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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구찌가 주목하는 유토피아적 장소로서의 대안공간

2020-05-08

구찌(Gucci)의 국내 최초 문화 예술 프로젝트이자 첫 전시 ‘이 공간, 그 장소: 헤테로토피아(No Space, Just a Place. Eterotopia)’가 대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구찌의 멀티 레이어(Multi-layered) 프로젝트로, 서울의 다채로운 문화 경관과 현대 미술을 지원하기 위한 구찌의 문화지원 프로젝트다. 

 

전시는 서울의 독립 및 대안예술공간의 복합적인 역사와 헤테로토피아(Eterotopia)에 대한 구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Alessandro Michele)의 고찰에서 영감을 받아 기획이 됐고, 세계적인 큐레이터 미리암 벤 살라(Myriam Ben Salah)가 미켈레의 사회에 대한 사유를 기반으로 큐레이팅 했다. 

 

전시에는 선정된 10곳의 독립예술공간이 참여한다. 구찌의 전시라는 이유만으로도 대중들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지만, 구찌가 서울의 독립예술공간에 주목했다는 점, 이를 통해 유토피아적 장소로서의 공간을 바라본다는 점이 무척 흥미롭다.  

 

주로 해외의 유명 작가들의 전시를 개최해온 대림미술관에서 실험적인 독립예술공간들과 그들의 프로젝트를 만나는 것 또한 색다른 재미다. 참여 공간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아티스트들의 작품들을 선보이며 ‘다른 공간(other space)’에 대해 ‘개인이 타인 혹은 주변 환경과 관계를 맺는 새로운 방법으로 지금과는 다른 바람직한 미래를 만들 수 있는 장소’라는 새로운 정의를 제시한다. 

 

통의동 보안여관의 <사이키델릭 네이처>. 2019년 기획전시를 재구성한 프로젝트로 류성실, 최하늘 작가가 참여, 인공 낙원 안쪽을 이루는 인물과 사물에 주목한다.

 

탈영역우정국. 강우혁 작가의 <달나라 부동산>

 

 

전시는 총 4개의 층에서 이루어진다. ‘통의동 보안여관’은 인공 낙원의 개념을 살펴보는 류성실 작가의 작품 <대왕트래블 칭첸투어>와 <내려오는 광선> 등을 통해 인간과 자연을 연결하는 세속적인 미신과 허구적인 이야기에 주목하고, ‘합정지구’가 전시하는 전혜림 작가의 입체 캔버스 작품은 ‘이상적인 땅 그리고 실현 불가능’이라는 양면적인 뜻의 ‘이상향’을 전한다. ‘탈영역우정국’은 우주 속 상상의 나라를 통해 현실과 가상, 가능과 불가능, 소유물과 소유를 꿈꾸는 것 사이의 이중성을 해석하는 강우혁 작가의 <달나라 부동산>(문유진 기획)을 선보인다. 

 

시청각. 시공간을 넘나드는 움직임과 변천을 살펴보는 <AVP ROUTE>을 배치하고 박선호 작가의 지도 작품 등을 전시한다. 

 

오브. 각각 다른 프라이버시 수준과 집중도를 구현하는 세 개의 방을 바탕으로 전시를 기획했다. 

 

 

‘시청각’은 <AVP ROUTE>를 통해 시공간을 넘나드는 움직임과 변천을 살펴보며, 인공물, 공간, 사라졌던 공간, 지리정보에 대해 다루는 박선호 작가의 작품 등을 전시한다. ‘다른 공간’이 될 수 없는 우리의 몸이라는 벗어날 수 없는 영원한 장소에 집중하는 ‘d/p’는 감각과 연결성을 위한 환경이자 장소로서의 몸의 움직임, 특히 혀의 움직임에 주목하는 안무가 이윤정의 퍼포먼스 <설근체조>를, 스스로 ‘전시 공간이 아닌 다양한 도심 생존 방식의 축소판’이라고 정의하는 ‘오브’는 가정의 개념과 안과 바깥의 분리를 성찰하는 세 개의 방을 보여준다. 

