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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인터뷰

[포커스 인터뷰] 글씨에 감성을 담는 캘리그라퍼 이상현 작가

2023-07-23

캘리그라퍼 1세대인 이상현 작가는 글씨에 감성을 담는다. 그는 스스로를 ‘붓을 잡은 연기자’라 말한다. 한글에 표정을 만들고 감성이라는 옷을 입히고자 해서다. 

 

캘리그라퍼 이상현 작가

 

 

대표적인 작품으론 드라마 <해를 품은 달>, 영화 <타짜> 등의 타이틀과 일품진로, 백화수복, 구글 한글로고 등이 있다. 

 

 

 

 

 

 

이상현 작가가 작업한 로고들

 

 

15회의 개인전 및 초대전을 가진 그는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서울스퀘어미디어 LED캠버스에서의 영상 전시와 강남대로의 22개 미디어폴에서의 전시를 개최했고, 위스키 ‘발렌타인17 스카파에디션’ 제품과의 콜라보레이션 등을 진행하기도 했다. 

 

뉴욕 타임스퀘어 아리랑 퍼포먼스

 

시드니 달링하버 독도 퍼포먼스

 

발렌타인 콜라보레이션 퍼포먼스

 

 

그는 글씨만 쓰지 않는다. 한국의 캘리그라피를 널리 알리기 위해 현대무용, 재즈, 인디음악, 브라질 음악과 같은 현대예술장르와 전통의 캘리그라피 문화를 접목시키는 퍼포먼스 공연도 한다. 전통 서예를 대중예술로 승화시키기 위해 디자인과 미술시장을 통해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는 그다. 

 

어린 시절부터 붓을 잡은 이상현 작가는 서예에 대한 남다른 애착으로 대학과 대학원에서도 서예학을 전공했다. 군대를 제대하고 나선 한국 서예의 발전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왜 서예는 대중영역에서 소외되고 있는 것일까, 우리의 생활 속에서 묵향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가 그의 최대 관심사였다. 

 

이후 디자인 문화를 통해 소통의 방법을 깨달은 그는 대중에게 모필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고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고, 1999년부터 지금까지 24년동안 그 일에 매진하고 있다. 

 

이상현 작가로부터 그의 작업 세계에 대한 이야기와 캘리그라피에 대해 들어본다. 

 

Q. 서예를 전공했다. 서예와 캘리그라피의 차이는 무엇인가?


‘캘리그라피’하면 많이들 ‘아름다운 문자’ 혹은 ‘서예’라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대중들이 말하는 캘리그라피는 모필글씨와 펜글씨를 모두 포괄하고 있어요. 그래서 서예와 캘리그라피의 차이에 대해서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는 서예와 캘리그라피는 같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다르다고 주장해 왔지만 요즘은 글씨예술의 범주가 넓어졌기에 지금의 글씨를 쓰는 행위는 기록이고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통 서예를 작가의 마음과 정신을 이해하고 나를 담아 내려 하는 과정과 결과라 이야기할 수 있겠는데요, 상업글씨로 알려져 있는 요즘의 캘리그라피 역시 글씨로 힐링하고 마음을 담아내는 작업을 하는 것이기에 결국 캘리그라피와 서예는 같다고 생각합니다.

 

<나무>

 

<풀잎소리>

 

 

Q. ‘붓을 잡은 연기자’는 어떤 의미인가?


글씨를 쓰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감성이 풍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언가의 대상을 표현하기 위해선 그것과의 물아일체가 돼야 한다는 것이죠. 이러한 작업을 하려면 그냥 손에서 익숙한 글씨만을 쓰는 것이 아니라 감성과 표정을 담은 글씨를 써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잠재되어 있는 감성이 있습니다. 그것을 가슴속이 아닌 밖으로 끌어내는 법을 알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글을 쓴다는 것은 연기를 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죠. 그래서 캘리그라피 작가인 저를 ‘붓을 잡은 연기자’ 이상현이라고 한답니다.

