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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예술과 문화를 담은 ‘행화탕’

2021-02-25

과거 벙커C유 보일러를 사용해 따뜻한 물을 데우던 시절, 목욕탕 굴뚝은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손님을 맞이했다. 1990년대 후반 전기나 가스보일러의 사용이 주를 이루면서 목욕탕의 굴뚝은 제구실을 못 하고 그 기능까지 상실하게 되었다. 더는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는 목욕탕 ‘행화탕’이 지난 2016년 문화예술 콘텐츠 기획사 ‘축제행성’의 손을 거쳐 카페와 복합 문화예술 공간으로 문을 열었다.

 

복합 문화예술 공간 '행화탕' 건물 전경 ⓒ Festa Planet

 

 

수십 년 동안 마포구 아현동 주민들이 즐겨 찾던 행화탕은 1958년부터 운영을 시작해 지난 2008년 문을 닫았다. 이후 아현동이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방치되다시피 한 공간에 사람들이 찾아오면서 새로운 활력을 찾게 된 것이다. 

 

목욕탕의 삶의 흔적과 추억이 묻어 있는 공간 ⓒ 축제행성

 

 

행화탕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선명한 붉은색 굴뚝과 노란 외벽에 흐릿해진 글자는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기존 목욕탕을 그대로 사용한 공간답게 남탕과 여탕을 구분 짓는 문만 보아도 공간을 꾸민 이들의 남다른 이목을 느낄 수 있다.


빈티지함이 느껴지는 공간에서는 목욕탕을 소재로 꾸며진 인테리어 요소들을 발견하는 재미로 흥미를 더한다. 행화탕이란 이름부터 과거 목욕탕 작명을 고수하고 있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의 삶의 흔적과 추억이 묻어 있는 목욕탕의 모습을 최대한 보존하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행화탕은 처음 작업실과 실험적 성격을 띠는 예술 공간으로 완성되었다. 이후 예술인들과 주민들의 소통을 위한 공간이자 사랑방의 기능을 하는 공간으로 카페를 만들게 되었다.

 

미로처럼 연결되어있는 행화탕에서는 구석구석 새로운 공간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 축제행성

 

 

행화탕에서는 목욕탕 건물과 목욕탕 주인이 살았던 건물 전부를 사용하며, 공간마다 개성을 살려 기획된 공연, 전시, 세미나, 워크숍 등 다채로운 행사들이 열린다. 

 

복잡하게 미로처럼 연결되어있는 행화탕에서 처음 마주하게 되는 공간은 카페이다. 카페를 지나면 흰색 타일이 깔린 남탕과 여탕으로 나눠진 욕조가 있었던 공간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안쪽 공간으로 들어가게 되면 보일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곳을 지나면 마당과 연결돼 실내에서 실외공간으로 나오게 된다. 마당창고 뒤로는 목욕탕의 기름 창고로 사용되었던 공간이 있어 숨바꼭질하듯 구석구석 새로운 공간을 발견하는 이색적인 체험이 가능하다. 

 

 

 

행화탕에서는 예술 장르를 구별 짓지 않는 다양한 기획전시를 만나볼 수 있다. ⓒ 축제행성

 

 

‘예술로 목욕합니다’라는 모토로 운영되는 행화탕은 예술 장르를 구별 짓지 않으며, 자체 기획, 대관 기획, 공동기획 등을 통해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선보인다.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공간을 찾아다니며 그곳에서 발견하는 예술작품과 건물 자체에서 내뿜는 예술적 감성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3월 5일부터 3월 21일까지는 ‘가상 정거장’ 전시가 열린다. 기술이 낳은 변화로 만들어진 가상 공간 속 공공의 장을 여는 참여작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행사에 대한 자세한 소식은 www.facebook.com/haenghwatang 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아날로그 감성이 가득한 카페 내부 전경 ⓒ 축제행성

 

 

행화탕은 평소 카페로 운영된다. 예전에 탈의실로 사용되던 공간을 카페로 만들었으며, 목욕탕 특성상 밀폐됐던 벽에 창문을 만들고 옥색 타일은 벗겨 빨간 벽돌을 그대로 노출 시켰다. 빨간 벽돌벽과 바닥에 파인 수로, 일부가 깨진 사각 타일 등 기존 공간의 특징을 최대한 살린 카페는 목욕탕과 관련된 소품들로 꾸며져 보는 재미를 더한다. 하얀색 자갈이 깔린 바닥 위에 작고 네모난 교자상과 동그란 방석은 아날로그 감성을 느끼기에 충분해 보인다. 레트로 감성을 더한 인테리어와 여기저기 자유롭게 놓여 있는 테이블과 의자에 앉아 편안하게 쉴 수 있다. 

 

유쾌함이 느껴지는 카페의 시그니처 메뉴들 ⓒ Chad Park

 

 

카페의 시그니처 메뉴는 ‘반신욕라때’이다. 라떼가 아닌 라때라 이름 지은 것만 보아도 목욕탕을 바로 연상시키게 한다. 음료에 반쯤 몸을 담그며 때수건을 들고 있는 캐릭터는 보는 것만으로도 세신을 떠올리게 하며, 왜 반신욕라때라고 이름을 지었는지 바로 납득 할 수 있다.


또 다른 인기메뉴 ‘행화에이드’는 ‘행화’를 뜻하는 살구꽃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으며, 살구청이 들어가 상큼함을 더한다. 행화탕 카페에서는 음료를 주문하면 진짜 목욕탕에서나 볼법한 플라스틱 대야를 트레이 삼아 음료를 내어준다. 카페에서 사용하는 컵 또한 행화탕이란 콘셉트를 담아 제작된 것들로 의미를 더한다. 이처럼 목욕탕이라는 독특한 감성을 가진 공간은 특별한 공간을 찾는 이들과 목욕탕의 추억을 찾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충분해 보인다. 

 

실생활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굿즈 〈행복목욕키트〉 ⓒ 축제행성

 

 

행화탕에서는 로고를 활용해 제작한 굿즈 〈행복목욕키트〉를 판매한다. 행화탕이 만들어진 61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굿즈는 서상혁 디렉터의 기획으로 이수향, 하지훈, 김보휘 등 디자이너와의 협업으로 완성되었다. 

 

굿즈는 목욕탕과 관련된 추억 그리고 향수를 떠올리는 감성적 측면과 예술이라는 심미적 측면의 결합으로 실생활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탈의실 키링, 때수건, 타올, 티셔츠, 머그잔 등으로 제작되었다. 1958년 지어진 공간의 흔적을 살피며 곳곳마다 진열해 놓은 굿즈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현재 행화탕의 공간은 재개발 예정지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문을 닫아야 한다고 한다. 제 역할을 상실한 채 제자리에 우뚝 서 있는 목욕탕의 굴뚝처럼 행화탕도 철거 일정이 확정되면 공간을 기억하는 이들의 추억 속 기록으로 남겨질 예정이다. 

 

글_ 한혜정 객원기자(art06222@naver.com)
사진제공_ 행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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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정 객원기자
경계를 허무는 생활속 ART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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