 

취미가의 프로젝트 <취미가 대림점>

 

 

‘공간:일리’는 당연하고 ‘자연스럽다’는 것에 대해 고찰하기 위한 여성 예술가들의 작품 <크프우프크(QFWFQ) 유영하기>로 ‘자연스러움’의 개념을 해체, 재구성해 관람객의 관점을 전환하고, ‘스페이스 원’의 <I love we love we love I>는 시뮬라크라(simulacra)를 통해 감정의 환영을 불러일으키며 낭만주의와 비판주의의 경계를 넘나든다. ‘취미가’의 프로젝트 ‘취미관 대림점 – Not for Sale’은 예술의 가치가 지닌 의미와 상업적 공간 속에서 예술이 지니는 가치와 소비자로서의 관람객에 대해 살펴본다. ‘화이트노이즈’의 <장수의 비결>은 끝없이 맺는 한시적인 관계와 협업을 통해 예술가의 정체성을 재발견할 수 있는 방법을 전한다. 

 

구찌만의 절충적인 컨템포러리 비전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국내외 아티스트들의 작품도 함께 전시된다. 이야기와 토론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큐레이터가 작가들에게 요청한 것은 ‘가까운 미래 혹은 환상적인 신화에서 영감을 얻은 몰입형 설치 미술품 형태의 작품 전시’로, 작가들은 규범적·지배적 담론의 협소한 시각에 재치 있게 의문을 던지는 작품을 선보인다. 이동, 생명공학, 퀴어링, 혼종화의 주제를 환기시키는 작품들은 ‘타자성(Otherness)’의 해방적 이야기를 위한 스토리텔링과 픽션의 잠재력을 보여준다. 

 

이강승 작가의 <표지들(퀴어락)>

 

 

대서양 가운데 있는 섬이자 불법적으로 바다와 국경을 통과한 난민과 이민자들이 억류되는 CAPS 주민들의 모습을 담은 비디오 설치를 통해 미래에 이민자들이 겪게 될 실향을 상상하고 지리적 양 끝단, 시민권의 자격, 연령, 성별 사이에 존재하는 새로운 공동체를 구현하는 메리엠 베나니(Meriem Bennani)의 <CAPS에서의 파티>, 현대 인류의 상태를 정의하는 인간과 기계의 상호작용을 탐색하며 미래가 현실이 돼버린 역설 속에서 무엇이 인간을 구성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재 조건은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하는 세실 B. 에반스(Cécile B. Evans)의 <마음이 원하는 것>, 퀴어락의 아카이브 컬렉션을 중심으로 지난 40년 동안의 한국 퀴어 공동체의 다양한 역사를 탐색하며 주류 역사에서 소외돼온 개인 서사를 기념하는 이강승의 <표지들(퀴어락)>이 전시된다. 

 

올리비아 에르랭어의 <이다, 이다, 이다!>

 

마틴 심스의 <몸짓에 대한 메모>

 

 

또한, 미술관 공간을 대기와 시간 보내기에 바쳐진 장소인 세탁실로 만들어 일종의 성별이 확립되기 이전에 존재하는 상상 속의 존재인 인어의 꼬리로 가득 채우고 이동성, 하이브리드화, 성별 전형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올리비아 에르랭어(Olivia Erlanger)의 <이다, 이다, 이다!>, 손짓, 몸짓, 실제 언어 등이 받는 문화적인 영향을 고찰하고 이를 통해 정체성의 확립이 허용된다는 사실을 살펴보며 실제 언어는 만들어진 것임을 암시, 대안적인 정체성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하는 마틴 심스(Martine Syms)의 <몸짓에 대한 메모> 등의 작품들은 다름을 이해하면서 소수자의 정체성을 탐색할 수 있는 유토피아적인 장소로서 대안 공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청담 플래그십 스토어에 설치된 파사드

 


청담 플래그십 스토어 윈도우에는 비현실적인 공간을 투영하는 왜곡 거울이 설치됐다. 

 

 

구찌는 이번 전시를 기념하기 위해 구찌 청담 플래그십 스토어에 파사드를 설치, 공간 곳곳에서 전시와 연결된 특징들을 선보이기도 한다. 스토어 윈도우에는 왜곡 거울을 설치, 비현실적인 공간을 투영하는데, 거울을 보는 사람들은 왜곡된 현실과 연결된 가상의 장면 속에 반사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새로운 자신의 형상을 마주하게 된다. 

 

현시대의 대안적인 장소와 그를 소비하는 방식에 대한 성찰을 불러일으키는 구찌의 전시 ‘이 공간, 그 장소: 헤테로토피아’는 대림미술관에서 오는 7월 12일까지 이어진다. 

 

에디터_ 최유진(yjchoi@jungle.co.kr)
사진제공_ 구찌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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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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