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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스토리⨉디자인] 우리가 봄청소를 해야 하는 이유

2021-02-27

잘 비우기에서 찾는 기쁨

 

‘집안을 정리하여 혼란을 몰아내면 행복을 되찾고 상한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는 복음을 전파하는 일본 정리 컨설턴트 곤도 마리에(Marie Kondo)가 미국과 유럽에서 선풍적 인기다. 정리정돈에 대한 책 4권의 세계적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넷플릭스 시리즈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Tidyning Up with Marie Kondo)>의 사회자로 등장해 사람들의 집 정리를 도와주고, ‘곤마리 사단’이라는 제자들을 배출하고 있을 정도다. 

 

일본에 곤도 마리에가 있다면, 스웨덴에는 데스태드닝(döstädning) 전통이 있다. 데스태드닝이란 ‘죽음 청소(death cleaning)’라는 뜻으로, 죽음을 대비해 필요 없는 물건을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주거나 내버려서 가족에게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행하는 일종의 자기 영혼 정화 의례다. 스웨덴의 저자 마르가레타 망누손(Margareta Magnusson)이 쓴 <The Gentle Art of Swedish Death Cleaning>은 언뜻 제목이 섬찟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실은 나와 가족들이 공유하는 가정을 정돈해서 즐겁고 활기찬 인생을 살자는 긍정적 삶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마르가레타 망누손의 책 <The Gentle Art of Swedish Death Cleaning>은 한국에서 <내가 내일 죽는다면>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곤마리 정리정돈 컨설턴트는 정리정돈을 잘 하는 것만으로 행복하고 진취적인 인생을 성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Courtesy: KonMari Media, Inc.

 

 

불필요한 물건과는 정중하게 작별을 고하고 기쁨을 주는 물건은 잘 정리해서 적절한 채움과 비움이 창출된 실내공간은 집주인에게 새삼스러운 활력을 준다. 실제로 풍수지리 전문가들은 정기적인 청소와 정리정돈을 하는 것만으로도 적체된 나쁜 기운을 내보낸 자리에 좋은 운을 불러들일 수 있다고 조언한다. 다시 말해 게으름을 극복하고 몸을 일으켜 소제하고 정리정돈하는 행동은 분명 그 자체로 긍정적이고 자기주도적 의지의 표현임을 뜻한다.

 


연간 9,000,000톤의 멀쩡한 가구가 쓰레기 매립장에 버려진다. 지구 친환경·지속가능성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면서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는 쓸만한 중고 가구를 매매하고 수선해 재활용하는 트렌드가 급성장하고 있다. 어반리뉴얼(Urban Renewal)은 보히미언풍으로 업사이클된 빈티지 가구와 의류를 판매하는 어번아우피터스(Urban Outfitters)의 지속가능주의 자매 브랜드다. Courtesy: Urban Renewal

 

 

곤도 마리에의 정리정돈론, 스웨덴식 죽음 청소와 덴마크의 ‘휘게(Hygge, 포근함, 아늑함을 의미)’ 철학을 굳이 예로 들지 않아도 이미 ‘비움의 미학’을 내세운 미니멀리즘(minimalism) 라이프스타일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미니멀리스트’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밀레니얼 세대 - 1981년~1996년 사이 출생한 만 25~40세 인구 집단 - 는 미니멀 라이프스타일을 주도하는 소비자군이다. 밀레니얼 시대는 전세계 인구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막강한 인구집단이며, 미국에서는 2020년부터 밀레니얼 인구수가 부모 세대인 베이비부머 인구수를 초월했다.

 


이케아는 2020년 연말부터 소비자로부터 중고 이케아 중고품을 되사고 수선한 후 업싸이클 제품으로 판매하는 ‘바이 백 앤 리셀(Buy Back & Resell)’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Courtesy: IKEA

 

 

마케팅 업계는 베이비부머 시대가 물질적 소유에 집착한 세대인 반면, 밀레니얼 세대는 경험을 중시하는 세대라 분석한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평생직장에서 저축한 돈으로 집과 자동차를 사고 소유물을 축적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다면, 밀레니얼 세대는 필요한 만큼 일하고 번 돈으로 여행을 하고, 문화생활을 향유하며, 필요한 것들을 타인과 공유하며 살아가는 것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는다. 도시 선호 취향에 따라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고지가·고밀도 도시 주거 조건에서 룸메이트와의 코리빙이나 소형 아파트에서 1인 가구를 형성해 산다. 이들은 주거공간의 초소형화, 한정된 공간의 효율적인 활용, 잦은 이사를 수월하게 해주는 다목적·모듈화 가구와 세간을 선호한다.

