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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전시 포커스] 점과 선으로 그려진 낭만적인 도시 야경, 윤협 ‘녹턴시티’전

2024-03-02

점과 선으로 그려낸 도시 야경이 낭만적인 느낌을 풍긴다. 서브컬처에 영향을 받아 즉흥적으로 색을 조합해 캔버스에 밑그림 없이 점과 선으로 감정을 펼쳐낸 윤협 작가의 작품이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윤협 작가는 대학 졸업 후 어린 시절부터 접했던 스케이트 보드, 힙합, 펑크 등 서브컬처에서 영향을 받은 다양한 작업을 시작했다. 스케이트보드를 기반으로 한 벽화, 라이브 페이팅, 그래픽 디자인, 음악 앨범 커버 작업 등을 시작하며 다양한 스트리트 브랜드와 협업을 펼친 그는 나이키 코리아 등 다수의 프로젝트를 의뢰받았다. 

 

2010년 뉴욕으로 이주, 2014년 패션브랜드 랙앤본(rag & bone)의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뉴욕 소호 휴스턴 스트리트에 벽화를 선보인 그는 이를 계기로 뉴욕 예술계와 대중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으며 유니버설 뮤직 그룹(Universal Music Group), 바비브라운(Bobbie Brown), 유니클로(Uniqlo), 베어브릭(Be@rbrick), 허프(HUF), FTC, 나이키 SB(Nike SB) 등, 여러 브랜드와의 협업을 진행했다. 현재 뉴욕 브루클린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LA, 뉴욕, 밀라노, 빌바오, 런던, 도쿄, 홍콩, 상하이 등 전 세계 여러 도시에서의 전시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뉴욕, 서울, 파리 등 도시의 풍경을 점과 선을 이용, 운율감 있는 방식으로 그려내면서 보드를 타고 자유롭게 도시를 누비는 즉흥적인 감성과 리듬감을 표현하는 그는 도시 안팎에서의 경험과 주관적인 감정을 도시 시리즈에 담아냈다. 도시를 희로애락의 공간처럼 느끼는 그는 “다양한 에너지로 가득 찬 거대한 유기체인 도시를 표현하는 것은 도시 속 개성과 문화를 보며 직접 느낀 에너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말한다. 

 

윤협 작가

 

 

윤협 작가의 전시 ‘녹턴시티(Nocturne City)’가 롯데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다. ‘녹턴시티’의 ‘녹턴 (nocturne)’은 ‘밤’이라는 시간에 영감을 받은 예술을 의미하는 것. 작가는 “밤은 기억의 조각들을 상기시키며, 낮에는 보이지 않던 여러 개성이 더욱 선명하게 빛을 발하는 매력적인 시간”이라 말한다. 

 

전시는 도시의 밤에 펼쳐지는 녹턴(야상곡)을 주제로 펼쳐진다. 작가의 초기작부터 신작까지 총 23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에서는 맨해튼의 야경을 그린 16미터의 대형 파노라마 작품 <Night in New York>과 함께 이 대형 작품과 회화에서 탄생한 캐릭터 <저글러(Juggler)> 조각을 새롭게 발전시킨 신작 시리즈 <리틀 타이탄(Little Titan)>도 공개된다. 전시는 5월 26일까지 열리며, 관람료는 성인 18,000원이다.

 

Landing at JFK Airport #1, 2017. Acrylic on canvas, 121.9 x 91.4 cm ⓒ Yoon Hyup. Photo courtesy of the artist

 

 

Q. 서브컬처 특히, 스케이트보드는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아홉 살부터 스케이트보드를 탔고, 스케이트보드 문화와 DIY(Do It Yourself) 문화를 접하면서 개성을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인 1995년 이태원의 스케이트보드 샵 에어리언 하우스 벽에 가득히 걸린 스케이트보드 데크 아트워크와 디자인, 사진들을 보며 아주 강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날 이후로 해외 스케이트보드 매거진을 보면서 로고나 페이지를 찢어서 콜라주와 드로잉을 하며 놀았습니다. 중학교 2학년까지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학생은 학교에서 저뿐이어서 혼자 보드를 타거나 드로잉을 그리곤 했습니다. 

 

소문이 퍼지면서 친구들이 하나둘씩 찾아와 그림을 부탁하고, 스케이트보드 타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저와 생각이 맞는 소수의 친구를 만나면서 재미를 느꼈고, 여러 재능을 가진 친구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자연스럽게 작품 활동에 동기부여가 됐습니다.

 

예전에는 지금과는 다르게 스케이트보드 공원이 없어서 주변의 벽돌이나 사물을 모아 직접 스케이트보드 기물을 만들었습니다. 이때부터 여건이 충분하지 않을 때는 기존에 있는 것을 활용해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DIY 방식으로 버려진 박스를 활용해서 <턴테이블 세트 Turntable Set>(2003)나 <캐러멜 보이 Caramel Boy>(2003), <벌도 Birdoe>(2003), 친구이자 음악 프로듀서인 프라이머리의 박스 마스크 또한 만들었습니다. 