 

Q. 붓끝을 통해 마음을 전달하는 특별한 노하우가 있나?


글을 쓰기 위한 대상이 ‘나’라고 생각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화선지 위에 붓을 대기도 합니다. 무심(無心)으로 글씨를 쓰다 보면 자연스러운 좋은 글씨가 가끔 나오기도 하거든요. 욕심을 내서 무리를 하다 보면 항상 긴장감이 느껴지는 작업물이 나오기에 항상 마음의 여유를 갖고 작업에 임하고 있습니다. 

 

서예 도구인 붓을 고집하고 있지만 간혹 감성적 글씨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색다른 도구가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전 식물의 뿌리를 이용하거나 이쑤시개, 면봉, 수세미 등의 재료를 통해 차별화된 질감의 표현을 하고 있어요.

 

감성을 담아내기 위해 저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어 보기도 합니다. 글씨에 표정을 만들고 감성을 입히기 위해 다양한 체험을 통해 교감을 하는 것이죠. 이러한 방식으로 작업을 하기에 글씨의 감성적 표현이 다양해지는 것 같습니다. 가끔은 다혈질적인 저의 성격이 도움이 될 때도 있고요(웃음). 체험을 통해 느낌에서 나오는 감성적 글씨, 교감을 통한 순간적 작업, 이것이 바로 노하우인 것 같습니다. 

 

<바람길>

 

<숲>

 

 

Q. 작업의 모티브는 어디에서 얻나?


작품에 대한 모티브는 전통 서예에서 얻습니다. 전통의 글씨속에는 우리네 삶의 이야기가 묻어져 있기에 전통 서예를 통한 다양한 한글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한글 서체의 변천사를 통해 서체의 조형미를 찾아가는 것이죠. 전통 서예를 이해하면 앞으로 캘리그라피를 통해 다양한 서체의 창작범위를 넓혀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늘 새로운 것에 관심을 갖고 도전하고 있습니다. 새로움은 저에게 호기심이라는 숙제를 주는 친구거든요.

 

이상현 작가가 작업한 구글 한글로고

 

 

Q. 작업을 하면서 기억나는 특별한 일이 있다면? 


2015년 구글에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10월 9일 한글날을 기념해 구글의 검색창 영문로고를 24시간동안 한글로고를 발표하겠다는 내용이었어요. 이에 한국의 작가로 선정돼 구글의 한글로고를 작업하게 됐습니다. 오래전부터 한글의 오방색을 적용한 작품들을 발표해 왔기에 구글 로고에도 오방색을 담아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적용하다 보니 구글의 대표 컬러가 한글 구글에 나타나더라고요.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신기하고 설레었어요. 그래서 이후 ‘구글의 컬러는 세종대왕님께서 이미 예언하셨다’라고 인터뷰했었습니다(웃음).

 

Q. 캘리그라피 작가로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나는 편인데요, 서로 명함을 주고받을 때 “아, 캘리그라피 작업을 하시는군요. 이상현 작가님이시네요.”라는 말을 들을 때 보람을 느낍니다. 초창기, 용어조차도 생소했던 시절이 있었기에 캘리그라피 문화를 위해서 달려온 전 남녀노소 많은 분들이 이 직업을 알아봐 주실 때 기쁨을 느껴요.  

 

아들과 관련된 일화도 있습니다. 아들이 초등학교를 다닐 때 주말도 없이 항상 늦게 들어오는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아빠를 자랑스러워하지 않았는데요, 어느 날 아들의 학교에 가게 됐는데, 같은 반 학생들이 박수를 치고 환호를 해 주는 것이었어요. 이유를 알고 보니 미술교과서에 제가 나온 것을 보고 아들이 자랑을 했던 거예요. 지금은 요리사의 꿈을 갖고 미국에 공부하러 가 있는 아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빠가 된 것 같아 이 직업을 갖게 된 것에 큰 보람을 느낍니다. 

