터나 주민자치센터에서 운영하는 문화예술 프로그램은 여러 문제점과 한계를 보이고 있어요. 상업적인 문화예술 강좌와 다를 바 없어 주민들끼리 진정으로 연대하고 화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주민자치회가 중심이 되어 주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스스로 만들어 가는 문화예술 활동이 추진되어야 합니다. 한국주민자치중앙회에서는 주민자치회를 통한 마을 행사가 개인의 인생과 마을의 역사를 일깨운다는 취지 아래 전입 주민 환영회, 성년식, 어린이 척사대회 등을 통해 주민 간 친목과 화합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또한 동네 인문학을 기반으로 한 마을 강좌를 통해 학습과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주민자치센터 프로그램은 주민과 주민자치회가 중심이 되어 운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주민과 주민자치회가 가진 능력과 잠재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Q. 문화예술이 주민들에게 미치는 영향과 그 필요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기해 달라. 주민자치에서 문화예술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문화예술은 주민들의 삶을 보다 행복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훌륭한 콘텐츠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주민들에게 재미와 즐거움을 선사하는 동시에 화합하고 소통하게 만들며, 문화적 네트워크를 연결할 수 있지요. 관건은 주민들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참여입니다. 주민 참여를 바탕으로 문화예술을 통한 감동과 공감의 확산을 통해 주민들의 삶의 질이 높아지고 행복해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주민의 문화예술 참여 활동, 양질의 예술 향유, 지역 예술인의 창작과 발표 등을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모두 챙길 수는 없습니다. 주민이 중심이 되는 주민자치회가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문화예술에 있어 소외되는 계층이 없도록 세심히 살피고 지역 주민 모두가 풍족히 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주민자치회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종로구 주민발안 조례 입법추진위원회 기자회견에서 주민들과 함께 한 전상직 한국주민자치학회장
Q. 주민자치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주민자치>와 <공공정책>을 발행하고 있다. 잡지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주제와 목표는 무엇인가?
월간 <주민자치>는 정책·행정·학술·현장·사업 등 주민자치의 모든 것을 다루는 전문 미디어입니다. 2011년 첫 호를 선보인 월간 <주민자치>는 2024년 9월 현재 155호까지 발행되었으며, 국내 주민자치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2005년 창간된 월간 <공공정책>은 ‘자치로 공공을 열어간다’는 취지 아래 공공의 이익을 지향하는 다양한 정책을 제안하는 잡지로서 2024년 9월 기준 227호를 발행하였습니다.
주민자치 실질화를 위해 관련 조직과 미디어 등 다각적인 플랫폼을 창안하고 구현하는 이유는 주민자치라는 화두를 단순히 이론적 수준에서 머물지 않고, 구체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것입니다.
Q. 주민들이 마을의 주인으로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하고, 어떤 활동을 해야 할까?
주민자치는 쉽게 말해 주민들이 ‘잘 먹고 잘 놀고 잘 사는’ 행위입니다. 혼자 하면 개인자치, 시민단체가 하면 시민운동, 공무원이 하면 관료행정입니다. 하지만 주민 모두가 함께 한다면 진정한 주민자치가 완성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주민이 주민을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본인이 사는 구역을 마을로 인식하며, 마을의 일을 나의 일로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마을에는 진정한 어른이 필요합니다. 주민자치는 주민이 스스로의 주인이 되는 과정이며, 주민자치위원은 마을의 어른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른이란 덕망과 책임, 그리고 윤리를 겸비한 사람을 말합니다. 주민을 인격자로, 마을을 공동체로 만드는 주민자치를 위해 마을에 존경할 어른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주민자치는 마을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주민들과 연대하며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어떤 자리에서도 본인이 마을의 주인임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한국주민자치중앙회를 방문한 영주시 봉현면 주민자치위원들과 함께 한 전상직 한국주민자치학회장
Q. 앞으로 한국주민자치중앙회와 한국주민자치학회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와 향후 계획에 대해 말해 달라.
현재 우리나라에는 약 3,500개의 읍, 면, 동에 주민자치(위원)회가 설치되어 있으며, 주민자치위원의 수는 10만 명에 달합니다. 앞으로 통리 단위까지 주민자치가 확대되면 주민자치(위원)회는 10만여 개, 주민자치위원은 100만 명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만큼 주민자치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지원이 더욱 필요합니다.
하지만 현재 주민자치를 어떻게 교육하고 연구해야 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활발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이에 따라 행정학, 정치학, 사회학, 역사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를 통합해 주민자치학의 위상을 확립하고 이론적 토대를 구축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전국 주요 대학에 주민자치학 과목을 개설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주민자치를 독립된 학문 분야로 확립하고자 하며, 연구자 중심의 학술적 이론뿐만 아니라 주민자치 활동 사례와 실천적 사안도 담아내고자 합니다.
또한, 주민자치평가원을 운영하여 주민자치의 원형을 찾고, 평가지표를 개발하며, 각 지방자치단체의 주민자치 제도와 정책, 현장 등을 평가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입니다. 이를 기반으로 주민자치대상을 시상하여 주민자치의 발전을 독려하고자 합니다.
결국, 자치는 사람을 인격자로 만들어주고, 마을을 공동체로 만들어 주는 가장 기본적인 존재 양식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풀뿌리민주주의의 초석이자 시대적 과제인 주민자치가 대한민국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저에게 맡겨진 소명을 계속해서 이어 나갈 것입니다.
인터뷰어_ 정석원 편집주간
에디터_ 최유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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