 

창작의 과정과 스케이트보딩은 정신적으로 유사한 부분이 있습니다. 무엇을 상상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용기,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는 칠전팔기와 같은 인내력이 창작활동을 유지하고 꾸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잠시나마 정신적인 자유를 느끼곤 합니다.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마음의 긴장을 풀고 자유롭게 선을 그리거나 임팩트 있는 리듬으로 트릭을 하기도 하는데, 캔버스나 종이 위에 선을 그리는 과정 중에도 문득 비슷한 감각이 느껴집니다.

 

On the Way Back from Bear Mountain #4, 2023 ⓒ Yoon Hyup. Photo courtesy of the artist

 

On the Way Back from Bear Mountain #5, 2023 ⓒ Yoon Hyup. Photo courtesy of the artist

 

 

Q. 작업방식은 어떻게 발전했나. 


학창시절 소묘 수업에서 선을 겹쳐 명암을 표현하는 것이 항상 어려웠습니다. 대신에 어둠과 빛의 윤곽을 먼저 나누고, 그 안의 명암을 채워가는 방식을 시도했습니다. 이후로 사물을 보면 라인을 그리는 것이 익숙해졌고, 디자인을 전공해서도 일러스트레터와 같은 그래픽 툴이 편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스프레이나 마커 등으로 작업한 그래피티 라이터(Graffiti Writer)들의 독창적인 태그(Tag) 스타일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스프레이를 사용해 선과 점을 반복하며 연습했고, 다양한 것들을 그려보며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2001년 서울에서 아프로킹 파티(Afroking Party)가 시작됐습니다.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전 힙합 음악과 DJ 큐버트(DJ Qbert)와 같은 디제이들의 스크래치 사운드를 즐겼습니다. 아프로킹 파티 첫 회부터 랩, 디제잉, 스케이트 비디오, 라이브 페인팅 퍼포먼스 등 다양한 공연을 친구들과 관람하고는 했습니다. 2004년에는 친구이자 스케이터 아티스트인 골드스텝(Gold Step)과 함께 그 파티에서 라이브 페인팅을 진행하게 됐습니다. 

 

무대 한쪽에 큰 캔버스가 있었는데, 밑그림 없이 즉흥으로 페인팅을 시작했습니다. 그 공간과 순간의 감각에 취해 디제이가 만들어내는 스크래치 리듬이나 추상적인 신호 같은 사운드, 음악을 듣고 떠오르는 이미지를 즉석에서 표현했습니다. 다음 날 다시 보니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점과 선이 섞인 그림이 만들어진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후로 몇 년 동안 벽화나 캔버스 작업, 라이브 페인팅을 꾸준히 했고 다양한 캐릭터도 그리면서 여러 방향으로 작업을 시도했습니다.

 

2010년 뉴욕에 오래 머물면서 개인의 정체성과 문화정체성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시각적으로 잘 그리려고 하기보다는 내면의 흐름대로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리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점과 선이 있던 초기 작품과 현재 작품 사이의 연결성을 발견하게 됐고, 이를 확장, 현재의 스타일로 발전하게 됐습니다.

 

Walking by the River (The River #2), 2023. Acrylic on canvas, 200.6 x 495.3 cm ⓒ Yoon Hyup. Photo courtesy of the artist

 

Night in New York, 2023. Acrylic on canvas,  200.6 x 1,651 cm ⓒ Yoon Hyup. Photo courtesy of the artist

 

 

Q. 어떠한 방식으로 색을 조합하나. 


색상은 작품의 주제에 따라 결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색에 공을 많이 들이는데, 색상을 선택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어린 시절 듣던 악기 수업을 떠오르게 합니다. 현의 미세한 음에 집중하며 조율하는 듯한 기분이 드는데, 아주 작은 차이에도 주의를 기울여 색상을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작업이 진행될수록 즉흥적인 표현에 따른 변수가 발생해 그 자리에서 직관적으로 색상을 선택합니다. 무수히 많은 페인트 통이 놓여 있는 모습을 보면 마치 정신없이 저글링을 하는 듯한 느낌입니다. 작업에 몰입하기 위해 음악을 듣기도 하지만 조용한 분위기에서 작업하는 시간도 많습니다.

 

Q. ‘밤’은 어떤 의미인가. 


밤은 기억에 남아 있는 여러 순간을 떠오르게 합니다. 해가 저문 시간 브루클린 거리를 달려가며 응시한 먼빛들, 어린 시절 어머니 학원에서 들었던 베토벤 소나타 21번 ‘발트슈타인’ 1악장, 서울에서 밤새 음악을 들으며 영감을 나누던 친구들, 늦은 밤 라이브 페인팅을 하던 추억. 그랜드피아노의 유광 검정 실루엣, 스트레치 암스트롱(Stretch Armstrong, 1969~)이 기획한 월요일 밤의 뉴욕 재즈 공연, 그리고 도시의 불빛. 저에게 ‘밤’은 낮이라는 시간에는 보이지 않던 여러 개성이 더 선명하게 빛을 발하는 매력적인 시간입니다.