 

아르헨티나 전시

 

서울스퀘어 미디어 파사드 전시

 

 

Q. 예술 철학은 무엇인가?


“예술은 곧 문화를 만들고, 예술가는 그 문화를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


초등학교 4학 때부터 서예라는 전통예술의 길을 걸으면서 ‘붓’이라는 제 친구는 저의 뜻을 실망시킨적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故 김흥수 화백님께서 저에게 질문을 하셨어요. “너는 왜 붓을 잡냐?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그래서 전 “글씨 쓰는 것이 그냥 좋아서요. 그리고 예술가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답했는데, 화백님께서는 “그냥 좋아서는 예술가가 될 수 없다. 그 문화를 책임질 줄 알 때 예술가가 될 수 있는 것이다”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이 말씀이 저에겐 큰 지침이 됐습니다. ‘전통문화의 소중함을 알고 그것을 지켜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기에 작품 한 점 한 점에도 정성과 책임감을 다하고 있습니다.

 

Q. 캘리그라피를 가르칠 때 가장 강조하는 점은 무엇인가?


캘리그라피는 문자를 다루는 일이에요. 그러기에 문자는 시대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텍스트입니다. 캘리그라피 작업은 손으로 표현하는 작업이기에 자칫하면 오자를 만들 수 있어요. 붓을 든다는 것은 역사를 만드는 것이기에 책임감 있는 작업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통 서예와는 달리 소통을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작품이 대중들에게 다가가 교감을 하기 위해서는 작가 스스로가 스토리텔링을 통해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학생들끼리 소통하고 표현할 수 있는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열일곱살 사춘기' 전

 

 

Q. 최근 ‘열일곱살 사춘기(四春記)’라는 전시에 참여했다. 어떤 전시였나?


17년전 2006년 당시 저를 포함해 캘리그라피 1세대라 불리는 김종건, 이규복, 강병인 네 명의 작가가 모였고, 캘리그라피 문화를 위해 전시를 준비해 보자는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이 전시가 바로 ‘사춘기(四春記: 네 명의 봄을 기록하다)’전이었어요. 전시는 서예계와 디자인계의 이슈가 됐는데, 이후 서로의 활동이 바빠지면서 이 전시를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일백헌이라는 갤러리를 통해 17년만에 네 명의 작가가 다시 모일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열일곱살 사춘기’라는 전시타이틀로 17년간 서로가 걸어온 흔적들을 전시로 선보이게 된 뜻있는 전시였습니다.

 

Q. 캘리그라피의 입지가 많이 달라졌다. 캘리그라피의 변화에 대해 말해준다면.


우리나라 캘리그라피 문화의 시작은 한국적인 글씨문화를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요즘엔 하나의 트랜드가 돼 많은 글씨들이 선보여지고 있고, 이로 인해 한국 캘리그라피 문화에 큰 이슈가 되긴 했습니다만 처음의 의도와는 조금 달라지고 있습니다. 모필문자의 우수성에서 모든 손글씨를 포괄하는 시장이 되었기에 예술로서의 가치가 떨어지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예쁜 손글씨를 넘어 예술적 가치를 담아내는 여러 작가들의 활동이 많아짐으로써 캘리그라피는 전통 서예를 넘어 현대 서예 즉, 현대미술의 장르로 성장했습니다. 이에 캘리그라피는 예술로서 여러 대중들과 소통하며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앞서 언급했듯이 ‘붓을 잡은 연기자 이상현’이 되고 싶습니다. 단지 상업성만을 목적으로 글씨를 쓰기보다는 작가 이상현으로 남고 싶어요. “예술은 문화를 만들고 예술가는 그 문화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는 말대로 실천하는 작가가 되도록 작업에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인터뷰어_ 정석원 편집주간
에디터_ 최유진 편집장
사진제공_ 이상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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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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