 


일-사생활-여가활동이 한 공간으로 수렴되는 지금 시대에 가장 중요한 가정 공간이 된 주방과 식탁 주변. 고급 중고 아메리칸 모던 스타일 가구를 매입·수선하여 재판매하는 미국의 스타트업 리쥬비네이션. Courtesy: Rejuvination, Inc.

 

 

생활공간은 시대에 맞춰 계속 변화한다. 특히 지난 20~30년 대도시는 디지털 노마드 인구의 증가로 더 밀집화되고 개별 주거공간은 자꾸만 작아지는 추세다. 주거공간의 소형화는 인테리어의 미니멀리즘을 부르고, 소유는 추구할 목표가 아니라 부담스러운 짐이라는 가치관을 낳고 있다. 부모가 물려준 크고 무거운 가보 가구나 값비싼 디너세트를 보관할 공간이 부족한 젊은 세대들은 온라인 플랫폼에서 중고품을 처분하고 필요한 물건은 필요할 때마다 일시 대여해 사용하고 반환한다.

 


무겁고 깨지기 쉬운 고급 도자기 그릇을 굳이 소유, 보관할 필요 없이 3~6개월마다 취향과 유행에 맞춰 교체할 수 있는 빌레로이앤보흐 도자 식기 대여 서비스는 현재 독일 시장에서 운영 중이다. Courtesy: Villeroy & Boch

 

 

특히 서구에서는 코로나-19 사태가 부른 봉쇄령과 재택근무 문화의 영향으로 일터 공간도 과격한 미니멀화를 거치고 있다. 디지털화로 팩스기 다음으로 프린터는 종이와 나무 펄프 낭비와 탄소발자국의 주범으로 전락했고, 오래된 종이철과 화일은 먼지가 뽀얗게 쌓인 도서관 기록보관소에서나 만날 수 있는 텁텁한 옛 역사의 산물 취급을 받는다. 디지털 노마드들은 랩탑과 태블릿으로 작업해 클라우드 서버와 소셜미디어에 자료와 기록을 저장해두고, 스마트폰으로 걷고 운동하고 움직이며 소통한다.

 


독일 데사우 바우하우스의 교장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의 오피스. 1924년. Source: Sharp Magazine

 

 

1908년 오스트리아의 근대 건축가 아돌프 로오스(Adolf Loos)는 ‘장식은 범죄’라고 선언했다. 그로부터 약 10년 후, 독일에서는 기계시대 대량생산에 용이하고 만인 대중 누구나 소유할 수 있는 디자인 민주화 실현이라는 기치하에 당대 근대 건축가들이 모여 바우하우스 운동을 펼쳤다. 1980년대, 스웨덴의 이케아나 영국의 하비탓(Habitat)은 그 정신을 실현했고, 이어서 1990년대에는 존 포슨(John Pawson), 재스퍼 모리슨(Jasper Morrison),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 타다오 안도(Tadao Ando) 등이 주도한 미니멀리즘 미학이 건축계를 평정했다. “미니멀리즘이란 금욕, 부족, 부재 즉, 없는 것에서가 아니라 그 자리에 꼭 있어야 할 바르고 중요한 것으로부터 풍요함과 기쁨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한 존 포슨의 철학은 오늘날 많은 현대인들이 생활 공간에서 누리는 보편적인 인테리어 언어가 됐다.

 


런던 재스퍼 모리슨 숍에서 판매되는 우리 일상 곳곳에 존재하며 생활에 도움과 소소한 기쁨을 주는 ‘수퍼노멀(Super Normal)’ 디자인 사물들. Photo ⓒ Jasper Morrison

 

 

도대체 30년 넘게 유행 중인 미니멀리즘 인테리어 트렌드는 언제 끝날 것인가? 물질적 풍요와 영혼적 허기가 공존하는 요즘, 미니멀리즘 트렌드는 ‘올바르게 비움으로써 더 풍요롭게 해주는 공간 경험’으로써 더 오래 머무를 것 같다. 그리고 봄청소는 기쁨과 충만이 담긴 미니멀 생활공간에 위생과 건강까지 더해줄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초봄이 되면 창문을 활짝 열고 집안 대청소를 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글_ 박진아 객원편집위원(jina@jinapa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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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아 칼럼니스트
미술평론가, 디자인 및 IT 경제 트렌드 평론가, 번역가이다. 뉴스위크 한국판, 월간디자인의 기자를 지냈고, 워싱턴 D.C. 스미소니언 미국미술관, 뉴욕 모마, 베니스 페기 구겐하임 갤러리에서 미술관 전시 연구기획을 했다. 현재 미술 및 디자인 웹사이트 jinapark.net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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