 

A Knight's Perspective, 2023. Acrylic on canvas, 200.6 x 160 cm ⓒ Yoon Hyup. Photo courtesy of the artist

 

Seoul City, 2023. Acrylic on canvas, 200.6 x 495.3 cm ⓒ Yoon Hyup. Photo courtesy of the artist

 

Good Night (Manhattan), 2014. Krink on canvas, 50.8 x 61 cm ⓒ Yoon Hyup. Photo courtesy of the artist

 

 

Q.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담은 대형 파노라마 작품들이 전시되는데.


작품 대부분에는 도시 안팎에서의 경험과 그에 대한 주관적인 표현이 담겨 있습니다. 가끔은 일기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좋아하는 음악 연주나 도시 속 스케이트보딩에 관해 그리기도 하고, 문화가 숨 쉬는 도시를 여행하며 느낀 감동을 담아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그리기도 합니다. 그중 몇 작품은 대형 파노라마로 제작했습니다. <Seoul City>(2023)는 나의 고향, 서울에 대한 감정을, <Walking By The River>(2023)는 런던에서 개인전 후 방문한 파리에서의 잔잔한 기억을 담았습니다.

 

작업을 하면서 간혹 느끼는 부담감을 스케이트보드나 자전거를 타면서 잊곤 하는데, 11월 어느 추운 날 브루클린에서 베어 마운틴까지 자전거로 200km를 왕복한 적이 있습니다. <Night in New York>(2023)은 자전거 여정이 끝날 무렵, 조지 워싱턴 대교에서 바라본 맨해튼의 야경을 담았습니다. 허드슨강 위에서 자전거를 타며 바라본 야경은 마치 대기권 밖에서 지구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Musée de l'Orangerie)에 전시된 모네(Claude Monet, 1840-1926)의 <수련 Water Lilies> 연작을 좋아하는데, 시간과 공간은 다르지만 허드슨강 수면 위에 도시 불빛으로 빛나는 윤슬을 보며 수련 연작이 떠올랐고, 작업 과정에서 그 느낌을 표현했습니다. <On the Way Back from Bear Mountain>(2023)도 그날의 여정을 담은 작품으로, 시간이 흐르며 해가 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림을 종일 그리다 보면 몸이 지쳐서 가끔은 간단한 드로잉을 하거나 쉬기도 합니다. <Backyard>(2023)는 타지에서 막막한 기분이 들 때 뒤뜰에 꿋꿋이 자라는 잡초를 생각하며 그렸습니다. <Hourglass>(2023)와 <Winter>(2023)는 멈추지 않는 시간과 변화하는 것들을 표현했습니다. 일상에서 경험한 순간을 즉흥으로 그리고 거기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변수를 즐기기도 합니다.

 

나의 작업을 디지털 그래픽으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보면 모두 붓으로 그려진 것을 알아차리고 흥미롭다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붓끝의 살아있는 움직임과 속도, 세밀하거나 완벽하지 않은 부분 등 여러 흔적이 담겨 있습니다. 돌을 하나하나 쌓는 기분으로 시간을 들여 완성한 작품입니다. 지금은 기계적 출력물보다 수작업으로 그려진 벽화가 더 귀하게 느껴집니다. 기계처럼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순간의 감정을 담아낸 것이 수작업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끔은 의도적으로 거칠고 불완전하게 작품을 완성할 때도 있습니다.

 

Juggler, 2023 ⓒ Yoon Hyup. Photo courtesy of the artist

 

Little Titan, 2023 ⓒ Yoon Hyup. Photo courtesy of the artist

 

 

Q. 작품 철학이 있다면.


항상 보고 느낀 것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려고 합니다. 얽매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표현해 나가는 것이 제 철학입니다. 마치 장거리 라이딩을 하는 마음으로요.

 

Q. 후배 아티스트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관심 있는 분야를 관찰하고 공부하며 탐구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세의 흐름이나 타인의 모습을 닮으려 하기보다는 자신만의 페르소나를 발견하는 데 집중하고, 차근차근 자신을 위한 작업을 이끌어 가길 바랍니다. 그렇게 나아가다 보면 독창성을 발견할 것입니다. 누군가 괴짜라고 해도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 않고 좋은 친구들과 함께하세요. 건강에 해로운 음식과 습관은 멀리하고 자신을 지키세요. 이 모든 것은 장거리 여행이니 조급해하지 말고 창작의 여정을 오래 이어 가기를 바랍니다.

 

에디터_ 최유진 편집장(yjchoi@jungle.co.kr)
자료제공_ 롯데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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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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